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군주회귀록 031화
8장 졸작의 탄생
뜻밖이었다.
듣기만 해도 결코 범상치 않은 늑대였다.
그러고 보면 이 녀석은 다른 잿빛 늑대에 비해 크기가 훨씬 작았다.
딱 아서가 타기에 적당할 정도.
척 보기에도 어린 잿빛 늑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달리는 속도와 뛰어난 전투 센스에 아서는 몇 번이나 감탄했었다.
동기화가 되자 녀석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신이 뭘 해주기를 원하는지가 느껴졌다.
잿빛 늑대는 지금 기분이 좋았다.
자신의 주인을 만나게 되어서.
놈의 생각까지도 아서에게 흘러들어 왔다.
적임자를 찾지 못한 녀석은 홀로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본디 바르타족과 잿빛 늑대는 서로가 태어나는 순간 3개월 내외로 함께하게 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이런 귀하디귀한 놈을 맡길 순 없었을 거다.
‘왕자’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 잿빛 늑대는 무리에서 소외되었다.
일단 주인도 없었으며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위압감이 다른 잿빛 늑대들이 멀어지게 만든 거다.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녀석은 곧이어 머리를 숙이고 들어왔다.
“만져달라고?”
아서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어 주었다.
크르! 크르!
울음소리가 독특하다.
녀석이 매우 기뻐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아서 본인도 그를 매우 좋아하고 있음이 잿빛 늑대에게 느껴지고 있었다.
“펜루스. 너의 이름은 앞으로 펜루스다.”
잠시 고심하던 아서가 이름을 결정했다.
펜루스.
아스간 대륙의 신화 속에 내려오는 늑대.
아서가 알고 있는 펜루스에 대한 신화는 한 작은 마을에서 꼬마 소년에 의해 구출된 늑대가 함께 자라났다는 것으로 시작된다.
꼬마 소년에 의해 치료를 받고 그 가족과 함께 나날을 보내던 중 그 마을에 수백 마리의 오크가 습격을 가했다.
그때에 펜루스는 자신의 어린 꼬마와 그 부모를 지키기 위해 홀로 용맹하게 싸워 오크 수십 마리를 혈혈단신으로 죽이고 놈들이 도망치게 만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용맹하다.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운다.
나를 위해 싸워달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
[잿빛 늑대 왕자의 이름이 펜루스로 지정됩니다.]
[펜루스의 상태창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서는 망설이지 않고 펜루스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펜루스)
소환수
HP: 900 MP: 30
총합 공격력: 140
총합 방어력: 107
등급: D
잠재력: 77
소환수는 몬스터처럼 몇 성으로 표기되는 것이 아닌 등급으로 표기된다. 영지전을 시작하고 얻는 병력 유닛도 마찬가지다.
이 소환수나 부리는 병사들의 등급은 E부터 시작해서 D, C, B, A, S, S까지 존재한다.
잿빛 늑대 왕자인 펜루스가 D급이라는 건 낮다고 생각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펜루스는 덜 자라난 새끼 잿빛 늑대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거기에 잠재력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잠재력 77
아스간 대륙에서 마스터, 그리고 군주로서도 그 정도의 무력을 발현했던 아서의 잠재력이 108인 수준이다.
최정예 기사단원들의 잠재력이 보통 잿빛 늑대보다 조금 낮은 편이었다.
소환수도 성장이라는 걸 한다.
이 잠재력을 보자면 펜루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띄게 강해질 것이다.
크르!
이젠 펜루스가 배까지 발라당 까고 만져달라고 애교를 피우고 있었다.
[로열 클래스 퀘스트 절대군주 아칸의 시험 완료.]
알림이 울렸다.
그 알림에 아서는 녀석에게 뻗던 손을 멈췄다.
펜루스는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아서가 흥분감에 고조되어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창조주 군주의 말도 안 되는 사기적인 능력!
그것을 얻게 될 테니까.
[창조주 군주로 전직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 10+를 얻었습니다.]
[손재주 20+를 얻었습니다.]
[기초 그림 그리기 세트가 지급됩니다.]
[창조주 군주 스킬이 생성됩니다.]
[기여도 150%를 넘어 160%를 달성! 절대군주 아칸이 특별 보상으로 ‘죽음의 그림’ 스킬을 추가로 지급합니다.]
상태창을 열어 확인해 봤다.
(아서)
직업: 창조주 군주
HP: 930 MP: 490
힘: 69+2% 민첩: 63+5
체력: 53 지능: 33
지구력: 31 카리스마: 28
손재주: 20
잠재력: 108
⦁보유 스킬
통솔(2), 스캔(1), 예술의 기억(?), 창조의 그림(1), 가속 그리기(1)
⦁아티팩트 스킬
은신, 아머 브레이크
일단 생겨난 스킬은 네 가지였다.
