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군주회귀록 056화
“모두 뒤로 물러나라.”
“예!”
“예!”
하인, 하녀들이 뒤로 물러났다.
이건 프레스 가문의 가주 아서의 절대적인 명령이었기에.
띠링!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복수의 시작)
등급: C
지급 캐시: 2,000 지급 현실 골드: 2,000
보상: 카리스마+1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시: 모든 스탯-20
설명: 전생의 뼈아픈 기억이 당신의 눈앞에 있다. 참지 마라, 처참히 짓밟아라.
‘그럴 생각이다.’
아서는 퀘스트창을 빠르게 껐다.
“이 새끼가 반성의 기미…….”
“닥쳐.”
아서가 짧게 말했다.
결국 참지 못한 이 중 한 명.
아서가 눈여겨보았던 루니에게 성희롱을 했던 사내가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실제로 죽일 생각은 없을 거다.
하지만 차라리 잘되었다.
‘명분은 충분하니까.’
모든 일엔 명분이 중요한 법이다.
한스와 하인, 하녀들은 검을 뽑아 든 영지군을 보며 눈앞이 새하얗게 되었다.
“도, 도련님……!”
그 말이 한스의 입에서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탁!
놈이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아서가 놈의 목젖을 엄지와 검지로 힘껏 잡아챘다.
“꺼어억!”
숨이 턱 막힌 사내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엄청난 악력이었다.
믿기 힘들었다. 또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빠르기였다.
아서는 있는 힘껏 발로 그의 중요 부위를 걷어찼다.
콰직!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입이 쩍 벌어진 사내가 천천히 기울었다.
아마도 터진 듯싶었다.
“이런 미친 새끼가!”
“동작 그만.”
똥물을 뒤집어쓴 영지군들이 모두 득달같이 달려들려던 때였다.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콜튼이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며 아서를 노려보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기회를 주마.”
그는 키가 작은 아서를 내려다보며 입을 비틀며 말했다.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이것들을 혀로 핥아라. 그럼 이번 한 번은 눈감아주지. 아, 핥은 다음에 ‘나 같은 등신은 이런 게 어울려’라고도 말해주고.”
그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 말에 아서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똥물을 바라보며 능청스럽게 답변했다.
“아, 네가 처먹겠다고? 네가 어울린다고?”
“이 새끼가…….”
아서는 방금 전 중요 부위를 맞고 쓰러진 사내가 떨어트린 검을 주워 들었다.
‘그냥 패면 재미 없잖아?’
“대련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아서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련이라는 말에 뒤쪽의 영지군들은 저놈이 미쳤다며 웃기 시작했다.
콜튼은 콜로스 경의 아들이다.
장차 브래트 영지의 기사단장이 되어 기사들을 이끌게 될 몸이었다.
하지만 아서는 스캔으로 놈을 이미 확인해 봤다.
그는 분명히 아서보다 약했다.
물론 아서가 그보다 스탯이 낮다고 할지라도 그는 콜튼 따위는 짓이겨 버릴 자신이 있었다.
‘치욕을 주마.’
너희는 짖어라, 난 보여줄 것이다.
아서는 그 생각이었다.
아스간 대륙의 대련은 서로가 예의를 갖추고 서로를 공격하되 죽이지는 않겠다는 의미에서 벌어지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대련이 끝난 후에는 보통 위와 아래가 갈린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라우든 교관은 암담한 한숨을 뱉어냈다.
아서는 출중했다.
과연 아카스 경의 아들답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천재라는 말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얼마 전 영지전 시험에서 보았던 아서도, 그리고 오늘 훈련을 몇 시간 해본 아서도 꽤 대단했지만 지금의 콜튼에게는 견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라우든은 당장 저 말 같지도 않은 대련을 중단시키고 싶었다.
자칫하다가는 아서가 위험할 것 같았다.
또 똥물을 뒤집어쓴 망나니 콜튼이 그저 대련만으로 끝낼 놈 같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님을 알기도 했다.
