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군주회귀록 055화
18장 첫날엔 엎어야 제맛
어느덧 아서와 일행이 영지군 훈련소 앞에 도착했다.
“자택에서 뵐게요, 도련님.”
“그래.”
아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걱정되었다.
아무래도 콜로스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더더욱 마음이 쓰였다.
더군다나 하인 하녀들도 콜로스가 프레스 가문을 끔찍하게도 싫어하고 경멸한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놈은 겉으로만 포장하며 이제까지 살살 프레스 가문을 골려먹어 온 것이다.
‘혹시 몰라 정찰용 동물들을 붙여놨으니…….’
아서는 캐시 상점에서 구매한 칼새를 자택 사람들에게 붙여뒀다.
‘편리하단 말이지.’
현실과 연동되지 않는 다른 군주들은 사용할 수 없는 이점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곧 아서는 신입 영지군 훈련병들 대열에 스며들어 갔다.
그들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었다.
‘나도 처음 들어왔을 땐 저랬었지.’
아서는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던 중 아서의 눈에 익숙한 얼굴의 소년이 말을 타고 영지군들과 함께 우르르 들어오는 걸 볼 수 있었다.
머리를 짧게 친 열여덟 소년.
체격만큼은 탄탄해 보였다.
키도 180㎝는 될 정도로 훤칠한 편이었고 생긴 것도 나름 준수하게 생겼다.
저놈이 바로 콜로스의 아들 콜튼이었고 아서의 집 사람들을 모두 죽인 장본인이었다.
‘돌아왔나 보군.’
브레트 영지와 멀지 않은 곳에서 몬스터들이 기승을 부려 영지군들이 토벌대 지원을 갔었는데, 아마도 오늘 막 돌아온 듯싶었다.
아서는 분노를 억눌렀다.
“모두 이동한다.”
라우든 교관이 신입 영지군들을 쓰윽 한 번 둘러보곤 말했다.
그의 명령에 따라 이동한 신입 영지군들은 곧 지옥의 훈련을 시작했다.
* * *
아서는 당연하게도 다른 영지군들보다도 훨씬 더 두각을 드러냈다.
신입 영지군들 사이에서도 영지군 시험 때의 그에 대한 소문이 무성히 퍼져 나갔고 바로 오늘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대단해, 아서. 이제까지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거야?”
“숨겼다기보다는, 굳이 보이지 않은 거지.”
루카스라는 소년은 소심한 편에 속했지만 자신이 좋아라 하는 사람에겐 말이 많은 스타일이다.
아서는 귀찮았지만 꼬박꼬박 답변은 해주었다.
차라리 이 녀석은 가식적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나쁜 녀석도 아니었으니까.
오늘도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먹으며 아서는 남모르게 홀로그램을 오픈해 각 주위에 배치된 정찰용 동물들을 살폈다.
가식으로 똘똘 뭉쳐 있는 콜로스와 다르게 콜튼은 망나니 같은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를 쉬이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콜로스의 아들이라는 점과 실력이 출중하다는 것 때문이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엔 기사단원 시험에 붙었으니까.’
그 정도로 꽤 실력이 있는 놈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지…….”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루카스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아서는 묵묵히 도시락을 먹었다.
* * *
“끄으응…….”
“히, 힘들어…….”
한스를 비롯해 프레스 가문 사람들은 무거운 돌덩이를 옮기고 있었다.
처음 공고에는 분명히 여자들의 경우 주변 청소를 맡기겠다고 했는데, 막상 와보니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돈을 벌기 위해 온 다른 사람들은 분명히 청소를 맡겼는데, 프레스 가문의 여자들에겐 무거운 돌을 옮기게 하고 있는 거다.
‘이, 이건 분명한 차별이야…….’
영지군들 말로는 인원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남자 지원자들이 생각보다 없었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일부러 그러는 것이 분명했다.
지시를 내린 자들이 평소 콜로스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이들이었으니까.
‘빌어먹을 콜로스!’
한스는 그렇게 욕하면서도 묵묵히 돌을 옮겼다.
콜로스에게 광적인 충성을 하지 않는 영지군들은 그 모습을 보며 다소 걱정스러워했다.
‘이, 이건 좀…….’
‘여자들한테 저런 걸 시키다니.’
