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군주회귀록 086화
31장 루핀 커피
아서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누가 했던 말이 생각나는군.’
강화란 자고로 내가 할 땐 안 되고 남이 할 땐 잘되는 법이라고 하였던가?
딱 그 짝이다.
아서는 행운 스탯이 있기에 도박 확률이 상당히 높다.
그런데도 아서는 실패했고 그레모리는 성공했다.
아서는 혹시 몰라 그녀에게 또 한 장을 건넸다.
강화에는 공식 같은 게 있었다.
성공한 자가 곧바로 빠르게 한 장 더 찢으면 또다시 성공한다와 같은 것이었다.
그레모리가 또다시 찢었다.
[유물 아티팩트 강화권이 소멸합니다.]
소멸하자 아서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자신이 찢었다.
부욱.
[유물 아티팩트 강화권이 소멸합니다.]
[유물 아티팩트 강화권이 소멸합니다.]
연달아 네 장이 날아갔다.
이제 여섯 장이 남았다.
“올리아.”
“망망!”
올리아가 신이 난다는 듯 강화권을 찢었다.
[축하합니다. 평범한 유물 아티팩트가 빛바랜 아티팩트로 강화됩니다.]
“망망, 잘한 거예요?”
고개를 갸우뚱하는 올리아를 보며 아서가 한 장을 더 건넸다.
이제 네 장이 남았다.
[유물 아티팩트 강화권이 소멸합니다.]
아서는 그 알림을 듣고 다시 자신이 연달아 세 장을 찢었다.
모두 실패.
아서는 이마에 손을 짚을 수밖에 없었다.
‘어째 올리아와 그레모리는 한 장씩 해냈는데.’
하지만 아서는 이 마지막 한 장이 실패해도 엄청난 좌절을 하진 않을 것이었다.
낡아빠진을 빛바랜까지 올렸으니까.
아서는 자신이 하는 것보다 올리아나 그레모리 둘 중에 하나가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 소인은 더 이상 못 하겠사옵니다.”
“음?”
아서가 고개를 젓자 그레모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구, 군주님 표정이…….”
아서가 실패할 때마다 엄청나게 얼굴을 찌푸렸나 보다.
그레모리는 아무래도 책임이 전가될까 싶어 두려운 듯했다.
아서는 표정을 풀고 올리아에게 건넸다.
단순무식한 올리아는 그저 기분 좋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찢었다.
“망망! 이거 성공하면 산책 가야 해요!”
‘24시간도 갈 수 있지.’
유물 아티팩트가 환상적인까지 끌어올려진다면 그깟 산책쯤이야 대수겠는가.
마지막 한 장이 찢어졌다.
아서와 그레모리가 조마조마 라이프 수정구를 바라봤다.
곧이어 알림이 떠올랐다.
* * *
아서와 그레모리는 신나서 영지를 뛰어다니는 올리아를 볼 수 있었다.
“망망망망!”
올리아는 지치지 않는 것인지 영지를 계속 뛰어다녔다.
그들은 지금 산책 중이었다.
그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올리아가 마지막 환상적인까지 끌어올렸다.’
올리아의 이름을 바꿀까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복덩이로.
아서는 환상적인 유물 아티팩트가 된 라이프 수정을 확인해 봤다.
(라이프 수정)
등급: 환상적인 유물
내구도: 20,000/20,000
특수 능력:
⦁오십에 한해 라이프 회수 가능
설명: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서 라이프를 빼 올 수 있다. 빼 온 라이프는 물리적 충격이 가해지면 깨질 수 있다. 만약 라이프가 회수된 이가 사망했다고 가정할 시에 라이프에서 회생할 수 있게 된다. 단, 라이프 회수량에 따라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자그마치 오십의 라이프를 빼 올 수 있게 되었다.
아서가 라이프 수정을 필요로 한 결정적인 이유는 대규모 업데이트 때 있을 많은 인류의 희생을 막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도라면 충분하다.’
아서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으로 바로 준비해야 할 현실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대상인 카제.’
대상인 카제가 브래트 영지에 방문한다.
아서가 아직 영지를 떠나지 않은 이유는 그를 만나기 위함이다.
그는 얼마 후 브래트 영지에 방문한다.
그는 전생에서 으뜸으로 불렸다.
던전에서 나온 특별한 아티팩트 등, 관련한 모든 것을 취급하는 것으로.
그는 지금 대륙 곳곳을 유람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보르디 상단은 지금도 던전 마스터나 혹은 던전에서 나온 물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손가락에 꼽혔다.
하지만 대상인 카제는 더 나아가기 위해 대륙 곳곳을 유람하며 찾는 것이다.
