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군주회귀록 047화
“취익, 아, 앞이 잘 안 보인다.”
“취익, 갑자기 폭풍우라니!”
갑작스러운 돌풍에 침입자를 찾기 위해 나선 병력들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폭풍우는 미약한 수준이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데 충분히 제약을 받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거세게 내리는 비는 지금 당장 병력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취익,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오크 병력 스물을 이끄는 분대장 사무로는 미간을 구겼다.
그는 오크 전사로서 벤과 같은 D급에 해당하는 자로 영지의 병력 중에선 꽤나 실력자였다.
그러한 오크 전사 사무로는 단 한 명의 적군이 침투했다는 사실에 황당하면서도 놀랍기도 했다.
콰쾅!
천둥 번개가 요란하게 치며 주변이 번쩍거렸다.
“취익?”
사무로는 분명히 방금 전 자신의 앞에 서 있던 인간 소년을 봤었다.
한데 번쩍하는 빛이 사라지는 찰나 소년이 사라졌다.
“취이익, 취이익?!”
사무로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순간.
투욱!
데굴데굴
투욱!
데굴데굴!
“취이익, 취이익!”
오크들의 목이 바닥으로 뒹굴며 허무하게 쓰러지기 시작했다.
사무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무기를 꽉 쥐었다.
“취익, 어디냐!”
그 순간, 지붕 위에서 늑대 한 마리가 발 빠르게 내려서 사무로를 공격했고 곧 목을 물어 비틀어 버렸다.
크르크르!
“취이익, 취이익!”
아서는 브레드와 은신을 이용해 남은 오크들을 처리했다.
‘이제부터 창조주 군주의 진가가 발휘된다.’
창조의 그림, 그리고 창조도감의 연관성.
공격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들을 창조의 그림으로 그리기 위해선 한 번쯤은 죽여본 적이 있는 자여야 한다.
즉, 드래곤을 창조의 그림으로 환상으로든, 실체형으로든 그리기 위해선 무조건적으로 드래곤을 죽이고 창조도감에 등록해야만 한다.
아서는 이미 벤을 이용해 창조도감에 그를 등록했다.
그리고 대폭 상승한 창조의 그림의 레벨과 창조도로 훨씬 더 많고 뛰어난 자들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아서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속 그리기와 창조의 그림의 환상적인 콜라보.
아서는 오크 병력 스물을 만들어냈다.
이들 모두는 실체형에 속했다.
고작 스물의 병력을 만들어냈는데 창조도가 벌써 60%까지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괜찮다.’
현재 창조의 그림의 레벨 영향 탓인지 이들은 고작 50%에 해당하는 능력밖에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기습을 가하기 충분하다.
“움직여라.”
취이익!
취이익!
그들이 빗속으로 사라졌다.
* * *
아르한 영지 대사관.
한 명의 사내와 열 명의 병력은 시끄러운 소란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침입자, 그리고 한 명. 재밌군. 고작 영지전을 시작한 지 2주도 안 된 군주라니.”
자리에서 일어서며 검집을 챙기는 사내는 자칭 폭군 자칸의 명령으로 아르한 영지에 파견 온 로든이었다.
그가 모시는 폭군 자칸은 꽤나 유능한 자였다.
이제 군주보호기간이 끝난 지 4개월이 지났다. 그렇지만 그는 C급 병력 여럿을 보유하고 있었다.
로든은 병력 중 C급에 해당하는 자였다.
하지만 말이 C급이지 아직 군주 레벨에 맞춰졌기 때문에 진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는 설정으로 왕국제일검이라 불리는 사내.
비록 C급이지만 급이 같다고 모두 같은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나열되어 있는 병력은 모두 D급으로 카샤스가 데리고 있던 벤과 동급의 병력이다.
이들을 훈련시킨 건 바로 왕국제일검이라 불렸던 로든.
“어디 놈의 얼굴이나 구경해 볼까.”
카샤스와 자칸은 연맹 관계는 아니었지만 암묵적인 동맹 관계.
간덩이가 큰 그 군주 놈 낯짝이 궁금해진 로든은 병력을 이끌고 대사관을 빠져나갔다.
* * *
브록 군주는 발 빠르게 포르데일 땅으로 워프해서 넘어왔다. 그다음 망설이지 않고 와이번을 소환했다.
와이번이 날개를 퍼득이며 그의 앞으로 다가와 몸을 낮췄다.
“가자!”
브록 군주의 얼굴에는 다급함이 엿보였다.
