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군주회귀록 015화
팔과 다리가 무딘 칼날에 썰렸다.
하지만 아서는 시련을 계속 이어갔다.
시련은 계속해서 다른 방식으로 아서에게 고통을 주고 있었다.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서는 오로지 정신력 하나만으로 버텨냈다.
툭 건드리면 깨질 것처럼 얼어붙어 있던 아서의 몸에 온기가 돌았다.
아서는 또 다른 시련을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곧이어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군주님…….”
목소리를 따라 아서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머리를 짧게 친 무척이나 앳되어 보이는 열여덟 살 소년이 있었다.
“베네토…….”
아서는 마른침을 삼켰다.
최후의 전쟁에 참가한 어렸던 소년.
“랜.”
며칠 전 아주 예쁜 어린 공주님을 낳았던 병사.
“블로드.”
아서가 이끄는 군대라면 천하무적이라고 쾌활하게 웃어 보였던 기사.
모두 최후의 전쟁에서 죽었다.
베네토는 머리가 잘렸고 랜은 사지가 갈가리 찢겨서 마수에게 잡아먹혔다.
블로드는 아서의 앞을 막아서며 ‘꼭 승리하십시오’라는 말을 남긴 채 재가 되어 사라졌다.
“어째서 저희를 전쟁터로 내모셨습니까?”
“당신이 우리를 죽였습니다.”
“내, 내 딸 아이는 이제 어떻게 합니까!”
군주라는 두 글자.
이 이름이 가지는 거대한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의 명령에 수백 명, 또는 수천 명의 목숨과 그들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다.
아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나, 나는…….”
끔찍한 죽음, 그들의 죽음을 아서는 전쟁터에서 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곧이어 주변에 자신이 아는 자들이 가득 찼다.
그들은 모두 죽었다.
푸지익!
퐈지익!
“끄아악!”
“으아악!”
비명이 난무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었던 방식 그대로 죽었다.
베네토의 머리가 뚝 떨어졌고 랜의 육신이 갈가리 찢어졌다.
블로드의 몸이 한줌 재가 된다.
사방에서 그들 모두가 죽어나갔다.
아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만…….”
가슴이 아프다.
무능했던 자신이 밉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우릴 죽음으로 내몰았어!”
“애초에 이길 수 없었어!”
아서는 귓가에 파고드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았다.
그들의 절규에 숨이 막혔다.
머리가 잘린 베네토가 자신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는 그 머리를 내밀었다.
머리가 말했다.
“난 당신을 원망해.”
“…….”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서의 눈이 번뜩 뜨였다.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환상.
이 모든 것은 환상이다.
이제야 자각했다.
시련이 자신을 자각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네토의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정녕 날 원망하나, 베네토?”
“그래, 난 당신을 원망해. 당신은 아주아주 무능하고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이끈 머저리 군주야.”
그 말에 아서는 머리만 남은 베네토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틀렸다.”
아서는 주위를 둘러봤다.
베네토는 아서에게 말했었다.
‘설령 싸우다 죽는다 해도 군주님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선택한 길이고 군주님이 누구보다 더 힘드실 것을 잘 아니까요.’
최후의 전쟁 전날 밤, 아서는 베네토에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라 했다.
하지만 그가 했던 말이다.
“내 어린 딸아이는 당신 때문에 이제 애비 없는 자식이 되었어!”
“그 역시 틀렸다.”
랜은 말했다.
다른 종족에게 더럽혀지는 땅에서 자신의 딸아이가 자랄 곳은 없다고.
그 아이를 위해, 앞으로의 후손들을 위해 검을 들겠다.
설령 죽는 한이 있어도.
랜은 그리 말했다.
“난 당신을 지켜주다 뒈져 버렸다고.”
“그것도 틀렸다.”
블로드는 충신 중의 충신이었다.
설령 아서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날이 있다 해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그것이 인류를 살리는 또 다른 길임을 아니까.
“너희들은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아.”
