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군주회귀록 057화
칼레스 영지에 갔다가 밤늦은 시간에 돌아온 콜로스는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말도 안 되는 보고를 들었다.
영지군 훈련소에서 아서가 자신의 아들 콜튼의 뺨을 후려치고 팔까지 부러뜨렸다고 한다.
그것도 프레스 가문 하인과 하녀들이 있는 자리에서.
탱그랑!
그가 있는 힘껏 벽을 향해 컵을 던졌다.
유리컵이 산산 조각나며 라우든의 주위로 튀겼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자네가 막았다고?”
“예.”
아서는 이미 집으로 돌아갔다.
콜로스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왜?”
“그게 맞으니까요.”
라우든은 오늘 있었던 일을 콜로스가 알고 있었을 것이 분명함에도 다시 한 번 브리핑했다.
“그곳에서 기사단원들이 아서를 죽였다면 영지군의 위상은 땅에 곤두박질쳤을 겁니다. 또한 아서는 영웅 아카스의 아들.”
“그 영웅 이름을 만든 건 우리잖나. 자네와 나는 한배를 타지 않았나!”
“……누가 그럽니까?”
라우든은 눈을 끔뻑끔뻑 거렸다.
“저희가 한배를 탔다고요? 저는 단 한순간도 그때를 잊지 못합니다. 탐욕에 눈이 멀었던 당신과 단원들을. 또한!”
라우든의 목에 핏대가 섰다.
“그러면서도 그놈이 영지로 들어오면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울부짖으며 필사적으로 막았던 아카스 경을요. 만들었다고요? 만들어진 것이 아니죠. 말은 바로 해야죠.”
라우든은 뒷짐을 지고 있던 팔을 풀었다.
더 이상 예의를 차리지 않겠다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영웅이 맞았고, 우리는 그 영웅을 버리고 도망친 자들입니다.”
“……나가보게.”
콜로스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콜로스도 괜히 기사단장까지 오른 인물은 아니다.
그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라우든도 함께 죽여야 한다. 방법이 없을까…….’
참았던 라우든이 터졌다.
그나마 그를 살려두었던 것은 그 덕분에 영지군들의 훈련 성과가 과거에 비해서 월등히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안 된다.
그 때문에 수가 필요하다.
그러던 중 콜로스의 눈이 번뜩 뜨였다.
‘던전, 던전을 이용하면 되겠구나.’
신입 영지군들은 오자마자 곧바로 던전에 들어간다.
그들은 합격 통보를 받긴 했지만 만약 던전에 들어가서 영지군 자질 미만의 행위를 보이면 그때 바로 합격을 무를 수도 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던전 훈련에 바로 가는 것이기도 했고.
‘던전 안에서 죽어버리면 시체도 찾지 못하지. 마침 제물이 필요할 때니까.’
라우든과 아서.
둘 모두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콜로스는 비릿하게 웃었다.
창문 사이로 칼새 한 마리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 * *
늦은 시각.
프레스 가문의 자택의 문을 두들기는 사람이 있었다.
한스가 문을 열어주고는 조금 놀란 눈빛이 되었다.
“라우든 교관님.”
“자고 있었나?”
“아닙니다. 아서 도련님을 뵈러 온 거죠? 금방 불러오겠습니다.”
한스가 발 빠르게 2층으로 올라가 노크하자 잠을 자지 않고 있던 아서가 나왔다.
“라우든 교관님이 찾아오셨어요.”
“교관님이?”
아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정찰용 칼새를 통해서 오늘 콜로스와 라우든 사이에 잠깐의 말다툼이 지나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뭔가를 계획한 듯한 표정…….’
칼새가 놈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는 노릇.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콜로스와 콜튼을 처리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서는 서둘러 밑으로 내려갔다.
“잠시 걷겠나?”
“예.”
아서는 의문이었다.
‘아버지를 영웅으로 만들어? 그리고 탐욕에 눈이 멀었고 도망쳤다?’
전생에서의 자신도 알지 못했던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았고, 그에 대한 의문도 들었기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중이었다.
“오늘 자네 모습을 보자니 아카스 경을 다시 뵙는 것 같았네.”
아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랫동안 감춰두었던 이야기를 자네에게 오늘 할까 해.”
아서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라우든이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온 것임을 안 것이다.
“자네, 아버지는 사실 우리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네.”
그렇게 말하며 라우든은 상체를 꾸벅 숙여 보이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아닙니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아서가 당혹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천히 고개를 든 라우든.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아서는 말문을 잃었다.
역시 콜로스를 비롯한 그의 잔당은 최대한 빨리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었던 라우든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때 영지 인근에는 바라스라는 몬스터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라스는 아서도 익히 알고 있는 몬스터로서 4성 보스에 해당되는 놈이다.
‘뭐 던전도 생겨나고 가끔씩 군주게임의 몬스터들도 필드로 흘러 들어오니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라스가 엄청난 맹독을 가진 몬스터라는 거다.
놈이 가진 맹독은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 삽시간에 모든 생명체를 마비시켜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든다.
마치 거미줄로 온몸을 꽁꽁 묶어버린 것처럼.
그 때문에 바라스라는 몬스터가 위험한 거다.
아버지 아카스가 기사단원들과 바라스를 잡아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을 땐 브래트 영지와 가까운 산골 마을 하나가 이미 놈이 뿌린 독 때문에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이필립스 제국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때 당시 제국 내도 전쟁이 터질지 말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기에 지원은 오지 않았다.
때문에 아카스가 기사단원들과 바라스를 잡으러 갔단다.
그 자리에는 라우든도 콜로스도 함께였다고.
그리고 발견한 바라스.
