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군주회귀록 024화
순백의 새하얀 로브를 두르고 있는 남성은 금발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매우 잘 어울리는 미남이었다.
그는 턱을 느리게 쓰다듬으며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서는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서가 몇 걸음을 떼었다.
한데 자신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서는 자신이 형체화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금발의 남성에게 손을 뻗자 자연스럽게 팔이 통과했다.
벌컥!
“아칸 군주님, 브렉이 5만의 오크를 이끌고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이제 곧 영지에 도달합니다.”
“진정해라, 라우델. 그깟 오크들이 무엇이 무섭다고.”
아칸.
금발의 미남자가 아칸이라는 사실을 아서는 알 수 있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붓을 들었다.
아칸이 눈앞에 보이는 투명한 홀로그램을 손으로 한 번 쓰윽 훑었다.
그러자 홀로그램에 진격하고 있는 오크들의 모습이 비쳤다.
“그들을 기다리는 건 수백 마리의 와이번이다.”
빙긋 웃은 아칸이 홀로그램의 하늘에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백 마리의 와이번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빠르고 정교했다.
곧이어 그림이 완성되고 아칸의 손에서 미약한 빛이 뿜어져 나갔다.
그림이 변화했다.
수백 마리의 와이번이 오크들을 공격하는 그림!
아서는 자신의 몸이 빛에 휩싸이는 걸 느꼈다.
눈을 떴을 때 그는 오크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와이번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려낸 것들이 힘을 가졌다…….’
믿기지 않는 능력.
창조주 군주.
그려내는 걸 형상화한다.
그리고 아서의 귓가로 울리는 아칸의 목소리.
-그들이 강력한 힘으로 와이번을 쓰러트리고 있다. 놈들은 오만해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우리에겐 그들과 맞서 싸울 힘이 없다. 하지만 바보 같은 오크들은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고 도망칠 것이다.
아서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엄청난 숫자의 투석기들이 아무것도 없던 대지에 그려지고 있었다.
그 그림을 그리는 손은 산처럼 거대했다.
그려진 수천 개의 투석기.
그 뒤로 그려지는 것들의 정체는…….
‘드, 드래곤…….’
-드래곤은 허상에 불과하다. 하나 그 누가 드래곤을 보고 겁먹지 아니할까. 그들은 우리의 속임수에 깜빡 속아 넘어가 공포에 떨 것이다. 그리고 이 안에 진짜를 하나 섞는다.
쿠하아아아아!
열 개의 환상.
그리고 그중 한 마리의 드래곤은 진짜다.
놈이 엄청난 브레스를 뿌렸다.
오크 100여 마리가 순식간에 녹아 흩어진다.
“취이익, 브, 브렉 군주님. 보십시오! 아, 아칸이 드래곤 열 마리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취익,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 어찌 드래곤을 열 마리나…….”
후우우웅!
콰아아앙!
후우우웅!
콰아아앙!
투석기가 움직이며 거대한 돌이 오크들 사이로 떨어진다.
단숨에 수십 마리의 오크가 죽음을 맞이한다.
‘아칸의 병력으로는 절대 오크들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그는 환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너희는 나를 이길 수 없다고. 진짜 하나를 섞어놓은 것은 그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함.’
아서는 놀랍디놀라운 능력에 치를 떨었다.
자신에게 이 영상을 보도록 한 이유를 깨달았다.
‘미치도록 가지고 싶지 않나?’
절대군주 아칸이 질문하는 것 같다.
이어 허공에서 나타난 거대한 손은 또 다른 것을 그려낸다.
수십만의 병사!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그들의 함성이 천지를 흔든다.
“취이익! 브, 브렉 군주님. 보십시오. 아칸 군주는 이제껏 저토록 많은 병력을 숨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에 드래곤과 저 엄청난 개수의 투석기는……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취이익, 후, 후퇴한다.”
브렉 군주는 이제까지 아칸이 움직이지 않은 것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상대할 가치가 없어서였다고 생각하는 데까지 도달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열 마리의 드래곤, 수십만의 병력, 엄청난 투석기들을 가지고도 도발하는 자신들을 지켜만 볼 리 없잖은가.
그는 그저 자신들을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여긴 거다.
