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군주회귀록 008화
“워워워.”
아서는 로이의 목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무섭다면 이곳에 있을 필욘 없지. 내가 널 사겠다.’
아스간 대륙엔 전통 같은 게 하나 있었다.
태어난 말 위에 처음 시승한 사람이 그 말의 구매 의사를 밝힐 시 우선권을 준다는 전통.
무조건은 아니지만 그렇게 처음 사람을 태운 말은 그를 더 잘 따른다는 이야기와 주인도 말을 더 아낀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로이는 지금 영지군들 사이에선 골칫거리니까.’
충분히 살 수 있을 거다.
‘정말 날 데려가 줄 거야?’
‘최대한 빨리 데려가지.’
녀석이 기분 좋은 듯 아서에게 머리를 가져다 대었다.
곧이어 브로스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 다가왔다.
“대, 대체…….”
그는 콜로스를 보았다.
그도 당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주 멋지고 예쁜 말입니다. 온순하기도 하고요.”
“이, 이놈이 온순하다고?”
어이가 없다.
이 미친 로이가 온순하다니.
브로스는 자신이 이제껏 잘못 알고 있었던 건가 싶어 녀석에게 올라타 봤다.
아서가 로이에게 속으로 말했다.
‘녀석을 떨어트려.’
‘나도 이놈이 싫어!’
히히히힝!
로이가 앞발을 치켜들었다.
“으악!”
브로스가 말에서 떨어졌다.
아서가 이죽 웃었다.
‘자, 이제 뒷발로…….’
퍼억!
로이가 뒷발을 휘두르자 브로스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말은 비싸다.
아마 로이가 보았던 죽임을 당한 말은 늙은 말이거나 병에 걸렸던 말일 확률이 높다.
함부로 로이를 대하진 못할 터.
그러면서도 아서를 제외한 누구도 탈 수 없음도 알았을 터!
“끄으으윽…….”
브로스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러자 영지군들이 말했다.
“로, 로이의 주인은 아서였던 거야!”
“진짜 주인을 만났군!”
로이가 다시 머리를 가져다 대자 아서가 머리를 부드럽게 만져주면서 작게 웃음 지었다.
곧 영지군들이 로이를 이끌었다.
놈은 고개를 돌려 어서 빨리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하듯 푸드득거렸다.
‘조금만 기다려라.’
그 말을 끝낸 아서는 뒤를 돌아보았다.
당혹했던 표정의 콜로스가 서둘러 표정을 감추는 게 보였다.
* * *
합격 발표는 보통 당일에 이루어진다.
사실 영지군 훈련소에서 쫓겨나듯 나선 자가 아니면 모두 합격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서, 케르만, 콜론.”
“예!”
“합격이다. 이 주일 후부터 아침 8시까지 출근할 수 있도록.”
아서는 당당히 합격했다.
콜로스가 아무리 기사단장이라지만 아서를 떨어트릴 명분이 없다.
모두 최우수.
거기에 로이를 이끌고 영지군 훈련소를 한 바퀴 빙 돌던 모습은 영지군들의 머릿속에 똑똑히 각인되었다.
분명히 아서를 떨어트리면 영지군이 의문을 품을 터.
‘놈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거다.’
아서는 알고 있다.
놈이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조이리라는 걸.
천천히 기다린다.
그리고 눈앞에 다다랐을 때, 놈을 단숨에 집어삼킬 것이다.
* * *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헬렌.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서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시, 시험은 잘 봤니? 다친 데는 없고?”
그녀는 아서의 몸 곳곳을 살폈다.
다행히 상한 곳은 없어 보였다.
“시험 잘 봤어요. 합…….”
벌컥!
“합격이랍니다!”
아서가 말을 채 끝맺기 전이었다.
갑자기 한스가 문을 열고 들어와 말을 대신했다.
헬렌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한스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와봐요. 우리 도련님 합격했답니다!”
자택의 집사와 하인, 하녀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합격이요?”
“와아아!”
“도련님이 해내실 줄 알았습니다.”
곳곳에서 탄성이 흐른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듯 한스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갔다.
그러자 모두 꾹 입을 다물었다.
“더 놀라운 건…….”
“놀라운 건?”
집사가 마른침을 꼴딱 삼켰다.
