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군주회귀록 019화
6장 거절하죠
“총교관님,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카이저가 당장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던 오르웬이 한마디 덧붙였다.
“쪽팔린 줄 알아라, 카이저. 프레이트를 통해 내게 엿 좀 먹여보려고 했나 본데. 그마저도 안 되고 들통났으면 치욕스러운 줄 알아야지.”
“네년이 다 꾸며…….”
“저놈을 포획하거라!”
“예!”
듣다 못한 발로크가 소리쳤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교관들이 그에게 무기를 겨눴다.
그가 질질 끌려가려는데 아서가 발로크와 대화를 나눴다.
발로크는 미간을 구기는가 싶더니 깊은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러도록 하라.”
“감사합니다.”
아서가 싱긋 얄밉게 웃었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카이저의 앞으로 걸어갔다.
카이저는 여전히 억울한 듯 말한다.
“네, 네놈 어서 고하지 못하겠느냐? 저 요망한 오르웬과 함께 나를 모함…….”
그 말이 끝나기 전.
아서는 힘껏 그의 안면을 후려쳤다.
콰직!
“억?!”
교관이 견습 군주에게 맞았다.
이만한 치욕이 세상에 어딨겠는가.
하지만 발로크의 승인이 떨어졌다.
아서는 발로크에게 저자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이 모든 계략을 꾸민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딱 얼굴 한 대만 때리게 해달라고 했다.
아서는 뺨을 한 대 맞으면 최소한 양쪽 뺨은 착착 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교관님, 나잇값 좀 하시길.”
그 말을 끝내고 아서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카이저의 표정이 붉어졌다. 결국 참지 못하고 터졌다.
“야이 X새끼야, 이 X발 새끼야, 너 이리 안 웁!”
퍽
“웁!”
카이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승자는 아서다.
그는 소리 없이 웃었고 카이저는 복부를 몇 대 맞고 질질 끌려갔다.
‘설마 이 피가…….’
발로크는 아서를 보면서 생각했다.
프레이트, 그리고 강한 무리.
설마 이 피가 묻은 이유가 자신이 생각하는 게 맞는 걸까?
“싱겁더군요.”
“우리 아서 견습생은 정말 너무도 재수가 없어.”
발로크는 오르웬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아서를 보았다.
* * *
군주 자격시험!
2개월 동안 1:1로 교관에게 배운 모든 것에 대한 시험을 치르는 게 바로 군주 자격시험이다.
군주 자격시험은 총 세 가지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는 필기를 보고 두 번째는 군주로서의 카리스마, 세 번째의 경우 실제로 NPC 병사들 열 명씩을 배정받고 토벌전에 참여한다.
필기시험 장소.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서의 펜은 거침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문제는 쉬워도 너무 쉬웠다.
답을 단 20분 만에 모두 적어 내려간 아서는 스윽 주변을 둘러봤다.
아서와 다르게 다른 견습 군주들은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사실상 군주 자격시험에서의 점수가 1~3위를 결정짓기도 하기 때문에 신중을 가할 수밖에 없다.
“교관님.”
“무슨 일이지? 혹시 화장실이 급한가?”
“다 풀었습니다.”
“견습생, 신중하게 풀지?”
교관은 미간을 구겼다.
아직 시험 시간이 40분이나 더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신중하게 풀었습니다.”
하지만 아서는 더 이상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수련의 방으로 돌아가 검이라도 한 번 더 휘두르는 게 이득이리라.
“그래, 나야 상관없는 일이지.”
자신이 맡은 견습 군주도 아닌데 시험을 망치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아서가 나가고 교관이 답안지를 들었다.
‘어디 얼마나 틀렸나 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답안지를 들었던 교관의 얼굴이 곧 일그러졌다.
‘응? 이것도 맞고 이것도. 허어…… 주, 주관식…….’
주관식의 답을 읽어 내려가던 교관은 깜짝 놀라 아서가 나간 자리를 돌아봤다.
주관식 답이 완벽을 넘어서 경이로울 수준이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섰던 아서는 울리는 알림을 들을 수 있었다.
[필기시험 100점 맞기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지능 +3, 1,000캐시를 얻었습니다.]