하지만 정반대다.
아칸의 영지는 사실상 브렉의 오크들과 싸울 힘이 없었기에 기다렸을 뿐.
그들이 허상을 보고 더 이상 자신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오크들이 후퇴한다.
그리고 이어 그려진 모든 것이 스르르 사라진다.
아서가 다시 빛에 휩싸였다.
아칸은 도망치는 오크들을 홀로그램을 통해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는 것이 곧 힘이다. 가지고 싶지 않나?”
그의 시선은 정확하게 아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힘은 어울리는 자가 가지는 법.”
그 말은 카르만은 그 힘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 같았다.
“그대가 적임자 같군.”
아서의 눈앞을 밝은 빛이 감쌌다.
* * *
“허억!”
거친 숨을 토한 아서는 번쩍 눈을 떴다.
열 명의 병사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아서를 보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내가 잠들어 있었나?”
“그렇습니다. 갑자기 픽 쓰러지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혹여 무리하셔서 그런 것은 아닙니까?”
병사의 말에 아서는 고개를 저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눈앞에 뜬 홀로그램을 확인해 봤다.
(절대군주 아칸의 시험)
등급: S
지급 캐시: 30,000
보상: 로열 클래스 창조주 전직 +직업 중복 가능.
승낙 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시: 모든 직업을 가질 수 없음.
설명: 절대군주 아칸의 직업. 창조주에 도전하기 위한 시험. 던전 마스터 카르만을 죽이고 기여도 150%를 달성해야 한다. 절대군주 아칸은 당신을 시험하기 위해 카르만에게 시시각각 특혜를 줄지도 모른다. 단, 이겨낼 때마다 당신은 더욱더 강력해진 창조주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시각각 제시되는 상황.
아서는 잠시 생각해 봤다.
‘상황에 따라 카르만에게 나은 방향을 준다는 건가? 그러한 상황에서 내가 그걸 이겨내면 처음 창조주 클래스를 얻었을 때에 더욱 많은 스킬이 풀리는 거고? 흐음.’
얼추 이해한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시에 모든 직업을 가질 수 없다.
그건 참으로 원치 않는 일이지만 아서는 생각해 봤다.
‘풀 한 포기까지 그려서 전술 전략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절대 없을 기회다.’
여러 가지 시크릿 클래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아서다.
분명히 다른 직업 중복 가능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보통 일반 클래스나 시크릿 클래스는 중복 불가다.
로열 클래스만의 특혜라고 해야 할까?
다른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아서로서는 로열 클래스인 창조주의 군주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그리는 대로 형상을 갖춘다.
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이란 말인가!
또한 아서가 방금 전 보았던 아칸의 능력은 빙산의 일각일 뿐 아니겠는가.
현재 던전 마스터인 카르만은 큰 궤도에 오르지 못했고 알려진 사실도 많이 없다.
숨겨져 있는 무궁무진한 힘!
그것이 창조주 군주의 힘일 것이다.
‘승낙.’
아서는 지체하지 않고 시험을 승낙했다.
“가자.”
“안 쉬셔도 됩니까?”
“누워서 명상하면서 쉬었다.”
그 말에 병사들이 침묵했다.
‘우리 분대장님의 개그 센스는 꽝이구나.’
* * *
놀들을 잡으면서 나아가던 아서의 눈에 드디어 목적지가 나타났다.
“모두 상처를 회복시켜 주는 뱀들을 보았을 거다.”
그 말에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에 드디어 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뱀은 자신들의 몸속으로 들어와 상처를 회복시켜 주곤 다시 아서의 팔찌로 쏙 들어갔다.
경이로운 능력이었다.
“여기에서 단 한 명도 죽지 않을 것이니 모두 나를 믿고 따른다.”
“예!”
병사들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아서의 힘은 입증되었다. 그들의 몸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다쳐도 상처를 회복시켜 준 아서의 능력 덕분.
또한 패시브 스킬 ‘통솔’의 영향으로 그들은 이제 아서를 더욱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놀과의 전투가 끝났을 때에 숙련도 100%를 달성한 것인지 레벨 2가 되었다.
‘이 안에 있는 놈은 트롤 늑대.’
