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군주회귀록 060화
아서가 땅을 박차며 나아갔다.
겁에 질린 기사가 검을 꼬나 쥐고 기합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으아아아!”
태탱!
몇 번의 충돌.
아서의 창이 기사의 관자놀이 쪽을 꿰뚫었다.
퍼지익!
처참하게 머리통이 부서졌다.
하지만 아서의 눈엔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네놈.”
“제, 제바알!”
기사 한 명이 상황을 인지하고 무릎을 꿇었다.
아서는 표정 변화 없이 다가가 놈의 심장에 창을 박아 넣었다.
푸지이익!
“꺼어어억.”
“마지막.”
푸슈유육!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아서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키리리리!
키리리리리!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서의 시선이 던전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제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놈이 오고 있군요.”
아서가 창대를 꽉 쥐었다.
띠링!
(소중한 것을 앗아간 몬스터)
등급: S
보상: 바라스의 정수
지급 캐시: 3,000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시: 사망
설명: 아버지를 죽인 몬스터. 그 한을 풀어라.
아서는 숨을 고르게 쉬며 퀘스트창을 껐다.
S등급의 퀘스트는 이번이 두 번째.
어찌 보면 현실에선 첫 번째라 할 수 있다.
“빌어먹을 거미 새끼.”
아서는 갈수록 가까워지는 소리를 들으며 욕을 지껄였다.
추측컨대, 바라스는 이제까지 던전 여러 곳을 왔다 갔다 하였을 것이다.
매번 같은 던전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거기에서 희생자가 나왔다면 의심을 샀을 테니까.
때로는 산 같은 곳에 숨어서 콜로스가 가져다주는 제물을 집어삼켰을 거다.
‘영지에서 실종되었던 정체 모를 이들.’
콜로스는 이에 대하여 영지 내에 잔혹무도한 살인마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공표하였다.
하지만 찾아내지 못하해 무능하다 욕을 먹었다.
그럼에도 수사는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그 미친 살인마 새끼가 너였다는 거.’
어느덧 놈의 소리가 지척까지 왔다.
‘아들!’
아서는 문득 과거가 회상되어 쓴웃음을 지었다.
놈이 자신에게 오고 있자 기억이 났다.
다섯 살 때인가, 여섯 살 때인가.
아버지는 아서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곤 까르르 좋아하며 웃는 그에게 물었었다.
‘아들은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아서는 아버지 아카스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아버지 같은 훌륭한 기사단장이요!’
‘나 같은 기사단장이라고?’
그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서를 내려놓고는 이를 드러내 웃으셨다.
‘아니, 아들은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단다.’
‘예에?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 아니었어요?’
아주 어린 시절에도 아서는 아버지가 얼마나 멋진 분인지 알고 있었다.
휘황찬란한 갑옷과 멋들어지는 검을 든 기사들 사이에서 아버지는 가장 앞에 서서 자신에게 엄지를 치켜들어 주셨으니까.
‘세상엔 이 아빠보다 훌륭하고 강한 사람도 많단다. 그리고 나쁜 사람도 아주 많아. 아서는 이 아빠보다 더 훌륭해져서 그런 사람들을 혼내줘야 한다!’
그렇게 말하며 아카스는 아서의 머리를 흩트려 주었다.
그리고 아서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그럼 아버지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들도 있겠네요?’
‘그럼, 많지!’
‘제가 꼭 그 나쁜 놈들을 혼내줄게요!’
‘하하하하, 역시 내 아들 아서답구나!’
그랬던 아서가 커서는 겁쟁이라 불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동경했던 목표를 잃은 기분이었다.
전생은 후회로 가득한 삶이었다.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만큼은 달라질 것이다.
‘아버지를 괴롭힌 나쁜 놈을 혼내주겠습니다.’
아서는 품속에 챙겨 왔던 양피지 한 장을 라우든 교관에게 던졌다.
“이건……?”
“큐어 포이즌 마법이 걸려 있는 양피지입니다.”
큐어 포이즌.
2클래스에 해당하는 해독 마법이었다.
바라스와의 싸움 전에 오르웬에게 두 장을 받아 왔다.
이는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특수한 양피지인데 사용 조건이 있다.
몸에 마력이 존재해야 한다는 거다.
양피지를 받은 라우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때의 참혹했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놈은 분명히 강했다.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그러다 허탈함에 웃음이 났다.