피식 웃은 아서는 수련의 방으로 향했다.
* * *
총교관과 몇몇의 교관이 워프 게이트 앞에 서서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워프 게이트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 안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후우, 피곤하군.”
그는 나오자마자 미간을 꾹꾹 눌렀다.
총교관이 최대한 격식을 차려 경례를 취해 보였다.
101명의 군주 중 한 명인 브록.
테이머 군주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한 그는 다양한 종족으로 영지를 구축하는 자다.
101명의 군주 중 한 명인 브록은 이번에 견습 군주 중 우수한 인재를 찾아야 했다.
물론 없다면 굳이 데려가지 않아도 괜찮다.
‘도대체 이딴 쓸데없는 짓은 왜 하는지. 끽해야 애송이들 아닌가.’
취지는 좋다.
미리 싹이 보이는 견습 군주들을 눈여겨보고 미리 연맹으로 올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제안을 한 견습 군주들은 사실상 20% 정도만 연맹에 합류한다.
이유는 그들이 연맹에 들어오기 전에 모두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영지전이 시작되면 하루에도 엄청난 숫자의 군주가 죽어나간다는 거다.
‘뭐, 까라면 까야지.’
브록이 모시는 발키리 총연맹의 도전 군주인 카일은 매우 꼼꼼하고 한 명의 인재라도 소중히 여기는 자다.
그 성격 덕분에 그 자리에 오르기도 했고.
‘얼마 전에 레일리는 아주 총명한 놈을 자신의 연맹에 데려왔다지, 놈은 쑥쑥 크고 있고. 나도 그런 놈이나 하나 건졌으면 좋겠군.’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다고 레일리는 전략 전술에 능통한 자를 이번에 데려가 빠르게 키우고 있었다.
지금 벌써 군주 등급이 D급까지 올랐다고 들었다.
군주의 등급은 E부터 시작해 S까지 존재했다.
브록도 자신의 순번이 온 만큼 그 정도 인재 하나쯤 얻어걸렸으면 했다.
연맹은 말 그대로 군주들의 집합체다.
총연맹에는 최대 160명의 군주가 들어갈 수 있으며 한 명의 총연맹장이 존재한다.
그리고 160명 중 20명씩 나눠서 각 군주가 소연맹을 관리하는 편으로 브록은 트롤 연맹의 연맹장이었다.
“여깄습니다.”
총교관 발로크는 브록에게 우수한 견습 군주들에 대한 이력을 건넸다.
첫 장은 루이스라는 자였다.
“대공가의 자녀로 검이면 검, 창이면 창, 활이면 활, 거기에 전술 전략도 매우 뛰어난 자입니다. 또한 두뇌 회전도 매우 빠른 자이지요.”
브록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음 장으로 넘겼다.
가장 위에 걸린 사진을 보며 브록은 미간을 구겼다.
“이 꼬맹이는 뭐야? 허어. 열여섯 살? 이게 가능한가.”
브록이 걸음을 멈췄다.
군주게임도 사실상 나이 제한이 존재한다.
한데 열여섯 살이 게임에 참가하다니?
“생긴 게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못 잡게 생겼는데 우수하다?”
그러면서도 브록은 조금의 흥미를 느꼈다.
일단 발로크 총교관이 자신에게 이자의 프로필을 볼 권한을 주었다는 건 우수한 견습 군주 중 하나라는 거니까.
“예. 루이스라는 자 이상으로 뛰어난 소년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최우수 성적을 기록했고 어제 보았던 필기시험에서도 100점을 맞았죠.”
브록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큰 관심보다는 그저 재밌는 볼거리가 생긴 것 같다 정도?
“지금은 어딨나.”
“카리스마 시험을 치르고 있습니다.”
“카리스마라. 가보지.”
브록은 지루하던 차에 마침 잘됐다는 듯 걸음을 재촉했다.
* * *
아서는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네 명의 견습 군주가 한 명 한 명 앞으로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카리스마 시험을 설명하자면 말 그대로 군주로서의 위엄을 보여줘야 한다.
앞에 앉아 있는 교관들은 상황을 제시해 주고 그에 걸맞게 견습 군주는 앞에 자신의 부하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지휘하여 이끌어야 한다.