평소 같으면 버릇없다고도 할 수 있었겠지만 경사 중의 경사인지라 그걸 인지할 틈도 없었다.
“아서 도련님이 모든 성적을 최우수로 합격했답니다! 영지군 중에 친한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아서 도련님이 어찌나 대단하던지 달리기에선 세눈박이 치타보다 빨랐고 활을 쏠 때엔 엘프가 온 줄 알았더랍니다!”
“정말이요?”
“정말?!”
모두가 아서를 돌아봤다.
‘세눈박이 치타라…….’
오버도 이런 오버가 없다.
세눈박이 치타는 아스간 대륙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가장 빨리 달리는 포유류다.
“또 그뿐입니까, 대련 시험에서 병사를 때려눕히고!”
“눕히고?”
마치 엄청난 모험담을 듣듯이 한스의 입에 집중했다.
“황야의 미친 말이자 식인 말 로이라는 녀석에게 ‘날 태워라, 요놈!’ 하니까 놈이 순순히 도련님을 태우고 바람처럼 달렸다 아닙니까!”
“음…….”
“흠…….”
모두가 비슷한 소리를 냈다.
한스는 평소에도 과장이 심하다.
정작 당사자인 아서가 배를 잡고 웃을 수밖에.
“푸흐흐흐. 그게 뭐야, 한스. 황야의 미친 말에 식인 말이라니, 로이라는 말은 무척 온순한 말이었다고.”
“전 분명 그렇게 들었는데…… 아.무.튼!”
한스의 말에 모두가 아서를 돌아봤다.
“도련님이 합격했답니다. 우와!”
한스가 양팔을 들어 올려 감격하자 모든 하인, 하녀가 양팔을 들어 올렸다.
아서는 오랜만에 한스 덕분에 진짜 웃음을 지어보는 기분이었다.
어찌나 웃긴지 배가 아프고 광대가 당길 지경이다.
“저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단지…….”
아서의 진짜 증언이 시작되자 모두가 집중했다.
“전부 최우수를 기록하긴 했어요.”
아서가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모두가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
“멋져요!”
“휘이이익!”
자신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이들.
이들을 보며 아서는 빙그레 웃었다.
* * *
3일 동안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여느 때처럼 퀘스트를 했고 중요 정보 열람은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마도 중요 정보 열람이 나타나는 것은 불시인 듯싶었다.
저녁 식사를 끝마친 아서는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 순간.
푸화앗!
아서의 품속에 있던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가 황금빛을 뿌렸다.
주변에 흩뿌려진 황금빛을 보며 아서의 표정이 차분해졌다.
‘시작됐군…….’
아스가르드 대륙으로의 소환.
즉, 군주게임을 시작하게 되는 셈이었다.
아서는 광활한 빛이 눈을 집어삼키려 하자 당혹해하지 않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내 추측이 맞다면…….’
아서는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의 퀘스트, 자신의 오르는 스탯을 보면서 생각한 게 있었다.
곧이어 눈을 떴을 땐 웅성거리는 가지각색의 사람이 보였다.
“여, 여긴 어디지?”
“뭐야!”
“난 방금까지만 해도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훈련소.
견습 군주들을 육성하는 장소였다.
무분별하게 소환되어 끌려온 자들.
그들의 잔존한 육체는 평소의 그들과 똑같이 행동할 것이며 이는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생각보다 자연스러웠기에 알아채는 이는 없다.
또한 현실로 돌아가면 이제까지 있었던 일이 기억 속에 주입되며 훈련소의 경우 특수한 힘의 영향을 받아 2개월이란 훈련소에서의 시간이 실제 아스간 대륙에선 이틀밖에 되지 않는다.
그 틈에 아서는 자신의 추측을 곧바로 확인해 봤다.
‘상태창.’
(아서)
HP:650 MP:50
힘:22 민첩:18
체력:14 지구력:8
잠재력:108
‘역시…….’
아서는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었다.
군주게임의 참가자들은 당연히 현실의 사람들보다 강해진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제약이 걸려 있다.
군주들의 힘은 현실에서 사용할 수 없다.
현실로 돌아가면 현실에서 가지고 있던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거다.
