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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회귀록-91화 (91/210)

# 91

군주회귀록 091화

포르스 영지의 군주성.

“꾸이익, 꾸이익!”

몸 곳곳에 화상이 가득한 피그족 한 마리가 숨을 헐떡이며 군주의 방으로 들어왔다.

“꾸익, 매복입니다. 군주니임!”

“매복이라고?”

로칸의 얼굴이 구겨졌다.

“적은 다리를 막고 병력이 나갈 수 없게 틀어막고 있습니다. 소, 송구하오나…….”

로칸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롤스 경과 로드 경이 불에 타 죽어버렸사옵니다. 또한 출정에 나섰던 전 병력이 전멸했습니다.”

“……!”

로칸은 몸을 일으켰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일부러 군주보호기간의 군주들만 털고 있었건만.

“혹 군주보호기간 군주들과 연맹을 맺은 자들인가? 오백 명 이상의 병력이 온 것이야?”

“꾸익…… 벼, 병력의 숫자는 고작해야 백에서 백오십 사이였습니다. 또한 그 군주의 말을 들어보면 오늘 털린 영지의 군주인 것이 확실합니다.”

군주보호기간의 군주.

한데 고작 백오십 정도의 병력으로 피그족들을 몰살시켰다?

이는 예상을 크게 빗나가는 것이었다.

“꾸울, 큰일입니다, 군주님. 당장 다리 쪽을 뚫어야만 합니다. 다리를 뚫지 못한다면…….”

알버트가 말끝을 흐렸다.

“영지민들과 병사들이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로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은 먹을 것에 살고 먹을 것에 죽는 놈들이다. 그걸 이용해야 한다.’

아무리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한들, 그걸 이용하는 게 나을 것이다.

“모든 병력을 소집하라.”

“꾸울, 예!”

* * *

로칸은 소집된 피그족들을 돌아봤다.

“꿀, 배고파.”

“꿀꿀꿀.”

‘이런 돼지 새끼들…….’

로칸은 배고프다며 아우성치는 돼지들을 보며 미간을 구겼다.

곧 있으면 놈들이 밥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아직 끼니때는 아니니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다.

“적이 우리의 식량 창고의 모든 식량을 약탈해 갔다.”

“꾸, 꾸울?”

“꿀?!”

피그족들이 경악했다.

그들의 삶의 이유!

그것이 모두 사라졌다!

“급히 80의 병력을 소집하여 출정하였으나 다리 인근에 매복한 적군에 의해 모든 병력이 전멸하고 말았다.”

“꿀꿀!”

전멸이고 뭐고 피그족들은 밥을 못 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망하고 있었다.

어떠한 피그족은 머리를 감싸 쥐었고, 어떠한 피그족들은 힘없이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버렸다.

“놈들은 우리가 식량을 약탈할 수 없게 막고 있다. 이는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꿀꿀!”

“꾸이익!”

“온 힘을 다해 다리에 매복한 적들을 뚫고 나가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모든 피그족들이 로칸의 입에 집중했다.

“다음 밥은 없다.”

“꾸우우울!”

“꾸이익!”

“꾸익꾸익!”

피그족.

그들은 단순했다.

그 말 한마디가 주는 파장은 컸다.

“꾸울, 적군을 쓸어라!”

“꾸익꾸익, 군주의 목을 쳐, 놈을 먹어버리자!”

“식량을 위하여!”

“식량을 위하여!”

승리도 아닌 식량을 위하여를 외치는 그들.

그들의 사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 * *

그 시각.

아서와 병력은 잘 익은 바비큐가 되어버린 피그족들의 몸에 ‘식탐자’라는 액을 양념처럼 골고루 발랐다.

식탐자는 용언의 연금술서 스무 페이지 중 하나에 수록되어 있는 제조법이다.

이 식탐자는 상대방의 식욕을 극도로 끌어 올린다.

어찌 보면 전혀 쓸모없어 보일 제조술일지도 모르겠으나 피그족들에게 이만한 독은 또 없을 것이다.

‘놈들은 다리를 뚫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다. 당장 병력이 쏟아져 나오면 감당할 수 없어.’

아무리 아서라고 할지라도 피그족 400마리를 상대할 순 없다.

그것도 이 좁은 다리에서는 더더욱.

그랬기에 이 식탐자가 필요했다.

식탐자를 잘 바른 통구이 피그족들이 준비되었다.

아서는 40명의 병력을 이끌고 움직였다.

쿠우웅!

쿠우웅!

벽으로 사다리가 걸쳐지기 시작했다.

공성탑에 있는 돼지들이 막 발견했을 때쯤엔.

푸직!

푸지익!