그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기도, 또 겁먹은 그들을 달래기도, 자신을 믿고 따르게도 해야 한다.
오로지 말로만.
쉬운 것은 아니다.
“자아, 전우들이여. 나와 함께 싸우…….”
“그만.”
교관 한 명이 미간을 구겼다.
“견습생, 지금 장난하나?”
“예?”
“말을 더듬더듬. 그렇게 소심하게 ‘전우들이여’ 하면 누가 자네 같은 머저리 군주를 따르고 싶겠나.”
“…….”
견습 군주는 할 말을 잃었다.
“다음.”
대충 채점을 끝낸 교관이 다음 순번으로 넘겼다.
대부분 비슷한 수준이다.
속성으로 배운 그들이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는가.
그때 뒷문이 열리면서 총교관을 비롯해 교관 몇몇과 브록이 걸어 들어왔다.
‘브록…….’
아서는 브록을 보고는 쓴웃음을 삼켰다.
‘오랜만이다, 브록.’
자신과 함께 싸워주었던 군주.
테이머 군주라고 칭송받았던 자.
최후의 전쟁에서 그가 부리는 와이번 수백 마리는 공중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마룡을 죽이고 브록도 함께 죽었다.
그때 아서는 브록의 눈을 감겨주며 말했다.
‘네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기를.’
그 친구를 여기에서 다시 보니 여러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얽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왔던 브록도 한눈에 알아봤다.
‘저 꼬마군.’
산적 같은 견습 군주들 틈에 껴 있는 여리여리한 소년.
그래도 몸에는 알맞은 근육이 붙어 있었지만 키도 작았고 체구도 왜소한 편에 속했다.
브록 군주는 다른 교관들 틈에 껴서 앉았다.
“나와 함께 싸우자, 이기자! 우리가 함께하면 승리할…….”
“염병하네.”
한 견습 군주의 말을 듣던 브록이 황당하단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예?”
견습 군주가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교관들은 그런 브록을 말리진 않았다.
“무슨 역사책 읽는 줄 알았군. 그래서 자네를 믿고 누가 따르겠나? 나와 함께 싸우자! 이기자! 그렇게 말하면 끝인가? 감정도 쥐뿔 없고 절실함도 없고. 병사들 다 죽이겠네.”
브록이 피식 웃으며 한쪽 다리를 꼬고 앉아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명심해, 이 친구들아. 밖에 나가면 애송이 견습 군주들 못 죽여서 안달 난 새끼들이 차고 흘러. 인간들만 있는 게 아니라고. 오우거, 오크, 고블린에 트롤까지. 그런 놈들과 싸우는데 그딴 식으로 지휘해서 어떻게 해? 누가 믿고 따르겠냐고. 총교관, 브로드 훈련소 수준이 이 정도밖에는 안 되나? 나 때는 더 잘했다고.”
우스운 것은 브록도 이 브로드 훈련소에서 수료했다는 거다.
물론 모두 최우수 성적을 기록했고.
“브록 군주님께서 너무 우수하셨던 겁니다.”
“그런가? 하긴.”
브록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를 보며 아서는 생각했다.
저 자뻑은 여전하구나.
하지만 그만큼 쾌활한 사내이기도 했다. 무척 아꼈던 전우 중 한 명.
또 다른 한 명이 말을 시작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브록이 옆에 놓여 있던 펜을 집어 던졌다.
“야 이 병신 새끼야, 그딴 식으로 하면 병사들 다 뒈졌어. 아휴, 진짜.”
쯧쯧 혀를 차는 브록.
아서는 피식피식 웃었다.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브록은 진심이었다.
견습 군주들이 행하는 대로 하면 병사들의 사기는 곤두박질친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브록이리라.
“아서 견습생. 앞으로.”
교관의 지시에 따라 아서가 앞으로 나섰다.
‘드디어 요놈 차례군. 따분해 죽겠는데 재미 좀 보려나?’
브록은 기대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교관이 상황을 제시하려던 찰나 브록이 말했다.
“내가 제시해도 되나?”
“아, 그러십시오.”
교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브록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