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군주회귀록 014화
“바, 발로스?!”
아서는 자신도 모르게 놀란 음성을 터뜨렸다.
군주게임 곳곳에는 보물들이 숨겨져 있었다.
이 보물들은 마족들의 것일 수도, 천족들의 것일 수도, 용족들의 것일 수도 있다.
발로스라는 자는 인간이었고 자신의 대륙 전체를 피로 물들였던 마스터라고 알려진다.
그러한 발로스의 신전은 여러 개가 있었는데, 아서가 아는 101명의 군주 중 하나인 아커스가 발로스의 신전에 도달해 시련을 이겨내고 보물을 가졌다.
그 보물은 장갑이었는데 자그마치 레어 등급에 해당되었다.
당연하게도 군주게임에도 아티팩트의 등급이 존재한다.
노멀부터 시작해 매직, 레어, 유니크, 에픽, 유물, 전설까지.
군주는 막강해야 한다.
또한 군주게임에는 군주 개개인의 힘으로 해내야만 하는 것들도 무수히 많았다.
때문에 질 좋은 아티팩트는 분명히 필요하다.
아스가르드 대륙을 기준으로 발로스의 보물이 엄청나다고 할 순 없다.
현재의 대군주들은 최소한 에픽 아티팩트로 모든 걸 무장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초반에 발로스의 보물은 분명히 아서에게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난 이곳에서 발로스의 보물도, 확률의 반지도 얻는다.’
쉬겠다는 생각은 순식간에 뒤로했다.
일단 퀘스트를 클릭해 봤다.
(발로스의 시련)
등급: B
지급 캐시: 3,000
보상: 모든 스탯 +7, 발로스의 보물 중 하나 > 바로 지급형
승낙 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시: 모든 스탯-15
설명: 바이스 대지에 숨어 있는 발로스의 신전. 그곳에 도달해 발로스의 시련을 받고 이겨내라. 그렇다면 당신은 그의 보물을 얻게 될 것이다.
발로스의 보물 중 하나라고만 써 있을 뿐, 정확한 보상이 적혀 있진 않다.
아서는 잠깐 고민했다.
‘시련의 난이도를 모르니…….’
하나 확실한 건.
‘적은 가능성이라도 무조건 깰 수는 있다는 거지. 또 이곳의 수준을 생각하면 101명의 군주 정도가 와야 깨는 수준의 시련을 넣는 건 말이 안 되지.’
아서는 결심했다.
“승낙한다.”
퀘스트창이 사라졌다.
아서는 밝게 빛나는 달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 * *
빠르게 내달리는 아서는 갈수록 몬스터의 숫자가 많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서는 캐시 상점을 오픈하고 망설이지 않고 ‘빛바랜 물약’을 구매했다.
캐시 상점에는 놀랍게도 버프 물약도 존재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엄청나게 뛰어나진 않다.
현재 아서의 캐시 상점 등급이 최하위라는 걸 생각하면 캐시 상점 등급이 올라갈수록 더 나아지리라.
‘마치 신전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려고 몬스터가 더 많은 것 같군.’
아서는 발로스의 신전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견습 군주들은 갑자기 몬스터들의 숫자가 많아지면 길을 우회해서 가거나 돌아갈 확률이 매우 높다.
푸지익!
“흐으읍!”
또 다른 고블린의 목에 창을 꽂아 넣은 아서는 옆에서 휘둘러지는 돌도끼를 팔을 뻗어 막아내며 왼손에 들고 있는 보랏빛으로 출렁거리는 액체를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고 무릎으로 놈의 턱을 차올렸다.
푸슉!
고블린 하나가 독침을 발사했다.
납작방패돌을 끈끈이 풀을 이용해 손등에 붙여놓고 있던 아서가 세게 후렸다.
콰악!
납작방패돌이 커다래지며 독침을 막았다.
타타타탓!
남은 숫자는 넷.
아서는 고블린이 미리 챙겨서 허리춤에 꽂아뒀던 고블린의 단검을 굳게 쥐고 달려나갔다.
단검에는 고블린들이 사용하는 마비독이 발려 있었다.
