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군주회귀록 003화
단검을 거칠게 쳐낸 이는 바로 아서였다.
타탓!
서둘러 켈론이 거리를 벌렸다.
기습이 실패했으니 당연한 행동이다.
“어, 어르신……?”
한스는 자신의 목 언저리를 만지며 깜짝 놀란 표정으로 켈론을 보았다.
곧이어 켈론은 하얗게 센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아까부터 정말 성가시구나.”
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한스의 앞을 막아서고 그를 매섭게 노려봤다.
“도대체 어르신이 왜 저희를…….”
“그야…….”
“던전 마스터니까.”
그가 말하기 전에 아서가 먼저 말했다.
켈론의 눈이 흥미롭다는 듯 커졌다.
“그것까지 알고 있었나?”
“미끼가 되라고 할 때부터가 이상했지. 홉고블린이고 나발이고 누가 고블린들을 미끼로 잡지? 차라리 모여 있는 게 훨씬 효율적이야. 오우거 부대의 분대장 나리께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할 리가 없지.”
그때부터 아서는 의심했다.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분명히 오우거 부대였다면 누군가 먼저 알고 있던 이도 있었을 법하다.
칼리스 영지의 사람이든, 브래트 영지의 사람이든.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또 의심하는 자도 없긴 했다.
그 이유는 뻔하다.
‘너무 긴장해서겠지.’
긴장은 당장 의심을 지우게 하는 가장 큰 도구로도 쓰이니까.
또 던전 마스터가 노인이라는 의심을 가질 자는 거의 없을 테니까.
“벽 뒤에 이미 홉고블린과 고블린 부대가 숨어 있었겠지. 네가 미끼 제안을 했을 때부터.”
아서의 말에 켈론은 재밌다는 표정이었다.
아까 그들과 헤어진 장소.
만약 아서가 미끼로 한스와 나갔다면?
켈론은 돌변하여 바로 거기 있던 사람들을 벽 뒤에 숨은 놈들과 함께 죽였을 거다.
하지만 만약 아서가 거절하고 남아 있었다면?
홉고블린과 고블린 부대가 나타났을 것이다. 켈론은 혼란을 틈타서 자신과 한스의 목을 치고 고블린들은 다른 사람을 죽였을 거다.
어차피 그곳은 떠나야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 손을 뻗었을 때 아무도 손을 잡지 않고 욕만 해댔지.
아서가 일부러 일행과 분리해 움직인 이유는 간단하다.
켈론은 분명히 기습을 노릴 것이고 고블린이나 홉고블린을 달고 오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예상처럼 놈은 기습했고 실패해 다수를 상대하는 상황은 피했다.
“빌어먹을…….”
한스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개자식아, 죽이려면 곱게 죽이지 왜 사람들을 농락하고 죽여!”
그 말에 켈론은 히죽 웃었다.
“재밌잖아?”
“……!”
한스의 눈이 부릅떠졌다.
켈론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가 오우거 부대에서 활동했다는 말은 사실이었어. 분대장이었지. 하지만 어느 날 상관과 마찰이 생겼었지. 놈은 말 같지도 않은 지휘를 했어.”
그는 자신의 입술을 혀로 핥고 말을 이었다.
“때문에 난 말했지. ‘우리 분대원이 모두 죽습니다!’ 나는 명령 불복종했고 분대원들을 살렸어. 하지만 군법에 의해 처벌받았지. 목숨은 부지했어. 근데 내 분대원들은 자기들을 살리기 위해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내게서 등을 돌렸다.”
그는 끌끌 혀 차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난 믿었지. 언젠간 시간이 지나면 내게 고마워하며 찾아올 놈이 있을 거라고. ‘희망’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10년, 20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았어. 그들이 오우거 부대로서 엄청난 명성을 떨칠 때, 작위를 받을 때, 그 누구 하나도 말이야. 내 희망이 무너졌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때 알았어, 희망은 X같은 거구나. 그리고 던전 마스터로 소환되었지. 그곳에서 특성을 깨우쳤다.”
특성.
아주 간혹 타고나는 능력.
군주도 포함된다.
“희망을 먹는 자. 희망이 부풀려졌을 때, 그 희망을 무너뜨리면 난 더 많은 경험치와 골드를 얻는다. 나 스스로가 희망이 되어 희망을 무너뜨리는 거, 재밌지 않나?”