바라스의 주위에는 수십 마리의 알에서 태어난 새끼 거미도 있었다고 한다.
기사단원들은 놈들을 힘겹게 처리했다.
그러던 중 기사 콜로스는 바라스의 동굴에 숨겨져 있는 엄청난 보물을 보았다고 한다.
‘바라스는 이벤트용 몬스터니까.’
아서가 아는 바라스는 이벤트용 몬스터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금으로 된 골드와 진귀한 아티팩트를 떨구는.
애초에 바라스라는 몬스터가 군주들에게 이벤트 형식으로 뿌려진 몬스터니까.
그걸 본 순간 콜로스와 몇몇 기사단원은 바라스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보다 보물을 가지는 것에 더 눈이 멀었다고 한다.
또 힘겹게 바라스와 싸우는 아카스를 보면서 콜로스는 빠르게 계산을 한 거다.
아카스는 분명히 진귀한 저 보물들을 사리사욕이 아닌, 영지 발전을 위해 모두 쓸 거라고.
우습게도 싸우는 동안에도 콜로스는 저 보물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단다.
역시 예상대로 모든 걸 피해를 입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고 아카스는 말했단다.
그에 기사단원들과 콜로스가 돌변한 했다.
저 보물을 자신들이 가지면 평생 떵떵거리며 살 텐데, 아무도 저걸 자신들이 가진 걸 모를 텐데 하면서.
그때 콜로스와 기사단원들은 돌변해 아카스와 뜻을 함께한 이들은 모조리 죽였다.
아카스는 바라스와 싸우면서 깜짝 놀랐고 그때 당시 라우든은 독에 취해 반쯤 정신을 놓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콜로스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아버지 쪽의 사람들 모두가 죽으면 의심을 사기 충분하니까.’
한 사람만 남겨놓은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잃어가던 라우든의 마지막 기억은 그런 상황에서도 바라스만을 죽이기 위해 혈혈단신 싸우던 아버지의 뒷모습이었다고 한다.
정신을 차렸을 땐 온몸이 꽁꽁 묶인 채 콜로스가 목 끝에 검을 겨누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라우든은 결국 굴복했다고.
살고 싶어서, 너무나 무서워서.
어떤 사람이든 죽는 것이 두려운 법이다.
라우든도 그건 마찬가지다.
물론 그걸 숨겼다는 것이 옳지 않았으나 그는 지금 말하고 있었다.
“난 이제부터 그 일에 관해 모든 진실을 밝히려 한다.”
지금 그는 결심했다.
그랬으면 되었다.
이제라도 싸우겠다고 말해주고 있으니까.
‘아니, 불가능해.’
하지만 아서는 안다.
그리고 라우든도 알 것이다.
누구도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임을.
라우든도 알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그것이 내가 아카스 경께 참회할 수 있는 길이니까.”
“아버지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서의 말에 라우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려나?”
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과 달이 수놓아져 있는 밤하늘.
“넌 빠른 시일 내로 헬렌 부인과 하인 하녀들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라.”
“아니요. 떠나지 않습니다.”
“떠나야 해!”
라우든이 아서의 양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전생을 생각해 보면 라우든도 너무나 함께 격분해해서 의아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알 것 같기도 했다.
아카스는 싸우던 도중에도 계속 라우든을 돌아봤다고 한다.
그 눈빛은 마치 내 가족들을 지켜달라는 것 같았다고.
어쩌면 그래서 더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아서와 그 가문이 무사하니까.
“밤이 늦었습니다.”
아서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고 라우든은 하는 수 없이 돌아갔다.
아서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 아버지는 훌륭하신 분이셨구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을 뒤에 두고서도 영지민 모두를 지키기 위해 싸우셨다.
영웅.
그 이름이 어울리신다.
아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모든 걸 바로 잡는다.’
복수의 초탄은 이미 당겨졌다.
아서는 커다란 나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그만 나오시죠.”
정적이 흘렀다.
아서는 짝다리에 양 팔짱을 끼고 흐음하는 소리를 냈다.
그제야 연갈색 로브를 두른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서가 이를 드러내 웃었다.
로브를 두른 이는 검지손가락 하나를 펴서 땅을 가리켰다.
“인탱글.”
퐈드드드득!
땅이 요동치며 그 안에서 나무줄기들이 솟아나 아서의 발을 잡아채려 했다.
아서가 빠르게 물러나 피했다.
“장난이 심하십니다.”
“장난은 네가 심했지, 견습생.”
그제야 로브를 걷어낸 이는 교관 오르웬이었다.
교관일 때와 다른 모습이라면 길게 기른 적빛 머리카락이라는 점 정도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이해해 주시죠.”
“하아.”
오르웬은 이마에 손을 짚었다.
이 빌어먹을 제자 자식.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세 명의 견습 군주 사망을 제외한 전원 생존입니다.”
“……!”
오르웬은 자신이 묻고도 놀랐다.
전멸의 토벌대는 한번 발발하면 90%의 군주가 죽어나가는 게 보통이건만.
하여튼 이상하면서도 대단한 놈이다.
“잠시 걷겠습니까?”
오르웬은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난처한 상황에 처했더구나.”
아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르웬은 오늘 아침 이곳에 도착했고 많은 것을 듣고 보았다.
그리고 막 아서를 불러내려던 참에 라우든 교관이 자택으로 찾아왔고.
두 사람은 한적한 수풀 사이로 들어왔다.
오르웬이 손가락을 퉁기자 의자 두 개가 나타났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이제 말해줘야지.”
오르웬은 바로 달려왔다.
아서는 분명히 자신에게 엄청난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했으니까.
그녀는 약속의 서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