투명화되어 빠르게 공성탑으로 올라간 브레드가 단숨에 놈들을 꿰뚫었다.

벽 위로 올라온 아서는 밧줄에 꽁꽁 묶여 있는 피그족을 병사들과 함께 끌어 올렸다.

“흐으읍!”

그다음 있는 힘을 다해 죽은 피그족들의 사체를 영지 안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아서는 최대한 될 수 있는 많은 숫자의 피그족을 안쪽으로 던졌다.

‘전염병이 아닌 식욕병인가?’

아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떠한 군주들은 이렇듯 영지의 안으로 전염병이 들끓는 시체를 던져 오랜 시간 이어졌던 전쟁을 끝내기도 했다.

이는 그와 비슷한 전략이 되어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먹어, 자멸하리라.

* * *

소년 피그족 라미스는 언제나처럼 배고픔과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꿀꿀, 오늘 아침은 뭘까?”

항상 눈을 뜨자마자 드는 생각은 그것이었다.

맛있으면 영 칼로리를 외치는 다른 피그족과 다를 바 없는 라미스였다.

라미스는 주방으로 향하려다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문이 열려 있고 그 바깥에서 끔찍한 고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꿀꿀꿀, 비켜어!”

“꾸익, 이 빌어먹을 새끼가!”

라미스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용기를 내어 떼었다.

곧이어 라미스의 얼굴이 사색이 되기 시작했다.

피그족 영지민들이 불에 새까맣게 타버린 다른 피그족들을 뜯어 먹고 있었다.

“꾸히익, 꾸히익!”

그중에는 라미스의 부모 또한 있었다.

부모들의 눈은 무척이나 붉었다.

‘이, 이게…….’

아무리 돼지들이라고는 하지만 동족을 뜯어 먹다니?

더군다나 모두가 이성을 잃은 듯 보였다.

“꾸울, 내 거야!”

“내 거라고!”

더 끔찍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죽일 듯이 싸우기 시작했다는 거다.

곧이어 라미스의 코를 간질이는 정체 모를 냄새가 느껴졌다.

정체 모를 냄새는 매혹적이었다.

그 냄새를 맡는 순간, 라미스의 귓가에 정체 모를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먹어라.

모든 것을 먹어치워 주린 배를 채워라!

“꾸울!”

곧이어 라미스도 눈이 뒤집혀 난장판이 된 영지민들 틈새로 뛰어 들어갔다.

* * *

30의 병력을 제외한 모든 병력을 이끌고 출정을 위해 움직이던 로칸은 끔찍한 참상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그는 몇 가닥 없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당혹하기는 알버트도 마찬가지였다.

영지민들이 동족의 뼈를 아그작아그작 씹어대고 있었다.

살점이 모두 발려 더 이상 먹을 게 없음에도 그들은 뼈를 빨고 씹고 있었다.

우두둑.

그들은 이가 나가도 뼈를 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미쳤다.

영지민들이 미쳐 버렸다.

그리고 이어.

후우우웅!

쿠우웅!

로칸의 바로 앞으로 뭔가가 툭 떨어졌다.

그것은 피그족이었다.

노릇노릇 잘 구워져 버린 피그족의 몸에는 마치 양념처럼 진득한 액체가 발라져 있었다.

로칸의 시선이 영지를 빙 둘러막고 있는 벽 위로 향했다.

벽 위에 있는 동빛 골렘은 계속해서 피그족들을 던져대고 있었다.

로칸은 미간을 구기면서도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돼지들이 미쳤다. 혹시 이 정체 모를 냄새 때문에?’

자신도 맡는 순간 갑자기 엄청난 배고픔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먹어야 한다.

당장 배를 채워야겠다.

머릿속에서 울린다.

무엇이든 집어 삼키라고!

하지만 로칸은 피그족들처럼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자는 아니었다.

또한 여기서 무너지면 자신은 죽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피그족이 이것에 의해 미쳤다……!’

피그족은 한 끼 한 끼를 채우지 않을 때마다 변한다.

처음 예민해지고, 그다음 난폭해지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변하는지 사실 보지 못했다.

아마도 피그족들은 이 정체 모를 향에 의해 로칸이 알지 못했던 단계까지 이른 듯싶었다.

‘병력이라도 무사히 빠져나가야 한다.’

일단은 병력이 빠져나가야만 이 미쳐 버린 영지민들의 배를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배를 채워주면 그나마 나아질 터.

빠르게 결단을 내린 로칸은 병력들을 돌아봤다.

그들은 돼지 코를 킁킁대고 있었다.

서서히 그 향내에 취하려던 그때에.

로칸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스태프를 크게 휘둘렀다.

후우웅!

