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군주회귀록 046화
16장 나 혼자 부순다
“취익, 감히이……! 고작 영지전을 시작한 지 2주도 안 된 놈이!”
“넌 감히 우리 영지민한테 손을 대?”
아서는 피식 입을 비틀어 웃었다.
그뿐인가?
“도움을 주었는데 군주 뜯기를 하시겠다?”
움찔.
벤의 눈가가 떨렸다. 어떻게 이자가 군주 뜯기라는 군주 은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인가.
“이건 내가 못 참지.”
지금 당장 오크들이 아서의 병사들과 충돌을 일으킬 듯 사나운 분위기가 흉흉했다.
“취릭, 못 참으면?”
그리고 벤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고작 군주보호기간 군주 놈이 자신을 건드려?
아르한 영지는 말 그대로 폭군 자칸에게 지원을 받았다.
때문에 다른 군주보호기간 영지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거다.
“구, 군주님…….”
그레모리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두 들어라!”
아서가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뒤쪽에 선 병사들.
그들은 아서와 함께 던전을 돌아보았고, 그의 곁을 지켰으며, 아서의 신출귀몰한 무위를 직접 눈으로 보았다.
그레모리와는 다르게 산증인이라는 거다.
“예!”
병사들이 각을 잡고 답했다.
“지금부터 나 아서 더 프레스는 아르한 영지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바다.”
[아서 더 프레스가 아르한 영지에 전쟁을 선언합니다.]
[아르한 영지의 군주 카샤스가 전쟁 모드를 승낙합니다.]
“취익, 미쳤군. 미쳤어. 흐흐!”
벤은 배를 잡고 웃었다. 뒤쪽의 오크들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2주.
벤에겐 지금 이 자리에서 싸워도 휩쓸어 버릴 자신이 있었다. 애초에 오크들은 본래 인간들보다 더 강력한 무위를 가지고 있는 종족이다.
고작 2주밖에 안 된 병사 서른 명.
오크들이면 충분히 싸울 만하다.
또 벤은 오크 전사이기도 하였고.
“취익, 죽여라!”
또 아서는 멍청한 짓을 했다.
적을 바로 앞에 두고 전쟁 모드를 발발하다니?
전쟁 모드일 때와 전쟁 모드이지 않을 때, 흡수할 수 있는 자원과 골드, 적재가 현저히 차이가 나는 걸 생각하면 자신들 쪽에게 훨씬 이득이었다.
지금 아서의 멍청한 짓 덕분에 벤은 그의 모든 걸 삼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벤이 비릿하게 웃을 때.
투욱!
데구르르.
오크의 머리 하나가 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취익?”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또다시 머리 하나가 투욱 떨어졌다.
데구르르.
그는 오크의 머리를 보며 미간을 구겼다.
그들 뒤쪽에 은신으로 숨겨놓고 있었던 브레드였다.
찌이이익!
공간이 찢어지며 곧 펜루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크르!
아서가 카자벤의 독창을 꽉 쥐고 말했다.
“대리인 벤을 제외한 모든 적을 죽여라.”
“충!”
병사들이 일제히 답했다.
아서가 가장 먼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레모리도 움직였으며 병사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쿠웅!
벤이 허무하게도 무릎을 털썩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처참하게 죽어버린 오크들을 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영지전을 시작한 지 2주도 안 된 군주와 병력이 이토록 강하단 말인가.
더군다나 병사들. 그들은 D급 이상의 병사들만큼이나 강했다.
거기에 그뿐이면 말을 안 한다.
정체 모를 다크엘프와 잿빛 늑대는 절대 현재의 군주로서는 가질 수 없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어찌?
“자, 이제 안내해라.”
안내? 뭘 안내하라는 말인지 잠시 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전쟁 모드가 발발하였으니 이제 양측 군주는 전쟁을 준비할 것이다.
병력을 소집하고 서로가 서로를 염탐하며 공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
“취익, 무슨 소리지?”
“지금 바로 너희 아르한 영지를 공격할 것이다.”
준비라고 할 것도 없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
아서는 오늘 아르한 영지를 토대로 혈혈단신 영지 하나 깨부수기 튜토리얼 퀘스트를 달성할 생각이었다.
‘폭군 자칸?’
그 코드네임을 듣고 아서는 웃음을 삼켰다.
어딜 감히 폭군이라고 자칭한단 말인가.
아서는 실제로 ‘폭군’이라 불렸던 도전 군주를 알았었는데, 그는 정말 폭군이었다.
그 혼자서 깨부순 영지가 몇 개인지, 또 그 영지가 보유한 병력이 어찌나 강한지.
