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군주회귀록 012화
훈련소의 피날레.
내일은 견습생들끼리 대련을 펼치고 모레는 괴수 사냥을 한다.
그다음 군주 자격시험을 치른 후 모두가 견습 군주 이름을 벗고 군주가 되어 영지 하나씩을 맡게 된다.
그다음 치열한 혈육전이 시작될 것이다.
아서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물집이 잡히면 터지고, 다시 물집이 잡히고 터지기를 반복하던 손에 어느덧 굳은살이 찼다.
이 정도면 어지간히 무리하지 않는 이상 더 이상 손이 아린 고통은 없으리라.
현재의 능력치는 힘겹게 올려서 겨우 다른 견습 군주들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그래봤자 다른 견습 군주들은 운동을 좋아라 하는 평민보다 조금 나은 정도.
딱 병사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슬슬 미끼를 던질 때가 되었군.’
아이리스는 이용 가치가 많다.
아스간 대륙에 있는 아이리스.
중요 정보 열람은 아서를 시점으로 두고 나타난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만약 다른 대륙 사람이었다면 중요 정보 열람이 떴을까?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다.
“교관님, 왜 요새는 제 정체를 묻지 않으십니까?”
“그런 걸 굳이 알아야 할까 싶어서.”
어느덧 오르웬과도 가까워졌다.
다른 교관들이 본다면 입을 떡하니 벌렸을 거다.
저 마녀 오르웬과 함께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다니!
그 정도로 그녀는 차가운 여인이다.
오르웬은 아서를 진작에 인정했다.
이 아이는 크게 될 재목이다.
“가끔 나한테 네 이름이나 들리게 해주렴.”
훈련소까지 이름이 들린다.
그러한 자들은 보통 거물이다.
그녀는 아서에게 거물이 되라고 말하고 있었다.
“제가 아스간 대륙 브래트 영지에 있다는 건 아시죠?”
“그럼. 네 입으로 말해줬잖아.”
아서의 군주 육성기를 확인할 수 없었기에 순전히 그의 말만 믿어야 하는 실정이긴 하지만 진실일 거다.
진실이지 않으면 그가 아스간 대륙과 브래트 영지를 알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오르웬이 아는 브래트 영지는 정말 작은 촌구석의 영지다.
처음 아스간 대륙에 대해서 듣고 놀라워했다가 브래트 영지라고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영지가 있나? 싶었던 거다.
그녀는 아스간 대륙에 돌아갔을 때 곧바로 확인해 봤다.
확실히 그런 영지가 존재했다.
코딱지만 한.
“저를 만나러 오실 생각 없습니까?”
“뭐?”
오르웬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미간을 구겼다.
보통 견습생들은 교관을 이곳에서 살고 있는 NPC 정도로 생각하며 그게 대부분 사실이기도 했다.
한데 아서는 마치 자신이 아스간 대륙에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물었다.
“글쎄, 너를 밑의 세상에서 만난다면 좋기야 하겠지.”
“그럼 만나러 오십시오, 아이리스 님.”
“에이, 내가 널 어떻…… 뭐?”
오르웬은 순간 익숙한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이 나오자 깜짝 놀랐다.
“뭐라고?”
“마검사 아이리스 님, 저를 만나러 오셔야만 합니다. 꼭입니다.”
“너 내 정체를 어떻게……!”
그녀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교관들도 알지 못하는 사실.
알고 있는 사람은 총교관 한 명뿐이었다.
“저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번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꿈에서 당신이 겪는 불행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아스간 대륙의 이필립스 제국에 있는 당신이요.”
아서는 입에 적당히 침을 발랐다.
오르웬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아서를 봤다.
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
그리고 이필립스 제국에 있다는 것과 아이리스라는 자신의 본명도 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는 자신의 불행을 보았다고 한다.
“내, 내가 겪는 불행이 뭔데?”
“저를 만나러 오셔야만 알려 드릴 겁니다.”
“구, 굳이 왜?”
“안전장치라고 할까요? 오실 때 ‘약속의 서’를 꼭 가져오시길 바랍니다.”
“이런 영악한 애새끼!”
오르웬이 거친 말을 토했다.
