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
군주회귀록 087화
“고, 고양이 똥?”
카제의 미간이 구겨졌다.
누가 봐도 원두로 보였다.
물론 그 질감이나 색이 일반 것들과 조금 달라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다소 생소하면서도 호기심이 생기는 말이기도 했다.
물론 거부감도 생겼고.
“더 정확하게는 루핀이라는 고양잇과의 몬스터입니다.”
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들어봤다.
“이 루핀 고양이는 원두를 무척이나 좋아하지요. 하지만 그들은 원두를 먹을 수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서는 손 위에 있는 원두 하나를 꽉 쥐어 뭉개 보이면서 계속 설명했다.
“던전 안에서 놈들이 원두를 먹을 방법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 루핀 고양이에게 제가 직접 원두를 먹였습니다. 그럼 녀석들은 단 하루 만에 원두를 배설해 냅니다.”
“그 모양새로?”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야기일 뿐, 진실은 그 어떤 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카제는 관심만 조금 가졌지 아직도 맹맹한 표정이었다.
“효능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아루멜 차는 마시는 순간 집중력이 향상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나 많은 이의 사랑을 받죠. 이 루핀 커피에도 그만큼의 집중력 향상 효과가 있습니다. 추가로 이 루핀 커피만의 효능은 시력이 좋아진다는 겁니다.”
“……?!”
카제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 추슬렀다.
어디까지나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니까.
“마시자마자 그 효과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 12시간 정도가 지나면 본래의 시력으로 돌아옵니다. 꾸준히 마셔만 준다면 영구적으로 시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는 걸 느낄 수 있단 말이죠.”
“그래?”
카제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시력이 바로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꾸준히 좋아진다.
이것은 장사치로서는 매우 좋은 의미다.
한 번 구매했던 손님은 계속해서 이 커피를 구매하게 될 테니까.
커피란 중독이다.
한데 마실 때마다 집중력도 향상되고 자신이 체감할 정도로 눈이 좋아진다.
그렇게 되면?
안 찾는 이들이 없을 것이다.
특히나 ‘귀족’들.
그들에게 불티나게 팔릴 게 분명하다는 뜻이다.
아서는 곧이어 하녀 한 명이 가져온 두 개의 찻잔에 루핀 커피를 떨어트렸다.
루핀 커피가 물에서 짙게 퍼져 나갔다.
아서는 티스푼으로 저었다.
따뜻한 물과 커피가 만나는 순간, 부드러운 향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꾸울꺽.
커피 애호가인 카제는 저 커피를 맛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고양이 똥’이라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 생각을 읽었는지 아서는 부드럽게 웃었다.
“판매를 시작하면 굳이 고양이 똥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그뿐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부작용만 없다면 상단엔 그 사실을 밝힐 의무가 없다.
아서는 조심스레 꿇고 있던 무릎을 일으켜 카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카제에게 찻잔을 건넸다.
티스푼을 젓는 카제는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가장 먼저 향을 맡아봤다.
‘향이 진하다. 시큼한 향이 있긴 하지만 일반 원두 향과는 분명히 달라.’
고양이 똥인 걸 알고 있긴 하지만 몰랐다면?
아주 기분 좋게 음미했을 거다.
카제는 먼저 맛보지 않았다.
그는 조심성이 많은 인물이다.
아서가 먼저 맛을 보며 웃었다.
“이런 커피는 세상에 둘도 없을 겁니다. 맛이면 맛, 효과면 효과, 희소성까지.”
카제는 티스푼을 돌리면서 계속 아서를 관찰했다.
특별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않고 옆의 기사를 바라봤다.
“자네도 한 잔 마시지.”
“예?”
기사는 뒷머리를 긁었다.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기사도 커피를 좋아하긴 했지만, 어떤 부작용이 있을 줄 모르니까.
아서가 한 잔을 타서 건넸다.
하지만 마시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상단의 주인 카제의 명이나 마찬가지기에.
곧 기사가 조심스레 맛을 봤다.
그리고.
“마, 맛있…… 습니다.”
그게 첫말이었다.
“진합니다. 원두의 쓴맛이 덜하면서도 고소합니다.”
그는 몇 번을 홀짝였다.
곧이어 이번엔 침침했던 눈이 맑아지고 피곤했던 몸이 곧바로 각성하는 걸 느꼈다.