‘죽을 때 죽더라도 바라스, 네놈은 죽인다.’
생각해 보니 우스웠다.
앞에 서 있는 소년의 아버지는 이미 훨씬 전에 목숨을 걸고 바라스와 혈혈단신 싸웠다.
자신도 목숨 한번 걸어보지 뭐.
“비켜라, 놈은 내가 죽인다.”
아서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말했다.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은 우리만의 비밀입니다.”
아서는 라우든을 믿었다.
설령 그가 발설할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그러긴 힘들 거다.
그들은 이곳에서 기사단원 일곱 명을 처참히 죽였으니까.
드디어 바라스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키레에에에!
모습을 드러낸 바라스가 흉포한 괴성을 터뜨렸다.
거대 거미형 괴수 바라스는 그 크기가 자그마치 5m에 다다랐다.
한쪽 다리가 없는 것을 보아 아카스에게 잃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또 몸에 나 있는 커다란 검상도 아카스가 그에게 선사했을 것이다.
-인간 소년…… 맛있겠다…… 먹는다……!
바라스는 꽤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
또 하려고 하면 인간과의 소통도 가능했고, 그들의 언어를 배울 수도 있었다.
현재 녀석은 콜로스와 단원들을 통해 언어를 배운 듯 보였다.
불룩!
바라스의 배 쪽이 순간적으로 울룩불룩 부풀어 올랐다.
“놈의 독은 서서히 사람을 마비시킵니다. 큐어 포이즌은 그 마비를 단숨에 해독시키죠. 5분 동안 두 번 독을 뿜어낼 수 있는 게 놈입니다.”
‘어떻게 그 사실을……?’
바라스는 아스간 대륙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정체 모를 몬스터다.
한데 아서는 그에 대해 정확히 꿰고 있었다.
“놈을 5분 안에 처리합니다. 또한 마비가 되기 시작하고 바로 큐어 포이즌을 사용해선 안 됩니다. 그럼 두 번째 독을 막아내지 못하니까요.”
쿵쿵쿵쿵!
바라스가 육중한 몸으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부풀어 올랐던 놈의 몸뚱이가 곧 홀쭉해지며 입에서 초록색 독을 흩뿌렸다.
푸화아아악!
철퍽!
철퍽!
아서와 라우든 모두 그 독을 피하지 못해 초록색 진득거리는 체액을 온몸으로 맞았다.
[바라스의 독을 맞으셨습니다. 마비가 시작됩니다.]
아서는 알림을 들었다. 하나 라우든은 그 알림을 들었을 리 없었다.
단지 몸을 타고 오는 이질적인 느낌을 받기 시작했을 터였다.
“죽음의 그림. 브레드, 로든.”
아서가 한 팔을 앞쪽으로 펼치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핏빛 회오리가 휘몰아치며 그 안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브레드와 검집에 손을 얹고 있는 로든이 나타났다.
“헉……!”
라우든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서는 일부러 독을 맞은 후에 브레드와 라우든을 불렀다.
펜루스는 잠깐 보류.
혹여 브레드와 로든이 독을 맞았을 때를 대비해서다.
지능이 있는 바라스도 브레드와 로든의 등장에 다소 놀란 듯싶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둘이 동시에 말했다.
아서가 차가운 표정으로 바라스를 노려봤다.
“적을 척살하라.”
-예!
브레드가 빠르게 팔짱을 풀었고 로든은 단숨에 검을 뽑아 달려 나갔다.
바라스가 그 커다란 몸뚱이로 진격을 시작했다.
푸둑푸둑!
바라스의 몸 곳곳에서 촉수 수십여 개가 튀어나와 셋에게 쏘아져 왔다.
저 촉수는 창보다 더 날카롭다.
푸푸푸푹!
촉수가 땅이나 벽에 박히고 아서와 브레드, 라우든, 로든은 그 촉수를 쳐내며 움직였다.
“크흑, 모, 몸이…….”
라우든은 몸이 무거워짐을 느끼고 있었다.
아서도 매한가지.
하지만 아직 큐어 포이즌을 사용하긴 이르다.
타타탓!
아서와 브레드, 로든이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바라스의 몸 곳곳을 브레드의 이도류가 난자했다.
푸지익!
-키레에엑, 인간들, 전부 죽인다……!