그는 희망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는 자신의 이야기 어떠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서가 말했다.
“결론은 쫓겨난 노친네가 지랄했다 뒈진 이야긴가?”
아서는 무표정했다.
그에 켈론은 피식 웃었다.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만.”
꽈아악.
켈론이 단검을 꽉 쥐었다.
그리고.
파앗!
아서를 향해 달려들었다.
태애앵!
아서는 그 단검을 가뿐히 쳐냈다.
켈론은 소년을 보며 이죽 웃었다.
‘군더더기 없어. 하지만…….’
힘이 약하다.
또한 놀라운 기술과 스피드를 가졌지만 자신에겐 미치지 못한다.
그것이 그가 아서를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태애앵!
태애앵!
단검이 세차게 부딪친다.
한스도 아까 전 챙겨 온 돌도끼를 들고 켈론을 향해 덤벼들었다.
하지만
퍼지익!
켈론의 발에 나가떨어졌다.
“큽!”
그가 넘어진 찰나.
탱!
째애애액!
단검과 단검이 다시 부딪쳤다.
잠깐의 힘겨루기.
그 사이에서 아서가 말했다.
“……내가 다 보여줬다고 생각하나 본데.”
“…….”
켈론은 답하지 않았다.
곧이어.
파앗!
아서가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꽂았다.
펏!
“윽!”
켈론이 두 발자국 물러났다.
번쩍 뛰어오른 아서의 돌려차기가 또 한 번 명치를 후렸다.
펏!
“크윽!”
바닥을 뒹군 켈론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뭐지? 날카로워졌어……!’
소년의 움직임이 변했다.
아서는 사실 던전에 들어올 때부터 모든 걸 경계했다.
몸을 움직이면서도 최소한의 동작만 보였다.
그리고 그는 열아홉 살, 인생의 변곡점이 된 후 현실의 전쟁터에선 이리 불렸던 사내다.
‘전장의 귀신.’
파아앗!
푸슈육!
아서의 단검이 켈론의 손목을 베어냈다.
“큭!”
그가 쥐고 있던 단검을 놓치는 순간 아서가 낚아챘다.
“흐읍!”
켈론이 다른 팔로 그를 공격하려 할 때 몸을 굴렸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이동했다.
그다음 그의 아킬레스건을 그었다.
푸슈육!
“억!”
켈론이 한쪽 무릎을 꿇고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아서는 그의 다리를 잡고 쭉 당겼다.
철푸덕!
그가 앞으로 엎어져 얼굴로 바닥을 받았다.
“컥!”
켈론은 바닥으로 엎어지면서도 멀쩡한 발을 차올려 아서를 공격했다.
아서는 한 팔을 들어 막아낸 후, 다시 공격을 가한 발의 발목을 잡아채 아킬레스건을 찢었다.
푸슈육!
“꺼억, 자, 잠깐……!”
켈론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아서는 그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 올렸다.
엎어졌던 켈론의 고개가 들린 순간.
아서의 단검이 그의 목을 망설이지 않고 베어냈다.
푸지이익!
“꺼업, 꺽!”
그의 목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켈론은 부릅뜬 눈으로 아서를 노려보며 목을 부여잡았다.
아서는 그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어느새 몸을 일으킨 한스는 찰나의 순간 벌어진 일들에 아서를 또 한 번 놀란 표정으로 보았다.
‘가, 강하시다…… 그리고 냉정해.’
말도 안 될 정도로.
하지만 아서는 한스의 등을 밀었다.
“가자.”
그들이 돌아서고.
툭.
켈론의 팔이 떨어졌다.
* * *
던전의 형태는 무궁무진하다.
던전 마스터를 죽여도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과 던전 마스터가 죽으면 공략이 완료되는 던전도 있다.
이곳은 후자에 속했다.
안으로 들어가도 어떤 몬스터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곳을 나가기 위해선 끝까지 가는 게 맞다.
끝에 도달했을 때 보스 방이 나타났다.
보스 방은 꽤 거대했다.
하지만 이미 보스는 죽지 않았던가.
아서는 보스 방을 둘러보다가 안쪽으로 들어가는 통로와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열린 걸 발견했다.
아서는 한스와 안쪽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들어갔다.
통로로 들어가고 얼마 후, 집무실 같은 곳이 나왔다.
아서는 그곳을 살폈다.
