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군주회귀록 054화
-지금 중요한 건 군주의 인성이 아니라, 우리 총연맹 발키리가 이벤트에서 승리해서 모두를 찍어 누르는 것 아닙니까?
맞다.
다프의 말이 딱 맞다.
그것이 쟁점.
그리고 브록이 원하던 미끼가 던져졌고.
“그럼 네가 직접 가서 그 애송이라고 말하는 군주하고 싸워보든가.”
-그건 무슨 소리지?
“네 밑에 떨거지 같은 군주 몇 놈 있을 거 아니야. 그놈들 병력을 대신 지휘해서 한번 그 영지를 쳐보라고.”
-오.
-나쁘지 않은 생각 같군요.
모두가 미끼를 물었다.
심지어 카일마저 ‘흐음’ 하는 소리를 냈다.
“당연히 네 능력은 제한받아야 한다는 걸 알겠지? 너는 그저 전략 전술, 지휘에 참여해야 한다. ‘군주의 족쇄’도 차고.”
군주의 족쇄.
이를 착용하면 군주의 힘은 제한되는데, 이 제한의 정도도 조절 가능하다.
아마 군주의 족쇄를 차고 가면 어지간한 군주보호기간의 군주만큼 제한해야 할 거다.
-푸하하, 그거 재밌겠군.
다프가 옳거니 했다.
이 머저리 같은 브록 군주의 코도, 그 건방진 애송이도 족칠 수 있는 기회 아닌가.
거기에 아무렴 자신이 군주보호기간의 군주만큼으로 무력이 하락한다 할지라도 고작 그놈 하나를 잡지 못할까.
그리고 1석 2조로 알프레도의 어깨에 더욱더 힘을 줄 수도 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그리고 카일도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군주보호기간에 있는 발키리 총연맹에 소속된 군주의 부대를 다프가 대신 지휘해서 불투명한 이를 검증한다.
다른 군주들도 수긍하는 표정.
-그렇다면 검증 후에 다시 이야기 나누지. 다프, 딱 2주의 기간을 주겠다. 그 안에 검증을 완료하도록.
“충!”
총연맹장 카일이 홀로그램에서 사라졌다.
하나둘 대화를 종료하고 다프와 브록만 남았다.
“자, 너도 이제 이거 하나 작성해라.”
-군주의 서?
“그 군주에 대해서 일체 발설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까짓것 하나 쓰지. 크하하하하. 2주 내로 네놈의 표정이 썩어 문드러지는 걸 볼 수 있겠구나.
그 말을 들으며 브록 군주는 씨익 웃었다.
‘미끼를 물었군.’
브록 군주가 아서를 위해서 이런 것까지 해주는 게 말이 될까?
아니, 정확히는 아서뿐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발키리 총연맹 모두를 위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걸로 너와 나는 더 친해졌어. 그러니 언젠간 우리 트롤 연맹에 들어올 날이 있겠지.’
여전히 자신 혼자 언젠간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하는 브록이었다.
* * *
아서는 브록 군주로부터 자신이 원하고 원하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미끼를 문 건 다프.’
아서도 알고 있는 군주다.
다프는 아서가 군주게임을 시작하고 101명의 군주에 오르려던 때에 충돌이 몇 번 있었다.
군주들은 가상의 전쟁 모드도 이용할 수 있다.
이 가상의 전쟁 모드는 실제 자신의 병력이 아닌, 가짜 병력을 이용해서 홀로그램을 통해 싸운다.
이 가상의 전쟁 모드를 사용할 때도 꽤 큰 골드가 소요된다.
이 가상 전쟁 모드는 처음 완전히 똑같은 영지와 똑같은 자원을 가지고 시작해 겨룬다.
이 가상 전쟁 모드에서 다프는 한 번도 아서를 이긴 적이 없었다.
‘그는 조금 특출 날 뿐. 진짜 무서운 건 신의 방패다.’
신의 방패.
신의 방패는 반지형 아티팩트지만 이름은 신의 방패라고 적혀 있다.
이 신의 방패의 효과는 놀랍다.
‘미래에는 신의 방패가 강화돼서 자그마치 5분간 모든 병력을 절대 방어 상태로 만들었다.’
5분간 모든 병력이 절대 방어 상태가 된다.