그 정도 인물도 아니면서 스스로 폭군이라 부르는 멍청이라니.
그는 군주보호기간이 끝났다고 하니 그를 통해서 또 다른 튜토리얼을 달성하리라.
“구, 군주님. 일단 병력을 점검하시고…….”
“나 혼자 간다.”
“예?”
그레모리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른 병사들도 헉하는 표정이었다.
“그, 그게 무슨…….”
“그레모리, 너는 자베스에게 가서 내가 빵을 던진 오크를 혼내줬다고 말해주고. 병사들은…….”
아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평소처럼 훈련해라.”
“혼자서 가신다니요. 위험합니다!”
세상에 혼자서 다른 영지를 기습한다는 군주가 어디 있단 말인가.
“명령이다.”
“예.”
하지만 곧 그레모리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서는 그대로 오크 벤을 펜루스와 연결해서 꽁꽁 묶고는 그에게 길 안내를 하라고 명령하고 영지를 떠났다.
* * *
의자에 앉아 비스듬히 턱을 괴고 있는 카샤스. 그는 금발의 머리카락을 짧게 친 중년 사내였다.
그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앞에 있는 여인을 보며 말했다.
“안 벗나?”
“네?”
그녀는 흠칫 놀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고작해야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소녀.
그 소녀는 영지에서 카샤스의 눈에 들었고 그로 인해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
소녀, 일레나는 눈앞이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얼마 전에 벗지 않은 하이렌은 그 가족까지 죽었어…….’
두려웠다. 너무나 무서워서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카샤스는 성군은 아니다.
영지민들의 목숨을 개미처럼 아는 군주였으며 군주게임에 참가하게 된 것을 무척이나 기뻐하는 자다.
그는 현실에선 몰락한 가문의 기사였고 그로 인해 노예로 팔려 나간 자다.
현실에선 노예였지만 이곳에선 왕처럼 대우를 받고 있는 게 바로 카샤스다.
카샤스는 매번 이렇게 영지의 젊은 여인들을 불러다가 성욕을 채웠고, 말을 듣지 않으면 단칼에 죽이고 그 가족까지 멸했다.
그는 옆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검집에서 검을 뽑아 검끝으로 그녀의 옷을 찔렀다.
“벗기 싫으면 벗지 않아도 된다.”
카샤스는 그리 말하곤 능글맞게 웃으며 서서히 그녀의 치마 속으로 칼을 가져갔다.
칼면이 다리에 닿을 때마다 차가운 감촉에 여인은 몸을 떨어야 했다.
“버, 벗을게요.”
이를 악물고 눈물까지 꾹 참으며 일레나가 옷을 벗으려던 때였다.
뿌우우우우!
나팔 소리가 영지 곳곳에 울려 퍼졌다.
이러한 나팔 소리는 전쟁 모드가 발발하고 적이 영지에 침투했을 때 울린다.
‘벌써?’
카샤스는 비웃었다.
어떤 미친 군주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토벌을 위해 나갔던 벤과 마찰이 있었던 듯싶었다.
그는 멀지 않은 곳에 2주 전쯤에 개척된 영지의 주인이었다.
그러한 조무래기가 무슨 생각으로 전쟁 모드를 발발한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일 병력을 끌어모아 놈을 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놈의 병력은 어느 정도 되려나?”
카샤스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켜 여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목을 핥았다.
“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문 일레나의 입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카샤스는 씨익 웃으며 귀에 속삭였다.
“너는 이따가 보자.”
“네, 네…….”
그녀는 두려웠다. 그와 잠자리를 할 것이.
카샤스는 곧이어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오크들을 볼 수 있었다.
“적들의 수는?”
“취익, 그게…….”
“……?”
카샤스는 검집을 허리춤에 차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곧 오크가 보고했다.
“하, 한 명입니다.”
“음?”
카샤스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벤은?”
그러한 의문을 드러낼 때였다.
헐레벌떡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바로 오크 대리인 벤이었다.
“취익, 카샤스 군주님!”
안으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온 오크 대리인 벤은 무척이나 다급해 보였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땅에 박았다.
“취익, 지금 쳐들어온 그 군주 놈은…… 쿠웨에에엑!”
그 말이 끝나기 전이었다.
벤의 입에서 초록색 피가 뿜어져 나왔다.
바로 앞에 카샤스가 있었기 때문에 부츠에 벤이 쏟아낸 피가 흠뻑 묻었다.
카샤스의 동공이 진동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이 안 되어도 너무 안 되는 이야기다.
상대방은 영지전을 시작한 지 고작 2주가 되지 않았다.
거기에 대리인 벤은 자그마치 D급 병력이다.
그러한 벤이 당했다.