자신의 불행이 앞에 있다는데 그 답을 바로 들을 수 없다.
그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녀가 곧 화를 추슬렀다.
“욕을 한 건 미안하다. 안전장치라, 무슨 뜻인지 잘 이해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말해주는 건 조건이 있는 거다. 약속의 서를 가져오라는 것부터가 그랬다.
약속의 서는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특수한 양피지다.
서로가 약속을 하고 서명을 하면 마법에 의해 맺어지며 만약 거짓을 행하는 자는 상대의 영원한 종이 되어야만 한다.
“내게서 뭔가를 얻겠다는 거구나.”
그녀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영특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이용까지 당할 줄은 몰랐다.
“네 말대로 해주마. 널 만나러 가겠다.”
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평소처럼 얄밉게 웃었다.
* * *
모든 견습 군주들이 있는 수련의 방이 연결되었다.
연결된 수련의 방은 하나의 거대한 연병장을 보여줬다.
“이 빌어먹을 귀족 새끼!”
“억!”
아서는 평민 한 명이 귀족을 패대기치는 걸 보았다.
모두가 열심이다.
특히나 평민이나 노예 같은 자들.
그들에겐 인생 역전을 일구어낼 기회다.
또한 앞으로 군주게임을 진행하면 현실에서도 사용 가능한 보상을 꽤 묵직하게 얻을 수 있다.
“이겼다!”
평민이 양팔을 들고 귀족을 눕혔음을 알리며 좋아했다.
“오르웬, 이거 어째? 애새끼를 맡아버렸네.”
“애새끼라고 하지 말아줄래? 또 뺨을 처맞고 싶니?”
오르웬은 능구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 교관 카이저에게 입을 비틀어 웃어 보였다.
카이저는 오르웬의 몸매를 노골적으로 보았다가 뺨을 후려 맞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 둘은 거의 앙숙이 되어 있었다.
카이저에겐 어린 소년을 담당하게 된 오르웬이 좋은 놀림감으로 보이는 거다.
“그래그래, 그보다 우리 견습 군주가 네 견습생을 상대하면서 살살 봐줘야 할 텐데 말이지.”
그 말에 오르웬은 박장대소할 뻔한 걸 참았다.
누가 누굴 봐준단 말인가.
그리고 이어 아서의 차례가 되었다.
“교관님, 저 꼬맹이가 너무 불쌍합니다!”
“얘야, 밥은 먹었느냐?”
“우쭈쭈쭈쭈! 벌써 겁먹었쪄요?”
아서에 대한 조롱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오르웬은 그 뒤에서 웃고 있는 교관들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듯 혀를 쯧 찼다.
아서가 어린애여서 무시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교관들이 부추기는 것도 있을 터다.
다른 교관들은 마녀 오르웬을 끔찍하게 싫어했으니까.
물론 오르웬이 그딴 걸 신경 쓰진 않는다.
이제까지 족족 오르웬이 맡은 견습 군주들은 제법 훌륭한 성과를 냈다.
한데 이번엔 열여섯 살 꼬맹이를 맡게 된 걸 보니 정말 놀리기 좋은 소스라고 생각했을 거다.
“아서 견습생과 프레이트 견습생은 앞으로!”
교관의 말에 따라 아서와 프레이트가 나섰다.
프레이트는 처음 소환이 이루어졌을 때 아서에게 외투를 건네며 대공 어쩌고 운운하던 사내다.
그는 아서를 보자마자 입을 씨익 올려 웃었다.
“이놈, 저번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느냐?”
프레이트는 매번 아서에게 ‘네 천한 얼굴을 밟는 날이 올 거다’ 같은 말을 식당에서 하곤 했다.
아서는 깔끔히 무시하거나 교관들에게 시비를 건다고 이르면서 그를 철저히 무시해 왔다.
애초에 아서에겐 그저 지나가던 개 한 마리 같을 뿐.
프레이트는 저 건방진 애새끼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처참하게 가지고 놀다가 팔 한쪽을 부러트려 버릴 거다.
또 그의 교관 카이저의 말에 따르면 대련을 봐주는 교관이 빨리 끝내지 않게 하기 위해 돈을 찔러 넣은 게 좀 있단다.
