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군주회귀록 073화
그리덴.
금발 머리를 질끈 묶은 허름한 차림새의 여인이었다.
그레모리는 그녀를 이끌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꼴도 보기 싫구나.”
“예……?”
흠칫 놀란 그리덴이 몸을 떨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독설에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군주 성에 오면서 그런 허름한 꼬라지 하고는. 쯧쯧. 그딴 옷밖에 없더냐?”
“죄, 죄송합니다. 집에 옷이 많이 없어…….”
“어찌 인간 여자라는 자가. 네 나이 땐 분칠도 하고 그러던데. 한심하구나.”
그레모리는 혀를 차면서 그리덴을 이끌었다.
다짜고짜 독설을 먹은 그리덴은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영지민들이 다 같은 옷을 입고 다 같은 형편을 누리는 건 아니었다.
그중 그리덴의 집은 다소 가난한 편에 속했다.
아서가 아무리 성군이라 불린다 하더라도 벌어들이는 수익은 영지민 개개인의 능력이니까.
‘내가 더럽나?’
킁킁 자신의 몸 냄새까지 맡아보는 그리덴이었다.
시무룩해진 그리덴이 그레모리를 따라간 곳에는 올리아라는 하운드족이 없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그레모리의 방이었다.
다짜고짜 옷장을 열어젖힌 그녀는 화려한 옷 몇 벌을 그리덴의 얼굴에 던졌다.
“이걸 가져가라. 이것도, 이것도.”
그녀는 쉴 새 없이 옷을 그리덴에게 던졌다.
한 움큼 고급스러운 옷을 받은 그리덴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 이게…….”
“난 버리는 것들이니까. 그런 더러운 옷 좀 그만 입어라, 역겨우니까. 그리고 이건 얼마 전에 써봤는데 영 내 얼굴에 맞지 않더구나. 네 끔찍한 피부에는 맞을 테니, 이 분가루도…….”
그레모리는 그렇게 말하며 주섬주섬 뭔가를 계속 챙겨주고 있었다.
“앉아라.”
“네?”
“계속 그렇게 신경 긁을 거냐?”
그래놓고 그레모리는 다짜고짜 그리덴을 의자에 앉혔다.
“피부가 정말 끔찍하구나!”
그레모리는 그렇게 말하더니 섬세하게 분가루에 대해 설명하며 부드럽게 분칠을 해줬다.
어느덧 꽤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화장을 한 그리덴은 등 뒤에서 흡족한 표정을 짓다가 싸늘한 표정으로 바꾸는 그레모리를 보며 느꼈다.
‘말은 가시인데 행동은…….’
그녀는 깨달았다.
‘츤츤하시다!’
거기에 더해.
“뼈밖에 안 남은 게 정말 끔찍하구나. 누가 보면 군주님께서 배를 굶기시는 줄 알겠어, 짜증 나는군. 돈을 더 넣었으니 밥이나 사 먹거라.”
그렇게 말하며 오늘 일당을 툭 던지는 그레모리다.
그녀를 따라가는 그리덴이 빙그레 웃었다.
그레모리는 그녀에게 잠든 올리아를 씻기게 했으며 또 미용하는 것도 지켜봤다.
미용이 끝난 올리아.
여전히 잠들어 있는 올리아를 보며 그레모리가 혀를 차듯 말했다.
“못생긴 개가 더 못생겨졌군.”
‘언행 불일치가 너무 심하신 거 아닌가요…….’
그레모리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당장 쓰다듬어 보고 귀여워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덴이 돌아간 뒤, 그녀는 올리아가 잠든 침대에 걸터앉았다.
“정말 못생겼어…….”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볼을 쿡하고 눌러보며 씨익 웃는 그레모리.
어느덧 턱 끝을 침대에 붙이곤 옆으로 누워 잠든 올리아를 유심히 관찰하는, 자신이 츤츤모리라 불리는 걸 모르는 그레모리였다.
* * *
따뜻하다.
그게 올리아가 눈을 뜨고 느낀 첫 번째 생각이었다.
머릿속에 다프라는 군주에 대한 기억이 얼핏 떠오른다.
