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군주회귀록 033화
10장 대리인 그레모리
끼이익
아서는 레드카펫의 끝에 위치한 거대한 성문이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의자에 앉은 그는 들어오는 이가 ‘군주 대리인’임을 눈치챘다.
군주 대리인은 그가 없을 때 그를 대신해 다양한 업무를 처리한다.
뿐만이 아니다.
초반에는 막 견습 군주를 수료한 군주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게 조언하고 전쟁이 시작되면 많은 도움도 준다.
대리인의 능력도 생각보다 중요하다.
그는 말 그대로 아서가 없을 때 영지를 대표할 인물이니까.
모습을 드러낸 이를 보며 아서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족……?’
남자만큼이나 짧게 친 하얀색 머리카락, 그리고 피부는 검었지만 미모만큼은 출중했고 몸매 또한 부드러운 굴곡을 지녔다.
아서는 자신의 대리인이 마족이라는 생각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마족을 대리인으로 두었던 이들이 누가 있었지?’
아서는 머리를 굴려봤다.
없었다. 아무도.
발카스 영지에만 존재하는 대리인?
대리인들은 보통 군주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한다.
이 마족도 그러긴 할 거다.
띠링!
아서는 영지에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퀘스트 알림이 들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대리인 그레모리 압도)
등급: D
지급 캐시: 2,000
보상: 카리스마+2, 광적인 복종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시: 그레모리 충성도 하락.
설명: 마족 군주들을 대리하던 그레모리. 그녀는 당신에게 복종하지만 의문이다. 마족들보다 인간 군주가 잘할 수 있을지. 그녀를 압도하라.
‘광적인 복종이라.’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녀, 그것도 마족이다.
마족은 천성적으로 싸움을 잘한다.
거기에 본래 마족 군주들을 모셨다라?
아서는 그레모리의 상태창을 열어봤다.
(그레모리)
대리인
HP: 1,100 MP: 330
총합 공격력: 170
총합 방어력: 130
등급: C
잠재력: 104
펜루스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확실히 강하다.
대리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역시나 잠재력이다.
‘104…… 역시 마족이라는 건가.’
잠재력이 높아도 너무 높았다.
그녀가 천천히 아서를 향해 양손을 배 위에 포개 걸어왔다.
그녀가 아서의 앞에 도착해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대리인 그레모리. 발카스 영지의 새로운 주인. 아서 더 프레스 군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모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앞으로 물심양면으로 군주님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튜토리얼 퀘스트를 받으셨을 겁니다. 제 안내에 따라 행동하시면 무난히 튜토리얼을…….”
아서는 그 말을 듣던 중 손을 들어 올렸다.
그레모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역시 이것만 봐도 일단 복종한다는 건 확실하다.
“튜토리얼에 대한 도움은 필요하지 않아.”
그 말에 그레모리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니?
보통 훈련소에서 기초를 배우고 왔다고 해도 어느 정도 도움은 받고 시작하는 이가 많다.
아서는 몸을 일으켰다.
아직 키가 덜 자라서인지 그는 여성형 마족인 그레모리보다도 작았다.
아서는 문을 향해 레드카펫을 밟으며 걸었고 그레모리도 그를 따라 걸었다.
문을 열고 나가 성 외곽으로 나온 아서는 한눈에 들어오는 영지를 둘러봤다.
“정말 튜토리얼 안내를 받으시지 않아도 괜찮나요?”
아서는 고개만 끄덕여 답했다.
그것보다 아서는 다른 게 필요했다.
“발카스 영지 시나리오를 주겠어?”
시나리오.
영지에 오면 군주들은 대리인에게 시나리오를 받을 수 있다.
이 영지가 어떠어떠한 영지였는지 정도다.
모두 설정이긴 하지만 시나리오는 꽤 중요하다.
‘시나리오가 있는 걸 어떻게……?’
그레모리는 깜짝 놀랐다.
영지에 시나리오가 있다는 건 훈련소에서 배우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서둘러 허리춤에 끼고 있던 시나리오를 공손히 건넸다.
