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군주회귀록 011화
“……정답이야, 견습생. 자, 잘하네?”
오르웬이 낸 첫 번째 문제는 사실상 책에 적혀 있긴 하지만 어려운 주관식에 해당한다.
이유는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게 다른 부분이 있어서다.
하지만 아서는 나름 정확한 것들만 콕콕 집어서 다섯 가지를 말했다.
이 정도면 훌륭함을 넘어서 경이롭다.
훈련소에 그가 온 지 고작 이틀째니까.
“그럼 다음 문제. 견습 군주를 수료한 후 군주가 되면 가장 먼저 지어야 할 건축물은 뭘까?”
“성입니다. 성은 군주 자체를 나타내며 성 레벨이 높아야 다른 건축물의 레벨도 높을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성 다음으로는 보통 성벽, 병영…….”
“다음 문제. 전쟁의 광장이란?”
“전쟁의 광장은 이벤트를 위해 준비된 건축물입니다. 다른 건축물과 다르게 1레벨만 만들어도 되며…….”
“아스가르드에서 건축물 목재로 쓰이면 가장 좋은 나무는?”
“블랙 프로트 나무입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나무는 브로우드 나무이지만 이 브로우드 나무는 워낙 약해 자칫 적군이 공격을 가할 시…….”
“53종족에 대해서 말해봐.”
“드워프, 오우거, 천족, 마족, 용족, 반용족, 케르족, 불락족, 무아르드 족…….”
“…….”
오르웬은 할 말을 잃었다.
‘처, 천재야?’
나머지 여섯 권은 밖에서 읽을 수 있다 치자. 그래, 뭐 책을 좋아하고 영주들에 대한 관심이나 병사들에 대한 관심이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군주게임 내에 존재하는 것까지 아서는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정답을 말했다.
“호, 호호. 나름 똑똑하네.”
아서는 빙긋 웃었다.
어째 표정에선 나름이 아니라 ‘누구니, 넌’ 하는 것 같다.
“그럼 이제 제 요구 조건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교관님의 힘닿는 곳까지 앞으로 저에 대해서 보고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소리니?”
“그저 제가 천재라고 너무 운운하진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너 진짜 얄미운 거 아니?”
자신의 입으로 ‘천재’를 운운하는 아서.
그러면서도 멋쩍게 웃는 모습이 ‘재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오르웬은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단지 이 아이를 제대로 키워서 내보내면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들 뿐.
‘어차피 상관없지. 난 진짜 교관도 아니니까.’
오르웬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브로드 훈련소에 있는 교관들과 다른 비밀을 가지고 있다.
“알겠어. 내가 키우는 아서라는 꼬맹이가 천.재.가 아니라고 할게. 뭐, 내가 떠벌리는 성격도 아니고.”
“감사합니다.”
아서가 이러는 이유는 한 가지가 있다.
앞으로 며칠 동안 아서의 육체는 꾸준히 성장할 거다.
그것도 다른 견습 군주들보다 훨씬 빠르게.
분명히 오르웬은 그것을 파악할 것이다.
그걸 떠들지 않았으면 하는 거다.
어차피 아서의 훈련소 기간 동안 총합되는 점수는 군주 육성기가 알아서 점수를 합산해 보상을 토해줄 거다.
띠링
그러던 중 아서는 갑자기 홀로그램이 떠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눈앞으로 중요 정보 열람 항목이 반짝거렸다.
구매 가격은 1,000캐시였다.
로리스 이후로는 간만이었다.
아서는 지체하지 않고 구매했다.
(오르웬 교관의 정체)
오르웬 교관은 군주 육성기 사용자인 아서 더 프레스가 살고 있는 아스간 대륙의 사람이다. 그녀는 ‘연결 NPC’로 군주게임 참가자는 아니지만 특별하게 해당되어 교관으로도, 아이리스라는 마검사 이름으로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퀘스트: 오르웬 교관을 도와 첩자를 잡아라.
‘마, 마검사 아이리스……?’
아서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가 낯이 익었던 이유를 깨달아서다.
아스간 대륙 유일무이의 천재 마검사 아이리스.
그녀가 아서의 바로 아서의 교관이었던 거다.
마검사 아이리스.