또 화가 났지만 콜튼을 말리면 그 불똥은 자신에게 크게 튈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 그럼 예의를 갖춰 드리지.”
콜튼이 검의 그립을 양손으로 꽉 쥐고 검끝을 하늘을 향하게 한 채 일자로 들어 올린 후 가볍게 목례를 취했다.
아서도 그를 따라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능숙하다?’
라우든은 그 모습을 보며 의아한 표정이었다.
대련 전의 예의를 차리는 예법이 콜튼보다 아서가 훨씬 더 능해 보였다.
곧 콜튼이 아서를 향해 검을 찔렀다.
수우웅!
힘껏 찔러 들어오는 검을 보면서 아서를 제외한 많은 이가 비명을 지르거나 웃거나 했다.
아서는 가뿐하게 그 검을 쳐냈다.
검을 쳐낸 힘을 느끼며 콜튼의 미간이 구겨졌다.
‘무슨 힘이……!’
그는 깜짝 놀랐다.
저 작은 체구에서 이런 힘이 말이나 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였다.
아서가 발 빠르게 콜튼에게 접근해 왔다.
당혹한 콜튼이 무릎을 차올렸다.
아서는 그립으로 무릎을 찍어버렸다.
콱!
“억!”
놈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 순간, 아서는 왼손으로는 검을 쥐고 오른손으로는 있는 힘껏 콜튼의 뺨을 때렸다.
짜악!
“컥, 이 새끼가!”
턱이 홱 돌아갔던 콜튼이 격분하며 다시 달려들려는 순간이었다.
짜악!
다시 아서는 있는 힘껏 콜튼의 뺨을 때렸다.
연이어서 뒤로 물러나는 그를 쫓아가며 아서가 계속 뺨을 때렸다.
짝!
짝!
콜튼은 믿을 수 없었다.
겁쟁이 아서에게, 버러지 같은 아서에게 자신이 맞고 있다는 사실을.
아서가 다시 그의 공격을 가뿐히 피하며 무릎을 걷어차 꿇린 후 뺨을 때리려고 하자 콜튼은 자신도 모르게 쫄아서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뒤로 뺐다.
“너와 나는 이 정도 눈높이가 적당하군.”
아서는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누가 봐도 아서의 승리가 분명했다.
영지군들은 아서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하자 흠칫 몸을 떨면서도 경악에 찬 표정이었다.
또 정작 아서를 모시는 하인, 하녀들도 경악했다.
“콜튼…… 멈춰라!”
조금 먼 곳에서 라우든 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아서는 입을 비틀어 올렸다.
사실 예상했기에 일부러 대련 신청을 한 것이다.
그래야 완전한 명분이 갖춰지니까.
절대 감각 스탯을 올려서일까?
아서는 뒤쪽으로 지독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엔 분명히 아서의 복부를 꿰뚫겠다는 생각이 담겨 있었다.
태에엥!
몸을 돌려 검을 쳐낸 아서는 그대로 콜튼의 손목을 잡고 자신 쪽으로 끌어왔다.
그다음 망설이지 않고 한쪽 팔을 온 힘을 다해 꺾어버렸다.
우두두둑!
“끄, 끄아아악!”
콜튼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영지군들은 아서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그 눈빛을 보고는 다시 뒤로 물러났다.
‘숨기고 있었어…….’
라우든 교관은 알았다.
그가 보았던 훈련소에서의 대단한 성과, 훈련. 그때도 아서는 모든 힘을 내보인 것이 아니었다.
“멈춰라!”
그때 소식을 전해들은 기사단원 몇 사람이 난입했다.
그들은 콜튼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스르릉!
‘역시 놈의 소굴이라 이건가.’
하지만 아서는 겁먹지 않았다.
그저 겁에 질린 하인, 하녀들을 막아서며 그들을 싸늘하게 노려봤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이냐!”
“네놈, 신입 영지군 따위가. 네놈은 죽어도 할 말이 없…….”
“있다.”
그때 아서의 앞에 나선 이는 다름 아닌 라우든 교관이었다.