콜로스는 영지군들 사이에서는 입막음을 꽤 단단히 시키는 편이다.
부당한 걸 알면서도 입을 다무는 자가 대다수다.
커다란 돌을 옮긴 루니가 땀을 뻘뻘 흘렸다.
“읏차……!”
“우리 좀 쉬죠. 모두 점심 먹고 해요.”
힘들어하는 루니를 보며 한스가 말했다.
그 말에 하인, 하녀들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으려고 했다.
그러던 때에 때마침 콜튼과 영지군들이 그들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술을 마신 건가?’
콜튼을 포함한 영지군들은 얼굴이 붉었고 술병도 들고 있었다.
토벌대를 다녀왔고 또 콜튼이 있어서 영지군들은 훈련소에서 술을 마신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콜튼이 있었으니까.
그들 곁을 지나쳐 가던 콜튼이 그들을 유심히 살폈다.
콜튼도 아서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다.
‘그 겁쟁이 새끼가? 그래 봤자지.’
성적을 들었을 때에 생각보단 대단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딱 그 정도.
콜튼이 생각하기에 아직 애송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그들을 지나쳐 가면서 천에 싸여 있는 보자기를 걷어찼다.
“뭐가 이렇게 걸리적거려.”
“엇!”
“……!”
천이 풀어지며 그 안에 있던 마른 빵들이 후드득 땅에 떨어졌다.
“아차, 실수.”
콜튼이 능글맞게 웃었고 다른 영지군들도 배를 부여잡고 낄낄 웃어댔다.
“빠, 빵이…….”
마르고 맛없는 빵이었지만 오늘 가져온 건 저게 다였다.
또 음식을 버릴 만큼 재정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그냥 훌훌 털어서 먹으면 되죠. 안 그래요?”
한스는 태연하게 애써 그들을 무시하며 빵에 묻은 흙을 털고 웃었다.
하지만 빵에 흙이 묻은 게 아니라, 프레스 가문이 이토록 무시당하는 게 서러운 것임을 다른 사람들도 알았다.
한때 아카스가 살아 있을 때만 해도 이러진 않았는데.
“여기 앉아서 마시죠.”
콜튼은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 앉았다.
그리고 안주를 펼쳐놓고 영지군들과 거하게 술을 마셨다.
한스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빵을 입에 넣지 않았다.
다른 하인, 하녀들도 입에 대지 않았다.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거다.
꼬르륵,
누군가의 배에서 난 소리다.
“다른 데로 가죠.”
한스는 저들과 상종해서 좋을 게 없음을 알았다.
그들은 일부러 자신들 맡으라는 듯이 닭고기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막 몸을 일으키려던 때였다.
한스의 머리를 툭 하니 뭔가 때렸다.
“아?”
한스가 고개를 돌아보자 바닥에 닭다리가 떨어져 있었다.
콜튼이 던진 거였다.
“이크, 실수. 천에 던진다는 게. 근데 뭐 상관없잖아, 훌훌 털어서 먹으면.”
“……하, 하하. 그렇죠.”
말로는 음식을 주고 싶었다는데 누가 봐도 그 상황이 아닌 건 안다.
콜튼은 술병을 들어 한 모금 축이고는 말했다.
“훌훌 털어서 먹으라니까?”
“아뇨, 배가 고프지 않아서요.”
한스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던 중 술에 취한 영지군 목소리가 들렸다.
“히야, 루니라고 했던가? 가슴이 죽이는데?”
“…….”
루니가 서둘러 자신의 가슴을 감췄다.
콜튼을 따라다니는 놈들이 다 그렇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스는 이 말은 참기가 힘들었다.
“말이 좀 심하신 거 아닙니까?”
“내가? 내가 뭘?”
“이봐. 그건 좀 아니지.”
콜튼이 미간을 구기며 영지군을 돌아봤다.
그 말에 영지군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면서도 콜튼의 얼굴은 한스 일행에게 더욱더 차가워졌다.
“지금 내 분대원한테 화낸 건가?”
콜튼은 영지군의 분대장이기도 했다.
“아서가 신입 영지군으로 왔다지. 귀여운 놈인데.”
그 말에 한스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 모습을 멀리서 라우든 교관이 보고 있었다.
‘콜튼 도련님이 또…….’
그의 행동은 절대 옳지 않다.