아서는 차가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내 부하들은 너희보다 강하며 너희처럼 누구를 원망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스르르르!
스르르르!
스르르르르!
주변의 모든 자가 스르르 먼지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그사이에 단 한 사람만이 남아 아서를 보고 있었다.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지 않던가?”
짧게 친 붉은 머리카락에 한쪽 눈이 애꾸고 그 눈 위로 기다란 검의 자상이 남겨져 있는 사내.
무수히 많은 자를 살육했다 들었다.
“고통스러웠지.”
“도망치고 싶지 않던가?”
“그러고 싶었지.”
“한데 왜 버텼는가.”
“그래야 하니까.”
아서는 쓴웃음을 삼켰다.
고작 여기에서 무너져선 안 된다.
나아갈 길이 멀다.
“네 힘이 필요하다, 발로스.”
발로스는 아서와 고요한 눈빛을 맞췄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은 눈을 가졌다. 이제 그만 돌아가라.”
아서는 적막한 어둠 속에서 스르르 사라지는 발로스를 보았다.
어둠 한편에서 작은 빛이 흘러나왔다.
아서는 빛을 쫓아 달렸다.
곧이어 빛과 마주한 순간 아서의 눈앞을 방대한 빛이 덮쳤다.
화아아악!
* * *
아서의 눈앞에 신전이 보였다.
아서는 망설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갔다.
신전의 중앙에 한 손에는 검을, 또 다른 한 손에는 자신이 죽인 이의 머리통만 들고 있는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참으로 발로스다운 동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서는 제단의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팔찌?’
분명히 팔찌였다.
아서는 그 팔찌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주변이 변했다.
아서는 자신이 발로스의 신전에 들어오기 전의 장소에 와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달을 보았다.
달이 기존의 색을 찾았다.
아서는 망설이지 않고 팔찌를 확인해 봤다.
(우로보로스의 어린 포식 뱀)
등급: 평범한 레어
성장형
내구도:10,000/10,000
특수 능력:
⦁상처 회복 4%
설명: 착용자가 10분 이내에 죽인 생명체에 한하여 우로보로스의 어린 포식 뱀이 시체에 남아 있는 피를 빨아들여 착용자의 상처를 회복시켜 준다. 이는 성장형이며 우로보로스의 새끼 뱀이 100의 숫자에 달하는 생명의 피를 빨아들일 경우 진화한다.
“……최고군.”
발로스의 아티팩트는 학살자라고 불렸던 만큼이나 참 그답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거기에 성장형.
성장형 아티팩트는 매우 진귀하다.
거기에 평범한 레어라고 되어 있었지만 능력만 보면 레어 이상으로 보였다.
‘죽일수록 나는 회복한다는 건가?’
아서는 쓴웃음을 삼켰다.
몬스터 사냥이 한결 수월해질 것 같다.
아서는 다시 기존에 있던 지점을 향해 나아갔다.
* * *
이틀째의 밤.
푸지익!
프레이트의 얼굴에 노예의 피가 튀었다.
그는 미간을 구기면서 목이 잘린 견습 군주의 몸을 더럽다는 듯 발로 밀쳤다.
“한낱 노예의 피가…….”
그는 미간을 구기면서 떨어진 룬스탯을 보곤 입 한쪽을 올려 웃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이들도 기습해서 죽인 노예와 평민들의 시체에서 룬스탯을 모았다.
그리고 그중 프레이트에게 10%를 건네고 나머지는 자신들끼리 나눠 가져갔다.
프레이트는 알약 덕분에 현재 귀족 무리에서 가장 강했고 자신이 10%의 룬스탯을 먹겠다는 말에 반박하는 귀족의 목을 단번에 베었다.
그로 인해 다른 귀족들은 순순히 그 말을 따랐다.
처음에 평민, 노예들을 잡으면 룬스탯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한 것이 프레이트였다.
귀족 무리는 어젯밤 평민들이나 노예들을 하나하나 기습해서 죽였다.