아서가 유일하게 브래트 영지군 훈련소에서 믿고 있는 자.
전생에서 아서의 자택에 불이 나고 모두가 죽었을 때, 그때도 라우든은 아서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아서에게 말했다.
‘억울하느냐? 그럼 강해져라, 강해져서 저들을 밟아라.’
그도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콜로스가 계획한 것임을. 그는 아서에게 전쟁터 지원서를 보여주었고 이곳을 떠나길 권유했었다.
또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확실한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라우든 교관은 비록 영지군들을 키우는 교관이기는 하였지만 과거에는 아카스를 모셨던 기사단원이기도 하였다.
또한 현재의 기사단원들과 비교했을 때 그 직책이 결코 낮지 않다.
아니, 오히려 라우든 교관을 존경하는 많은 이가 있었기에 다른 기사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자리에 섰다.
“주위를 둘러봐라. 수백 명의 영지군이 산증인이다. 대련에서 콜튼은 분명히 아서를 죽이려고 했다.”
기사들은 라우든 교관이 나서자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지금 이 행위는 콜로스에게 대항하는 것이었다.
‘예전엔 어린 소년이었을 뿐인데.’
아카스가 건강한 아드님을 낳았다고 했을 때 라우든 교관도 그 아이를 보기 위해 프레스 가문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여린 아이가 어느새 이토록 늠름한 사내가 되어 있었다.
‘너도 아버지를 닮아 지킬 것을 아는구나.’
아버지와 똑 빼닮았다.
하인, 하녀라고 해서 멸시하지 않았다.
라우든은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콜로스의 후환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아서에게 손끝 하나라도 댄다면 나도 가만히 있진 않는다.”
라우든의 단호한 눈빛에 기사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의 실력은 부기사단장보다 한 수 위다.
그럼에도 교관을 맡고 있는 것은 그가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럴 만한 성과도 충분히 올리고 있는 중이기도 했고.
영지군들이 모두 라우든과 대치한 기사들을 봤다.
‘미쳤어…….’
‘아서를 죽이려나…… 이런 썩어빠진 영지에서 영지군이 되자고 꿈을 키운 게 아닌데.’
‘분명히 콜튼이 잘못했어.’
콜로스의 충실한 개가 아닌 자들은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모두 콜튼의 잘못이다.
더군다나 증거가 명명백백 있었다.
“영지군 훈련소에서 버젓이 술을 마시기까지 했다. 거기에 콜튼은 영지군의 분대장이라고는 하나 미성년자이기까지 해. 아니면 내가 본 걸 더 말해줄까?”
기사단원 중 한 명이 입술을 깨문다.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그들도 콜로스의 얼굴만 믿고 아서를 해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상황임을 알아챈 듯 결국 꼬리를 내렸다.
그들은 재빨리 팔이 꺾여 고통에 똥물 위를 굴러다니는 콜튼을 살폈다.
“가지.”
아서는 라우든이 자신들을 이끌자 묵묵히 따랐다.
만약 기사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왔다면 그들도 때려눕혔을 거다.
‘오늘은 여기까지.’
아서는 프레스 가문의 하인, 하녀들을 모두 영지군 훈련소 입구까지 배웅했다.
“도, 도련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서는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위해 싸웠다.
한스와 루니가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러면서도 한스가 라우든을 보며 엉엉 울며 말했다.
“흑흑, 점심까지 일한 일당은요?”
아서가 빙긋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받아서 갈 테니 걱정들 말고 돌아가 있어라.”
“무사히 오셔야 해요.”
“그래.”
아서는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하아.”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주인은 아서의 어깨 위로 힘없이 팔을 걸쳤다.
“어쩌자고 그런 거냐. 이제까지는 잘 참았던 거 아니냐?”
참았다고 보일 것이다.
이제까지 아서가 겁쟁이로 위장해 있었다는 게 라우든의 판단일 테니까.
또 라우든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참은 게 아닙니다.”
“참은 게 아니면?”
그 말에 아서는 입을 비틀었다.
“때를 기다렸을 뿐.”
라우든의 입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