그녀는 날 때부터 천재였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의 그립에 손을 뻗었다는 우스운 소리도 있을 정도다.
어려서부터 검을 배운 그녀는 추후에는 마법까지 배우기 시작했다.
검과 마법을 함께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실상 한 가지에만 집중해도 오러를 발현하는 것도, 클래스를 가진 마법사가 되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마법사 어머니, 기사 아버지의 밑에서 자란 그녀는 천성적으로 두 가지 모두 엄청나게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아스간 대륙에 마검사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르웬은 그런 마검사 중에서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천재로 유명했다.
그녀는 4클래스 마법사였다.
아스간 대륙에 4클래스 마법사는 약 3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극소수다.
그리고 검의 경지 또한 이필립스 제국군의 기사단원들과 싸워도 지지 않을 정도.
아서는 그녀가 적과 싸우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때에 보았던 경이로움을 잊지 못한다.
엄청난 속도로 적진으로 향해 나아가던 그녀의 왼손에서 엄청난 불길이 치솟아 오르더니 적들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불길에서 살아남은 적들을 베어냈다.
‘얼굴이 달라.’
아서는 자신이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를 깨달았다.
얼굴이 달랐다.
그가 아이리스를 처음 본 것은 앞으로 3년 후다.
열아홉 살이던 때에 전장에서 멀리 그녀를 보았고 그 이후로는 보지 못했다.
그때 당시 그녀의 얼굴의 반은 지독한 화상에 뒤덮여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화상이 자리 잡게 만든 사건이 ‘올르비스 첩자 학살 사건’이다.
올르비스 제국은 평소 이필립스 제국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평소에도 두 제국은 냉전을 유지하면서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던 때에 이필립스 제국에서 가장 호황을 누리고 거대하다고 알려져 있는 도시 프라스에서 갑작스러운 학살 사건이 발발하게 된다.
학살을 시작한 이는 4클래스 마법사 크록.
크록은 애초에 올르비스 제국의 사람이었고 이필립스 제국에선 마탑의 마법사이기도 했다.
그는 닥치는 대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
그때 희생된 사람의 수가 3천 명에 달할 정도다.
힘이 없는 자들 틈에 4클래스 마법사가 뛰어드는 일은 개미 사이에 오우거가 뛰어드는 일과 매한가지다.
그가 발현하는 마법 한 번에 수백 명이 불에 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도망치던 자들은 그의 손에서 뻗어나간 마법 화살에 가슴이 꿰뚫렸다.
그때 그를 막아선 것이 당시 3클래스 마법사이자 기사였던 아이리스였다.
그녀는 크록과의 싸움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3클래스 마법사로서의 한계를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그래도 그녀가 크록을 막아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몸의 반절이 화상에 삼켜진 그녀.
지원군이 도착했을 때 그녀는 반쯤 정신을 놓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크록의 몸은 예정된 것처럼 폭발했다.
그로 인해 이필립스 제국은 다소 난항을 겪었다.
올르비스 제국의 소행이 확실하다.
올르비스 제국은 이필립스 제국보다 마법사가 훨씬 많았다.
아니, 많은 수준을 넘어서 다섯 배가 넘은 수준.
올르비스는 마법사의 제국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4클래스 마법사를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국 쫓고 쫓아 그 사건이 발발한 후 1년 뒤에 올르비스 제국의 만행이 밝혀지게 된다.
또한 크록이라는 마법사는 중죄를 범했기에 제국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 가문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도 밝혀졌다.
그리고 그때의 아이리스는 오히려 4클래스 마법사 크록과의 싸움 이후의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수련에 더욱 매진해 4클래스 마법사까지 올라갔다.
여인으로서 미를 잃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나아갔다.
‘그녀가 연결 NPC라니.’
연결 NPC.
견습 군주들과 다르게 그들은 언제든 연결 NPC를 그만둘 수 있다.
하지만 연결 NPC는 군주게임으로부터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어쩌면 발 빠른 그녀의 성장을 도왔을지도 모른다.
‘+퀘스트’라고 써진 항목.
아마도 중요 정보 열람을 열어서 퀘스트로 연계할 수도 있는 듯싶었다.
망설이지 않고 확인했다.
