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군주회귀록 049화
“다, 당신 뭐야!”
“네놈은 누구냐!”
“지금 아르한 영지와 전쟁 중인 발카스 영지의 군주 아서라고 합니다.”
아서는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군주 아서?”
그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지금 상황에 맞게 생각이 주입된 그들.
그들은 지금 아서가 노련하게 오크 병력을 죽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혈혈단신 그가 영지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서는 병력들을 스캔으로 살폈다.
‘숨어 있는 시스템인 만큼 영지에서 비밀리에 모집했다는 설정이지만 생각보다 수준은 높지.’
군주 심판자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또 아서에겐 오히려 양팔 벌려 환영할 일이고.
“나는 이들을 이끄는 카탈로크라고 하오. 우리의 목표는 같은 것 같은데.”
카탈로크.
그는 백발이 무성한 노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몸매와 허리춤에 검집을 건 모습이 꽤나 어울렸다.
‘카탈로크는 설정상 은퇴한 기사정 도인가?’
아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당신을 믿고 그들을 쳤다가 몰살을 당할 수 있소. 우리에겐 핵심 타격대가 필요한데. 당신이 그걸 증명할 수 있겠소?”
아서는 이미 들어오면서 자신이 ‘로든’을 죽이겠다고 말했다.
그에 재차 묻는 거다.
카탈로크도 병력들도 사실 긴가민가했다.
분명히 오크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이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그것이 이렇게 어린 소년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다.
아서는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내가 로든만 잡으면 매혹도는 분명히 충족될 거다.’
지금 시간이 없다.
미치광이 주사의 시간이 15분 남짓 남았다.
아서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아까 전 오크들을 사냥하며 자신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무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꽤 심상치 않았고 결코 약자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들이 로든과 그 무리일 터.
그는 펜루스와 브레드를 밖으로 서둘러 내보냈다.
그들을 몰아오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을 약 올려라.’
비록 C급에 해당하지만 설정 자체가 왕국제일검이라고 불리는 이라면 자존감과 거만함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아서가 도발한다면 필히 응할 터.
“여러분은 지켜보기만 하시죠. 곧 로든과 그 무리가 저를 죽이기 위해 올 겁니다. 제가 시계탑에서 그들의 목을 치겠습니다.”
카탈로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은 숨어서 그것을 관전하면 되니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 * *
로든은 흥미 가득한 눈빛으로 영지를 훑어보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 속에서 놈이 어디로 숨었을까 찾아보았다.
‘내 기대 이상이군.’
구경 삼아 나오면서도 로든은 그 적군이 금방 잡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놈은 교묘한 전술을 이용해 피해가며 오크의 숫자를 계속해서 줄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후우웅!
돌 하나가 날아왔다.
로든이 팔짱을 낀 상태에서 고개만 까딱여 피해냈다.
“흐음?”
로든은 미간을 구겼다. 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먼발치에 잿빛 늑대 위에 오른 다크엘프가 보였다.
‘저 다크엘프는 그놈이 부리는 소환수?’
로든과 동료들은 그를 유심히 살폈다. 곧이어 브레드가 다시 돌을 던졌다.
역시 고개를 까딱여 피해낸 로든이 얼굴을 구겼다.
그는 옆에 있는 병사에게 턱짓했다.
병사가 빠르게 접근하자 잿빛 늑대가 발을 빨리해 그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이번엔 그 반대쪽에서 돌이 날아왔다.
로든이 이마에 손을 짚었다.
“흐음.”
그는 황당함에 웃음이 났다.
크르크르!
펜루스가 브레드를 꾸짖듯 울었다. 고작 그 정도밖에 도발 못 해?
펜루스가 타탓타탓 뛰었다.
그리고 곧 그들과 5m 거리 정도에서 몸을 돌려 자신의 엉덩이를 보여주고 흔들었다.
씰룩씰룩.
“…….”
로든 일행이 미간을 구겼다.
곧이어.
뿌우웅! 푸지직!
“……염병할 늑대 새끼.”
“저런 X같은.”
펜루스가 방구를 힘차게 끼자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작 늑대 따위에게 도발을 당하니 황당할 수밖에.
“이건 도발이다. 우리를 데려오게 하려는 적의 수작이지.”
“압니다. 그런데 너무…….”
X같지 않습니까?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병사다.
로든은 피식 웃었다.
“놈은 우리와 싸워보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로든은 허리춤에 있는 검집에 손을 올렸다.
“나야 환영이지.”