거기에 더해 집중력이 향상되는 것까지!
“전 아라멜 차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다. 카제 님, 이 커피는 정말 아라멜 이상입니다. 눈이 잘 보이고 맛도 더 좋고……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기사의 그 반응에 카제는 찻잔을 내려다봤다.
그도 맛을 보았다.
‘……맛있다.’
그게 첫 평가였다.
그는 계속 홀짝였다.
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
분명히 맛있었다.
그리고 흐릿했던 시야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미, 미쳤어……!’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건 불티나게 팔린다.
장사치의 감이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카제는 흥분감을 감추며 말했다.
“네가 말한 희소성. 그리고 너만이 제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뭐지?”
아서는 판매금의 40%를 요구했다.
자신이 수확하고 그들이 판매를 대신한다.
그랬기에 40% 정도는 충분히 받을 만하다.
“정확히는 저와 함께 가셔야만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아서가 씨익 웃었다.
* * *
카제는 기사들을 이끌고 아서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숨겨져 있는 던전이 아서가 손뼉을 치는 순간 입구가 나타났다.
카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던전의 주인?’
이런 던전을 ‘소유 던전’이라고 부른다.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한 기사에게 아서가 권유했다.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구를 넘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투명한 벽에 막혀 들어가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반대로 아서가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들어갈 수가 있었다.
“제가 허락하는 단 한 명만이 이 던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그 한 명을 지정 해제하면 그는 다시 들어갈 수 없게 되지요.”
단 한 명은 거짓말이다.
다섯 명 정도는 허락할 수 있었다.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난 이 한 명을 내가 믿을 만한 사람으로 지정해야 할 거다.’
상단의 이들이 자유롭게 출입하게 된다면 아서가 가진 루핀 커피의 소유권에 대한 힘이 미흡해질 우려가 있다.
아서는 카제에게 손을 뻗었다.
[입장을 허용하시겠습니까?]
알림이 들려왔고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군주 육성기가 없는 그들은 듣지 못할 알림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기사가 걱정스런 어조로 카제에게 물었다.
던전이다.
저 던전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카제는 이런 배짱은 꽤 컸다.
또 소년이 허튼짓을 할 리가 없다는 믿음도 있었다.
밖엔 기사들이 지키고 있다.
만약 아서가 자신과 함께 나오지 않는다면 기사들은 단숨에 그를 포박할 것이다.
곧이어 카제와 아서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카제는 볼 수 있었다.
냐아아아아.
냐오오옹.
냐아아아아.
수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고양이!
일반 고양이와 다른 점은 크기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뿐이었다.
녀석들이 아서 쪽으로 몰려왔다.
카제는 거리감을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였으니까.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녀석들은 아서에게 기분 좋은 울음을 토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제는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곳곳에 널려 있는 녀석들의 배설물.
루핀 원두를!
“보시는 바와 같이 저는 나가기 전 이 아이들에게 원두를 먹였습니다. 그리고 막 배설해 낸 것이지요. 저기 보시지요.”
때마침 한 고양이가 대변을 봤다.
루핀 원두가 떨어져 내렸다.
“희소성. 이 던전이 같은 대륙 어딘가에서 발견되지 않는 이상 다른 누구도 루핀 원두를 얻을 수 없습니다. 또한.”
아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누가 고양이에게 원두를 먹여볼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 말이 맞다.
던전이 혹여 추가로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던전 안의 고양이, 즉 몬스터에게 먹여볼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는 정말 엄청난 희소성이다.
루핀 원두는 카제가 거래를 트는 순간, 오로지 그의 상단에서만 판매하는 획기적인 상품이 될 것이다.
대륙 곳곳의 귀족들은 이 루핀 커피를 맛보기 위해 줄을 설 것이 분명하다.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갈 것이다.
“저는 제가 지정한 사람이 이 던전에 들어와 수확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그리고 수확한 것을 보르딘 상단에서 받아 가는 거지요.”
판매대금의 40%.
카제는 생각했다.
‘충분히 줄 만하다.’
생산을 할 수 있는 건 아서뿐인 게 사실이니까.
“아직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1주일만 기다려 봐도 되겠지?”
“그러십시오.”
당연한 것이었기에 수긍했다.
두 사람은 루핀 던전이라 이름 붙은 그곳을 빠져나갔다.
