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군주회귀록 075화
27장 검의 대제
“신의 대장장이?”
꽤 거창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중요 정보 열람의 제목이다.
‘절대군주들의 부탁.’
절대군주들은 이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로 아서에게 보상을 해주곤 했다.
어쩌면 그들이 아서를 지켜보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1차 군주게임의 친구? 그리고 신의 대장장이라.
아서는 아직 ‘+퀘스트: 50단계까지 도전’을 확인해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상이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퀘스트를 열람했다.
(50단계까지 도전)
등급: S
지급 캐시: 5,000
보상: 절대 감각+4, 행운+1 손재주+2
글렌의 맞춤 무기 제작 > 추후 지급형
승낙 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시: 모든 스탯-50
설명: 자신이 시작한 단계에서 50단계까지.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역시나.
보상은 아서의 예상대로였다.
글렌이 아서에게 직접 무기를 제작해 준다.
1차 군주게임의 절대군주들도 인정할 정도의 자, 또 신의 대장장이라고 불렸던 자가 아서에게 무기를 제작해 준다.
퀘스트 등급은 S.
‘확실히 등급이 높을 만하다.’
D급 1단계부터 20단계까지.
사실상 이 정도도 어지간한 군주들이라면 힘든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져 C급 20단계까지 헤쳐 나가고 추가로 B급에 해당하는 10단계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말도 안 되는 형벌.’
그 말이 맞다.
그 누구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글렌은 여기에 갇혀 있는 것이고.
어쩌면 영원히 이곳에서 갇혀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아서는 품에서 꺼낸 살육자의 단맛 껌을 씹기 시작했다.
질껑질껑.
살육자의 단맛 껌은 위급 상황에서 아서를 구해줄 수 있는 방편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충분히 씹을 만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제부터 사냥 속도를 올린다.”
-예!
크르크르!
수하들이 답했다.
10분 동안 몬스터들을 거의 죽음까지 만들어놓고 그 뒤에 사냥하는 게 아서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무리해서라도 앞으로 26단계를 더 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에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올라간다.
쩔과 같은 방법으로 못 먹을 경험치를, 빠른 속도로 올라가 더 강한 몬스터를 잡음으로써 채운다.
그리고 살육자의 단맛 껌 하나를 소모한 만큼 그에 따른 강력한 소환수를 얻을 거다.
크오오오!
크오오오!
C급의 15단계.
3성 몬스터인 아울베어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총 여섯 마리였다.
“되도록 숨만 붙여놔라.”
아서가 바로 죽인다는 건 변했지만 소환수들이 숨만 붙여놔야 한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아서가 대미를 장식해야지 살육자의 단맛 껌이 힘을 발현하기 때문이다.
타타탓!
수하들이 움직이고 아서도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 * *
글렌의 표정은 시시때때로 변하고 있었다.
‘아니야, 설마 여기까지 헤쳐 오겠어?’
글렌이 그런 생각을 하며 조마조마해하며 보고 있을 때.
소년 군주는 갑자기 팍하고 튀어나갔다.
그러고는 신출귀몰한 움직임으로 몬스터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소년은 자신의 수하들과 적절히 밸런스를 맞추고 사냥을 했다.
하지만 단계가 올라갈수록 소년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소년 아서에게 한없이 나약한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하지만 아서는 단계가 올라가면서 몬스터들이 강해질 때마다 그에 맞춰 발 빠르고 노련하게 움직였다.
설마 이놈들까지 잡을까 생각하면 잡아냈고, 설마 이 보스 놈을? 하면 단숨에 때려눕혔다.
거기에.
‘속도가 올라간다……!’
속도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몬스터 숫자가 많아지는 만큼 소년의 사냥 속도도 빨라지고 있었다.
소년은 정체 모를 껌을 씹고 있었고 수하들은 소년에게 거의 죽음까지 이른 몬스터들을 던졌다.
그러면 소년은 내던져진 놈들을 창으로 단 한 수에 베어내고 있었다.
“39단계……!”
글렌이 외쳤다.
꽉 쥐어진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어쩌면 저 소년이라면, 저 아이라면 자신을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처음 저 소년이 들어왔을 때 무시했던 생각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는 서둘러 계단을 밟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년 군주를 더욱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는 알았다.
‘아크의 직업을 이어받았어.’
창조주 군주 아크가 부렸던 능력인 죽음의 그림.