지금 꽤 많은 영지군이 그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방관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으니까.
자신들이 나서면 자신들이 다치는 걸 아니까.
“얼마 전에 옆집 개한테 닭다리를 던져주니까 그 개새끼는 맛있게 잘 먹던데.”
그 말뜻을 한스는 알아차렸다.
그 닭다리를 너도 개새끼처럼 먹어봐라.
‘도, 도련님…….’
한스는 알았다. 저 말의 의미.
네가 처먹지 않으면 아서를 집요하게 괴롭히겠다.
한스는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지만 애써 참으며 흙 묻은 닭다리를 집어 들었다.
아서가 변했다는 건 알고 천재성을 가졌다는 것도 알지만 콜튼과는 비교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입을 벌렸다.
그때에 빠른 속도로 걸어오는 누군가 있었다.
출렁출렁.
그는 양동이를 들고 있었다.
“그럼 먹어야지.”
한스는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서가 서 있었다.
“먹…… 으라고요?”
한스는 아서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괘, 괜찮아. 그래, 도련님이 괴롭힘 당하지 않는다면야. 날 이용하셔도 괜찮아.’
그런 헛생각도 들었다.
도련님이 그런 분이 아니심을 알고 있음에도, 또 요 근래 도련님께서 분명히 변하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니, 한스 너 말고. 너희들 먹으라고.”
그렇게 말한 아서가 양동이에 들어 있는 걸 영지군들을 향해 힘껏 뿌렸다.
촤아악!
“억!”
“커헉?!”
“이, 이거 뭐야!”
지독한 악취가 진동했다.
“뭐긴 뭐야, 똥물이지. X발놈들아.”
아서는 분명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도 훨씬 더 차가웠다.
“너희 같은 새끼들은 똥물이나 처먹어.”
“우웨웨웩!”
“으악, 냄새!”
영지군 여덟 명이 비명을 질러댔다.
똥물을 뒤집어쓴 이중에는 콜튼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의 얼굴이 갈수록 딱딱하게 굳는 것이 아서의 눈에 보였다.
똥을 뒤집어쓴 그 모습에 갈수록 아서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아서는 홀로그램으로 그들이 빵을 걷어찼을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동이로 똥물을 퍼 왔다.
앞으로 며칠간 그들은 똥독 때문에 고생 좀 할 것이다.
“이런 미친 새끼!”
“신입 영지군이 선배들한테 이따위 짓을 해?!”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들은 벌떡벌떡 몸을 일으켜 당장 아서를 죽일 것 같은 흉흉한 기세를 풍기기 시작했다.
그중 몇몇은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중엔 콜튼도 있음이 당연했다.
그때 한스가 아서를 힘껏 껴안았다.
“제, 제가 맞겠습니다!”
온 힘으로 아서를 꽉 끌어안는 그는 최대한 그를 보호하겠다는 듯 간절하게 외쳤다.
‘미안하다.’
아서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전생에선 이렇게 해주지 못해서.
아서는 몰랐겠지만 프레스 가문의 많은 사람들이 전생에 이러한 일을 겪었을 거다.
매일같이 천대받으면서도 한스, 루니, 브레딘, 모든 하인, 하녀들이 내색하지 않고 ‘도련님’ 하면서 웃었을 것이다.
이번엔 그러지 않겠다.
너희를, 내 사람을 지키겠다고 아서는 다짐했다.
“한스.”
“제발 저희 도련님을 때리지 마세요!”
“조,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인, 하녀들이 울부짖으며 영지군들에게 말했다.
아서는 묻고 싶었다.
너희가 뭐가 죄송한데, 고된 노동을 하고 점심으로 마른 빵 몇 개라도 먹겠다고 했던 너희가 뭐가 미안한데?
미안해야 할 건 바로 저 버러지 같은 콜튼과 영지군들이다.
아서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나 아카스 경의 아들, 아서 더 프레스가 명령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스의 정신이 번뜩 뜨였다.
예전에 이런 비슷한 말을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루니도, 브레딘도, 다른 하인들도.
아카스가 살아 있을 생전에 부당했던 일을 그들이 당했을 때, 그들이 괜찮다고 했지만 아카스는 괜찮지 않다고 하였을 때 모두를 위해서 강압적인 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아서는 그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 뜻의 의미를 하인, 하녀들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