그 의미는 쉽게 표현 가능하다.
‘그와 함께 있던 다른 오크들도 당했다……?’
* * *
캐시 상점의 물품 중에 ‘말하는 자의 독초’라는 게 있다.
아서는 대리인 벤의 엉덩이를 걷어차기 전에 그에게 독초를 먹였다. 아마도 놈은 카샤스와 몇 마디 이야기도 나눠보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을 거다.
‘혈혈단신 영지 깨부수기는 단순히 튜토리얼 퀘스트만 달성하는 게 아니지.’
혼자서 영지를 깨부순 군주는 많다. 하지만 그러한 군주들은 보통 자신들보다 훨씬 낮은 급의 영지를 홀로 부쉈다.
‘비슷한 등급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잡은 게 학살자 렌달이었던가?’
비슷비슷한 등급에서 가장 많은 병력을 혼자서 잡으면 기록의 탑이 발발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잔혹한 미션도 몇 개 존재하지.’
예를 들어 적들의 심장만 66번을 찔러 달성할 수 있는 미션인 ‘심장 포식자의 미션’이나 혹은 그들의 눈을 뽑아서 먹어치우는 ‘눈알 애호가의 폭식’ 같은 미션.
‘후자의 미션을 한 놈이 미식가 브라큰이었던가.’
물론 아서는 후자의 미션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렌달이 받았던 보상은 학살자의 보너스였고.’
학살자의 보너스는 군주가 영지 총레벨을 올려야 레벨 업 한다는 걸 비틀 수 있게 해주는 이용권이다.
렌달은 그걸 받았다.
‘문제는 내 생각보다도 병력이 훨씬 더 많다는 거다.’
분명히 영지 총현황으로 아서가 보았던 병력은 200이었다.
사실 200이라는 병력도 카샤스가 군주보호기간에 있는 군주라는 걸 감안하면 많은 수준이다.
한데 지금은 50이 더 추가되어 250정도는 되어 보인다.
‘이건 놈의 특성이다. 유닛을 구매한 지 얼마 안 되는 거지.’
특성 중에 이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 자가 있었다.
보통 군주들은 부릴 수 있는 병력이 한정되어 있다.
물론 영지민들을 이용해 병사로 부리거나 영지전을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군주가 보유한, 또는 골드 상점을 통해 구매한 병력은 한계가 있다.
아서가 아는 카샤스의 영지 총레벨은 5다.
그 의미는 병영의 레벨이 5라는 것이고, 보통 이러한 경우 부릴 수 있는 병력은 150 정도다.
물론 예외의 경우가 있다. 무척 조잡한 유닛을 구매하면 병력을 훨씬 더 많이 보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250이 전부 오크다.
‘다른 영지에서 병력을 흡수한 것 같진 않아.’
놈의 특성을 표현하면 ‘병영’의 레벨보다 많은 숫자의 병력 보유 가능일 것이다.
‘그 병력이 얼마만큼 되느냐가 핵심인데.’
지금 놈이 얼마나 되는 병력을 뽑을 수 있는지, 그리고 놈이 가진 골드가 얼마인지 알지 못한다.
‘괜찮아. 난 어차피 이놈이 있으니까.’
아서는 이미 미치광이 주사를 주입한 지 오래였다.
이곳까지 오는 시간을 계산해 1시간 전에 맞은 상태였다.
영지에는 비상이 걸려 계속 시끄러운 나팔 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영지민은 죽이지 않는다.’
괜한 목숨을 앗지 않는 것이 도전 군주들 모두가 가졌던 생각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게 주도했던 것이 아서였고.
아서는 말했다.
‘적의 영지민을 죽인다고 득 볼 게 뭐가 있어?’
확실히 아서의 말은 타당성이 있었다.
물론 그런 아서의 말을 무시하고 영지민을 개미처럼 죽이던 이들이 수두룩했던 세상이지만.
“이제 시작이군.”
가뜩이나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영지민들은 침입자의 등장이란 말에 서둘러 집 안으로 숨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서는 폭풍우의 부채를 꺼내 들었다.
“하르민, 빨리 와!”
그러던 중 아서의 눈에 하르민이라는 소녀가 보였다. 아서는 그 소녀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첫 상대가 이런 놈인 게 다행이지.’
아서는 영지 현황표를 받아 봤을 때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지민 만족도가 바닥을 긴다는 것 역시도.
그는 지금 영지민들을 힘으로 찍어 눌러 반란조차 꿈꾸지 못하게 하는 군주일 확률이 높다.
“하르민?”
소녀의 어머니가 하르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이가 응시하고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두었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솨아아아아!
폭풍우가 거세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