소년은 그걸 부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생각했다.
‘깨기만 해라, 그럼 내가 아크에게 주려 했던 무기를 만들어주마!’
그렇게 다급하게 뛰어 내려가던 글렌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40단계 보스는…….’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걸 생각하지 못했다.
글렌이 생각하는 40단계의 보스는 아서가 아무리 강해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좌절감이 밀려와 자신도 모르게 주르륵 주저앉고 말았다.
‘그래, 난 이곳을 벗어날 수 없어.’
그 존재는 이길 수 없다.
40단계 보스가 나타나는 순간 이 광렙하는 보너스의 시스템 중 하나가 발동하기도 한다.
소년은 깰 수 없다.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아.’
그는 물 없는 세수를 크게 했다.
괜스레 아크에게, 또 소년에게 미안해지고 있었다.
그는 힘없이 몸을 일으켰다.
내려온 김에 눈앞에서 소년의 마지막이라도 봐주고 싶었다.
그는 힘없이 터덜터덜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아낙크라스 영지.
사람들은 거미들의 영지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아낙크라스 영지의 군주 성에는 새하얀 거미줄들이 가득 쳐져 있었다.
단순한 거미줄 같았지만 거미들의 특수한 능력에 따라 영지의 방어력을 큰 폭으로 올려줬다.
군주의 방의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은 키가 186㎝ 정도로 훤칠하고 검은색 짧게 친 머리에 몸에 군더더기가 없는 모습의 사내였다.
그는 무언가 재밌다는 듯 웃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랄프 군주님, 무엇을 보고 그리 재밌어 하시는지요. 소인도 함께 웃고 싶습니다.”
랄프.
그는 검의 대제라 불리며 고르딘 총연맹의 총연맹장을 맡고 있었다.
현 S급의 도전 군주 중 한 명이자 현재의 도전 군주 중 가장 강력한 무력을 자랑한다고 알려져 있다.
랄프는 인벤토리에서 판금 갑옷을 꺼내어 착용을 시작했다.
“구, 군주님?”
그의 대리인.
그녀는 아라크네라는 거미족의 여인이었다.
등 뒤로는 네 개의 거미 다리가 달려 있으면서도 인간처럼 두 개의 다리로 걷는 이족보행 종족이기도 했다.
“아아, 미안미안. 재밌는 일이 생겨서.”
“재밌는 일이요?”
아라크네는 그가 갑자기 쿡쿡거리며 혼자서 웃을 때부터 계속 의아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질문했다.
“그래, 누군가 내 기록에 접근했거든.”
“군주님의 기록에 접근한 자가 있단 말입니까?”
검의 대제 랄프.
사람들이 군주게임에서 그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때문에 아라크네 대리인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 광렙하는 보너스라고. 전에 말했잖아. 단계를 깰수록 몬스터들이 강해지고 더 많이 나온다고. 대신 두둑한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고. 대신 C급 이하의 군주들만 광렙하는 보너스라는 이용권을 받을 수 있는 제한이 있긴 하지만.”
랄프는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 검을 착용했다.
“그 기록에 접근한 자가 있단 말입니까?”
아라크네는 진심으로 놀랐다.
검의 대제 랄프는 아스가르드 대륙에서 무력으로는 이길 수 없는 존재였다.
그는 날 때부터 천재였다.
그의 대륙에서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로 불리고 있었다.
그가 해냈던 기록을 달성한 자.
‘난 40단계에서 도망쳤지. 잘못하면 정말 죽을 거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는 입 안이 썼다.
자신은 40단계를 겨우 클리어하고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한데, 지금 알림이 말해줬다.
지금 막 누군가 39단계를 클리어했다고.
그 의미는 간단하다.
“잠시 영지 좀 잘 지켜…….”
그 말을 채 끝맺기 전에 랄프의 몸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보고 있어.”
마지막 말을 끝맺은 랄프가 피식 웃으며 스르르 사라졌다.
“구, 군주님?”
아라크네는 깜짝 놀랐으나 그의 미묘한 웃음에서 위험하지는 않겠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놀란 음성을 흘렸다.
“감히 검의 대제에 도전하는 자가 나왔다는 걸까?”
아라크네가 본 자신의 군주는 절대적이었고 대적할 자가 없는 군주님이었다.
* * *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아서는 D급에서 레벨 업을 딱 세 번 할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C급에선 레벨 업을 자그마치 일곱 번이나 해냈다.