그의 콧대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하물며 상대는 기껏해야 군주보호기간에 있는 군주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도발에 넘어간 척 펜루스와 브레드를 쫓아 움직였다.
크르크르
그리고 펜루스는 브레드에게 마치 ‘봤냐, 내 도발?’ 하는 것처럼 웃었고 브레드는 ‘오’ 하며 감탄했다.
* * *
아서는 펜루스가 신이 나서 뒤쪽에 무리를 이끌고 오는 걸 볼 수 있었다.
‘되게 신났군.’
아서는 피식 웃었다. 사실 도발이 성공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로든이라는 자의 자존감이 하늘을 찌를 것 같다는 걸 예측했을 뿐이다.
그는 일부러 펜루스를 쫓아왔겠지,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시계탑 밑에 서 있는 아서와 멀지 않은 곳에 카탈로크와 병력들이 숨어서 관전하고 있었다.
“재밌는 꼬맹이구나.”
로든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나야 고맙지.’
당장 아서를 죽이기 위해 뛰쳐나오려는 병력을 로든은 팔을 뻗어 막았다.
“한번 겨뤄보고 싶었다.”
스르릉.
검이 청아한 소리를 내며 뽑혀 나왔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빛을 온전히 발하는 그 검은 꽤 번들번들해 보였다.
아서는 카자벤의 독창으로 땅을 두들겨 보이면서 씨익 웃었다.
“난 지금 자칸 군주님 밑에 있지. 뭐 나 정도라면 본디 101명의 군주 정도의 밑에 있는 게 맞지만 언젠간 그 자리에 서시게 될 분이다. 사람들은 나를 왕국제일검이라 부른다. 내 옷깃만 스쳐도 네놈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
아서는 그거 참 잘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웃었다.
‘왕국제일검님께서 제 소환수가 되어주시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기쁘기 그지없는 일인가.
띠링!
단숨에 놈의 가슴에 창을 박아 넣겠다고 생각하던 때 울린 퀘스트 알림.
확인해 본 아서는 미간을 구겼다.
‘왕국제일검의 무력감.’
내용은 그의 자만감을 꺾어내라로 거의 농락하는 퀘스트였다.
아서의 성미와는 맞지 않았지만 리스크가 크다.
모든 스탯-20.
또 어쩌면 이게 아서를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볍게 찍어 누른다면 반란군들이 더욱더 아서를 신뢰할 테니.
“자, 한번 겨뤄보자.”
로든이 자세를 잡았다.
퀘스트가 떨어졌으니 일단은 원하는 대로 한다.
또 보상이 결코 적지 않다.
‘이런 것도 가능한가?’
퀘스트는 아서가 로든을 죽음의 그림으로 부릴 것을 예측한 듯싶었다.
그를 농락해 내면 보상으로 죽음의 그림으로 부렸을 시에 현 죽음의 그림 60%의 힘이 아니라 10%가 추가된 힘을 부리는 보상을 준단다.
아서가 몸에 힘을 쭉 빼고 늘어트렸다.
한 손으로 창을 거두고 다른 한 손은 뒷짐을 지었다.
로든은 그 건방진 행동에 얼굴을 구겼다.
“네놈, 지금…….”
“감히 네깟 놈이 우리 로든 경 앞에서!”
“미친놈. 네놈은 금방 목이 뚫려 뒈질 것이다.”
병사들이 험담을 했지만 아서는 굴하지 않았다.
그리고 뒷짐 졌던 손을 잠시 앞으로 가져온 후.
까닥까닥.
손을 까딱거렸다.
로든은 이 정도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다.
단지.
‘혼쭐을 내줘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아서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서는 모든 것이 슬로모션처럼 느껴졌다.
절대 감각.
이는 분명히 대단한 스탯이다.
아서의 오감이 특출 나게 발달되었고 소리와 반사 능력도 대단해졌다.
아서는 휘둘러진 검을 슬쩍 고개만 젖혀 가뿐히 피해냈다.
“……!”
뒤쪽의 병사들이 놀랐지만 우연이라 생각했다.
로든이 발로 아서의 무릎을 걷어차려 했다.
타탓!
아서는 작게 뛰어올라 그 발을 자신이 밟았다.
콰직!
“큽!”
뒤로 한 바퀴 돈 로든이 검을 찔렀다.
아서는 슬쩍 몸을 비틀어 피해내고 창끝에 힘을 가볍게 주어 퉁겨냈다.
탱!
아서는 창대를 목 뒤로 넘겨 양팔을 걸쳤다.