예술의 기억과 창조의 그림, 그리고 가속 그리기와 죽음의 그림.
아서는 세부 설명을 확인했다.
(예술의 기억)
엑티브 스킬
등급: S
레벨: ?
숙련도: 0%
소모 마력: 50
설명: 당신의 뇌리 속에 깊게 박혀 있는 장면을 그려내라. 하루에 한 번 사용 가능.
(창조의 그림)
엑티브 스킬
등급: S
레벨: 1
숙련도: 0%
소모 마력: 40
설명: 환상으로 무언가를 그릴 수도, 공격력을 갖춘 무언가로도 그릴 수도 있다. 건물을 그린다면 건물이, 나무를 그린다면 나무가, 당신이 그리는 모든 것이 눈앞에서 나타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그림)
엑티브 스킬
등급: SS
레벨: 1
숙련도: 0%
소모 마력: 100
설명: 본인에게 죽은 지 30분 내의 이에게 사용할 수 있다. 스킬 사용시 사용자의 소환수가 되어줄 것이다. 부릴 수 있는 숫자 다섯. 적의 급에 따라 실패할 수도 있다.
(가속 그리기)
패시브 스킬
등급: A
레벨: 1
숙련도: 0%
설명: 남들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중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스킬은 예술의 기억이었다.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
기억에 남는 것.
답은 빠르게 나왔다.
모든 병사들이 죽을 뻔한 일촉즉발의 순간에 자신이 바르타족을 이끌고 승리로 이끌었을 때였다.
아서는 기초 그림 그리기 세트를 인벤토리에서 확인했다.
정말 기초 그림 그리기 세트였다.
특수 능력이 하나도 없는.
붓을 쥐는 아서의 손은 매우 어색했다.
‘손재주가 있다고는 하지만…….’
손재주 스탯+20을 얻었다.
하지만 손재주 스탯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높아졌기 때문에 남들보다 훨씬 더 빠르게 배우고 추후 안정이 되면 더 나아지게 도와줄 뿐.
“저, 아서…….”
“잠시만요.”
아서는 옆에 있는 알레오가 말을 걸어왔지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백 마리의 바르타족과 오우거.
모두를 표현하자니 쉽지 않았다.
아서는 거의 점을 찍듯이 그림을 그려나갔다.
사실상 아서가 정말 지독하게 못하는 분야가 그림 그리기 같은 거였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워낙 집중하고 있던 터라 병사들과 기사, 포로들은 말을 걸 수도 없었다.
그저 기다리며 자신들끼리 오순도순 둘러앉아 오늘 아서가 일구어낸 업적과 그가 언덕 위에서 나타났던 모습은 평생 길이길이 남을 것 같다며 시끌벅적 떠들었다.
세 시간에 걸쳐 완성된 작품!
아서는 양피지를 양손으로 들어 올려 확인해 봤다.
“끝났다…….”
그는 자아도취에 취했다.
살면서 그림을 몇 번이나 그려봤겠는가.
이 정도면 나름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반대로 자아도취에 빠진 아서가 그린 그림을 보기 위해 그의 뒤로 왔던 알레오와 포로, 병사들이 경악했다.
‘저, 저게 그림이야……? 손에 물감 발라서 양피지에 찍은 것 같은데.’
‘우리 집 멀슨도 저거보단 잘 그리겠군…….’
멀슨은 한 병사가 집에서 키우는 개였다.
그 정도로 아서는 그림에 재주가 없던 것이다.
“어떻습니까? 처음 치고 잘 그리지 않았습니까?”
“괘, 괜찮군요…….”
“하늘과 땅이 오목조목 잘 조화되어 아름답습니다. 하핫……!”
아서는 머쓱하게 웃었다.
양피지에 손을 뻗은 아서는 ‘예술의 기억’을 사용해 봤다.
[예술의 기억이 미숙한 부분을 보완합니다.]
그의 손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가 그림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점을 찍은 것처럼 보잘것없어 보이던 형상들이 더욱더 구체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방금 전보다는 확실히 그림이 나아졌다.
[예술의 기억이 점수를 측정합니다.]
[졸작이 탄생했습니다.]
[졸작의 이름을 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조, 졸작?”
작품에 등급이 매겨지는 시스템.
그것보다 졸작이라니?
이게 어딜 봐서 졸작이란 말이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눈을 게슴츠레 떴다.
“음…….”
그래, 졸작.
인정할 건 하는 게 낫겠다.
[작품의 이름을 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서는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역전의 군주.”
[졸작. 역전의 군주가 그림도감에 등록되었으며 언제든 꺼내 보실 수 있습니다.]
[졸작. 역전의 군주를 본 모든 자가 1시간 동안 모든 힘+2 효과를 얻습니다.]
“……!”
