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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회귀록-92화 (92/210)

# 92

군주회귀록 092화

마하라의 반지로 빨려 들어갔던 붉은 기운이 다시 문을 지나 피그족들 사이로 뻗어나갔다.

“이, 이럴 수가…….”

로칸은 익스플로전이 허무하게 사라지자 경악했다.

그리고 이어 소년의 반지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빛줄기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위험을 직감했다.

“피, 피해라!”

그리고 피그족 대리인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임을 알아챘다.

“꾸이익, 군주님을 지켜라!”

아무리 먹을 것에 미쳤다 한들 알버트 대리인은 군주를 지키는 사명을 잊지 않았다.

그와 함께 다른 피그족들이 로칸을 향해 온몸을 내던졌다.

꽈드드득!

땅이 비틀렸다.

곧이어 비틀린 땅에서 거대한 화염이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화르르르륵!

폭발과 함께 매서운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문을 열고 나가기 위해 밀치던 앞쪽 병력 170여 마리가 순식간에 몸이 폭발해 죽어버렸다.

문을 열기 위해 꽉꽉 압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앞장선 핵심 병력이라 할 수 있는 피그킹 다섯 마리는 흔적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주변에 피그족들의 살점이 튀어 끔찍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나마 로칸은 자신을 둘러싸고 막아준 피그족들에 의해 무사할 수 있었다.

주르륵.

등짝이 모두 터져 나간 피그족들이 허무하게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이런 개 같은…….”

그가 그리 중얼거릴 때 열려 있던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문 너머로 아서가 입을 비틀었다.

쿠우웅!

문이 완전히 닫혔다.

꾸이이이익!

꾸이익!

사방팔방에서 영지민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문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할 피그족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또한 문 바로 앞쪽이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꾸이익, 사, 살려줘!”

“꾸이익, 꾸이익!”

영지민들이 썰물처럼 피그족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로칸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자신이 패배했음을.

‘어떻게 이런 일이…….’

이제까지 스무 개 이상의 군주보호기간 영지를 털었다.

놈들은 그때마다 추격대를 꾸려 피그족들을 쫓았지만 막강한 무력을 맛보곤 더 이상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상대편 군주 소년은 달랐다.

처음 식량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약탈했고 병력이 출정할 것을 알고 다리에 매복해 병력을 쓸었다.

그다음엔 정체 모를 향을 이용해 피그족들을 군주가 통제할 수 없게 했다.

‘피그족이 극심한 배고픔에 달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었던 거야…….’

로칸의 생각은 거기까지 미쳤다.

자신도 모르고 있던 사실.

도대체 어떻게……?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당장 눈앞의 생존이 중요하다.

푸슈슈슉!

푹푹푹!

교활한 적들에게 자비란 없었다.

여전히 문은 꽉꽉 틀어막은 채 벽 위로 올라가 화살을 쏴대기 시작했다.

“꾸이익!”

“꾸이이이익!”

로칸은 영지민들에게 뜯어 먹히면서 동시에 화살 세례를 받는 병사들을 보며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감조차 잡지 못했다.

결국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 항복한다…….”

“꾸이익, 구, 군주님 안 됩니다!”

알버트 대리인은 흉측하게도 얼굴의 반절이 날아갔을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그 와중에도 항복은 안 된다 말했다.

하지만 군주 로칸이 소리쳤다.

“하, 항복하겠다아!”

* * *

“군주님, 저기 보십시오.”

아서는 랜의 말에 스태프를 휘둘러 대며 항복하겠다 소리치는 적 군주를 볼 수 있었다.

‘한심하군.’

딱 그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피그족의 강력한 무력만 믿고 약탈을 일삼던 군주의 최후는 너무나도 허무했다.

“어떻게 할까요?”

랜의 말에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주만 구출한다.”

“예.”

피그족들은 양날의 검이다.

영지로 데려가 추가 병력으로 부리기에는 아서가 안고 가야 할 위험부담이 너무나도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랜과 병사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로칸 군주에게 벽으로 바짝 붙을 것을 말했다.

로칸 군주는 당장 살아야 한다는 것에 군주의 자존심이고 뭐고 모두 버리고 벽에 붙어 팔을 위로 들어 올려 보였다.

“빠, 빨리 좀……!”

어느덧 영지민들이 병력 대부분을 집어삼켰다.