그로 인해 프레이트를 중심으로 모인 자들은 압도적으로 빠르게 강해졌고 그중 프레이트는 정점을 찍었다.
더군다나 프레이트가 20명을 죽였을 때에 스킬 하나가 생겨났다.
‘통솔. 매우 유용하구나.’
프레이트의 모든 능력치를 합산했을 때 70%에 미치지 못하는 능력치를 가진 아군들은 프레이트에게 더욱더 믿음을 가지고 복종하게 된다.
그로 인해 반발자가 상당수 줄었다.
하지만 ‘통솔’ 스킬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를 인정하지 않는, 반감을 가진 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바로 루이스다.
‘어리석군, 훈련소에서 날뛰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감이 안 오나?’
루이스는 두 명의 바보를 떠올렸다.
프레이트와 아서.
훈련소에서 너무 날뛰면 좋지 않다고 루이스는 판단했다.
군주가 되어 영지를 배정받으면 분명히 평민들과 노예들이 연맹을 맺고 프레이트부터 칠 거다.
다른 귀족들이 이런 식으로 복종시킨 프레이트의 손을 잡으려고 할까?
절대 아니다.
여기에선 목이 바로 앞에 달려 있으니 그런 척하지만 군주가 되면 달라질 거다.
“루이스, 난 내가 있는 대륙에서 이만큼의 노예와 평민들을 죽여봤지.”
그는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쳤다.
루이스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500명. 500명이야. 그깟 더러운 벌레를 500명이나 죽였다고.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우리 같은 자들은 쉬이 사람 목숨을 좌지우지한다는 게.”
프레이트처럼 루이스도 대공가의 사람.
그래서 그는 친근감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루이스는 가식적인 미소로 웃었다.
“그렇군요.”
루이스는 웃으면서 생각했다.
‘조만간 죽겠군. 쯧!’
자기 입으로 저렇게 떠벌리다니. 프레이트는 입만 산 머저리다.
* * *
79마리째.
아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몬스터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한 마리를 찾는 게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 보였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빠르게 강해진 자들이 있다. 그들은 일반 훈련소의 견습 군주들보다 빠르게 영역을 확장해 나아갔고 몬스터의 사냥 속도 역시 빠르다. 그로 인해 몬스터의 수가 빠르게 줄어든 것이고.’
바이스 대지에 있는 몬스터들의 숫자는 한정적이다.
그걸 200명이서 나눠서 사냥하니 몬스터 숫자가 부족할 수밖에.
거기에 빠르게 강해진 무리가 있다면 몬스터 숫자가 부족할 거다.
하지만 고작 한 마리.
그 한 마리만 잡으면 아서는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
아서는 한 시간 동안이나 한 마리의 몬스터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곧 두 발 멧돼지를 찾았다.
두 발 멧돼지는 인간처럼 이족보행이며 덩치는 산만 하게 크다.
거기에 고블린보다 훨씬 강하며 힘도 무지막지하게 세다.
놈이 전속력으로 달려 몸으로 들이받으면 뼈가 아작 날 거다.
‘무리해서라도 잡아야만 하겠어.’
아서가 두 발 멧돼지를 숨 죽여 지켜보며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 * *
“끄응…….”
두 발 멧돼지를 사냥한 아서는 몸 곳곳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놈의 가죽이 얼마나 단단한지 굳은살이 박여 있던 손이 다시 까질 정도였고, 놈의 돌진을 막는다고 등이 나무에 부딪쳤다.
그나마 거대하게 벌린 놈의 주둥이에 창을 꽂아 어느 정도 수월하게 잡을 수 있었다.
아서의 왼쪽 손목에서 사용자의 부상을 인지한 우로보로스의 어린 포식 뱀의 팔찌에서 작은 뱀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뱀은 두 발 멧돼지의 시체로 다가가 입으로 놈을 콱 물었다.
쭈욱쭈욱!
작은 뱀의 몸이 꿀렁거렸다.
피를 빨고 있는 거다.
곧 피가 빨린 두 발 멧돼지는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