아서는 깜짝 놀랐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1시간 동안 힘+2의 효과라니?
이런 버프 능력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군다나 단순히 본 것만으로라는 것이 중요하다.
거기에 그림도감에서 언제든 꺼내서 남에게 보여줄 수 있다.
필요할 때마다 원하는 버프가 담긴 그림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거다!
확실히 그러고 보면 예술의 기억은 자그마치 S급에 해당된다.
현재 풀려 있는 등급의 최고치!
거기에 레벨이 ‘?’로 되어 있다.
즉, 네가 하기 나름이라는 의미였다.
[졸작의 탄생으로 손재주+1를 얻었습니다.]
‘거기에 보상까지…….’
졸작이지만 능력치 상승 효과까지 있었다.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능력이다.
‘내 그림 실력이 좋아진다면 더 나은 보상을 받을 수 있겠는데?’
당연한 것일 거다.
아서는 이제 그림 그리기의 기초도 떼지 못한 사람이다.
그가 만약 그림을 배워 제대로 그리기 시작한다면 보상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다른 스킬들인 ‘창조의 그림’과 ‘죽음의 그림’.
창조의 그림도 자그마치 S등급이었다.
한데, 더 나아가 죽음의 그림은 SS급!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스킬의 등급이었다.
‘확실히 로열 클래스라는 건가?’
죽음의 그림을 사용해 볼까도 했지만 모두 죽은 지 30분이 지나서 사용 불가다.
또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때였다.
아서가 그림 그리는 것을 끝내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알레오가 굉장히 비장한 표정으로 포로들과 함께 아서의 앞에 섰다.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서의 인사에 알레오는 곧이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뒤를 이어 다른 포로들도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아서는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베일에 감춰진 자들.
가장 앞에 있는 알레오가 입을 열었다.
“군주님,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
* * *
아스가르드 대륙은 단순히 군주게임을 하는 곳이 아니었다.
이 대륙에는 다양한 역사가 숨어 있고 이것이 시나리오 퀘스트와 같은 걸로 연계되는 경우도 있다.
알레오를 비롯한 포로들은 300년 전 아스가르드 대륙 전역을 공포로 물들였던 피의 학살대의 일원이었다.
피의 학살대.
그들은 날 때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아왔던 자들이다.
아서가 알고 있는 아스간 대륙의 철혈의 군단?
그 정도 수준은 피의 학살대가 받았던 훈련에 비하자면 새 발의 피 수준일 것이다.
날 때부터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병기로 키워진 자들.
오로지 전쟁터에서 승리하기 위해 키워진 살인 병기들.
그것이 피의 학살대다.
피의 학살대는 총 3천 명의 병사와 200명의 기사들로 구축되어 있다.
숫자는 적었지만 이들의 아스가르드 대륙의 역사 속 승리를 보자면 엄청난 수준이었다.
고작 3,200명의 병력으로 5만 명의 제국군을 쓸어버린 알렌토 제국군 습격 작전.
그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업적.
그렇게 이들은 오로지 사람을 죽이기 위해 태어나 죽이는 기쁨만을 만끽하는 살인 병기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피에 취한 그들에게 재앙이 찾아왔다.
고대의 마법사인 루헤드.
그가 나타났다.
그는 피의 축제를 즐기는 그들에게 저주를 내렸다.
모든 자가 동상이 되었다.
알레오를 비롯한 다른 포로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데 어느 날 그들만이 동상에서 풀려났고, 눈을 떴을 때는 ‘포로’라는 이름을 가지고 늑대들 사이에 던져졌다.
늑대들 사이에 던져진 그들은 구하러 올 이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몇 번 그들을 구해준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딱 그뿐이었다.
시스템은 그들에게 말했다.
임의로 자신들의 정체를 발설할 시 너희들도 동료들도 영원히 깨어날 수 없을 거라고.
그들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고 자신을 구해준 이들은 영지로 떠나갔다.
그리고 반복, 반복, 반복이었다.
풀려나고 토벌대가 끝나면 다시 묶여져 늑대들 사이에 버려졌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아아, 늑대에게 죽는 것은 정말 고통스럽구나. 아아아, 우리는 이제까지 진짜 즐거움을 몰랐구나.
죽이는 것만이 즐거움이라고 여겼던 그들은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도 가정을 이루고 싶다.
우리도 진짜 행복을 알고 싶다.
고된 일상 뒤에 흑맥주 한 잔을 곁들이는 그런 삶.
왜 그런 삶을 이제야 동경하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피의 학살대가 되었을까!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러던 중 어린 소년이 분대원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그는 포로들을 자그마치 서른 명을 살려내고 언제나처럼 몸을 돌려야만 하는 자신들에게 말했다.
도와달라고.
그 말과 함께 알레오와 포로들은 알림을 들었다.
저 소년을 도와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