“던전을 공략하면 쓸 만한 게 나온다던데, 순 엉터리인가 봐요.”
한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생각과 다르게 아서는 주변을 살피다가 곧 눈이 동그래졌다.
‘차, 찾았다…….’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
아서는 켈론이 희망을 먹는 자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바칼로스가 직접 아스간 대륙에서 희망을 먹는 자인 켈론을 죽이고 그의 집무실에서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를 얻었다고 했으니까.
던전 마스터는 보통 마스터 육성기를 가지고 있다.
켈론이 어째서 군주 육성기를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젠 아서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또 확실한 게 추가로 존재한다.
‘불문율을 비튼다.’
본래 19살 이상부터만 군주게임의 무작위 소환에 응해진다.
하지만 아서는 열여섯 살.
그래도 이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를 통해 접속할 수 있다.
바칼로스도 이 군주 육성기를 얻고 얼마 후 소환되었다고 하니까.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는 앞쪽이 검은색이면서도 투명하게 뒤가 비쳤다.
전원이 켜지면 홀로그램으로 다양한 걸 확인할 수 있다.
아서는 전원 버튼을 눌렀다.
곧이어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가 아서만이 볼 수 있는 빛을 뿌렸다.
곧이어.
[군주 육성기가 사용자 인식을 시작합니다.]
[아서 더 프레스 사용자 인식을 완료합니다.]
원하고 원하던 알림이 들렸다.
동기화가 끝났다는 의미다.
이로써 아서는 벌써 다른 이들보다 한 걸음 앞서가게 된 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서는 한스가 주변을 둘러볼 때 상태창을 오픈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한스에겐 이도 보이지 않는다.
‘상태창.’
(아서)
HP:300 MP:50
힘:3 민첩:8
체력:3 지구력:4
잠재력:108
기초적인 것들만 수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추가로 다른 스탯을 얻으면 새로이 표기된다.
‘씁쓸하군.’
도전 군주일 때는 수백씩 되었던 스탯이 한없이 작아져 있었다.
도전 군주.
대군주에 도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각 종족의 여러 수장을 말했다.
‘하지만 금방 따라잡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서는 일단 상태창을 껐다.
어떤 식으로 이 녀석이 특별함을 내보일지는 아직 몰랐다.
곧이어 한스와 아서 두 사람이 함께 그곳을 나와 밖으로 빠져나왔다.
쨍쨍한 해가 둘을 맞이했다.
“씁쓸하네요. 사람들은 죽었는데 저희는 뭘 챙기려고 뒤지고.”
한스의 말은 어쩌면 감성적이었다.
던전은 피해를 준다.
피해를 준 던전을 깨면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이득을 안 취하는 게 바보다.
그것보다 아서는 잠시 생각했다.
‘모두에게 지금 밝히는 게 나을까?’
대충 얼버무리면 된다.
겁쟁이인 척했다는 식으로.
납득이 힘들겠지만 안 하기도 힘든 상황 아닌가?
그때 한스가 산을 내려가다 말했다.
“저희가 미끼로 앞으로 갔다가 때마침 켈론이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을 목격해서 다행입니다.”
“…….”
아서는 답하지 않고 돌아봤다.
“그걸 목격하고 제가 기습해서 켈론을 죽였으니 이렇게 쉽게 빠져나왔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납득할 수 있는 말이다.
켈론의 기습을 역기습했다고 하면.
던전 마스터도 목이 한 번 잘못 찔리면 죽으니까.
또한 던전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리셋된다. 보통 이런 던전은 리셋되어 모든 게 사라지고 하루가 지나면 저절로 사라진다.
그걸 이용하면 시체들도 찾을 수 없고 의심도 하기 힘들다.
이곳에서 시체가 리셋되기까지 기다렸다가 내려가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하면 된다.
“힘을 숨기는 건 그만큼 이유가 있으셨던 거겠죠.”
한스는 똑똑한 하인이었다.
아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너 잘 싸우더라.”
아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이 끝이었다.
조금 산을 내려간 그 둘은 곧 작은 바위에 앉아 기웃기웃 저무는 해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 * *
프레스 가문의 저택.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길게 긴 은빛 머리카락과 하얀색 피부가 매우 조화로웠으며 실제 서른 후반의 나이였으나 이십 대 후반이라 해도 믿을 만큼 아름다웠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초조하게 기다리던 여인, 헬렌이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곳엔 아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