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군주회귀록 039화
이대로 끝인가 생각할 때였다.
랜이 앞에서 튀어나왔다.
콰지익!
그의 어깨에 단도가 박혔다.
랜은 치아를 악물고 양손으로 다크엘프의 손을 꽉 잡았다.
“군주님을 해하려 하다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
몸을 던져서라도 군주님을 지키는 것.
“이 새끼야!”
“피부 까만 원숭이 새끼!”
다크엘프는 잡힌 손을 힘으로 빠르게 뽑아냈다.
하지만 이미 병사들이 놈의 몸 곳곳을 각자의 병장기로 힘껏 찔렀다.
“쿨럭…….”
다크엘프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랜.”
“예, 군주님.”
랜은 피가 흐르는 어깨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다음부터 그런 머저리 짓 하면 농사짓게 될 줄 알아.”
그러면서도 아서는 작게 웃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랜도 웃었다.
곧 뱀이 튀어나가 랜의 상처를 빠른 속도로 치료해 주었다.
“죄송합니다, 군주님. 저희가 약해서…….”
“힘이 되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들은 격분에 격분하고 있었다.
계속 죄송하다, 미안하다 말했다.
하지만 아서는 쿨하게 말했다.
“이제부터 죄송하다고 말하면 농사짓는다.”
“사랑합니다.”
“……그 말 하면 영지 추방.”
“예…….”
아서와 병사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칼 위에 선 것 같은 긴장감에서 아서는 병사들과 자신이 더 돈독해지고 있음을 알았다.
뚜벅뚜벅.
뚜벅뚜벅.
아서와 병사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얼굴이 빠르게 굳었다.
아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몰려온다.’
다크엘프들이 몰려온다.
놈들은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다르게 체계적이다.
던전의 몬스터 느낌이 아니었다.
‘필사적으로 이곳을 지키려는 느낌.’
수호자들 같다고 해야 할까.
그들은 선택한 것이다.
우르르 몰려가 아서와 병사들을 사냥하는 것으로.
‘서둘러야 한다.’
아서는 발 빠르게 쓰러진 다크엘프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베기 시작했다.
27개째, 28개째…….
발걸음 소리는 계속 좁혀져 온다.
적어도 서른 이상의 다크엘프가 자신들을 잡기 위해 오고 있다.
그리고 감이 외치고 있다.
놈들을 이끄는 수장 또한 함께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고.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코앞에 이르렀다.
병사들은 긴장하며 자신들의 무기를 꽉 쥐었다.
그리고 놈들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막 드러냈을 때, 아서가 마지막 남은 다크엘프의 머리카락 한 움큼을 잘라냈다.
띠링!
알림이 울리고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던 아서가 입 한쪽을 올려 웃었다.
* * *
이곳의 보스는 다크엘프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전사라고 불렸던 브레드다.
브레드는 운영자로부터 특별한 힘을 받았다.
그가 던전 마스터는 아니었지만 던전 현황이나 다양한 것들을 확인하는 능력이었다.
던전 마스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브레드는 병사 서른 명과 들어온 군주에게 상당히 놀랐다.
그는 갈수록 빠르게 다크엘프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깊숙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강해진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더 이상 종족의 희생을 볼 순 없어.’
그가 어떠한 방법으로 강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나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것이라면 모든 병력을 이끌고 사냥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에 던전에 있는 다크엘프들을 소집해 놈이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가장 앞장 서 걷던 브레드의 눈에 보였다.
막 자신의 동료의 머리카락을 자른 체구가 작은 인간 소년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매서운 눈빛으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리다……?’
그가 어리다는 것을 보고서 브레드는 더 놀랐다.
저 어린 나이의 소년이 다크엘프들을 상대했다는 건가?
아니면 저 뒤의 병사들이 그만큼 강하다는 건가.
‘아니, 병사들은 지금 겁을 먹었잖은가.’
병사들은 등장한 다크엘프들을 보면서 서 있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가장 앞에 선 은빛 갑옷과 망토, 부츠를 착용한 소년은 그들과 상반되게 창끝을 땅에 콱 소리 나게 박으며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네가 이랬나?”
브레드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잘려 나간 동료를 보며 미간을 구겼다.
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군주님, 뒤로 물러나십시오.”
