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군주회귀록 002화
쿵!
뒤로 넘어진 한스는 덕분에 마비침을 피할 수 있었다.
뒤이어 넘어진 한스를 돌도끼를 든 고블린이 내려찍으려던 순간이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사내, 아니, 소년이 있었다.
자신의 앞을 막은 그 소년을 보며 한스는 놀란 목소리를 토했다.
“도, 도련님……?”
아서는 단숨에 고블린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는 돌도끼를 휘두르던 고블린의 손목을 잡고 부드럽게 꺾었다.
우둑!
“키에.”
그다음 고블린이 떨어트리는 돌도끼를 낚아챈 후에 있는 힘을 다해 놈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푸지익!
고블린이 쓰러지자 아서는 재빠르게 놈의 허리춤에서 마비침을 뱉어낼 수 있는 기다란 대나무를 찾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다른 고블린들을 향해 마비침을 쏘았다.
백발백중.
쏘는 족족 모두가 맞았다.
그리고 아서가 한스를 돌아보았다.
‘누, 눈빛이…….’
순간 한스는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알던 도련님이 맞는 걸까?
아서는 한없이 차갑고 공허한, 사람조차도 망설이지 않고 죽일 법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일어나.”
“아, 예…….”
한스는 엉겁결에 몸을 일으켰다. 그는 아서가 쏜 마비침에 맞고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고블린들을 보았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을 거다.
아서여도 그럴 테니까.
“거, 겁쟁이 아서 맞아?”
“움직임 봤어?”
뒤쪽에서도 웅성거린다.
아서를 아는 자들은 그럴 수밖에.
개미 한 마리 못 죽이고 겁쟁이라고 놀림받는 그 아이가 가뿐히 고블린 하나를 죽였으니까.
하지만 아서는 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한스가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달렸다.
파앗!
번쩍 날아오른 그는 벽을 박차고 무릎으로 고블린 하나를 힘껏 찍었다.
푸직!
‘……힘이 모자라다.’
아서는 인류 중 유일하게 대군주에 근접했다고 불리던 사내.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과거로 돌아왔다.
기술을 사용한다.
쓰러진 고블린의 허리춤에 있던 녹슨 단검을 뽑아낸 아서는 매서운 속도로 고블린들의 틈새에 파고들었다.
푹!
푹푹푹!
단검은 사정거리가 짧은 만큼 빠르게 휘두를 수 있다.
단숨에 세 마리의 고블린이 정확히 목이 뚫려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
한스는 말문을 잃었다.
“호오.”
켈론의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동작이 군더더기가 없어. 오로지 목만을 노렸다.’
켈론이 그런 판단을 내렸을 때 아서가 한스의 옆으로 돌아왔다.
“도련님.”
“기사의 아들이잖아.”
짧게 말했다.
아서의 아버지는 브래트 영지의 영웅이라 불렸던 기사다.
과거 기사로서 큰 공을 세워 준남작 작위도 하사받으신.
그런 아버지에게 아서가 나왔기에 겁쟁이라 불린 것도 있었다.
한스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라는 걸 그도 알았다.
그를 보며 아서가 말했다.
“나를 지키지 말고 너를 지켜.”
“……예.”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스는 아서가 위험에 처하면 몸을 던질 것이다.
“……잘 싸우는군.”
켈론이 다가왔다. 그는 자연스레 아서가 앞으로 나서길 원하는 표정이었다.
뒤쪽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효율적인 전력이 생겼다.
매일 겁쟁이, 겁쟁이 놀리던 자들이 변했다.
웃음이 나는 일이지만 아서는 앞으로 나섰다.
그도 갑갑하게 뒤에서 있을 생각은 없었다.
다시 일행은 나아갔다.
* * *
푸화아악!
아서의 발 빠른 움직임에 고블린들이 후드득 쓰러졌다.
세 번째 전투가 끝나고 켈론이 턱을 문질렀다.
“덕분에 아직 한 사람의 피해도 없구나.”
부상자는 있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아서는 답하지 않고 그저 바라봤다.
“아주 빠른 몸을 가졌어.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할까 하는데.”
켈론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둘러보며 말했다.
“앞쪽에서 자네가 고블린들을 조금씩만 몰아오는 게 어떤가?”
“조금씩이라…….”
아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몰아온다는 것에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이놈.’
찰나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서는 속으로 짙게 웃었다.
하지만 이내 묵묵히 들어보았다.
“갈수록 고블린의 숫자는 많아질 거야. 그중 홉고블린이 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자네는 몸이 빠르니 유인해 오는 거지. 홉고블린을 만나면 따돌리고 미리 우리에게 앞에 그놈이 있다는 걸 알리기도 하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뒤쪽에서 의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도 충분히 잘 나아가고 있는데?