하지만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가 자신에게 몽둥이찜질을 했을 때 느꼈던, 혹은 그가 잠들었을 때 몰래 그의 침대에 올라가 잠이 들었던 그 감정까지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단 한 사람만이 떠오르고 있었다.
“못생긴 개야, 일어났느냐? 군주님께서 널 보자고 하신다.”
“망망! 군주님이요?!”
군주라는 두 글자에 벌떡 몸을 일으킨 올리아는 마치 산책 나가기 전의 개처럼 침대 위를 몇 바퀴 뛰어다니며 꼬리를 열심히 흔들었다.
그레모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끼이잉, 하고 울지 않았던가?’
분명히 끼이잉 하고 울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올리아는 망망거리며 귀여운 소리를 내면서 군주님이라는 단어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올리아는 가슴 벅참을 느꼈다.
‘망망, 우리 군주님을 뵌다.’
그것은 설렘이었다.
날 좋아하실까?
아껴주실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올리아를 안아 든 그레모리는 어느덧 군주 성 앞에 멈춰 있었다.
당장 그 품에서 뛰어나가 군주님을 보고 싶은 올리아였다.
끼이익.
거대한 문이 열리고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던 아서의 모습이 올리아의 눈에 들어왔다.
올리아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군주님.
그가 자신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조금 놀란 표정이 되어 있었다.
털이 개를 만든다고 하였던가?
하운드족이어서 그런지 목욕을 시키고 미용까지 한 올리아는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서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레모리에게 물었다.
“그레모리.”
“예.”
“저 미용 방법을 뭐라고 부르지?”
“미용사 그리덴의 말로는 ‘곰돌이컷’이라고 한다더군요.”
“그래? 마음에 드는군.”
아서는 피식 웃었다.
털이 엉켜 있던 올리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풍성한 붉은 털은 매우 아름다웠고 그 사이로 빛나는 똘망똘망한 눈동자는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올리아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당장 군주님께 뛰어가고 싶었다.
그레모리가 그 뜻을 알고 내려주자 아서에게로 달려가던 올리아가 우뚝 걸음을 멈추고 그대로 앉았다.
‘망망, 군주님이 싫어하실지도 몰라.’
“왜 오다가 마느냐?”
“망망, 군주님께서 싫어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망망?”
“저도 좀 놀랐습니다.”
아서의 입이 벌어졌다.
‘이제까지 주눅 들어서 낑낑거리는 울음을 냈던 거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원래 올리아의 추임새는 ‘끼잉’이 아니라 ‘망망’이었던 거다.
이제껏 다프 군주의 강압에 억눌려 자신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내고 있던 거다.
하운드족이 개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걸 보여줬다.
“괜찮으니 와도 된다.”
아서는 하운드족이 군주의 품에 안겨 있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말에 올리아가 해맑게 웃으며 한달음에 폴싹 아서의 품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머리를 만져달라는 듯 내밀었다.
‘망망, 군주님 품은 따뜻해…….’
아서는 부드럽게 올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서는 탐색꾼 올리아를 얻었고, 그에게는 세상을 바꾸어주는 선물을 주었다.
* * *
이벤트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성 외벽으로 나온 아서는 오른팔을 쭉 뻗었다.
삐이이이.
울음을 흘리며 허공 위를 배회하던 매 한 마리가 사뿐히 아서의 팔 위로 내려앉았다.
브록 군주가 보낸 매였다.
파드득!
다리에 달려 있는 둘둘 말린 양피지를 빼낸 아서가 힘껏 팔을 털자 매가 하늘로 솟아 올라갔다.
아서는 양피지를 펼쳤다.
‘이벤트 참가 승인서.’
발키리 총연맹에서 브록 군주를 통해 보낸 승인서였다.
아서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성안으로 들어갔다.
‘가면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
운영자들은 분명히 이벤트가 끝나고 공략 방법에 대해서 공표했다.
아서는 대부분 알고 있었으나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도 있었다.
자신이 회귀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그리고 지금 운영자들은 유물 아티팩트를 내걸었다.’
아서는 그 말을 여러 차례 곱씹어봤다.
입 안이 썼다.
그 이유는 하나.
‘아무도 유물 아티팩트를 가져가지 못했다는 거.’
