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군주회귀록 030화
‘일단은 피한다.’
수풀에 병사들과 숨어 있던 알레오는 뒤쪽에서 나타난 오우거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쪽으로.”
알레오는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리 봐두었던 동선대로 병력을 이끌었다.
그들은 뒤쪽에서 쫓는 오우거를 피해 뛰었다.
알레오는 그렇게 한참을 달려서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헐떡이는 병력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 자신들처럼 몬스터를 피해 온 듯 보이는 병력과 만날 수 있었다.
두 개의 흩어진 병력이 합쳐져 100명이 되었다.
“휴우, 이 정도면…….”
됐겠지?
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갑자기 주변의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지직!
콰지지직!
주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다.
허공에 균열이 생긴다.
주변에 있는 숲과 나무들이 스르르 사라진다.
“서, 설마!”
아서가 일러주기로 상대방은 나무, 풀, 자연, 모든 것을 그려서 형체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알레오의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갔다.
던전 마스터는 산에 아서와 일행이 오르기 전 미리 새로운 것들을 그려뒀던 거다.
하늘, 땅, 나무, 풀. 그 모든 것을!
즉, 알레오와 병력들은 이제껏 그가 만들어낸 공간이 진짜라고 믿고 뛰고 있던 거다.
그리고 그 공간은 던전 마스터 카르만이 그려낸 허상 속이었고.
챙그랑!
챙그랑!
빈 허공에 생긴 균열이 와장창창 깨졌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알르만.”
“헉, 알레오 님!”
알레오는 직감했다.
함정에 걸렸다는 걸.
자신들이 도망친 곳은 카르만이 일부러 숨기 좋은 곳으로 그려냈겠지.
또 여러 병력이 모일 수 있게 판을 짰을 거다.
주변을 둘러보자 방금 전 자신들이 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엄청난 능력이다.’
허상 오우거를 보긴 했지만 나무를 그리면 진짜 나무처럼 보이고, 풀을 그리면 진짜 풀처럼 보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이라니.
“우리는 몰이를 당했다.”
알레오는 족히 500명의 병력이 한자리에 모인 걸 볼 수 있었다.
만약 이곳을 몬스터들이 포위한다면…….
크아아아아!
커르으으!
예상대로였다.
모두가 카르만이 원하는 대로 움직인 것이다.
“아, 안 돼…….”
“오오. 줄리아…….”
“주, 죽고 싶지 않아…… 이런 병신들. 이래서 저런 근본도 없는 새끼들을 믿으면 안 되었는데!”
주변에서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들을 포위한 몬스터들은 오우거, 트롤이었다.
놈들이 흉악한 괴성을 터뜨렸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2시간이 지나면 몬스터는 좀 더 강해져서 나타날 겁니다.’
아서의 그 말이 떠올랐다.
병사들은 꼼짝없이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내와 아이, 연인의 이름을 울부짖었다.
누군가는 지레 겁을 먹고 주저앉기까지 했다.
괜히 알레오는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 자신마저 무너져선 안 된다.
“모두 전투 준비!”
“저, 전투 준비!”
“전투 준비이!”
모두가 절망하면서도 작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외쳤다.
드디어 몬스터들이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
그때 요란하게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알레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앞쪽에 거대한 몬스터들을 두고 한눈을 팔 순 없는 노릇이었다.
막 몬스터들과 충돌을 하려던 그때였다.
푸슈슈슉!
푸슈슈슉!
허공에서 내려온 화살비가 몬스터들을 꿰뚫기 시작했다.
알레오는 깜짝 놀랐다.
자신도 활을 쏘긴 하지만 화살의 명중률이 대단했다.
아군 중 그 누구도 눈먼 화살에 맞지 않았다.
알레오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엔 언덕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잿빛 털의 늑대에 올라탄 은빛 갑옷을 입은 사내가 있었다.
“아, 아서 경…….”
알레오는 아서를 기사의 칭호를 붙여 불렀다.
곧이어 그의 양옆으로 파란색 피부를 가진 자 수백이 잿빛 늑대와 함께 나타났다.
* * *
잿빛 늑대 위에 타고 있는 아서는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큰일 날 뻔했군.’
어쩌다 몰이를 당했는지는 모르지만 늦진 않았다.
타다닷! 타다닷!
아서가 탄 잿빛 늑대가 선두로 달리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아!”
적어도 병사들은 알고 있었다.
아서가 아군을 데려왔다는걸!