“홉고블린에 대해서 몰라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걸세. 홉고블린은 혼자서 다섯 마리 이상의 고블린의 힘을 내지. 놈이 만약 다른 고블린과 함께 나타나면 성가셔져. 분명히 사망자가 생길 거야.”
“……그렇군요.”
사망자란 말에 사내가 바로 납득했다.
사실 지금 이 무리의 우두머리는 켈론이다.
또 과거 오우거 부대의 분대장이기도 하였기에 그가 자신들보다 경험과 지식이 많으리라 여기는 것.
켈론은 아서를 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에 아서의 답변은 간단했다.
“싫습니다.”
“……물론 무섭겠지. 하지만 자네가 나서주면 우리가 좀 더 수월하게 이곳을 나갈 수도 있어.”
“싫다지 않습니까.”
한스마저 미간을 구겼다.
미끼는 위험도 가장 크게 부담한다.
그걸 한스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뒤쪽 사람들은 달랐다.
“좀 해주시죠?”
“네가 좀만 고생하면 우리가 살 확률이 늘지 않니, 아서야.”
“아서, 이제까지 네게 겁쟁이라고 했던 건 미안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네가 네 아버지처럼 영웅이 되어보는 게 어떻겠냐.”
“그래, 아서. 네가 나가면 우리가 편해질 거야.”
“제발 그렇게 해줘.”
그들은 쉴 새 없이 아우성친다.
그에 아서는 짧게 말했다.
“염병들 하십니다.”
“…….”
“…….”
순간 모두가 침묵했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싸늘했다.
말 한번 잘못했다간 바로 달려들 것 같이 차가운 눈빛.
“당신들은 하라면 하겠습니까? 내가 가라면 못 하고 남이 하라고 하면 보낸다? 자기 목숨만 귀하고 남 목숨은 아깝지 않으니까.”
피식
인간은 이기적이다.
그걸 아서는 안다.
“나이들 처먹고 나 같이 어린 소년을 앞세워 몰이 하면 좋습니까?”
정곡.
모두가 더 할 말이 없어진 듯하다. 어떤 이는 눈을 피했다.
하지만 곧이어 한 사내가 말했다.
“그, 그래도 너 하나 희생하면 우리 모두가 살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또 미끼가 되면 무조건 죽기라도 하더냐?!”
“이 사람들이 매일 도련님을 무시하듯 해놓고 이제 와서……!”
한스가 소리칠 때 아서가 손을 들어 올려 제지했다.
“그럼 제안 하나 하죠.”
아서의 말에 켈론은 말해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미끼가 되지 않을 겁니다. 대신 먼저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죠. 그리고 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저와 함께 갈 사람이 있다면 함께 가도 좋습니다. 단, 그 사람이 짐이 되면 버리겠지만 한 명 몫만 한다면 끝까지 책임지고 데려갑니다. 이건 약속하죠.”
그 말은 남녀 구분 없이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명 몫이라도 한다면 적어도 최선을 다하기만 해도 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아서가 한 말은 그들이 켈론과 아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켈론도 의외의 답에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한스는 아서의 옆에 착 붙었다.
무조건 아서와 함께 간다.
한스는 어찌 되었든 이 무리에 있으면 아서를 궁지로 몰아갈 것을 예상한 것이다.
그리고 한스의 그런 행동은 아서의 예상대로 움직여 주는 셈.
“……미친, 그 X새끼 너무한 거 아니야?!”
“아서, 그렇게 안 봤는데. 너 정말 너무한 것 아니니?”
“나쁜 새끼!”
“네 아비 보기 부끄럽구나!”
아우성이 다시 시작되었다.
욕설이 난무한다.
단 한 명도 아서 편에 붙지 않았다.
아서는 그들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손을 그들은 거절했다.
그럼 끝이다.
자신은 영웅이 아니다.
필요치 않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불사할 자가 아니다.
또한 그들을 구하는 것이 자신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답은 빠르게 내려졌다.
“저흰 먼저 갑니다.”
바로 몸을 돌렸다.
“끄으응…….”
켈론은 난처한 표정이었다.
뒤쪽에서 계속 아서를 알던 자들이 그를 신랄하게 욕했다.
아서는 묵묵히 한스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이 사라지고 한 사내가 켈론에게 다가왔다.
“어르신, 저흰 어르신만 믿고 있습니다. 자그마치 오우거 분대를 이끄셨던 분인데, 저놈들은 곧 죽겠지요. 아니, 죽어 마땅합니다.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
“……어쩔 수 없지.”