즉, 5분 동안 그들에게 아무리 해를 입혀도 죽일 수 없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그들은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메리트라고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겠지. 다프, 하필 네가 걸리다니.’
아서는 다프에 대해서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반가웠다, 그 다프에게 좋은 의미로가 아니라 아서 본인에게 좋은 의미로.
‘마족 군주와 손을 잡은 군주.’
뿌드득.
그놈을 통해 자신의 유능함을 입증하게 될 줄이야.
뼛속까지 탈탈 털어줄 생각이다.
끼이익
거대한 문이 열리며 그레모리가 들어왔다. 그녀의 낯빛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 병력들과 영지민들을 이끌고 아르한 영지에서 회수할 것을 모두 회수했다.
아르한 영지에서 획득한 골드는 자그마치 5만 골드였다.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군주보호기간 군주들을 삥 뜯었는지가 명명백백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적재와 식량도 꽤 풍족하게 가져올 수 있었고 아서의 경우 영지 총레벨을 7까지 올릴 수 있었다.
보통 이렇듯 영지전에서 승리하면 경험치를 꽤 많이 얻을 수 있는 편이다.
“그레모리.”
“예, 군주님.”
그레모리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80점짜리 대리인으로 감점한다는 말을 듣고.
분명히 그녀는 아서가 승리했다는 것이 기뻤고 즐거웠지만 그 무엇보다 아서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난 네 생각처럼 영지민들을 광적으로 안으려고 하진 않아.”
어쩌면 그녀에게 그리 비쳐 보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영지민 한 명 때문에 다른 영지와 전쟁을 선포했으니까.
하지만 아서는 그렇게 영지민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내던질 바보는 아니었다.
전쟁을 하다 보면 수많은 목숨이 사라진다.
아서가 병사 한 명이 죽었다고 울고불고 그 유족의 앞에 찾아가 죄송하다 말하지는 않을 거다.
오히려 병사들을 시켜 유족을 대신 위로하게 하고 잠깐이나마 그에 대해 떠올린 후 가슴에 묻고 더 나아가기 위해 살아갈 거다.
군주는 그런 자다.
누구보다 단단해야 하고 누구보다 위엄을 지켜야 한다.
당장 누군가의 죽음, 혹은 안타까운 일에 흔들려선 아니 된다.
“영지의 발전을 위해 싸워야 할 적이 필요했고 때마침 그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이 영지민의 이마에 빵을 던졌다. 분명히 작은 일이야.”
그레모리는 동감했다.
분명히 너무 작은 일이었다. 사실 그에 흥분한 아서를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명분으로 만들 수도 있는 법이지. 그리고 그들은 분명히 ‘군주 뜯기’를 하려 했고 나는 지킬 수 있는 힘도, 자신도 있었다.”
“지킬 수 있는 자신…… 말씀이십니까?”
자신했다는 말에 그레모리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아서는 쾌활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녀를 꾸짖는 거긴 하지만, 한편으론 더 이상 꽁해 있을 필요가 없음을 알리는 거다.
가르칠 때 무조건 혹독해선 안 된다.
당나귀도 당근을 던져줘야 조련이 잘되는 법이니까.
“지킬 수 있고 그런 자신도 있는데 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닐까?”
아서는 전멸의 토벌대에서 병력을 이용해 카르만을 곧바로 끌어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길을 택했다.
무조건적인 병력 손실이 아까워서?
아니, 그건 아니다.
다른 방법이 존재하는데 굳이 손실을 볼 필요가 없다고 여겨서다.
나은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찾는 거다.
“영지민들은 소중하다. 하지만 나는 무모하지 않아. 그리고 너 역시 나에겐 그 누구보다 소중한 영지민이다. 만약 네 이마에 빵을 던졌고 내가 자신이 있었다면…….”
그레모리의 입꼬리가 스멀스멀 움직인다.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나려 했다. 그녀는 애써 감췄다.
“똑같이 행동했을 거다.”
“아……!”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말과 같지만, 자신을 콕 집어 ‘너였어도’라고 하자 그레모리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찌 아직 어리신 군주님인데도 이렇게 사람, 아니, 마족 마음을 설레게 한단 말인가.
“그러니 앞으로는 세세한 것 하나, 작은 것 하나도 보고하도록.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내가 정하마.”
“알겠습니다, 군주님.”
