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군주회귀록 062화
[바라스의 정수를 마셨습니다.]
[모든 독에 절대적인 내성을 가지게 됩니다.]
모든 독에 대한 절대적인 내성!
감탄이 나오는 능력이다.
군주 중에선 전쟁 때 독을 사용하는 군주도 다소 찾아볼 수 있었고 아서도 필요하다면 독을 곧잘 사용했다.
때문에 바라스의 독을 모은 것이기도 하다.
그런 독들을 모두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흡족해할 만했다.
통로를 빠져나온 아서는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상태였다.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 후에는 죽음의 그림 수하들을 소환 해제했다.
그다음 보스방을 나왔다. 앞에 자신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라우든이 보였다.
그는 아서에게 궁금할 것이 많을 텐데도 특별한 것을 묻진 않았다.
라우든도 아서도 걷는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쳤다.
영지를 구한 아카스.
그리고 수년간 이어져 왔던 콜로스와 그 일당의 만행.
모든 것이 끝났다.
틀어졌던 모든 일을 바로 잡았다.
그리고 이 일이 완벽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
“이제…….”
아서는 작은 웃음을 지으며 라우든을 돌아봤다.
그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라우든이 자신과 그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남모르는 곳에서 노력했음을.
또한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임을.
최소한 콜로스보다도 훨씬 더 유능하고 좋은 사람임을.
그랬기에 말할 수 있었다.
“기사단장은 라우든 경이십니다.”
* * *
쪼르르
작은 빈 병 안으로 블랙이 완성한 초록빛을 띠는 액체가 흘러 들어갔다.
꾹꾹.
블랙은 마개를 눌렀다.
‘이제 이곳도 끝이군.’
그는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두터운 책을 보며 입을 비틀었다.
손을 뻗어 그 책을 둘러봤다.
‘용언의 연금술서.’
표지는 검은색이었고 앞면에는 용이 그려져 있었다.
이 용언의 연금술서를 얻은 것으로 블랙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는 대륙 곳곳을 방랑하고 있는 중이었다.
매번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때마다 새로운 얼굴이 되었다.
이젠 슬슬 칼리스 영지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그 전에.’
블랙의 갈라진 입술, 그리고 두텁게 올라온 목저울이 크게 움직였다.
꿀꺽.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로리스.
자신이 만들어준 폴리모프 약을 마시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대단해.’
사실상 자신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이었지만 블랙도 보면서 감탄할 정도였다.
이곳을 떠나기 전, 그녀를 마음껏 탐닉해 볼 생각이다.
지금 만들어낸 연금품들을 이용한다면 그녀도, 그녀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상단의 상당한 금은보화도 얻을 수 있으리라.
모든 걸 얻은 후에는 홀연 듯 사라지리라.
“크흐흐흐.”
그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마른세수로 지웠다.
휘이잉.
“음?”
분명 창문은 닫아놨을 터였다.
그런데 바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블랙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퍼억!
주먹이 그의 인중에 정확히 꽂혔다.
툭툭.
앞니 두 개가 땅에 떨어지고 피가 뚝뚝 흘렀다.
입을 손으로 틀어막은 블랙은 앞에 서 있는 이를 보고 눈을 떨었다.
“너, 너는…….”
그는 콜로스가 죽이려 했던 소년이었다.
그 소년은 목을 우둑 꺾으며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용언의 연금술서에 시선을 주었다.
블랙은 본능적으로 용언의 연금술서로 손을 뻗었다.
아서가 쥔 창이 책상 위에 올라간 블랙의 손을 정확히 꿰뚫으며 책상에 박혔다.
푸지익!
팍!
“끄아아악!”
블랙이 은신하고 있는 곳은 산속 깊은 곳 후미진 곳에 있었다.
그가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달려와 줄 사람은 없었다.
그가 숨으려고 했던 장소가 오히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격이 되었다.
“끄흐으으윽…… 도, 도대체 어떻게…….”
소년은 기사 일곱 명과 던전 안으로 들어갔고 콜로스도 그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 돌아왔다는 건가.
블랙은 손을 빼기 위해 힘을 주어봤다.
단단히 책상까지 관통해 박힌 창이 빠질 리가 없었다.
아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용언의 연금술서에 손을 뻗었다.
“그, 그건 안 돼. 그건 안 된다고! 이 새끼야!”
블랙은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어쩌면 용언의 연금술서가 그를 이토록 타락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고통도 잊은 것인지 손에 창이 박힌 상태로도 움직이려고 발버둥을 쳐 피가 더 콸콸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서는 무시하고 용언의 연금술서를 집었다.
사람을 세뇌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외형까지 바꾼다.
또한 아서가 알기로 더 방대하게 사용법이 있었다.
연금술사 라임이 연금술로 선보였던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아서는 다수 보았으니까.
고작 이따위 자가 가지기에는 아까운 물건이었다.
또, 이렇게 쓰여서도 안 되는 물건.
“잘 쓰도록 하마.”
아서의 말에 광분하던 블랙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웃었다.
“푸흐흐흐…….”
그 웃음소리는 점차 커져갔고, 블랙은 곧 고개를 치켜들고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
블랙의 웃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아서는 표정 변화 없이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넌 그걸 사용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다.”
아서는 묵묵히 들어보았다.
“그 언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대륙에 열 명이 채 안 되지.”
실제로 블랙의 아버지는 용언을 연구하던 자였다.
블랙도 그 덕분에 아버지를 통해 배운 것으로나마 용언을 구사할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은퇴하고 농사꾼이 되었다.
그것도 농사를 더럽게 못 짓는 농사꾼이.
블랙의 어린 시절은 참혹했다.