켈론은 꺼림칙한 표정으로 던전 깊숙이 들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 * *
아서는 안쪽으로 계속 들어갔다.
그동안 고블린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익숙한 곳은 눈에 들어왔다.
아주 미미하게 작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 벽의 틈새다.
이쯤이었구나.
아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기억이 또렷하지 않았지만 켈론이 미끼가 되라고 했을 때 어느 정도 떠올랐다.
그때도 켈론은 한스에게 미끼가 되라고 했다.
그리고 한스는 켈론에게 아서를 부탁했다.
하지만 아서는 한스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겁쟁이면서도 그를 걱정해서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았다.
한스가 때마침 고블린들에게 둘러싸여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고블린 몇 마리가 아서를 덮치려 했다.
한스는 몸 곳곳에 병장기가 박혔음에도 달려왔다.
그리고 그 고블린들의 무기를 온몸으로 막고 자신에게 도망치라 했다.
그리고 아서는 도망쳤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도망치다가 넘어지면서 벽을 손으로 밀게 되었는데, 미는 순간 벽이 그를 지탱하지 못하고 밖으로 내보냈다.
던전에 숨어 있는 하나의 작은 탈출구였던 것.
흔하진 않은 일이었다.
어쩌면 기적 같았던 일.
‘정말 X신이었군.’
과거의 자신을 그렇게 평가한 후에 아서는 그곳을 지나쳤다.
편하게 이곳을 통해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서는 켈론이 ‘미끼’이야기를 했을 때 생각을 바꿨다.
‘어쩌면 이곳에서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
군주 육성기는 군주게임에서 사용한다.
무작위로 소환된 후에 군주 육성기를 지급받고 그를 통해 다양한 퀘스트, 군주 레벨 업 시스템, 신기록 등에 영향력을 끼친다.
그리고 이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는 이보다 훨씬 더 특별했다.
본래 이를 얻었던 이는 바칼로스라는 자였다.
그는 미래를 보는 군주라고 불렸을 정도로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쓰레기 군주였다.
추후 대군주들과 결탁하여 인류를 위협했으니까.
그를 죽인 게 바로 아서였다. 아서는 바칼로스가 죽기 전 어떻게 미래를 보는 군주라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물었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듯 이러한 말을 했다.
‘내가 가진 군주 육성기는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거든.’
‘특성화? 어떤 특별한 힘을 가졌길래?’
그 질문에 대해서 바칼로스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어디서 얻었는지에 대해서만 말했다.
‘어차피 이제 너희는 못 얻을 테니까, 내가 죽는 순간 이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도 사라지니까!’
그는 그렇게 말했다.
아서는 망설이지 않고 그때 그의 목을 쳤다.
‘바칼로스는 몇 안 되는 나와 같은 아스간 대륙의 참가자였지.’
고개를 끄덕인 아서는 기대했다.
그 물건이 정확히 어떤 힘을 가진 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최소한 바칼로스가 그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아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서는 던전 안쪽을 주시했다.
‘고블린은 더 이상 우리에게 많이 나타나지 않을 거다.’
아서는 확신했다.
“도련님.”
아서가 돌아보자 한스가 작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를 드러내 활짝 웃었다.
“역시 피는 못 속이나 봅니다.”
아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한스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자신이 판박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하지만 틀렸다.
아버지는 영웅이고 자신은 영웅은 아니다.
단지 해야 할 일을 위해 나아갈 뿐이니까.
“그보다…….”
이제 어쩝니까라는 말을 할까 하던 한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 너무 절망적이 되니까.
바로 그때.
“허억허억허억.”
거친 숨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방금 전 자신들이 왔던 곳이었다.
그 숨소리는 분명히 사람의 것이었다.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색이 된 켈론이었다.
‘역시.’
아서는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예상대로 된다는 걸 확신했다.
숨을 헐떡이는 켈론은 소리치며 뛰어왔다.
“흐, 홉고블린이야. 놈들이 벽 안에 숨어 있었어!”
“저, 정말입니까?”
한스가 앞으로 움직였다.
그를 따라 아서도 움직였다.
켈론은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달려왔다.
당장 숨이 넘어갈 듯한 다급한 표정으로.
“허억허억, 그래.”
아서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실감나네.
켈론은 뒤를 돌아보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한스가 그 말을 끝맺으려던 때, 어느덧 켈론은 그 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그가 품속에 숨겨두었던 잘 갈린 단검이 뽑혀 나오며 한스의 목을 향해 찔러졌다.
그 순간.
태에에에엥!
빠르게 나타난 녹슨 단검이 거칠게 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