와이번이 앞을 향해 달리더니 곧이어 힘찬 날갯짓을 시작하며 날아올랐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브록 군주의 입가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보고를 받았다.
카샤스라는 군주가 ‘군주 뜯기’를 하고 있다고. 그것도 다름 아닌 포르데일 땅에서.
트롤 연맹의 연맹장인 브록 군주로서는 연맹 이름에 먹칠을 하는 군주를 가만히 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또 거기에 그자는 연맹 외의 다른 자와 손을 잡고 군주 뜯기를 하고 있단다.
때문에 아르한 영지에 대리인을 보내 연맹의 강제 탈퇴를 선언하고 그 영지를 밀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아르한 영지로 향했던 대리인의 보고가 올라왔다.
‘현재 아르한 영지는 전쟁 모드가 발발한 상태입니다.’
즉, 누군가와 전쟁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브록 군주의 대리인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브록 군주가 몬스터를 부리는 것과 비슷한 능력이었는데, 특별한 정찰 동물을 부릴 수 있었다.
그가 부리는 꿰뚫는 매는 브록 군주보다 등급이 낮다면 다른 영지 현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브록 군주는 그에게 물었었다.
‘카샤스와 전쟁을 벌이는 그자가 누군데?’
‘아서라는 군주입니다.’
그 말을 듣고 브록 군주는 깜짝 놀랐다.
이제 훈련소를 벗어난 지 2주도 안 된 아서가 벌써 누군가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물었다.
‘지금 아서의 영지 총레벨은?’
물론 아직 1도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한 물음이었다.
그리고 들려온 답변.
‘5입니다.’
브록은 놀랐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다.
어떻게 하면 벌써 영지 총레벨이 5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남들은 1년 군주보호기간이 끝나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대다수인데!
‘너라면……!’
브록 군주는 기대에 차 있었다.
발키리 총연맹에 걸려 있는 비상.
유능한 군주를 찾아라, 영지 총레벨 10미만이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총연맹에서 훈련시킨 군주들을 때려잡을 수 있는 그런 군주를 찾아라!
‘너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크라아아!
브록 군주의 흥분을 대변하듯 아르한 영지로 날아가는 와이번이 거친 울음을 토하며 속도를 올렸다.
* * *
성 외곽으로 나온 카샤스는 매섭게 쏟아지는 빗방울과 번쩍이는 천둥 번개를 볼 수 있었다.
앞을 분간하기도 힘들 정도의 빗방울 사이에서 카샤스는 두 개의 병력이 만나 적을 찾아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었다.
“미친…….”
카샤스는 욕을 지껄이며 검을 꽉 쥐었다.
도대체 어떤 놈인지 모르겠다.
벌써 죽은 병력의 숫자가 자그마치 마흔이 넘어간다.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러던 중 카샤스의 눈살이 꿈틀거렸다.
“저놈들은 또 왜 저래!”
두 병력이 합세해 걷고 있었는데 뒤쪽의 병력들이 갑자기 앞쪽에 있던 오크들을 기습하여 죽였다.
그리고 오크 중 하나가 뒤를 돌아보더니 기습을 가한 오크 전체가 빗물에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이, 이게 대체…….”
네크로맨서라는 자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다.
죽은 시체를 언데드로 만들어서 싸우는 자들.
하지만 그들과는 조금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오크 메이지, 마법을 준비하라!”
“취익, 예!”
군주보호기간에 있지만 카샤스는 자칸의 도움을 받고 군주 뜯기를 행하면서 다른 이들보다 훨씬 빠른 성장을 해냈다.
골드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오크 메이지.
이는 병영 레벨이 8에 달해야 소환할 수 있다.
현재 영지 총레벨 5였지만 그는 본인이 가진 특성 ‘지정 업그레이드’를 통해 3레벨이 추가된 8짜리 병영을 부릴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기존 군주들보다 많은 숫자의 병력을 부릴 수도 있었고 지금 수준보다 더 높은 유닛을 부릴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오크 메이지는 애초에 비싼 유닛으로 분류된다는 거다.
하지만 카샤스는 결단을 내렸다.
이렇게 계속 병력을 잃을 바에야 단 한 수로 놈을 때려잡는다.
현재 오크 메이지 수준은 2클래스.
하지만 2클래스 중에서도 고위급 능력이라면 저 건방진 군주 놈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 *
또옥또옥.
아서의 몸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바닥과 부딪치며 고요한 소리를 냈다.
빈 저택의 2층에 들어온 아서는 창가에 서서 숨죽여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혈혈단신 50마리 병력을 사냥하셨습니다.]