병사들은 감탄했다.
잿빛 늑대에 타 수백의 무리를 이끌고 앞장서서 진격하는 아서.
또 그가 입은 은빛의 갑옷과 펄럭이는 망토!
아아아……! 아서 사령관님!
누군가 감탄하여 소리쳤다.
가장 선두에서 달리는 아서가 곧이어 산에서 보았을 때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찾은 오우거에게 창을 휘둘렀다.
[크리티컬이 터집니다.]
화아아악!
오우거가 사르르르 사라졌다.
아서가 몬스터들 사이에 난입해서 길을 열기 시작했다.
“돌격하라!”
푸슈슈슉!
푸슈슈슉!
아서보다 뒤늦게 도착한 잿빛 늑대들이 몬스터들을 단숨에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허공에 스르르 사라진다.
잿빛 늑대 한 마리가 오우거 한 마리를 짓이겼다.
바닥에 쓰러진 오우거를 향해 컬투가 망설이지 않고 활시위를 당겼다.
사르르르!
“정말 이게 환상이라니, 믿기지가 않는군.”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오우거를 보며 컬투가 중얼거렸다.
푸슈슈슉!
푸슈슈슉!
허공에서 내리는 화살비가 병사들을 공격하려는 몬스터들을 삽시간에 잡아냈다.
거기에 잿빛 늑대들이 오우거들을 밀어붙였다.
오우거들은 현재 50% 정도의 힘을 내는 것으로 보였다.
잿빛 늑대보단 약한 수준!
‘아서 경은 도대체…….’
알레오는 그를 볼 때마다 놀랐다.
대체 저 소년은 뭐란 말인가.
하지만 그러면서도 헛웃음을 지었다.
‘우리도 정체를 숨기고 있으면서…….’
누군가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들이 받은 일종의 벌이었다.
푸하아악!
아서가 힘껏 오우거의 목젖에 창을 꽂아 넣고 뽑아내자 스르르 사라졌다.
쿠헤에에엑!
거친 포효.
트윈 헤드 오우거가 나타났다.
컬투와 아서가 눈을 맞췄다.
“가자!”
“흐압!”
두 마리의 잿빛 늑대가 몬스터들의 틈을 빠르게 지나갔다.
곧이어 아서가 탄 잿빛 늑대가 높게 도약해 올랐다.
크와아아아!
잿빛 늑대의 몸에서 아서가 번쩍 뛰어올랐다.
트윈 헤드 오우거의 주먹이 그 사이를 갈랐다.
‘제발…… 제발…….’
아서는 간절히 원했다.
20%야 터져라!
[크리티컬이 터집니다.]
푸지직!
아서는 씨익 웃었다.
크아아아아!
어느덧 컬투가 도착했다.
바르타족 최고의 전사 컬투!
그가 트윈 헤드 오우거의 몸에 박힌 창을 뽑아내 아서에게 던졌다.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은가.”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띠링!
[기여도 140% 달성. 절대군주 아칸이 추가적인 특혜를 카르만에게 줍니다.]
죽었던 몬스터들이 주변을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시 채워진 몬스터들도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바르타족은 싸움을 좋아하진 않지만 한번 시작하면 종족 중에서 순위를 다툰다.’
그만큼 강한 자들이다.
특혜를 받았다 한들 몬스터들은 또다시 허무하게 쓰러진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저희가 돕겠습니다!”
곳곳에서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서가 날린 칼새의 지시를 받고 병사들이 지원을 위해 온 것이다.
‘여긴 걱정 없다.’
추가적으로 특혜를 받아도 카르만은 이미 패배가 확실하다.
아서가 무리를 벗어나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잿빛 늑대는 웬만한 말만큼이나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거기에 말과 다르게 공격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참으로 유용하다.
타다닷! 타다닷!
특히나 잿빛 늑대의 장점 하나가 더 존재했다.
그건 바로 말과 달리 산을 매우 잘 탄다는 것이었다.
산에 도착하자마자 아서와 잿빛 늑대의 몸이 투명해지며 사라졌다.
탓!
은빛 날개 세트의 은신이 발동된 것이다.
잿빛 늑대의 발자국만이 그 둘이 빠르게 산을 오르고 있음을 증명했다.
* * *
카르만은 몇 가닥 없는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바, 바르타족이라니, 이건 사기야!”
말도 안 되는 일!
바르타족이 여기에 왜 있단 말인가.
거기에 어째서 저 꼬마를 돕고 있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서가 기여도 150%를 달성합니다.]