처참히 유린하라고 카이저 교관이 자신을 도왔고, 카이저는 이렇게라도 오르웬을 얕보이게 하고 싶은 거다.
“나는 어려서부터 검을 배워왔다. 또한 우리 가문의 검술은 대대손손 내려와 대륙에서도 그 위엄을 떨치지. 고작 네깟 꼬맹이가 나의 검을 한 수라도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디 한번 해보거라.”
프레이트는 그렇게 말하며 능글맞게 웃음 지었다.
아서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시작!”
“먼저 해보거라. 내가 너에게 기회를 주마.”
“후회 안 해?”
“그럼. 네깟 놈의 그 창 따위 내가 막지 못할까.”
프레이트는 아서를 대놓고 비웃었다.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뭐.”
그리고 말이 끝난 순간.
수우우웅!
프레이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엄청난 빠르기!
그는 재빠르게 가검으로 그의 창을 쳐냈다.
그 힘을 타고 빙글 한 바퀴 돈 아서가 창대로 프레이트의 손등을 후려쳤다.
콱!
“억!”
비명을 지른 프레이트.
이어 아서는 힘껏 프레이트의 목을 향해 창을 찔렀다.
창이 프레이트의 목젖 앞에서 멈추었다.
프레이트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서가 차갑게 웃었다.
“존나 위엄 있는 검술이시군.”
“…….”
프레이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카이저 교관을 보았다.
카이저는 자신이 돈을 찔러 준 교관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돈을 찔러주고 자시고를 떠나 명백한 아서의 승리다.
이걸 질질 끌 수도 없는 노릇.
“아, 아서 승!”
그 모습을 보면서 오르웬은 카이저 들으라는 듯 혀를 쯧 찼다.
“머저리들.”
“…….”
뿐만이 아니다.
아서에게 우쭈쭈거리던 견습 군주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방금 전은 한 수를 줬기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설령 한 수를 주지 않았다 해도 아서는 프레이트를 가볍게 찍어 눌렀을 거다.
그의 움직임이 그것을 증명했다.
‘한심한 놈.’
아서는 프레이트를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가문의 검술이 얼마나 대단하든, 그들은 전쟁터에서 피가 묻은 검을 쥔 적은 거의 없을 거다.
실전과 훈련으로 배운 검술은 분명히 다르다.
만약 그가 실전에 강했다면 아서를 이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만했고, 또 실전 경험이 부족했기에 전장의 귀신이라 불린 아서를 누를 수 없었다.
또한 전쟁터에서 서로의 목을 베는 것은 단 한 수에 결정되기도 한다.
그러한 한 수를 넘겨줬다는 것 자체가 그가 오만방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명 남았군.’
아서는 눈앞에 뜬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대련에서 세 명 이기기)
현재: 1/3
등급: C
지급 캐시: 2,000
보상: 힘+2 민첩+2 지능+4
승낙 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시: 힘-2 민첩-2 지능-4
설명: 브로드 훈련소에서 매번 펼쳐지는 대련. 대련에서 세 명을 상대로 승리함으로써 사용자의 강함을 보여라.
‘가뿐히 지르밟아 주리라.’
자신의 겉모습을 보고 웃었던 자들의 코가 짓눌릴 거다.
* * *
[대련에서 세 명 이기기 퀘스트 완료]
[힘 2, 민첩 2, 지능 4를 얻었습니다.]
[2,000캐시를 얻었습니다.]
아서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일을 떠올려 봤다.
‘내일은 꼭 확률의 반지를 얻어야 한다.’
확률의 반지.
그 반지가 브로드 훈련소의 몬스터 사냥 훈련에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되는 몬스터를 사냥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으나 무리를 해서라도 얻을 필요가 있다.
확률의 반지는 10% 확률로 1.3배의 크리티컬 대미지를 줄 수 있는 반지다.
1.3배의 크리티컬 대미지를 줄 수 있다는 건 현재의 아서에게는 매우 유용하게 쓰일 것이 분명하다.
“잘했어.”
어느덧 아서의 등 뒤로 다가온 오르웬이 그의 어깨를 주물거리고 있었다.
아서는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