뭐든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하면 좋았다.
푸지익!
퐈지익!
춤을 추듯 움직이며 고블린들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곧이어 빠른 속도로 놈들의 몸이 마비되었다.
아서는 마비되어 키이익키이익거리는 울음만 토하는 놈들의 멱을 하나하나 딴 다음 다시 뛰었다.
빛나는 달을 쫓아 달리는 아서는 갈수록 길이 험난해진다는 걸 느꼈다.
그러다 눈에 반짝이는 게 보였다.
‘와이어?’
트릭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견습 군주들은 트릭의 개념에 대해 잘 알지 못할 확률이 높다.
어지간해서는 이곳까지 도달해도 트릭으로 인해 사망했을 확률이 높다.
아서는 와이어를 조심스럽게 넘어섰다.
넘어서는 순간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끼릭!
‘이중 트릭.’
와이어가 당겨져도 발동되고 그냥 넘어도 발동되는 이중 트릭인 듯했다.
아서는 소리만 듣고도 무엇이 날아올지 예상했다.
퓨퓨퓨퓩!
나무 하나가 빠르게 갈라지며 그 안에서 화살들을 토해냈다.
탱탱탱탱!
아서는 창대를 이용해 화살들을 퉁겨냈다.
‘아슬아슬하구나.’
자칫 가슴팍에 화살 하나가 박힐 뻔했다.
그는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 * *
숲의 사이였다.
원을 그리듯 아서가 도착한 곳만 풀 한 포기 자라나 있지 않았다.
또한 그곳으로만 달빛이 몰려드는 것처럼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달빛을 받으며 아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히 신전으로 가는 힌트가 이곳 어딘가에 존재한다.’
이곳이 분명히 발로스의 신전으로 가는 입구다.
입구를 열기 위해선 퍼즐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달이 비추어지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주변을 살핀다.
아서는 주변의 나무, 낙엽, 돌 등을 살폈다.
그러던 중 아서의 눈에 나무에 박혀 있는 조그마한 글씨가 들어왔다.
‘고’
분명히 그렇게 쓰여 있었다.
“역시.”
아서는 피식 웃었다.
숨겨져 있는 글자들을 찾아 그것대로 읊으면 발로스의 신전이 나타날 거다.
곧이어 낙엽잎에 써져 있는 ‘다’.
그다음 돌에 적혀 있는 ‘죽’.
하나하나 계속해서 찾아냈다.
“매미?”
아서는 나무에 찰싹 붙은 매미를 손으로 잡았다.
놈을 뒤집어보자 이번에도 글자가 적혀 있다. ‘음’.
하나하나 계속 찾던 아서는 글자를 조합해 봤다.
“죽음 다 더한 고.”
일단은 여기까지.
아서는 이 글자를 추리해 본다.
‘죽음이다, 더한 고뇌는?’
아서는 고개를 저었다.
뭔가 단어가 맞지 않는다.
아서는 여러 가지를 추리해 보다가 ‘아!’ 하는 탄식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
굉장히 이질적인 단어다.
곧이어 아서는 주위가 붉어졌다는 걸 느꼈다.
“주위가 붉어진 게 아니라…….”
아서의 고개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달이 피를 머금은 것처럼 붉어졌다.
곧이어 허공에 떠 있는 달에서 뚝뚝 무언가가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피?”
분명히 피였다.
빗방울처럼 한 방울 한 방울 내리기 시작하던 것이 이내 비처럼 쏴아아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아서는 피를 흠뻑 뒤집어썼다.
-도망쳐라. 내 얼굴을 보고 살아남은 자는 없다. 내 손에 찢긴 자는 수만이요. 나를 마주하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어 살려달라 애원하게 될 것이다!
주변에 울리는 음성.
아서는 이 음성이 승낙과 거절, 두 가지의 답을 요구하는 걸 눈치챘다.
포기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발로스가 얼마나 대단한 살육자였든, 그가 몇 명을 죽였든 개의치 않는다.
발로스가 넘어야 할 산이라면 이 역시 넘는다.
지금 멈춰선다면 아서는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시작해라.”