[절대군주 아칸이 당신에게 특혜를 부여합니다.]
카르만은 다급하게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 몬스터들은 60% 강해진다.
거기에 골드도 충족되었다.
하지만 나타나는 족족 바르타족들이 단숨에 죽였다.
60%로 강해졌다고 한들, 애초에 바르타족 개개인은 인간이나 오크 같은 자들과 태생이 다른 강한 종족이라는 거다.
“제기랄!”
[기여도 160를 달성…….]
또다시 알림이 들린다.
그래, 이렇게 계속 특혜를 주라고! 오우거가 100%의 힘을 내면 어느 정도 진정되겠지.
어째서 절대군주 아칸이 자신에게 특혜를 주는지는 모르지만 그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그때.
“동작 그만.”
카르만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
목 끝에 서슬 퍼런 창이 닿아 있었다.
흥분한 나머지 누가 다가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허공에서 나타난 아서.
“투, 투명화?”
그는 자신이 꼬마라고 비웃었던 견습 군주였다.
카르만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아니, 이건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모든 것을 예측하고, 말도 안 되는 특별한 일을 해냈으며, 마지막에는 바르타족을 끌고 왔다.
이 무슨 허무맹랑한 말인가.
또 더 화가 나는 것은 아서는 끽해야 견습 군주라는 사실이다.
“미, 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다고……! 네놈 부정행위를 저지른 거지?! 응?”
카르만이 흥분해 소리쳤다.
‘전생을 겪은 게 부정행위는 아니지.’
아서는 쓴웃음을 삼켰다.
카르만은 못생긴 얼굴이 붉어지기까지 했다.
얼마나 화가 난 건지 눈까지 붉다.
“내 네놈을 잘근잘근 씹어서…….”
푸득!
“삼켜…… 버릴……?”
카르만은 자신의 가슴에 박힌 창을 바라봤다.
아서는 망설이지 않고 뽑아냈다.
푸슉!
그래야 이 전투가 끝난다.
[사령관 아서가 던전 마스터 카르만을 사냥했습니다.]
[아서가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쓰러지는 카르만을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아서는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려 잿빛 늑대 위에 올라탔다.
그가 빠르게 하산하기 시작했다.
* * *
스르르르.
스르르르.
“와아아아!”
“이겼다!”
인간과 바르타족들이 한데 어울려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컬투는 아서가 적장을 사냥했음을 알 수 있었다.
컬투는 아직도 그 모습이 뇌리에 남아 있었다.
‘내 말에는 한 치 거짓도 없다. 내 말이 거짓이라면 당장 날 죽여도 된다.’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아서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에 결단을 내렸다.
그를 마을로 데려갔었고, 그가 말한 대로 바락쿠의 꽃잎과 하일론 풀을 7:3 비율로 빻은 후에 루켈마스 전염병으로 고생하는 자신의 아이에게 먹였다.
루켈마스 전염병은 피를 토하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며칠 이내에 죽는다.
바르타족 최고의 전사 컬투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시도를 해봤고 단 5분 만에 아이의 혈색이 돌아왔다.
컬투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모든 이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바르타족은 ‘의리’에 강하다.
다른 종족과 어울리기 싫어하지만 은혜를 한번 입으면 꼭 그 은혜를 배로 갚아줘야 직성이 풀린다.
전투에서 피해를 입은 바르타족도 있긴 했으나 아서라는 자가 건네준 전염병 치료약에 더할 바가 있을까.
“콜로드는 장차 내 뒤를 이을 전사가 타기로 되어 있던 늑대다. 부디 내 선택에 후회가 없길…….”
그는 허공에 중얼거리고는 잿빛 늑대 위에 올라 몸을 돌렸다.
그를 따라 바르타족 모두가 몸을 돌려 유유히 언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거래가 끝났으니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던 때 아서가 도착했다.
아서는 언덕 위에 잠시 멈추어선 컬투를 바라보았다.
“늑대는 안 데려가나?”
아서는 그가 자신이 탄 잿빛 늑대를 두고 가자 고개를 갸웃했다가 곧이어 이해할 수 있었다.
‘선물인가 본데?’
아서는 흡족해했다.
[잿빛 늑대 왕자가 당신을 주인으로 인식합니다.]
[잿빛 늑대 왕자와 당신의 동기화가 시작됩니다.]
[잿빛 늑대 왕자의 이름을 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잿빛 늑대 왕……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