“저희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병사들은 두려움에 질렸다.
눈앞에 가족이 어른거렸다.
오늘 자신들은 이곳에서 죽겠구나.
하지만 그러면서도 잊지 않았다.
최후의 순간까지 군주님을 지키다 명예롭게 죽자.
오늘 그분이 보여주신 만큼 우리도 보여주자!
그들은 아서를 지나쳐 나아가려 했다.
“모두 뒤로.”
“아니요! 저희가 군주님을 지키겠습니다.”
아서는 쓴웃음을 삼켰다.
말만이라도 고맙다.
그렇게 다리까지 덜덜 떨면서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하니.
그래, 그거면 되었지.
목숨 바쳐 나를 구해주겠다는 병사들이 있다는 거, 그것만으로도 본인은 참으로 행복한 군주가 아닐까.
아서는 빙그레 웃었다.
“전부 뒤로 가라니까?”
아서가 그들 틈을 지나쳐 갔다.
브레드가 미간을 구겼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소년은 여유로웠다.
“다시 한 번 묻는…….”
“닥쳐.”
아서의 짧고 굵은 말에 브레드는 황당한 웃음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키가 자신보다 훨씬 작은 소년.
브레드가 자신의 이도류를 꺼내 들었다.
스르릉.
청아한 소리를 내며 뽑혀 나오는 이도류.
여기 있는 숫자의 다크엘프들이라면 저기 있는 병사들과 이 앞의 소년을 처리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죽여주마.”
브레드가 뒤의 다크엘프들에게 슬쩍 눈짓했다.
그들은 병사들을 잡을 것이고 브레드는 군주를 잡는다.
하지만 아서는 그때 뒤를 돌아봤다.
“모두 조용히들 있어.”
그 순간, 병사들에게 알림이 퍼졌다.
[군주의 권한에 따라 절대 방어가 시전됩니다.]
[30분 동안 그 어떠한 공격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단, 절대 방어 상태에선 공격 또한 불가능합니다.]
“구, 군주님!”
“아, 안 됩니다!”
병사들이 깜짝 놀랐다.
혼자서 죽기라도 하시겠다는 건가?
아니면 자신들에게 도망치라는 건가.
대체 왜 이런 짓을……!
그리고 그 사실을 다크엘프들도 알았다.
[병사들을 공격하려 할 시 사망하게 됩니다.]
브레드는 미간을 구겼다.
“혼자서 어쩌겠다는 거지?”
“이러겠다는 거다.”
아서는 손에 빠르게 나타난 양피지를 힘껏 찢었다.
그때 다크엘프와 아서에게 울린 알림!
[상대방이 단계별 대전 모드 양피지를 찢었습니다.]
[보스는 마지막에만 출전할 수 있습니다.]
[대련 중이지 않은 이는 조언도 해선 안 됩니다.]
[1:1로만 상대방과 싸우실 수 있습니다.]
단계별 양피지!
그것을 얻게 될 줄은 몰랐던 아서다.
다크엘프의 머리카락 모으기는 일반 엘프의 머리카락을 모으는 것과 다르게 보상을 두 개나 주었다.
‘만약 하나만 얻고 몰려왔다면 난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
단계별 대전 모드 양피지.
이는 말 그대로 단계별이다.
처음 1:1로 싸워야 한다.
그리고 아서가 승리할 시 저쪽에서 둘의 다크엘프가 나와 2:1이 된다.
그다음엔 3:1, 그다음 4:1 식으로 계속해서 아서가 상대하는 숫자가 늘어난다.
‘하지만 지금의 내겐 최고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진 셈이다.’
죽일 때마다 1%씩 올라간다.
아이템을 사용한 뒤 사냥한 몬스터의 숫자는 얼추 60마리.
그리고 앞의 놈들은 약 40마리 정도.
“역시 어려서 그런가.”
브레드는 피식 웃었다.
그도 단계별 양피지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가 상대해야 하는 적의 숫자가 많아진다.
아서는 지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반대로 자신들 쪽은 아니다.
브레드는 흘끗 옆을 돌아봤다.
다크엘프 하나가 자신의 잘 갈린 무기를 들고 여유롭게 걸어 나왔다.
띠링!
아서는 퀘스트 알림을 확인했다.