놈의 몸에서 진득한 피가 팍팍 튀어나갔다.
콰아앙!
바라스의 육중한 몸이 브레드를 힘껏 강타했다.
현재 70%의 힘밖에 내지 못하는 브레드가 벽에 날아가 처박혔다.
콰앙!
-크흑!
수우웅!
아서의 창이 일직선으로 힘껏 찔러졌다.
바로 옆쪽에서 놈의 촉수가 옆구리를 노렸다.
아서는 뒤쪽에서 라우든이 함께 뛰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퐈아악!
라우든이 아서의 옆구리를 노리는 촉수를 갈라냈다.
-키레에에, 그마안!
잘려 나간 촉수가 땅 위에서 팔딱팔딱 뛰었다.
푸지익!
아서의 창이 바라스의 몸에 박혔다.
-키리리, 죽…… 인다!
‘빌어먹을. 몸이…….’
서둘러 빼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를 않았다.
현재 독을 맞은 지 50초 경과.
‘아직은 안 돼.’
지금 큐어 포이즌을 사용하면 곧바로 놈이 다음 독을 사용할 거다.
그럼 그 독을 맞았을 때의 대비책이 사라진다.
슈유유!
바라스가 아서를 몸으로 들이받으려고 했다.
‘맞아선 안 된다.’
독은 애초에 대미지가 없다.
또 마비 독이기도 하다.
하지만 놈에게 한 대라도 맞으면 아서는 사망한다.
창대를 놓고 뒤로 타타탓 물러났다.
바라스가 아서를 쫓아 기어왔다.
라우든은 아서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몸을 사릴 만한 아이는 아닌데?’
그랬으면 콜튼을 그렇게 개처럼 패진 않았을 것이다.
라우든은 뭔가 이유가 있음을 알았다.
라우든과 로든이 동시다발적으로 몸을 내던졌다.
콰지익!
라우든은 아서의 앞을 막으며 대신 검을 휘둘렀고 로든은 바라스의 옆구리를 찔렀다.
-키레레레레!
등 뒤의 벽에 막혔던 아서가 손을 뻗었다.
부르르르르!
바라스의 몸에 틀어박혀 진동을 일으켰던 카자벤의 독창이 힘껏 뽑혀 나와 아서의 손에 잡히는가 싶더니 툭 바닥에 떨어졌다.
“젠장.”
몸이 둔해지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몸이 반사 신경을 쫓아가지 못한다.
타타탓!
라우든과 로든이 힘겹게 사투를 벌일 때 어느덧 정신을 차린 브레드가 부드럽게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푸슈유육!
-키레레레, 누, 눈이…… 보이지 않아……!
브레드의 이도류가 거미의 눈 하나를 난자했다.
쿵! 쿵쿵!
성난 바라스가 비명을 터뜨리더니 곧 아서에게 시선이 멈췄다.
‘역시 지능이 있어서 그런가?’
아서는 시선이 멈춘 바라스의 생각을 읽었다.
녀석은 자신이 브레드와 로든을 소환하는 걸 목격했다.
녀석의 지능 정도라면 자신을 죽이면 저 둘도 사라진다는 걸 추측할지도 모른다.
아서는 천천히 움직이며 창을 쥐었다.
몸을 일으키는데 그 속도가 속이 터질 정도였다.
-키렉, 너를 죽이면…… 끝난다……!
바라스는 다른 모두를 무시한 채 아서에게 돌격했다.
스르르.
몸을 일으키고 있던 아서의 몸이 완전히 굳었다.
라우든도 마찬가지였다.
[마비에 의해 몸이 완전히 굳었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아서를 보며 바라스가 거칠게 달려왔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거다.
‘하지만 기회는 내게 왔다.’
상체를 세우다 멈춘 아서가 눈을 번뜩였다.
오히려 놈이 똑똑했기에 자신에게 기회가 생긴 셈.
정확한 타이밍을 잰다.
5m, 4m, 3m, 2m…….
“큐어 포이즌.”
퐈앗!
품속에 넣어두었던 큐어 포이즌 양피지가 연초록빛을 흩뿌렸다.
[몸을 잠식한 독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아서를 토마토처럼 짓이기기 위해 달려오던 바라스가 갑자기 창을 뾰족하게 세운 아서로 인해 주춤했다.
멈추기에는 놈이 너무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푸지이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