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군주회귀록 081화
29장 창조주의 위엄
흠칫!
깜짝 놀란 바칼론이 빠르게 태세를 전환을 했다.
이미 죽어 있는 몬스터를 힘껏 도끼로 찍어버렸다.
푸지익!
몸에 도끼가 박힌 몬스터를 보며 소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직 숨이 붙어 있었나?”
“몰랐나 보군. 놈이 네 뒤를 노리고 있었다.”
바칼론은 몬스터에게서 도끼를 뽑아내며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
바칼론과 그 무리는 눈을 맞췄다.
기습이 실패했다.
한데 소년이 자신들을 돌아보았을 때 분명히 우호적인 목소리로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다, 라고 말했다.
‘기습이 실패한 상황에서 놈과 싸우면 우리 중 절반 이상은 분명히 죽는다.’
그 사실을 아는 바칼론이었기에 일단 기습은 미루기로 결정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기회는 추후에도 생길 수 있는 노릇이니까.
“사실 너희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잘 싸우더군.”
갑작스러운 칭찬.
바칼론과 그 무리도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에 맞췄다.
“가장 잘 싸우는 건 그쪽이던데?”
“맞아, 정말 잘 싸우더군. 특히나 소환수들.”
“칭찬해 줘서 고맙군.”
소년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아서와 같은 배를 탄 자는 없었다.
그가 미친놈처럼 식인 범고래를 잡는 건 보았지만 살벌한 표정으로 손대면 ‘죽여 버린다’와 같은 말을 뱉는 걸 본 적은 없다는 거다.
‘예상외로 성격이 좋나?’
강한 자는 이유가 있다.
자비가 없고 이득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는 경우가 태반.
하지만 이자는 사람이 좋은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바칼론과 그 무리는 의심을 지우지 않았다.
“다름이 아니라, 사실 나에겐 특성이 있다.”
“특성?”
특성을 가진 군주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축복받은 군주라는 이름으로 많이들 불린다.
바칼론은 특성이 궁금하긴 했다.
도대체 어떤 특성이길래 소년이 이토록 강하고 앞서나가는지.
“던전과 그 안의 보상 같은 게 보인다고 할까? 예를 들어 주변을 쭈욱 훑어보면 인근에 있는 던전들이 속속들이 보인다.”
“뭐……?”
“헙?!”
바칼론과 그 무리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숨겨져 있는 던전들이 보인다고?”
“그래, 그것만이 아니지. 그 던전들 위로 글귀가 떠올라. ‘어떠어떠한 보상이 있음’ 식으로도 보여. 거기에 그 밑으론 내 데이터를 종합한 공략 시간도 표기되지.”
그런 특성이 있다면 정말 기상천외하고 대단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 정도 특성이라면 이런 빠른 강함도 불가능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들고.
“지금 내 눈에 열두 개의 던전이 보인다.”
“이 섬에 열두 개의 던전이 숨어 있다고?”
“그래, ‘히든피스’라고 들어봤나?”
“히든피스?”
히든피스라는 말에 군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숨겨져 있는 보물.
“서, 설마……!”
“열두 개의 던전 안에 모두 히든피스가 있다고?!”
“그렇지. 한번 생각해 봐라. 누가 이벤트에 와서 누가 던전에 들어가겠다고 뻘짓을 하겠어. 그리고 그 던전 안에는 이번 이벤트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 혹은 레어 아티팩트, 유니크 같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는 거지.”
꼬올깍.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거 참 군침이 도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만 이들은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않았다.
어째서 자신들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는가?
“애석하게도 이 던전에서 히든피스 하나를 얻은 자는 더 이상 다른 던전에는 못 들어간다. 시스템상 제약이지.”
그 말을 듣고 바칼론과 그 무리는 이해가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미는 간단하게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럼 우리에게 그 던전을 가르쳐 준다는 건가?”
“그렇지. 강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여기 숨은 던전들은 공략하는 게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너희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다는 거지.”
듣고 보면 그렇다.
자신들은 여기 있는 군주 중에서 제일 강하다.
스탯적으로가 아니라, 경험상으로.
남들보단 노련히 던전을 공략할 거라는 의미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때문에 히든피스는 꼭 필요해.”
그 말을 듣고 바칼론 무리는 하나같이 같은 생각을 했다.
소년은 앞으로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것을 염려해 히든피스를 가지고 싸워줄 동료가 필요한 것이라고.
지금 호의적인 것만 봐도 그랬다.
바칼론과 그 무리의 생각이 좁혀졌다.
‘히든피스는 유물 아티팩트는 아니지만 우리가 추가로 얻어 가는 보상이 될 거다.’
부수적인 보상.
거기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를 동료로 생각한다면 놈에게 우리도 호의적인 척 접근해서 뒤를 치면 일은 한결 수월해지지.’
그러면 일은 더 쉽게 풀린다.
또 소년의 강함은 지금 죽이기에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동료인 척 숨기고 마지막에 소년의 뒤를 치는 게 낫다.
무리가 소년과 함께 싸우면 분명히 바칼론이나 이 중 누군가는 소년 다음으로 많은 보석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소년이 이벤트 종료 전에 죽으면 유물 아티팩트를 쓰윽 먹으면 되는 거고.
소년은 주변을 훑어봤다.
“거의 정리되었군. 나와 함께할 생각이 있나?”
거기에 소년은 강압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 의미는 만약 그들이 거절하면 다른 이들을 찾겠다는 뜻이었다.
“함께 가지.”
그들은 결국 수락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 * *
소년이 바위에 나 있는 이끼 부분을 문지르자 정말 밑으로 내려가는 던전이 생겨났다.
‘사, 사실이었어……!’