더 신비한 것을 가져오는, 또는 돈이 될 만한 것을 가져오는 자에게 포상을 내리고 돈을 떼주겠다는 식으로.
아서는 그를 매혹시킬 물품을 알고 있었다.
또 그를 맞이하기 전에 던전 하나를 공략해야 하기도 했고.
준비가 필요하다.
“돌아가자, 올리아.”
“망망, 아쉬웡!”
하지만 아서는 성으로 향했다.
벌써 여섯 시간을 산책했으니 이만하면 되지 않았겠는가?
성에 들어온 아서는 그레모리에게 잘 보고 있을 것을 지시하고 현실로 돌아갔다.
* * *
현실.
아서가 군주게임에 있는 동안 잔존한 육체에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저 영지군으로 활동하면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서는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숨어 있는 던전을 찾아 들어갔다.
그 던전엔 특별히 들어가는 데 대한 제한도 없었고 1성의 몬스터들만 드글거리는 곳이었기에 어려움 없이 클리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클리어한 순간 예상처럼 이러한 알림을 들었다.
[2년간 던전의 소유자가 되셨습니다.]
이 던전은 특별하게도 소유가 가능한 던전이었고 기간은 딱 2년의 제한이 있었다.
때문에 일부러 카제가 올 때를 맞춰 이제야 공략한 것이다.
그리고 소유한 후에는 다시 몬스터들이 리셋된다.
리셋된 몬스터들은 모두 아서의 말에 올리아처럼 순종한다.
그 안에서 아서는 몬스터들을 통해 제조해 낸 게 있었다.
그는 자루에 가득 담겨져 있는 그것을 들고 대상인 카제가 머물고 있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대상인 카제.
그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의 앞에는 브래트 영지의 영지민 한 명이 한쪽 무릎을 꿇고 소개하고 있는 게 있었다.
“무엇을 조합했다고?”
“가르데 풀과 오포노스의 열매입니다.”
“효과는?”
“힘이 세집니다.”
“그래, 세졌을 수도 있지. 그런데 말이다.”
카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이유는 영지민의 얼굴에 돋아나 있는 붉은 반점 때문이었다.
그는 말하면서도 몸을 박박 긁어댔다.
“그런 걸 누가 사겠느냐. 힘이 세지는 대신에 가려움증이 동반된다면.”
부작용이 심하다는 거다.
이처럼 던전에서 자라난 것, 혹은 던전의 등장과 함께 곳곳에 자라난 정체 모를 풀잎과 같은 것들을 빻아서 여러 가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부작용을 동반하는 것이 다반사라는 거다.
‘뭐 획기적인 거 없을까. 정말 누구라도 탐낼 만한 그런 거.’
벌써 영지 스무 곳을 넘게 돌았다.
오죽하면 이런 변방에 있는 촌구석까지 기어 왔겠는가.
하지만 이곳도 허탕인 느낌이다.
“내보내라.”
“예.”
상단에서 고용한 기사들이 거침없이 영지민을 끌어냈다.
자그마치 상금이 3만 골드가 걸려 있다.
이 3만 골드면 어지간한 평민에게는 정말 큰돈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다.
‘사람들이 쉽게 구매할 만큼 매혹적이고 또 부작용도 없는 게 쉽게 나타날 리가 없지.’
있어도 이미 다른 상단에서 싹쓸이해 갔다.
예를 들어 브로틴 차라는 녀석은 겉보기에는 파리지옥과 흡사했는데, 잘 말린 후에 빻아서 물에 타서 마시면 단숨에 다한증이 치료된다.
그로 인해 여름에 다한증에 시달리는 귀족들에게 널리 보급되어 막대한 수익을 냈다.
그러한 것들만 하나 더 터뜨려 줘도 카제가 운영하는 브로디 상단은 더욱더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것이다.
“휴…….”
카제는 푸념 섞인 한숨을 뱉어내며 말했다.
“다음은 누구지?”
“아서 더 프레스라는 영지군 소년입니다.”
“소년?”
소년인데 영지군이라?
오늘 카제에게 소년이 약 다섯 명쯤 왔었다.
정말 철도 없는 것이 전부였다.
말 같지도 않은 걸로 박박 우기려는 놈들도 있었다.
역시 소년이라고 봐주지 않고 기사들이 가차 없이 쫓아냈다.
“들여보내.”
카제의 말과 함께 문이 열렸다.
은빛의 머리카락을 단발로 기른 소년은 매우 미남이었다.
영지군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카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의자에 팔을 걸치고 손으로 턱을 괸 채 그를 내려다봤다.
소년은 정중히 예의를 차려 보였다.
하지만 카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무엇을 가져왔느냐?”