또 군주 육성기도 현실에선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아서는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를 현실에서 가지고 있었고 능력치가 동일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군주게임에서의 힘이 현실에서의 내 힘이 된다…….’
절로 주먹이 꽉 쥐어지는 이야기였다.
확인을 끝마친 아서는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대체…….”
귀족들은 당혹하면서도 눈을 굴렸다.
기사로 보이는 자들이 눈에 들어오자 자신들도 모르게 하대가 나왔다.
“기사들, 혹시 여기가 어디지?”
교관들이 그의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이크.’
아서는 미간을 구겼다.
이곳은 친절한 곳이 아니었다.
“어, 어서 빨리 여기가 어딘지 고하…….”
퍽!
“억?!”
한 교관이 주먹으로 가차 없이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교관들은 말없이 여럿이서 밟았다.
말 없는 자들의 폭행이 더 무서운 법.
그들은 사정없이 그 귀족 나리를 짓밟았고 곧 한 명의 교관이 싸늘하게 말했다.
“다음부턴 ‘기사’가 아니라 ‘교관님’이라 부를 것. 알겠나?”
“어, 어찌 한낱 기사 따…… 억!”
또다시 이어진 몽둥이찜질.
이렇게 잡는 이유는 보여주는 거다.
이곳은 출신도 작위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이게 무슨 짓이냐! 너희들은 귀족을 이리 대한단 말이냐?”
‘나서는 자는 좋을 게 없다. 이곳은 이곳만의 규칙만이 있을 뿐.’
아서는 혀를 쯧 찼다.
이름 좀 있을 법한 기사가 당장 그놈들과 한판 붙기라도 하려는 듯 앞을 막아섰다.
“고맙네. 나는 올로스 백작…… 자네에게…….”
“괜찮으십니까?”
기사가 그를 부축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교관이 발로 걷어차 버렸다.
“억?!”
기사는 깜짝 놀란 표정이다.
자신이 왜 저런 조잡한 발길질에 날아갔지 싶은 거다.
당연하다.
이곳 훈련소 자체에는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쳐져 있고 그 보호막에서 발현되는 힘이 모든 이의 능력치를 평준화시킨다.
단, 아서는 그 불문율을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로 비틀었고.
“도, 도대체가 이곳은…….”
아서의 옆에 있던 한 사내가 당혹한 표정이었다.
살다살다 귀족을 이리 대하는 곳은 처음 본다는 듯.
그는 당황한 듯 보이면서도 아서에게 외투를 벗어서 건넸다.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그걸 들고 따라와라.”
“…….”
아서는 피식 웃고는 그걸 바닥에 스르르 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외투를 보며 사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네놈……! 네놈의 그 행동이 어떤 의미인 줄 아느냐? 난 프레이트 대공이다. 당장 네놈을 참수형…….”
“염병한다.”
“…….”
대공이든, 후작이든, 백작이든, 남작이든, 설령 황제나 황태자든.
이곳에선 통하지 않는다.
아서는 겁을 집어먹고 교관들의 통제에 따르는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 * *
거대한 대강당에서 총교관의 말이 이어졌다.
여러분은 군주게임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무수히 많은 자들이 웅성거렸다.
“내가 왜 이 말도 안 되는 게임에 참가해야 하지!”
그 말을 뱉은 귀족은 뒤로 멱살을 잡고 끌려 나가 모두가 다 보는 앞에서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고요함이 감돌았다.
2개월간의 기초적인 군주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군주 자격시험 통과 후엔 곧바로 영지를 다스리게 될 거라는 식.
정렬해서 서 있는 견습 군주들 틈새를 다니던 교관 중 하나가 아서를 보곤 미간을 구겼다.
“견습생.”
“네.”
“나이가 어떻게 되지?”
“열여섯입니다.”
“……이상하군.”
아서는 척 보기엔 열세 살 정도의 체구를 가지고 있다.
그나마 교관이 예상하던 나이보다는 많았지만 군주게임은 열아홉 살부터만 참여할 수 있다.
보통 기본적인 사고는 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는 되어야 하는 거다.
“갑작스럽게 군주게임에 참여하게 되어 많은 자가 불만을 가지고 있을 거다. 그에 따라서 보상에 대해서 말해주려고 한다.”
보상?
처음으로 모든 이가 귀를 기울일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