‘부럽다. 그런 특성이라니!’
바칼론과 그 무리는 소년의 특성이 미치도록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일단 던전 안의 히든피스가 중요했다.
“각 던전은 보통 30분 내면 공략이 가능하다. 대개 짧은 수준이지. 이벤트에 도움이 되라고 숨겨놓은 거니까. 하지만 몬스터들의 수준은 조금 높아. 일단은 내가 먼저 들어갔다가 오도록 하지.”
소년은 ‘히든피스’까지 증명하겠다는 듯 빙긋 웃고는 던전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30분 내라? 앞으로 20분 정도 후에 나오겠군.”
“그렇겠군요. 바칼론 군주님, 일이 생각보다 쉬이 풀립니다.”
“역시 어려서 그런가?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군. 특성이 아까워 죽겠어.”
바칼론은 만약 저런 순진한 소년이 아니라 자신이 그 특성을 가졌다면 더 대단해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마지막에 놈의 뒤를 쳐서 죽이자고.”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무위로는 저희가 다 덤벼들어도 이길 수 있을지 미지수니까요.”
참으로 씁쓸한 말이다.
사실 이쪽이 가장 좋았기에 소년을 순순히 따라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던 때 한 군주가 말했다.
“이런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는 여기 있는 군주 중 가장 이름 없는 군주였다.
그마저도 연맹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소년의 말에 따르면 열두 개의 나눠진 히든피스를 본인이 얻으려면 대신 들어가 줄 사람이 필요한 겁니다. 저희가 대신 들어가고 소년이 저희를 죽여서 빼앗…….”
그가 말을 끝내기 전에 한 군주가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퍽!
“억?!”
“정말 머저리 새끼군.”
정강이를 걷어찬 군주가 재수 없는 소리나 한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어떻게 에켈로 총연맹에서 너 같은 군주가 있는 소연맹과 우릴 연계시켜 줬는지 모르겠구나. 넌 기본도 모르는 거냐?”
군주가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다른 군주들도 한심하다는 듯 말을 꺼낸 이를 혀를 차며 보고 있었다.
“어떻게 우리한테서 빼앗을 건데? 군주게임 시스템상 군주를 죽였다고 그의 모든 아티팩트를 가질 순 없다. 모든 건 랜덤으로 떨어지지. 운 나쁘면 가지고 있던 풀 쪼가리 하나 떨어질 수도 있다고.”
“아차차. 군주를 죽이면 랜덤 드롭이지요. 제 괜한 기우였나 봅니다.”
“그래, 네 기우였다. 멍청아. 놈은 우리를 아군으로 믿는 순진한 꼬마여서 데려온 거일 수밖에 없다고.”
군주의 말처럼 소년이 자신들을 해할 생각을 품고 죽인다면 랜덤으로 히든피스를 얻을까 말까일 텐데, 그런 위험부담을 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다시 쓸데없는 잡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7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저 순진한 꼬맹이가 죽을 때 어떤 표정일지가 참으로 기…….”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재밌게 하는 거야?”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열두 군주의 시선이 정체 모를 건틀릿을 들고 던전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소년을 향해 일제히 돌아갔다.
‘빠, 빠르다…….’
‘무슨 놈의 던전 공략 시간이.’
정말 7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서둘러 입을 맞췄다.
“히든피스가 기대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맞아, 어떤 히든피스가 나타날지 너무 기대돼서 말이야.”
그들은 표정을 싸악 바꾸고 웃어 보였다.
“그래? 그럼 이걸 확인해 보라고. 충분히 기대를 충족시킬 거다.”
아서가 바칼론에게 들고 온 건틀릿을 건네줬다.
건틀릿을 건네받은 바칼론이 망설이지 않고 확인했다.
(수호자의 건틀릿)
등급: 낡아빠진 유니크
공격력: 220
내구도: 10,000/10,000
특수 능력:
•수호자의 버프 스킬 사용 가능
•기본 스탯+5
설명: 수호자라 불리던 자의 건틀릿으로 이벤트에 숨어 있는 히든피스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수호자의 버프 능력을 사용하면 반경 2m 내의 아군들의 방어력이 일시적으로 30 상승한다.
바칼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군주들에게 넘겼다.
“확실하군.”
설명에 나와 있지 않은가.
이벤트에 숨어 있는 히든피스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난 이제 다른 던전은 못 들어간다. 한 사람당 하나씩만 가능하니까, 내가 모두 안내해 주도록 하지.”
“이런 게 던전 안에 하나씩은 있다는 말이지.”
그들은 군침을 츄르릅 삼켰다.
곧 소년이 그들을 던전 앞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 * *
보스를 사냥하고 히든피스를 얻은 바칼론은 흥분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의 손에는 양피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신기록 보상 물품 같은 것들과는 비교도 안 된다.’
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아티팩트와 같은 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벤트에 도움이 될 만한 아티팩트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내가 제일 늦었나?’
바칼론은 소년이 말해주기로 가장 어려운 던전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는 그 이유를 충분히 납득했다.
가장 노련한 경험자이고 101명의 군주 중 한 명인 만큼 충분히 그럴 만했으니까.
막 던전을 벗어나 햇빛을 만난 바칼론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 아무도 없지?’
지금쯤 모두 모여 이 앞에서 기다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때, 멀지 않은 수풀에서 소년이 걸어 나왔다.
“왜 거기서 나오지?”
“아, 소변 좀 봤어.”
빙긋빙긋 웃는 소년이 바칼론에게 다가올 때, 그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어디서 피비린내가…….’
그의 시선이 홱 수풀 쪽으로 돌아갔다.
풀잎에 튀어 있는 핏방울.
바칼론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소년 아서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잘 쓰마. 열두 개의 히든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