(오르웬 교관을 도와 첩자를 잡아라)
등급:B
지급 캐시:3000
보상: 힘+5 민첩+6 체력+4 지능+4, 현자의 반지 > 바로 지급형
승낙 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시: 힘-5 민첩-6 체력-3
설명: 사용자는 오르웬 교관에게 덮칠 재앙을 알고 있다. 그녀를 도와 첩자들을 일망타진하라.
‘현자의 반지?’
현자의 반지에 대해선 처음 들어본다.
하지만 분명히 녹록지 않은 아티팩트임이 분명해 보였다.
바로 지급형이라는 말.
아마도 군주 육성기가 주는 보상일 것이다.
아서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이리스를 내게 우호적으로 만든다면 앞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아이리스는 제국에서 대우를 받는 자다.
그런 그녀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 대단하구나.’
“견습생?”
“예.”
아이리스의 부름에 아서는 싱긋 웃었다.
“무슨 생각 하지? 감히 날 앞에 두고?”
“교관님이 어제보다 오늘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시 얄미워.”
아서의 생각을 알지 못하는 그녀는 그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너 이 새끼, 넌 내가 제대로 키울 거야!’
* * *
이론 수업은 사실 오르웬이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었다.
브로드 훈련소에서 배울 이론은 모두 배웠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얻을 다른 지식은 순전히 견습 군주라는 허물을 벗고 얻을 수 있을 거다.
오르웬은 아서를 보면서 치를 떨었다.
‘뭐 이런 독종이 다 있어?’
아서는 독종 중에 독종이었다.
오르웬은 이론 수업이 아닌 육체적 훈련을 해야 할 때라고 빠르게 판단했고 원하는 무기를 집으라고 말했다.
아서는 그나마 자신이 휘두르기 편한 3㎏보다 조금 더 무게가 나가는 창을 들었다.
그리고 오르웬은 목각인형을 소환했다.
목각인형은 칼로 베면 실제 인간이 베인 것처럼 살이 찢어지며 베인다.
말이 목각인형이지 사람과 거의 똑같다.
그만큼 찌르면 찌르는 느낌이 난다.
목각인형은 1분마다 찔리거나 베인 것이 모두 아문다.
아서는 벌써 20분째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푹!
또다시 찌르고.
퐈악!
또다시 베었으며.
푹!
또다시 찔렀다.
벌써 아서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세가 좋아진다. 이건 마치…….’
강인한 기사가 미약한 소년의 몸이 되어 서서히 감을 찾아가는 것 같은 모습.
30분째가 되어서야 아서는 찌르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힘 1, 민첩 2, 캐시 500을 받았다.
퀘스트 ‘십 분 더 찌르기’가 나타난 거다.
하지만 그만큼 아서의 손은 말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사람을 실제로 창으로 찌르면 손바닥이 밀려 나간다.
그걸 힘을 주어 억지로 붙잡게 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손이 찢어지게 마련.
아서의 손은 시뻘게져 있었다.
“따갑네요.”
오르웬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를 보면서 또다시 생각한다.
저 녀석, 정체가 뭘까.
그로부터 신체 단련 훈련이 계속되었다.
오르웬은 자신이 아서를 케어해 준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따라가며 지켜봐 준다는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너 정체가 뭐냐?’라고 물었다.
그럼 아서는 역시 빙그레 웃으며 ‘아서인데요?’라고 얄밉게 굴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
‘몸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빠르게 성장한다. 너무 비약적이야.’
오르웬은 슬슬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남들에게 자신의 ‘천재성’을 말하지 말라고 했던 아서.
그는 예상하고 있었던 거다.
교관인 그녀가 비약적인 성장을 한 자신을 알게 될 거라고.
대체 그가 숨기고 있는 게 무엇일까.
하지만 오르웬은 더 이상 그의 정체도, 누군지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그저 ‘아서’라고 생각했다.
끈기 있는 견습생, 미래가 기대되는 견습생, 정말 똑똑한 견습생 정도로.
굳이 파고들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단지.
‘저런 자식 하나 낳으면 남부럽진 않겠네.’
저렇게 똘똘한 녀석이면 꽤 괜찮을 것 같다.
독신주의인 오르웬이 그런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훈련소에서 50일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