마른 체구도 그렇고, 소름 끼치도록 어둡게 생긴 외모도 그랬고, 내성적인 성격도 있었기에 많은 이에게 무시당했다.
그때 그의 앞에 나타났다.
용언의 연금술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준!
언젠간, 정말 언젠가는 이 용언의 연금술서 하나로 대륙 전체를 흔들리라!
블랙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또한 대륙엔 이 용언의 연금술서를 해설할 수 있는 자가 거의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것, 나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
나를 위해 존재하는 신이 내린 선물!
“크흐흐흐흐!”
그걸 알기에 블랙은 낄낄 웃었다.
놈이 자신의 연금술서를 어떻게 알고 노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넌 날 죽이지 못해. 날 죽이면 그걸 해석할 수도…….”
“חהאמפעסנץלליטחז(해석 못 한다고?)”
“……!”
아서의 입에서 흘러나온 용언.
블랙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용언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대륙에 열 명.
아니, 어쩌면 이젠 다섯 명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용언을 연구하려는 자는 없었고 기존에 존재했던 이들은 죽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지금 아서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용언이 분명했다.
아서는 용언의 연금술서의 첫 장을 넘겼다.
“חהאמפעסנץחךלליטחזחהאמפעסנץחךלליטחז……(폴리모프 제조약. 이 폴리모프 제조약의 재료에 대해 나열하자면…….)”
아서는 부드럽게 읽어 내려갔다.
블랙은 자신보다 아서가 더 유창하게 읽어 내려간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이게 도대체…….”
그의 눈은 경악에 차 있었다.
아서는 전생에서 용언을 배운 적이 있었다.
군주게임에서.
이곳 아스간 대륙에선 용언을 배울 수 있는 자가 희박했다.
하지만 위쪽 세상에 가면 실제 ‘용족’도 존재했으며 용언을 구사할 줄 아는 자가 꽤 있었다.
그러니 아서가 블랙보다 유창한 용언을 사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용언의 연금술서의 페이지를 넘기던 아서는 빼곡하게 적혀 있던 것들이 스무 페이지를 지나자 백지 형태로 나타나는 걸 볼 수 있었다.
[열람할 수 없는 정보입니다.]
‘용언의 연금술서도 성장하는 아티팩트.’
권능 성장 아티팩트는 아니지만 아서가 우로보로스를 ‘단순한 성장’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원리 같았다.
아서는 용언의 연금술서의 정보를 홀로그램으로 띄워봤다.
(용언의 연금술서)
등급: 하찮은 유니크
성장형
내구도: 1,000/1,000
특수 능력:
⦁스무 페이지까지의 용언의 연금술서를 통한 물품 제작 가능.
⦁지능+5
설명: 고대의 용들이 사용하던 뛰어난 연금술 사용법에 대해 서술되어 있는 책이다. 단순히 재료를 모았다고 해서 용들의 연금술을 사용할 수는 없다. 용언의 연금술서와 제조된 물품이 만나야만 그 힘을 발현하며 서술된 모든 것을 만들어낼 시 성장한다.
‘흠.’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스무 페이지까지 오픈 가능하다.
한 페이지에 연금술 하나 정도를 할 수 있다고 보면 편하다.
스무 페이지까지 얼핏 훑어보자 이 중에도 꽤 대단한 것이 많았다.
단순히 같은 재료를 가지고 똑같이 제작했다고 해서 용언의 연금술이 되는 게 아니라는 설명.
즉, 이 용언의 연금술서가 힘을 발현해야만 비로소 그 용언의 연금술로 인한 것들이 탄생한다는 거다.
아마도 용언의 연금술서가 성장할수록 페이지 수는 더 늘어날 것이고 물품도 대단해질 것이다.
아서는 용언의 연금술을 쫙 펼쳐서 공백의 페이지를 보여줬다.
“너도 이건 볼 수 없겠지?”
블랙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 것이 그의 표정에서 드러났다.
퐈드윽!
“꺼억…….”
블랙의 손에서 창이 뽑혀 나왔다.
“사, 살…….”
아서는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냈다.
수우웅!
툭.
데구르르.
블랙의 몸이 허물어졌다.
“곧 모두 모일 거다.”
* * *
늦은 밤.
말통을 들고 있는 콜튼은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크흐흐. 아서, 이 병신 같은 새끼. 네가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콜튼이 든 말통에는 기름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는 프레스 가문의 자택에 기름을 부어 모두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때.
갑자기 그의 귀에 정체 모를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חהאמפעסנץחךלליטחזחהאמפעסנץחז(나를 따라와라, 나를 따라와라.)’
“히익?”
깜짝 놀란 콜튼이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귀를 계속해서 쳐봤다. 하지만 계속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눈동자가 흰자 구분 없이 완전히 검은색으로 변해 버린 콜튼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걸음을 옮기는 곳은 산 쪽이었다.
“콜튼 도련님?”
영지 입구를 지키던 병사들이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다녀올 곳이 있어.”
“이 밤중에 말입니까?”
“묻지 마라.”
콜튼의 싸늘한 목소리.
그들은 엉겁결에 그 기세에 눌려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따라…… 가야…… 해…….”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중얼거리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 * *
번쩍!
로리스가 깨어났다.
“내, 내가 왜 여기에…….”
눈을 뜨자 낯선 곳에 와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나서부터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놓은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콜튼이 보였고 이미 도착해 있었던 듯 콜로스도 보였다.
그리고 그 인근에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는 블랙이 있었다.
“꺄, 꺄아아아악!”
블랙의 시체를 본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지르던 그녀의 시선에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검끝으로 바닥을 찍은 채 고개를 기울이고 싸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