그 목소리에는 기대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곧이어 소년은 자루에 가득 담겨 있는 그것을 한 움큼 집어 카제에게 내보였다.
카제의 눈이 소년의 손에 고정되었다.
“그건 원두 아니더냐?”
일반 원두와 색이 조금 달랐다.
거기에 기존의 원두가 딱딱한 것과 다르게 그의 손 위의 원두는 부들부들해 보였다.
마치 쌀을 오랜 시간 물속에 담가놓은 것처럼.
“루핀 커피라는 겁니다. 물에 넣는 순간 곧바로 커피가 되지요.”
“원두를 내리지 않고 말이냐?”
카제는 커피 애호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아스간 대륙에 있는 모든 커피를 맛보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커피를 사랑하고 아꼈다.
밥은 안 먹어도 커피는 마시는 그였다.
그리고 상당한 귀족들이 그러했다.
커피는 귀족들에겐 하나의 ‘부의 상징’인 셈이다.
가격도 꽤 비싸면서 다과를 놓고 이야기를 하기에도 좋고 격을 차리기에도 좋으니까.
커피 애호가인 만큼 심드렁했던 그는 아주 조금의 관심만 보였다.
“효과는?”
“효과를 말하기 앞서 감히 청할 게 있습니다.”
카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것을 가져오는 자에게 상금 3만 골드를 비롯해 판매된 금액의 약 3%를 떼어 준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전 10만 골드와 40%를 원합니다.”
“네 이놈!”
스르릉!
한 기사가 발끈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대상인 카제는 제국의 황제도 아끼는 자였다.
그로 인해 평민이었던 그가 백작의 작위를 하사받았다.
“네놈이 지금 무슨 소릴 지껄이는 줄 아는 것이냐!”
“제가 장담하겠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굴하지 않고 말했다.
“이 커피는 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제조해 낼 수 없으며 이 커피의 효과는 현재 판매되고 있는 ‘던전 차’ 중 으뜸일 겁니다.”
아스간 대륙 사람들은 던전에서 얻은 특별한 것, 혹은 관련된 것에 모두 ‘던전’을 붙였다.
‘던전 밀’이나 혹은 ‘던전 콩’과 같이 말이다.
“기고만장하구나.”
카제는 문득 재밌는 생각이 스쳤다.
“그럼 우리 ‘약속의 서’를 작성하자꾸나.”
카제는 이 소년이 다른 철부지 없는 것들과 다를 바 없다고 여겼다.
현존하는 던전 차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라?
그럴 리가 없다.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던전 차는 아라멜이라는 차다.
이 차는 마시기만 해도 하루 동안 집중력이 곧바로 눈에 보일 만큼 뛰어나진다.
그랬기에 귀족들에게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었고.
그것을 능가한다?
말도 안 된다.
또 소년의 기고만장함은 하늘을 찌른다.
오로지 자신만 제조할 수 있다니?
그런 개소리가 어딨겠는가.
“아라멜이라는 차에 대해선 알겠지? 정말 그 차보다 뛰어나고 네 말처럼 너만이 제조할 수 있는 커피라면 판매금의 40%, 그리고 당장 10만 골드를 지급하겠다. 하지만 아니라면…….”
카제는 능글맞게 웃었다.
“너의 영지군 자격은 박탈당할 것이고. ‘불명예병사’로 낙인찍힐 것이다. 난 브래트 영지의 영주와도 안면이 있다는 걸 명심해라. 내가 이런 조건을 거는 이유는 너의 건방짐 때문이다.”
카제 정도라면 영지군 하나 자르고 불명예병사로 만드는 것쯤 식은 죽 먹기였다.
백작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론 그 이상의 힘을 거머쥔 게 대상인 카제였으니까.
“알겠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순순히 약속의 서를 작성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불명예병사가 되면 그 병사는 곧바로 영지군에서 잘리게 된다.
또한 몸에 불명예병사에 관한 낙인이 찍혀, 그 어디에서도 병사로 생활할 수 없다.
즉, 인생을 잃는다는 말이다.
한데도 약속의 서를 작성했다.
곧 두 사람이 서명을 완료했다.
소년, 아서가 빙그레 웃었다.
‘걸렸구나.’
아서는 카제의 성격을 알았다.
그는 때론 호탕하면서도 의심이 많다.
그리고 이런 기고만장한 놈들은 밟고 싶어 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그가 자신의 건방진 언행에 판매금은 높이고 보상도 높일 걸 예상했다.
그리고 아서는 말했다.
“먼저 커피의 효능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이 커피가 어떤 커피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카제는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서가 입을 열었다.
“이 커피는 고양이 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