즉 10레벨을 올렸다는 건데, 영지 총레벨 2정도는 올려야 할 수 있는 레벨 업이었다.
거기에 골드와 아티팩트들도 녹록지 않게 나와주고 있었다.
물론 그의 성미에 차는 건 나오지 않고 있었지만.
현재 몬스터 사냥 숫자는 자그마치 71마리였다.
단계를 나아갈 때마다 무조건 몬스터가 많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강해질수록 적게 나오다가 팍 많아지고, 또 다른 놈이 나오면 적게 나오다가 많아지고를 반복했다.
현재 71% 더 강력해진 힘.
거기에 아서는 레벨 업을 통해 받은 보너스 스탯을 힘과 민첩, 체력에 골고루 분배했다.
수하들이 상처 입을 때마다 적절히 우로보로스가 튀어나와 회복시켜 주고 있는 중이었다.
그로 인해 아직은 꽤 수월하게 버틸 만하다.
그때였다.
파앗!
주변에 있던 수하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아서는 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20단계의 보스와 같은 능력?’
곧 알림이 들려왔다.
[C급 20단계가 시작됩니다.]
[보스 몬스터의 출현!]
[랜덤으로 아티팩트를 드롭합니다.]
[40단계를 돌파한 군주에 따른 시스템이 발동합니다.]
[모든 스탯이 상대방과 동일하게 맞춰집니다.]
[모든 특수 효과가 일시적으로 사라집니다. 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시 다시 적용 가능합니다.]
[15분 동안 버텨내실 시 보상 드롭과 함께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모든 스탯이 상대방과 동일하게 맞춰진다?’
즉, 똑같은 능력치를 가지게 된다는 거다.
40단계는 조금 더 특별한 듯 보였다.
어쩌면.
‘낮은 급으로 시작했으나 특수한 힘을 가지고 성장한 군주를 견제하기 위한 시스템일 확률이 높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엔 변칙이라는 게 항상 생기게 마련이었다.
등급 이상의 군주가 40단계까지 치고 올라왔을 때 그를 막기 위해 내놓은 시스템으로 간주됐다.
동일하게 능력을 맞춘다.
이는 간단하게 해석할 수 있다.
‘오로지 개인의 힘에 따라 단계의 승패가 갈린다.’
강력한 스탯도, 현재 착용하고 있는 아티팩트도 일순간 무용지물이 되고 순수한 개인의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거다.
동일한 능력치.
이는 오로지 서로의 순수한 힘으로 겨루라는 말이다.
‘그 의미는 그만큼 자신 있는 자를 걸어놨다는 건데.’
아서의 입가에 피식하고 웃음이 스쳤다.
곧이어 스르르 빛에 휩싸여 누군가 나타났다.
키는 훤칠하게 컸고 금빛으로 번들거리는 판금 갑옷을 착용한 사내였다.
허리춤에는 잘 갈린 검을 착용하고 있었다.
아서는 그의 얼굴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일그러져 보이고 있었다.
‘시스템상 서로를 감춰주는 건가?’
아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상대편도 똑같은 말을 했다.
“얼굴은 안 보이는군, 아쉽게도.”
랄프는 광렙하는 보너스를 하는 동굴을 둘러봤다.
자신의 기록에 접근한 자가 누구인지 궁금했건만 아쉽게도 얼굴은 일그러져 보였다.
랄프가 40단계를 깼을 때 시스템은 말했다.
다음 40단계에 도전하는 자가 있을 시 그가 보스로 출현하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는 이곳에선 죽어도 죽음으로 간주되진 않는다.
단, 적은 이곳의 죽음이 곧 진짜 죽음이 된다.
상대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체격은 볼 수 있었기에 가늠했다.
“키가 작군. 호빗족? 아니, 호빗족보다는 조금 더 큰데?”
아서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
하지만 확실한 건, 그는 방금 자신을 외모로 판단했다는 것.
아서가 개인적으로 지극히 싫어하는 부분.
본디 그는 받은 것의 두 배로 갚아주는 사람 아니던가.
“키가 크군. 아피린족? 아니, 아피린보단 조금 더 큰데? 그럼 거시기 없는 인간 남자?”
아서는 상대편이 입을 꾹 다물었음을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혓바닥으로 싸우길래.”
피식.
아서가 특유의 능구렁이 같은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