스태프를 휘두르자 푸른빛이 뿜어지며 병력들을 감쌌다.

[상태 이상으로부터 보호됩니다.]

‘염병, 마력 증폭 반지가 있어도 400마리한테 상태 이상 보호 마법을 사용하니 MP가 밑바닥이군.’

로칸은 얼굴을 구겼다.

그러던 중.

“꾸이이익!”

곧 한 피그족이 다른 피그족을 향해 달려드는 게 보였다.

“헉!”

이건 정말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죽어버린 피그족을 먹는 건 그렇다 친다.

하지만 달려든 피그족은 살아 있는 녀석의 몸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콰악!

“꾸이익!”

강력한 턱 힘으로 동족을 문 피그족은 단숨에 살점을 찢어냈다.

곧이어 다른 피그족들도 완전히 광기에 물들어 미쳐 버리기 시작했다.

“꾸이익, 꾸이익!”

서로가 서로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아비규환.

‘마지막 단계는 살아 있는 동족까지도 뜯어 먹어……?’

경악에 경악.

로칸은 결단을 내렸다.

“서둘러 영지를 벗어난다!”

상대편 군주는 이를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은 영지를 벗어나야 했다.

미쳐 버린 영지민들이 병력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쿠쿠쿠쿠!

병력들이 영지민들을 짓이기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영지민들은 병력에 비하면 조무래기 같은 수준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조무래기라도 3천의 영지민이 모여 버리면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영지를 버리는 일?

아니, 피하는 일이다.

어차피 영지민이야 병력만 살아 있다면 다른 영지를 약탈해 포로로 끌고 오면 그만이다.

일단 병력이 살아남는 게 최우선인 셈이다.

투투투투!

병력 400이 맹렬한 속도로 문을 향해 달려 나갔다.

쿠우웅!

곧이어 피그킹 다섯이 문 앞에 도달했다.

“서둘러 문을 열어라!”

로칸이 끊임없이 영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미쳐 버린 영지민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놈들은 침을 질질 흘리면서 병력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피그킹 둘이 온 힘을 다해 다급히 문을 열려 했다.

하지만 열리지 않았다.

“헉……?”

로칸이 눈을 크게 떴다.

‘서, 설마……!’

반대쪽에서 문을 막고 있다?

그는 재빠르게 벽 위로 눈을 돌렸다.

동빛 골렘과 소년, 병사들이 사라져 있었다.

“열어, 열라고. 새끼들아, 이거 못 열면 우린 영지민들한테 뜯어 먹힌다고!”

로칸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하지만 쉬이 열리지 않았다.

반대쪽에서 단단히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피그족들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놈들은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과 서둘러 나가야 식량을 얻을 수 있다는 절박감을 느끼며 온 힘을 다해 밀었다.

그러자.

끼이이

약 20㎝ 정도 문이 열리고 그 앞을 꽉 막고 있는 병력들과 아이언 골렘, 그리고 소년이 보였다.

로칸이 입을 비틀었다.

‘네놈……!’

건방진 소년이다.

감히 군주보호기간 군주가 자신을 이토록 궁지에 빠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은 군주 등급으로 치면 자그마치 B급의 군주.

부릴 수 있는 마법도 광범위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현재 사용할 수 있는 광범위 마법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상태 이상 보호 마법에 많은 MP를 소진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마법은 바로 익스플로전.

땅에서 솟구치는 강력한 화염 폭발이 문 앞을 콱 막고 있는 전 병력을 집어삼켜 버릴 것이다.

그로 인해 문 또한 열릴 것이고 풍비박산 난 적군은 단숨에 죽어나갈 것이다.

로칸이 두툼한 손으로 스태프를 꽉 쥐었다.

상태 이상 마법은 2클래스로, 3클래스 마법을 부리는 로칸이 시동어 없이 부릴 수 있었지만 익스플로전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했다.

끼이이.

문이 조금 더 열렸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문을 막기 위해 힘을 다하는 적군과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피그족들.

시전 준비를 끝마친 로칸이 입을 비틀며 중얼거렸다.

“익스플로전.”

스태프 주위로 넘실거리던 붉은 빗줄기들이 문 틈 너머로 뿜어져 나갔다.

이제 곧 바닥이 비틀리고 폭발할 것이라고 로칸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소년, 아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때를 기다렸다는 듯 왼팔을 쫙 펼쳤다.

“스킬 파괴.”

수우우우우!

마하라의 반지의 절대적인 특수 능력이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중얼거림과 함께 붉은 기운이 아서의 반지로 빨려 들어갔다.

아서가 씨익 웃었다.

“돌려주마.”

아서가 왼팔을 열려 있는 문틈으로 쫙 펼쳐 보였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익스플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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