아서는 앞쪽에 ‘발카스 영지’라고 적힌 시나리오를 펼쳤다.
일단 가장 앞장의 요약 정도만 읽은 후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있던 군주는 무능한 자였다. 그로 인해 영지민들은 배를 곯았고 그에 대한 충성심이 바닥을 기었다. 전 군주가 죽고 새로운 군주가 된 아서에게 많은 영지민이 큰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시나리오면 초반에 견습 군주들이 꽤 애를 먹는다.
건축물을 모두 지으면 남는 골드는 보통 3천 골드.
그 골드로 영지민들을 먹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곧바로 밖으로 나가 토지를 개척하고 농장을 건설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몬스터 사냥은 덤이다.
아서는 떠올렸다.
‘영지민 만족도 200% 달성.’
사실상 이 튜토리얼 퀘스트는 어렵진 않다.
혈혈단신 영지 하나 깨부수기나 군주보호기간이 풀린 영지와 싸워야 하는 게 어려운 수준.
아서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 안에서 VIP-1레벨 이용권 한 장을 꺼냈다.
‘저건……?’
그레모리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었으니까.
“가장 먼저 성을 짓겠어.”
그 말을 끝내자 그레모리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보충하려 했다.
“지당하십니다. 그리고 성을 짓기 위해선 50명의 영지민의 지원을 받아…….”
아서는 그 말을 뚝 끊었다.
“아니, 그건 괜찮아.”
“네?”
지원이 괜찮다니?
그럼 성을 어떻게 짓겠다는 건가.
그레모리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서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이용권을 망설이지 않고 찢었다.
[VIP-1레벨 이용권이 활성화됩니다.]
아서는 놀란 표정을 숨기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레모리 앞에서 그러한 표정을 지을 순 없지.
일명 체통.
그의 눈에 보였다.
껍데기뿐인 병영, 치료소, 배움의 터 그 모든 것들 위로 ‘즉시 건설’이라는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이렇게 육안으로 쉽게 확인도 가능하게 해주고.’
좋다.
이 VIP라는 능력.
아서는 자신의 총합 골드를 확인해 봤다.
‘99,600골드.’
기존에 다른 군주들이 2만 골드만 가지고 시작하는 걸 생각하면 넉넉하다 못해 차고 흐른다.
이중 36,000골드 정도는 전멸의 토벌대에서 살아남은 견습 군주들이 아서에게 선물 기능으로 보내준 거다.
골드로 보내는 선물은 보통 군주의 이름만 알아도 가능한데, 이러한 기능은 군주보호기간일 때만 가능했다.
‘안 보낸 놈들은 내가 다 기억해 놨다.’
입을 쓰윽 닦은 놈들. 그들은 추후에 불이익 받을 때가 올 것이다.
‘루이스도 보냈군.’
의외다.
더 의외인 건 3%의 골드를 보냈다는 거다.
쪽지와 함께.
‘서로의 영지 발전을 위해 함께 연맹을 만들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아서는 피식 웃었다.
받은 돈은 잘 쓰겠다.
하지만 놈이 보이는 가식적이고 계산적인 것은 받지 않을 생각이다.
아서는 성을 돌아봤다.
그리고 말했다.
“성을 건설한다.”
‘지금 무슨……?’
그레모리는 의아한 표정이다.
그럴 수밖에.
만약 충성심 높은 그레모리가 아니라 일반 군주들이 봤다면 이리 말했을 거다.
‘미친놈. 그런다고 건설이 되냐?’
아무리 게임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도 본래 영지의 건설은 영지민을 지원을 받아야 하며 시간이 꽤 소요되니까.
하지만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성 곳곳이 움직이며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레모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헉……!”
개의치 않고 아서는 다시 몸을 돌려 영지를 내려다봤다.
“성벽 건설.”
그레모리의 눈이 성벽이 있는 곳으로 홱 돌아갔다.
툭 치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성벽에 돌들이 채워지며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대사관 건설.”
대사관이 건설된다.