200마리.

익스플로전에 의해 부상을 입은 피그족 병력으로선 그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던 것이다.

로칸은 곧이어 병사들이 내린 밧줄을 양손으로 잡았다.

“올려라!”

“끄읏차! 끄읏차!”

로칸은 무사히 올라올 수 있었다.

“허억허억.”

그는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 살았다…….’

아서는 그의 앞으로 걸어가 그를 내려다봤다.

로칸은 마흔 중반으로 누가 봐도 아서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

하지만 무릎을 꿇고 비굴하게 앉아 있는 그 모습.

아서는 특별한 말은 하지 않고 소리만 냈다.

“쯧!”

그것이 끝이었다.

항복한 적의 수장과 말을 나눠서 뭐 하리.

혀 차는 소리를 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로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 어떠한 말도, 덤비겠다는 용기도 낼 수 없었다.

그는 지금 패배한 군주일 뿐이었다.

아서는 몸을 돌려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적군이 정리되면 전리품을 챙기고 적 군주와 함께 발카스 영지로 돌아간다.”

“충!”

* * *

피그족은 계속 서로를 뜯어 먹었다.

식탐자의 효과가 미미해질 만할 때쯤에는 또다시 다른 피그족들의 몸에 식탐자를 발라 영지 안으로 던져 버렸다.

로칸 군주의 포르스 영지는 스스로 괴멸해 버린 것이다.

‘어차피 내가 치지 않아도 금방 끝날 영지였다.’

계속 약탈을 일삼으면 결국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군주보호기간의 군주들이 아니라, 아마도 그들을 연맹에 두던 군주들이 포르스 영지를 밀어버렸을 거다.

아서는 포르스 영지의 정리가 끝나자 군주성으로 들어가 승리의 기도를 읊으며 로열 코드를 파괴했다.

‘식량이 엄청나게 쌓였다.’

아서는 벌목장, 농장에서 약탈당했던 식량의 11배 정도 될 정도의 어마어마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포르스 영지에 있던 4만 골드와 놈이 가지고 있던 ‘무시자의 침략 목걸이’라는 에픽 아티팩트도 가져올 수 있었다.

이 무시자의 침략은 아서의 생각보다도 대단한 물건이었다.

(무시자의 침략)

등급: 환상적인 에픽

특수 능력:

내구도: 30,000/30,000

•군주보호기간의 군주 침략 가능

•영지 총레벨과 상관없이 로열 코드 파괴 시 적의 모든 걸 약탈할 수 있음

만약 영지 총레벨 20군주가 영지 총레벨 10의 군주의 영지를 공격해서 승리했을 시, 군주는 큰 레벨 차로 인해 제한을 받는다.

약탈할 수 있는 골드, 자원, 영지민, 병력에 제한이 생긴다는 거다.

하지만 이 무시자의 침략은 ‘군주보호기간’ 군주 약탈 능력을 제하고서도 아서보다 총레벨이 훨씬 낮은 군주들의 모든 것을 약탈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아서에게는 크게 쓸모는 없을 듯 보였다.

아서는 자신보다 영지 총레벨과 군주 등급이 더 높은 포르스 영지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데 따른 대가로 영지 총레벨을 11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정도의 경험치도 획득했다.

끼이익.

쿵!

발카스 영지의 문이 열렸다.

출정했던 병력들이 입성했다.

영지민들은 크게 환호했다.

“와아아아!”

“승리했다아!”

병력의 가장 앞에 선 것은 펜루스의 위에 타고 있는 아서였다.

펜루스의 몸에는 밧줄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군주 로칸의 목과 양 손목을 묶은 채로 그를 질질 끌고 있었다.

“이 비열한 놈, 감히 도둑질을 해?!”

“감히 우리 발카스 영지를 넘봐?!”

영지민들의 환호 속에서도 로칸 군주는 야유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농장과 벌목장을 관리하는 영지민들의 분노는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희생된 것은 보초를 서고 있던 서른 명의 병사뿐만이 아니었다.

벌목장과 농장을 관리하던 농민도 상당수 죽고 말았다.

‘분노가 크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한들, 영지민들의 분노는 쉬이 가라앉지 않을 듯 보였다.

이럴 때 군주는 영지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적 수장의 목을 치는 것을.’