‘내가 믿을 수 있는 한 사람.’
아서는 이미 대상을 정해뒀다.
* * *
“예에? 던전 관리요?”
한스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자초지종을 듣긴 했다.
다름 아닌 보르딘 상단과 도련님이 거래를 튼다니?
이것도 놀랍긴 한 일이지만 그 관리를 자신에게 맡긴다는 데 더 크게 놀란 거다.
“너 말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거든.”
“하, 하지만.”
두려운 것이다.
만약 아서의 말대로 정말 독점권을 가진 판매가 시작된다면 보르딘 측에서 뺏으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
“뺏을 수 없게 이미 손을 써놨으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스.”
말 그대로 보르딘 상단이 뺏을 수가 없다.
그들은 아서가 지정한 1인이 죽으면 입장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 때문에 그들은 한스나 아서를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카제가 그럴 인물이 아니기도 했다.
“한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찾고 또 찾았다.”
아서는 적당한 거짓말을 둘렀다.
“갈수록 처참해지는 프레스 가문의 재정을 해결하기 위해.”
“…….”
한스는 말을 잃었다.
얼마나 끔찍한 상황이면 하인, 하녀들이 영지군 훈련소까지 일을 거들고 일급을 받으러 갔겠나.
그 정도로 처참한 재정 상황.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다.
아니, 풍족해질 것이다.
프레스 가문은 이것으로 돈을 벌어들일 것이다.
40%를 가져간다는 건 정말 막대한 수익이다.
한순간에 프레스 가문이 일어설 수 있을 정도의 금액!
돈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니라지만, 많다고 싫은 건 아니지 않는가.
“너도, 다른 하인, 하녀들도. 또 어머니까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네가 수고해다오.”
프레스 가문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말이 많다.
한스는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스쳤다.
많은 사람이 아카스 경이 죽고 프레스 가문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서의 말대로라면 이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그 일을 하게 되면!
또 요새 헬렌 부인은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니실 정도 아니던가.
“알겠습니다.”
결국 한스가 결단을 내렸다.
아서는 빙긋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참, 로이 밥 주러 가야겠습니다.”
한스는 결단을 하고서도 생각할게 많은 듯 몸을 일으켰다.
명마 로이.
그 로이는 라우든 경이 아서에게 선물로 직접 주었다.
그 덕분에 굳이 돈을 주고 살 수고를 덜었다.
아서는 나가는 한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뒤에 10만 골드가 당장 손에 들어온다.’
자택에 9만 골드를, 비상금으로 1만 골드를 자신이 가지고 브래트 영지를 떠날 것이다.
* * *
일주일 후
카제는 루핀 커피에서 어떠한 부작용도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하루하루 시력이 좋아지고 있었다.
이제는 커피 효과가 지날 12시간이 되어도 전보다 확연히 또렷해졌다 느낄 정도였다.
더군다나 처음 약간 비린 맛이 난다고 느껴졌던 커피맛이 어느 순간부터 하루라도 마시지 않으면 갈증이 날 정도로 맛있어졌다.
루핀 커피가 든 찻잔을 든 카제가 빙긋 웃었다.
“세상을 뒤흔들 던전 차를 먼저 맛볼 수 있는 영광을 내게 주어서 고맙네.”
카제는 자신이 한번 안고 거래를 시작한 사람에게는 누구보다도 후하고 인자한 자였다.
아서는 빙그레 웃었다.
카제가 기사에게 눈짓하자 그가 10만 골드짜리 전표를 건넸다.
이 전표는 보르딘 상단의 제국 곳곳에 깔린 은행에서 언제든 골드로 환전할 수 있다.
“첫 유통은 언제쯤 하는 게 좋을까?”
“한 달 뒤쯤엔 그래도 300명의 귀족분이 2개월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루핀 원두가 모일 겁니다. 그때부터 시작하지요. 말씀드렸듯 원두는 프레스 가문에서 일하는 한스라는 친구가 줄 겁니다.”
거래 방법은 간단하다.
책정된 가격대로 한스가 수량을 넘겨주면 그 가격의 40%를 보르딘 상단 측에서 주는 거다.
카제는 흐뭇하게 웃었다.
벌써부터 돈방석에 앉을 생각에 기분이 좋을 수밖에.
그때였다.
“카, 카제 백작님. 큰일 났습니다!”
밖에서 고성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