그게 의미하는 것.
이벤트에 참가했던 모든 군주가 살아남지 못하고 전멸해 버린 거다.
아서의 추측.
‘애초에 운영자들은 유물 아티팩트를 줄 생각이 없었다.’
아직 아스가르드 대륙에 풀 생각 자체가 없던 거다.
그저 자신들 재밌자고 이 이벤트를 만들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도 유물 아티팩트는 분명히 내걸려 있다는 거지.’
최초로 유물 아티팩트의 소유권자가 될 생각인 아서였다.
‘그걸 대비해서.’
광렙하는 보너스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현재 아서는 군주 등급의 무력으로 가정하였을 때 C급 정도로 예상되었다.
실제 군주 등급은 이제 겨우 D라는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그는 남들보다 몇 배는 훨씬 빠른 성장을 이륙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C급으로 치부되는 브레드를 아서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살육자의 단맛 껌과 미치광이 주사가 중복된 덕분이었다.
이제 미치광이 주사는 모두 소모했고 다신 얻을 수 없을 터.
때문에 아서는 광렙하는 보너스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벤트는 아서 개인의 힘이 중요하니까.
“오늘 내로 돌아오마, 그레모리.”
“예, 군주님.”
“망망, 빨리 오셔야 해요.”
그레모리의 옆에 서 있는 올리아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빙긋 웃은 아서가 부욱 광렙하는 보너스를 찢자 붉은빛이 주변에 넘실거리며 순식간에 아서가 사라졌다.
올리아와 단둘이 남은 그레모리는 그를 내려다봤다.
아서의 말에 따르면 아직은 탐색꾼 올리아를 개방할 수 없다고 했다.
올리아를 보던 그레모리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산책 가자, 못난이 개야.”
“망망, 좋아!”
“……말이 짧다?”
올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 * *
글렌.
그는 힘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였더라?
1차 군주게임이 끝난 직후였던가, 그때부터 글렌은 단 한 번도 이곳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현재 2차 군주게임이 진행되고 무수히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글렌은 시원스럽게 민머리에 몸만큼은 꽤나 탄탄해 보였다.
그의 뒤로는 대장장이용 망치가 놓여 있었고 투박해 보이는 갑옷들과 검, 창, 활과 같은 것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기도 했다.
투박해 보였지만 결코 아니었다.
글렌은 1차 군주게임에서 꽤 거창한 이름으로 불렸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그는 마른 입술 사이로 술병을 가져가 들이켰다.
“크흐. 이번에는 또 누가 왔나.”
글렌은 광렙하는 보너스를 관리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군주게임을 거역하고 받은 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홀로그램을 보고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인간 꼬마?”
피식 웃음이 났다.
이제까지 광렙하는 보너스에는 다양한 자들이 찾아왔다.
공통점을 꼽아보자면 대부분 꽤 대단한 업적을 달성해서 보상으로 광렙하는 보너스를 받았다는 거다.
하지만 인간 소년이라?
‘금방 죽겠군.’
그는 쯧 혀를 차며 주저앉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는 항상 ‘혹시나’ 하곤 했다.
누군가 자신을 이곳에서 꺼내주길.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길 바랐다.
* * *
광렙하는 보너스 이용권을 찢고 붉은빛에 휩싸여 나타난 아서는 주변을 둘러봤다.
동굴이었다.
광렙하는 보너스에 관해서 밝혀진 건 정확히 없다.
랜달이 하였던 학살자의 보너스보단 경험치가 1.3배 두둑하다는 것과 골드나 아티팩트와 같은 보상도 드롭된다는 것 정도?
-광렙하는 보너스에 입장한 것을 환영한다. 이곳을 관장하는 글렌이라고 한다.
아서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구겨졌다.
주위를 둘러보자 아무도 없었다.
또 절대 감각 스탯에 의해 뛰어나진 오감도 아무도 없다고 알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긴 하다는 건데.
피식 웃음이 났다.
“언제 봤다고 말을 짧게 하지?”
아서의 말에 잠시 답변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럼 너도 말 짧게 하든가.
상대방도 한 성깔 한다.
아서는 피식 웃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