“병영, 대장간, 치료소, 배움의 터, 기록의 탑, 전쟁의 광장. 모두 건설.”
아서의 그 짤막한 말 한마디에 뼈대만 남아 있던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영지를 내려다보며 그레모리는 믿을 수 없어 눈을 크게 뜨며 아서와 변화하는 영지를 번갈아 보았다.
“가, 감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래.”
“어떻게 하신 거죠?”
“난 특이한 케이스다. 현실에서 군주 육성기를 주웠고 이 육성기가 내가 대단한 업적을 달성하자 이토록 할 수 있는 특혜를 주었지.”
굳이 숨길 필욘 없다.
그녀는 아서에게 복종한다.
아서가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자 그녀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극비다.”
“예…….”
‘현실에서 군주 육성기를 주우시다니…….’
놀랍다. 그리고 태연하게 말하는 아서를 보자 더 놀랍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결코 어린애처럼 가볍지 않았으니까.
또 그는 걸음걸이 하나하나까지 완벽한 군주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아서가 은빛 망토를 휘날리며 몸을 돌리고 말했다.
“영지를 둘러본다.”
“아, 네……!”
그레모리가 짧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서둘러 아서의 옆에 섰다.
* * *
그레모리와 함께 영지 밖으로 나왔다.
아서의 등장에 영지민들이 하나같이 절을 했다.
아서는 그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나리오대로…….’
황무지 같은 영지다.
더군다나 영지민들은 배를 곯아 모두 비쩍 마르기까지 했다.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튜토리얼을 시작했을 때는 특혜로 식량을 조달하지 않고 구매할 수 있다.
본래 식량은 군주가 영지 밖에 있는 토지를 개척하고 그곳의 몬스터를 사냥한 후로 얻을 수 있지만 초반엔 아니다.
초반엔 얼마를 들이든 식량 구입이 가능하다.
거기에 추가로, 아서는 캐시로 계속해서 식량을 구입할 수 있었다.
다른 군주들과 달리 영지에 식량이 떨어져도 캐시로 구매할 수 있다는 거다.
“하나같이 못 먹어서 힘들이 없어 보이는군.”
하지만 영지민들의 눈을 보면 아서에게 큰 기대를 가진 듯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뭐, 대부분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초기에도 매우 중요하다.
지금은 이렇듯 자신을 존경하는 듯 보이는 영지민들이지만 만약 배고픈 영지민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땐 돌변할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엔 영지민들이 성을 습격하는 우스운 경우도 봤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식량을 구매해야겠어.”
“맞습니다. 우선 식량을 구매하시고 나머지 영지민들을 먹일 식량의 경우 영지 바깥으로 나가 토지를 개척하고 그곳에 농장, 벌목장을 개척하시면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아서는 그레모리를 돌아봤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보통 그렇게 하는 게 맞긴 하다.
하지만 아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면 식량을 배분받은 영지민은 배불리 먹고 다른 영지민은 주린 배를 잡고 기다려야 하잖아.”
“그게 싫으시다면 병사들을 이끌고 개척부터 하신 후에 농장을 건설하시고 그때 모든 영지민을 먹이심이…….”
“그러진 않을 거야. 가뜩이나 배고픈 사람들 기다리라고? 난 지금 당장 모두가 배 터지게 먹을 수 있게 하고 싶어.”
아서는 쓰게 웃었다.
영지민의 만족도를 큰 폭으로 올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
가장 빠르게 그들을 배불리 먹인다.
그리고 식량 걱정 없게 한다.
아서는 지체하지 않고 골드 상점을 오픈했다.
그곳에서 특혜로 구매할 수 있는 식량을 클릭했다.
그다음 4만 골드를 들여 식량을 모조리 구매했다.
“하지만 지급받으신 2만 골드로 보통 모든 건설을 끝내면 3천 골드 정도만 남기에 3천으로 모든 영지민을 먹이기엔 턱없이…….”
그레모리는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하려 했다.
그러던 중 그레모리는 깜짝 놀랐다.
‘억?! 시, 식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