그녀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난 현실에 급한 일이 있으니, 내게 사소한 것 하나를 보고하지 않은 대가로 오늘은 밤새도록 영지를 둘러보며 순찰을 도는 걸로 벌을 대신하도록.”
“예!”
군주가 내리는 벌이라고 말하지만 당연히 그레모리가 해야 할 일이었다.
자비로우면서도 자신에게 더 나은 가르침을 주는 그에게 그레모리는 감탄했다.
아서는 내일을 생각해 봤다.
‘영지군 첫 출근이군.’
아직 다프와 전쟁을 하기에 시간이 좀 남았다.
철두철미하면 좋겠지만 아서는 피식 웃었다.
‘그런 놈한테?’
아서는 다프를 잘 안다. 1주일이면 그놈과의 전쟁 준비 기간은 충분하리라.
아서는 그레모리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영지군. 본격적인 시작.’
걸음을 옮기는 아서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현실로 돌아간 것이다.
“순찰이다, 순찰! 즐거운 순찰이라고!”
그리고 혼자 남은 그레모리가 신이 나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일하러 가는데 저리 좋아하는 여인은 또 보기 힘들 거다.
* * *
현실.
어제저녁 현실로 돌아온 아서는 곧바로 잠을 청했었다.
군주게임을 진행하는 며칠간 현실의 아서에게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겨진 몸이 알아서 아서의 성격에 걸맞게 움직인 덕이었다.
아서는 집안의 하인들과 하녀들이 자신의 첫 출근에 맞춰 분주하자 계단을 밟고 내려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내가 첫 출근한다고 따라오는 건 아니겠지?”
한스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영지군 측에서 지원자 공고를 냈더라고요. 며칠간 주변 청소나 힘쓸 사람들이 필요한가 봐요.”
아서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빨리 돈을 벌어야겠군.’
아서로서는 그 이야기를 듣고 괜스레 답답해졌다.
그들의 말을 요약하자면 현재 자택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 훈련소에 가서 잡일을 도와주고 돈을 받으려는 것 같았다.
어머니 헬렌도 내키진 않아 했을 거다.
하지만 하인, 하녀들이 자처해서 자신들이 간다고 했겠지.
집사 케빈은 아서와 눈이 마주치자 그도 쓴웃음만 삼켰다.
‘이제 곧 그런 일은 없어질 거다.’
아서의 머릿속에는 돈을 벌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지식이 가득했다.
그것을 이용한다면 더 이상 프레스 가문이 재정난에 휘청이진 않을 것이다.
아서는 영지군 숙소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영지군 숙소에 들어가는 건 선택 사항이었다.
아서는 하인, 하녀들을 이끌고 함께 영지군 훈련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달 동안은 집중 훈련 기간이지 않나요?”
“그렇지.”
영지군 훈련소에 들어가면 한 달간 집중적인 훈련을 받게 된다.
“기초 체력 훈련이나 던전 훈련 같은 거 받는다던데.”
“전 누구보다 도련님이 잘 해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서는 쓴웃음을 삼켰다.
한스는 자신과 함께 던전에 들어갔던 적이 있으니 그럴 수밖에.
‘그것보다 첫 던전 훈련이 약탈자의 반지가 있는 곳이면 좋겠는데.’
애초에 아서가 영지군에 들어간 결정적인 이유 중에는 약탈자의 반지가 있었다.
약탈자의 반지.
천군의 엘라스가 얻어낸 반지다.
이 약탈자의 반지는 특별한 힘을 가졌다.
예를 들어 현실의 검황 코르코.
그와 비슷한 유닛을 군주게임에서 부릴 수 있게 된다.
완전히 똑같진 않지만 성격 같은 것을 제외한 재능 부분에선 판박이다.
대신 군주의 레벨에 맞춰서 등급은 하향되어 나타난다.
하지만 검황의 재능을 가진 유닛은 분명히 남들과 다르다.
이 약탈자의 반지는 주변에서 강자를 탐색하여 저절로 퀘스트를 준다고 들었다.
그 퀘스트를 깨면 유닛을 부릴 수 있게 된다.
또 보통 영지군 훈련을 시작하면 며칠 안에 던전 훈련에 간다.
합격을 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실제로 던전에서 또 한 번 채점하고 거기서 떨어지는 경우 영지군에서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