쿠르르르르!
땅이 진동했다.
아서가 몇 걸음 물러났다.
거대한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서는 그 입구를 향해 망설이지 않고 걸어 들어갔다.
* * *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곳.
어둠만이 주변을 잠식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어둠.
보통 이러한 곳에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들어온 자들은 엄청난 공포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아서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발로스의 시련. 죽음보다 더한 고통 시련이 시작됩니다.]
아서는 마른침을 삼켰다.
손에 흥건하게 땀이 맺혔다.
곧이어 아서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다리의 통증에 깜짝 놀랐다.
“커헉?!”
발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이었다.
발을 동동 굴러봐도 소용없었다.
그 고통은 점차 벌레처럼 스멀스멀 천천히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
아서의 입이 벌어졌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의 고통에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성이 마비되고 고통은 곧이어 가슴 언저리까지 올라왔다.
쿵쿵쿵쿵!
있는 힘껏 주먹으로 가슴을 두들겨 봐도 뜨거움은 조금도 가라앉질 않았다.
“크흐윽!”
결국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몸을 배배 꼬았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
차라리 죽여달라 애원할 정도의 고통!
아서는 전쟁터에서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는 자들을 많이 보았다.
자신의 몸 한쪽이 잘려 나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부지기수다.
썩어버린 팔에 구더기가 들끓고 엄청난 고열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자들은 차라리 죽여달라 애원했다.
발로스가 말하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은 정신과 몸마저 본인이 감당하지 못할 때를 의미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끄아아아악!”
어느덧 뜨거움이 얼굴까지 타고 올라왔다.
아서는 얼굴을 부여잡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순간 적막한 어둠 속에서 아서의 몸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그의 몸이 녹아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으, 으아아아!”
육체적 고통과 자신의 몸이 녹는다는 정신적 고통이 동반해 엄습해 온다.
아서는 바닥을 기었다.
“제, 제길!”
숨을 고르게 쉬어야 한다.
정신을 놓는 순간 이 시련은 아서를 집어삼킬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죽음이 분명할 것이다.
고통이 제안한다.
지금 포기하면 편해질 것이다.
지금 포기하면 안락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니 어서 포기하라!
하지만 아서는 흘러내리는 몸을 보면서도 굳건히 버텨냈다.
이곳에서 쓰러진다면 자신의 앞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이 정도도 버텨내지 못한다면 앞으로를 변화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버텨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온몸을 감쌌던 뜨거움이 사라졌다.
곧이어 아서의 눈앞이 번쩍이며 검날이 보였다.
그 검날은 아주아주 무디고 이가 다 나간 것처럼 보인다.
“제길…….”
아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잘 갈린 검은 고통 없이 사람의 몸을 찢는다.
느끼지도 못할 새 베인다는 거다.
간혹 잘 갈린 식칼 같은 것에 손을 베인 자들이 베였다는 걸 뒤늦게 아는 이유가 그것에 있었다.
반대로 검은 무딜수록 더욱더 끔찍한 고통을 선사한다.
이어 그 무딘 검날은 아서의 어깨에 내려쳐졌다.
콰지익!
“윽!”
검이 워낙 무뎌 어깨를 다 파고들지 못했다.
이어 검은 수차례 어깨를 내려쳤다.
“억!”
드르륵!
드르륵!
검이 스스로 움직이며 고기를 썰듯 아서의 어깨뼈를 톱질한다.
뼈를 깎는 끔찍한 소리가 아서를 점령한다.
투욱!
결국 아서의 오른팔이 떨어졌다.
콸콸콸콸
붉은 피가 땅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아서는 이번에도 버텨냈다.
그는 이보다 더 끔찍한 고통을 맛본 적이 있다.
최후의 전쟁에서 자신을 믿고 따른 전우들이 죽어갈 때.
그들의 죽음을 보았을 때에 가슴이 갈가리 찢겨지는 것처럼 아팠고,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 신께 애원했다.
그들의 죽음을 보는 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이 정도면…… 할 만하구나.”
왼팔이 툭 떨어졌다.
그럼에도 아서의 눈은 차가워지며 평정심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