아서는 로칸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그저 승리했음을 알리고 영지민들에게 적 군주의 목을 치는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한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 데리고 왔다.

그와 반대로 로칸 군주의 경우 ‘항복’으로 아서의 발카스 영지에서 기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군주는 보통 일반 유닛들보다 무력이 강하다.

그 때문에 꽤 쓸 만한 전력이 되어준다는 거다.

하지만 아서는 로칸같이 무능력한 약탈자를 휘하에 둘 생각이 눈곱 만큼도 없었다.

“2시간 후 단두대에서 포르스 영지의 군주 로칸의 사형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와아아아아!”

미리 아서에게 언질을 받은 그레모리의 외침에 따라 영지민들은 환호했다.

그와 반대로.

“히이이이익……! 사, 살려주십쇼. 시키는 건 뭐든 다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살려주십쇼!”

로칸 군주는 분명히 아서보다 급이 높은 군주다.

영지 총레벨도 그랬고.

그러한 로칸 군주가 양손을 싹싹 빌며 애원하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하지만 아서는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로칸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죽을 자와 말을 섞어 무슨 소용이겠는가.

“제, 제바아알…….”

“닥쳐라!”

“웁웁!”

아서가 아닌 병사들이 로칸의 그 입을 헝겊으로 틀어막아 버렸다.

* * *

끼이이.

단두대 위에 있는 로칸 군주는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아서가 들어 올렸던 팔을 내리는 순간.

수우우우웅!

단두대가 움직이며 단번에 로칸의 목을 잘라냈다.

푸지익!

툭.

데구르르.

영지민들에겐 너그러움을, 적군에겐 시시콜콜한 자비로움 따위 베풀지 않는 게 아서였다.

“적군주의 목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라, 랜.”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아서는 단번에 몸을 돌려 집무실로 향했다.

아서는 전생에서 여러 차례빛나는 샘물을 정제해 본 적이 있었다.

현재 그보다 더 많은 정제를 해본 이는 없을 것이다.

그는 침실로 들어오자마자 먼저 빛나는 샘물을 확인해 봤다.

(빛나는 샘물)

수량: 1ℓ

위처럼 빛나는 샘물은 아무것도 표기되지 않는다.

로칸 군주에게 이것을 빼앗았을 때, 그는 이것을 자신의 침소에 두고 수면등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빛나는 샘물을 정제하면 천족의 생명수로 변하는 걸 아는 아서로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또한 이 빛나는 샘물도 유닛 등급처럼 나뉘어져 있었다.

S와 가까워질수록 능력치 상승이 다르고 색깔도 달라진다.

C등급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C등급의 빛나는 샘물은 모든 능력치+3에 노란색.

B등급은 모든 능력치+6에 파란색.

A는 붉은빛에 모든 능력치+10.

S는 하얀빛에 모든 능력치+20이다.

현재 로칸의 영지에서 가져온 빛나는 샘물은 B등급이다.

B등급이면 정제만 하면 자그마치 모든 능력치+6을 올려주는 보물이 된다.

하지만 현재는 그 어떤 정제 방법도 풀려 있지 않았다.

즉, 아서는 이 빛나는 샘물을 정제해 내는 첫 번째 1인이 될 것이다.

‘기억에 따르면 여러 가지 정제법 중 하나를 시도해서 성공하기만 해도 시스템 보상으로 더 좋은 등급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 빛나는 샘물도 신기록 보상이나 질주의 매를 찾아냈던 것처럼 보상이 주어진다.

즉 처음 시도된 정제 방법을 해내면 그 등급이 올라간다.

그리고 현재 아서가 아는 정제할 수 있는 딱 한 가지의 방법.

끼이익.

문이 열리며 그레모리가 파란색의 통 하나를 들고 왔다.

“군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가져오긴 하였습니다. 하오나 이걸 도대체 어디에 쓰시려는 건지요?”

“정제.”

아서는 짧고 굵게 말했다.

“정…… 제요?”

그레모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액체는 다름 아닌 주방이나 배변간에서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이 액체도 지구라는 곳에서 온 것이다.

마치 껌처럼.

이 액체는 혹시라도 피부에 오랜 시간 접촉하면 큰일 날 수 있는 물건.

하지만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할 때는 구린내를 잡아주기도 한다.

그 통에는 ‘락스’라는 지구의 언어가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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