[기록의 탑에 군주의 이름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현재 순위 6위로 계속 도전하실 수 있으며 도전하실 시 보상은 보류되며 순위가 올라갈수록 더 나은 보상이 지급됩니다.]
“도전한다.”
아서는 망설이지 않았다.
벌써 50의 병력을 잡았다. 하지만 아직도 200의 병력이 남아 있다.
‘시간이 없다.’
미치광이 주사의 효과가 끝나기 전에 서둘러 정리해야 한다.
그럼에도 숨어든 이유는 오크 메이지의 등장 때문이었다.
고작 세 마리에 불과하기는 하였지만 벌써 오크 메이지를 사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마도 카샤스는 오크 메이지를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영지 현황표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고.
‘오크 메이지를 구매했다는 건 특성이 단순히 병력의 수를 늘려주는 게 아니라는 게 되는데.’
아서는 단숨에 카샤스가 가진 특성을 꿰뚫어봤다.
‘지정된 건축물의 레벨을+시키는 특성인가?’
특성은 군주들에게 랜덤으로 배정된 능력이라고 보면 편하며 1,000명 중의 한 명 꼴로 받을 만큼 희귀한 편에 속한다.
‘오크 메이지들의 공격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아서는 빠르게 오크 한 마리를 그렸다.
아서는 소환수의 방에 보냈던 펜루스를 다시 불렀다.
‘이건 내 감이 중요한데.’
만약 그가 실수하면 펜루스가 크게 다칠 것이다.
그 때문에 망설이는 아서를 느꼈는지 펜루스가 크르크르 소리를 냈다.
널 믿으니 괜찮다.
동기화 때문인지 녀석의 생각이 읽힌다.
아서는 하얀색 커튼을 찢어 오크의 몸을 둘렀다.
이미 적들은 잿빛 늑대 한 마리가 있다는 걸 알아챘다.
“자, 가라. 펜루스.”
크르!
실체형 오크 한 마리를 등 뒤에 태운 펜루스가 유리창을 향해 달려 나갔다.
콰장창!
창문이 깨지며 펜루스가 오크 한 마리를 태우고 영지 곳곳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서는 은신을 이용해 그곳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 * *
“저기다!”
카샤스는 드디어 기회라고 여겼다.
어디 숨어 있나 했더니 저기였구나.
빗속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놈은 늑대 위에 올라타 빠르게 성벽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세 마리의 오크 메이지는 이미 시전 준비를 끝마치고 놈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시전하라!”
검을 앞으로 쭉 뻗은 카샤스에 명령에 따라 오크 메이지들의 손에서 마법이 분출되었다.
화염계 마법 능력이 살상에는 탁월하나 폭풍우를 염려해 2클래스 마법 중 개인을 살상하는 데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진 아이스 스피어가 발동되었다.
퐈지지직!
세 개의 얼음 창이 먼 곳에서 달리는 늑대와 군주 놈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퐈지익!
늑대는 세 개의 아이스 스피어를 가뿐히 피해내고는 울음을 토해냈다.
아우우우우우!
마치 잡아보라며 농락하는 듯했다.
“서둘러라!”
“취릭, 예!”
다시 시전 준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이스 스피어는 2클래스 중 가장 고위의 능력.
더군다나, 지금 소환된 오크 메이지들은 MP가 극악적으로 적은 녀석들이다.
때문에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횟수는 고작해야 두 번.
“기다려라.”
시전 준비가 완료되자 카샤스는 팔을 서서히 들면서 때를 기다렸다.
마른침이 꿀떡하고 넘어가며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맴돈다.
곧 때를 잡은 카샤스가 검을 쭉 내뻗었다.
“발사!”
퐈지지지직!
카샤스의 얼굴에 미소가 맺혔다.
정확한 조준!
빠르게 날아가는 세 개의 아이스 스피어!
하나를 피한대도 다른 두 개가 군주 놈을 꿰뚫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오크 메이지들이 올라 있는 성벽 위.
그 인근에서 누군가 중얼거렸다.
“소환 해제.”
스르르!
막 아이스 스피어가 군주와 잿빛 늑대를 관통하려는 찰나, 펜루스가 사르르 사라지며 그 위에 올라타 있던 군주가 균형을 이기지 못하고 밑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콰작!
콰작!
군주의 몸을 관통하고 지나간 아이스 스피어가 벽에 박혔다.
말 그대로 벽에 박혔다.
“뭐야!”
관통이 아니라 통과했다는 말이 어울렸다. 그리고 그 군주는 사라져 커튼만이 바닥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