트롤 늑대는 트롤만큼의 재생력을 가진 거대한 늑대다.
그 외에 놈들이 거느리는 하얀 털 늑대들도 매우 민첩하고 강하며 놈들의 새끼들도 있다.
또 놈들은 영리하다.
침입자가 들어오는 순간, 수십 마리의 새끼 늑대들이 포로들을 죽이려고 들며 트롤 늑대와 하얀 털 늑대를 모두 잡지 않는 이상 수십 마리의 새끼 늑대를 공격할 수 없다.
최대한 많은 숫자의 포로를 살릴수록 보상으로 받는 것이 많아진다.
“우두머리인 트롤 늑대는 오로지 나를 빼고 공격하는 이는 없어야 한다.”
“예.”
모두의 대답을 듣고서 아서가 걸음을 뗐다.
울창한 수풀을 지나치자 모습을 드러낸 수십 명의 포로.
그들은 밧줄에 묶여 있었고 그들의 주위로 다섯 마리의 하얀 털 늑대가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작은 언덕 위에 유독 크기가 거대한 트롤 늑대가 있었다.
크아아아아!
트롤 늑대가 포효를 시작했다.
“사, 사람이다!”
“저, 저희 좀 구해주십시오!”
밧줄에 묶여 있던 자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살려달라 말했다.
그와 동시에 하얀 털 늑대들이 트롤 늑대의 포효를 시작으로 가장 앞장선 아서를 향해 달려들려 했다.
“이놈들이 감히 분대장님을!”
“공격해라!”
부분대장 랜스가 아서에게 뛰어드는 하얀 털 늑대들에게 병장기를 휘둘렀다.
병사들에게 놈들이 막혔다.
터억!
언덕에서 뛰어내린 트롤 늑대가 아서를 향해 거대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포효했다.
“아가리 좀 닥쳐라.”
아서가 미간을 구겼다.
트롤 늑대는 가소롭다는 듯 아서를 향해 번쩍 몸을 날렸다.
트롤 늑대는 2성급에 해당하는 몬스터로 분류된다.
강할수록 급이 올라가며 9성급까지 존재한다.
하지만 이 2성급에도 보스격이 존재한다.
트롤 늑대는 보스격에 해당된다.
보통 이런 놈들은 잡으면 후한 보상을 준다.
아티팩트 같은.
쿠롸아아아!
놈의 거침없는 돌격을 몸을 빙글 돌려 피해낸 아서가 창으로 옆구리 쪽을 힘껏 찔렀다.
푸지익!
쿠화아아!
놈이 포효를 터뜨리며 아서에게 거대한 입을 벌렸다.
아서가 창대를 놓고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크르르르!
카르르르!
구석에 숨어 있던 새끼 늑대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새끼 늑대는 우두머리인 트롤 늑대와 하얀 털 늑대를 모두 사냥하지 못하실 시 공격할 수 없습니다. 공격할 시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우지익!
“끄아악!”
포로 한 명이 뛰쳐나온 새끼 늑대에게 목덜미를 물려 비명을 질렀다.
최소 스무 명 이상은 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트롤 늑대를 빨리 정리해야 한다.
크르르르.
트롤 늑대가 이죽이며 웃었다.
네가 꽂은 창이 내 옆구리에 박혔다. 한데 내가 가진 치유 능력이 창이 박힌 상태로 상처를 치료했다고.
즉, 놈의 살이 창끝을 꽉 쥐고 있는 거다.
무기를 뽑는 게 여간 쉽지 않을 터.
무기도 없이 넌 어쩔래? 라고 묻는 것 같다.
그에 아서는 입을 비틀어 웃었다.
“제대로 낚았군.”
크르?
“애초에 뺄 생각도 없었다.”
그 순간.
트롤 늑대는 복부에 꽂힌 부위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크르르르!
몸속에 뜨거운 용암을 들이부은 듯한 고통!
“놀의 피는 쇠를 녹이지. 그것도 오랜 시간 천천히.”
놀의 피는 쇠를 녹인다.
쇠와 만나는 순간 엄청나게 온도가 상승한다.
현재 트롤 늑대의 몸속에서 놀의 피와 만난 쇠붙이가 천천히, 뜨겁게 녹아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