(전장의 귀신)
등급: A
지급 캐시: 5,000
보상: 절대 감각+1, 보스 특성 강탈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시: 사망
설명: 다크엘프는 예전부터 전투 특화 종족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당신은 전장의 귀신이라 불렸던 자. 전장의 귀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그들에게 각인시키고 승리하라!
‘전장의 귀신.’
아서는 피식 웃었다.
전투 특화 종족과 자신의 싸움이 시작되는 거다.
피가 끓는다.
그래, 한번 해보자.
그렇게 잘 싸운다는 다크엘프들, 얼마나 잘 싸우나 보자!
파앗!
다크엘프가 먼저 선공을 시작했다.
휘둘러지는 이도류.
아서가 가뿐히 고개를 슬쩍 뒤로 젖혀 피했다.
그리고 간결하게 움직였다.
푹!
“…….”
브레드와 다크엘프들이 미간을 구겼다.
단 한 수에 다크엘프가 목이 뚫려 죽었다.
아서는 지금 평소보다 몇 배는 강하며 그 강한 육체로 전장의 귀신이라 불렸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음.”
아서는 짧게 말했다.
두 마리의 다크엘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타탓!
아서는 한 대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
아서가 창을 힘껏 찔렀을 때!
두 다크엘프의 복부가 함께 관통되었다.
뿌지익!
아서는 힘껏 뽑았다.
“다음.”
3:1.
퐈지익
푸직!
우둑
“다음!”
4:1.
콰직!
콰악!
“다음.”
5:1.
“다음!”
6:1.
“다음!”
‘미, 믿을 수 없어…….’
‘구, 군주님은 이제까지 우리 때문에 제한을 받으신 거였구나…….’
병사들은 놀랐다.
군주님이 저렇게 잘 싸우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군다나 단 한 수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기는 브레드도 마찬가지다.
‘저, 저게…….’
아서는 힘을 최대한 아꼈다.
가장 간결하게, 그리고 강하게 적들을 벴다.
그가 ‘다음’이라고 말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리고 피가 끓는다.
싸워보고 싶다.
저 인간 소년과.
“다음.”
7:1.
아서는 동굴 깊숙한 곳을 향해 내달렸다.
지리를 잘 아는 다크엘프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유리하다 생각했다.
브레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7:1의 상황. 육탄전은 무리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다크엘프들은 이 던전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안다.’
아서가 시체가 되어 올 확률이 높다 생각했다.
그리고 동굴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타격음.
질질질질.
뭔가 끌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어둠 속에서 시체 하나가 브레드의 앞에 툭 떨어졌다.
다크엘프의 시체.
아서가 얼굴에 묻은 피를 팔로 쓰윽 닦아내며 말했다.
“다음.”
아서가 입을 비틀어 웃곤 다시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크엘프들이 발 빠르게 아서를 쫓는다.
브레드는 생각했다.
‘저놈은 지치지도 않는 건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쳐야 맞는 건데, 대체 저 꼬마 놈은?
콰지익!
푸직!
퐈악!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브레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곧이어 잘린 팔 하나가 브레드의 앞에 툭 떨어졌다.
곧이어 빠르게 달려 나오는 아서와 그를 쫓는 다크엘프 셋이 보였다.
타타탓!
도망치던 아서가 빠르게 벽을 차고 날아올라 뒤돌려 차기로 다크엘프의 안면을 후려쳤다.
바닥에 내려선 그가 땅을 박차고 튀어나가는 순간 은신이 발현되었다.
콰지익!
다크엘프 하나가 허공에서 나타난 창에 복부가 뚫렸다.
‘이럴 수가.’
콰지익!
퐈악!
남은 둘의 다크엘프가 너무나도 허무하게 쓰러져 내렸다.
아서는 거친 호흡을 추슬렀다.
‘96마리.’
즉 96%가 상승했다.
온몸의 근육이 팽창한다.
핏줄이 돋아나고 무뎌졌던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이다.
‘그래, 이거지.’
당장 등 뒤에 검이 꽂힐 것 같은 서늘함.
살아남겠다는 본능에 의해 곤두섰던 감각.
그때의 기억이 돌아왔다.
아서가 창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려 브레드의 목을 겨냥했다.
“네놈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