“요새 왕국제일검은 개나 소나 다 하나 보네.”
성미에 맞진 않아도 하라면 누구보다 잘하는 게 아서다.
로든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의 검에 하얀빛이 서렸다.
소드 익스퍼트 하급의 오러.
설정에 의해 묶여 하급이지만 기존에 그가 군주와 함께 성장하면 최상급 이상도 바라볼 터.
파앗!
미약한 빛이 실린 검이 아서를 찔렀다.
아서는 피하고 돌고 가뿐히 움직이며 그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곧 가볍게 손등을 털듯 로든의 명치를 쳤다.
퍼억!
“컥!”
로든은 충격에 기침을 토했다.
“로, 로든 경!”
“네 이놈!”
“움직이지 마라!”
로든이 성난 맹수처럼 소리쳤다.
‘쯧, 결국 네놈들의 자존심은.’
아서였다면?
그는 만약 그러한 상황이었다면 부하들과 함께 공격했을 거다.
자존심?
목숨 앞에 자존심을 지키는 건 바보 같은 행위.
수우웅!
수우웅!
파앙!
로든의 검이 계속 쇄도해 왔다.
아서는 최대한 가벼운 움직임으로 피해냈다.
빈틈에 빈틈이 계속 보였다.
‘왕국제일검이라.’
그와 비슷한 칭호를 가진 자가 아스간에도 몇 있었지.
아서는 이 정도면 되었을 거라 여겼다.
곧 검을 피해내던 아서의 창끝이 쏘아져 오는 로든의 검끝을 힘껏 찍었다.
탱!
바닥에 박힌 검끝.
그와 동시에.
아서는 있는 힘껏 창을 찔러 넣었다.
“헉!”
첫 공격.
로든은 믿을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검을 쥐었고 주변에서 모두가 천재라 불렀다.
열 살 때인가? 아버지를 괴롭히려던 기사를 때려눕혔다.
모두가 외쳤다.
‘너는 천재다.’
‘왕국제일검이 될 사내야!’
그런데 이 소년 앞에서, 꼬마 앞에서 자신이 너무나 가벼이 조롱당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전장의 귀신이라 불렀다.”
창을 휘두르는 아서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쩌면 그것은 예의였다.
그 전에는 그를 무시하듯 행동했지만 그가 결코 무력했던 자는 아니라 말해주는 거다.
또한 목숨보다 자존심을 중요시하는 기사도 정신.
그 정신을 바보 같다고 하면서도 칭찬할 만하다 여겼다.
보통 이러한 자들이 굴복하면 누구보다 더 강하게 충성한다.
태애앵!
아서의 창이 판금 갑옷을 입은 로든의 왼쪽 가슴과 충돌했다.
아머 브레이크.
콰드득!
튕겨 나가야 맞는 창끝이 오히려 갑옷 사이를 파고들었다.
콰드드드드득!
곧 판금 갑옷에 균열이 생겨나며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창끝은…….
뿌드드득.
“쿨럭.”
로든의 가슴에 정확히 박혔다.
“달리론 대륙제일창 같은 유치한 이름으로 불렀지.”
아서는 웃지 않았다. 그 어떤 때보다 진지했다.
“넌 약하지 않아. 단지 상대를 잘못 골랐을 뿐.”
아서는 로든과 눈을 맞췄다.
그 눈은 믿지 못하면서도 크게 진동을 일으켰다.
아서의 눈은 굳건했다. 또한 방금 전 그를 농락했던 것과 다르게 자비로웠다.
“고맙…….”
그는 자신을 가지고 놀았으면서도 인정한다 말해줬다. 그리고 아서의 눈은 기사도에 걸맞게 더 이상 조롱하지 않겠다 하고 있었다.
퐈악!
단숨에 죽이는 것.
그것이 바로 아서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예의.
창이 뽑혀 나오며 로든의 가슴에서 철철 피가 흘러나왔다.
“로든 경!”
“이럴 수가……!”
만약 아서에게 미치광이 주사의 효과가 없었다면 위험했을 거다.
물론 동급의 능력치였다면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겠지만.
“쳐라!”
“놈을 죽여라!”
병사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아서가 듣기로 영지민들에게 개차반처럼 행동했다는데, 또 자기 부하들에겐 아니었나 보다.
충성심 가득해 보이는 그들이 달려들자 브레드와 펜루스가 막아섰다.
5레벨이 된 가속 그리기는 이제 20배 빠르게 그려낸다.
“죽음의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