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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기사왕-168화 (168/181)

< 168화 >

검은머리 기사왕 168화

“서둘러!”

검을 보태본다고 한들 파도처럼 몰려오는 해골 무리를 막을 수는 없다. 나는 앞서 달려오는 검은 화살을 먼저 보낸 다음 위태롭게 뛰어오는 두비를 한 손으로 낚아챘다.

“구해왔어요! 맨드레이크!”

녀석은 대롱대롱 매달려 가는 와중에도 자신이 구해온 소중한 맨드레이크를 앞으로 내밀었다. 책임감 있는 그 모습에 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대답해 주었다.

“잘했다!”

두비는 끝까지 약속을 지켰다. 이제 뒤는 우리에게 맡기면 된다. 녀석이 떨어지지 않도록 옷깃을 꾹 움켜잡은 나는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미친 듯이 밟았다.

끼기기긱, 퓽!

검은 화살이 연신 시위를 당겨 보았다. 하지만 몰려오는 해골 무리는 물러나기는커녕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건 한낱 개인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검성!”

드디어 계단의 끝이 보인다. 검은 화살이 내민 손을 낚아챈 나는 참고 있던 숨을 내뱉으며 두비를 고쳐 안았다. 겨우겨우 도착한 지상은 지하와 별다르지 않았다.

펄럭! 끼이이익!

후웅, 후웅!

옅어진 황혼이 종말을 예고한다. 하늘을 물들인 비행체 언데드는 지하를 빠져나온 우리를 향해 기괴한 울음을 내뱉었다. 모든 언데드가 살아 있는 자를 노리고 있었다.

“뗏목을 띄어!”

뗏목이 유일한 탈출 수단이다. 검은 화살을 향해 두비와 뗏목을 맡긴 나는 그대로 뒤로 돌아 오른쪽 벽을 향해 뛰어갔다. 예상대로 해골 무리는 정문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꾸욱.

난간을 딛고 벽을 밟았다. 순식간에 허공으로 뛰어오른 나는 검 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끌어모은 힘을 휘둘러 정문 바로 옆 기둥을 반으로 갈라 버린다.

서걱!

쿠르르르릉!

썩은 나무로 만든 기둥이 잘렸다. 동시에 성지 정문은 무너져 내렸고 빠져나오려던 해골 무리 선두는 압사당했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는 결국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탁!

끼아아악!

낙법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다. 그러자 사냥감이 방심하기만을 기다린 비행체 언데드가 빠른 속도로 하강해 급소를 노렸다. 나는 곧바로 몸을 틀어 검을 수직으로 찍었다.

서걱! 콰직!

가볍게 두 놈을 압살했다. 검날을 휘둘러 썩은 피를 털어낸 뒤 뗏목을 묶어든 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일행들은 날아온 놈들로 인해 포위된 상태였다.

후욱.

숨을 한번 몰아쉰다. 내 몸은 반 박자 빠르게 앞으로 뛰쳐나갔다. 정신없이 지나치는 시야 사이로 온갖 장애물과 비행체 언데드가 경로를 막고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서걱! 후웅!

가장 먼저 날아오는 놈을 벤다. 반으로 갈린 그 공간 뒤로 몸이 지나치고 속력은 서서히 가속을 받는다. 나는 미끄러지듯 장애물을 빠져나와 허공으로 떠올랐다.

콰직!

한 비행체 언데드가 검은 화살이 인지하지 못한 사각을 노리며 날아왔다. 하지만 바람처럼 날아온 나로 인해 흉측한 두개골과 날개가 그대로 꿰뚫려 사멸해 버린다.

끼기기기긱, 퓽!

서로가 등을 맞댄 이상 뒤는 걱정이 없다. 내가 왔다는 것을 확인한 검은 화살은 미친 듯이 시위를 당겨 길을 뚫었다. 어느덧 우리 앞에는 뗏목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끼리릭, 서걱!

첨벙!

뗏목을 묶었던 밧줄을 잘랐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호수 바닥을 밀어 반동을 주었다. 위태롭게 출렁인 뗏목은 호수를 가로질러 성지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급, 급류를 타야 해요!”

하지만 겨우 이 정도 속도로는 언데드 놈들의 추격을 뿌리칠 수는 없다. 검은 화살 품에 힘겹게 안겨 있던 두비는 우리가 왔던 방향과 정반대인 하류를 가리키며 외쳤다.

끼익!

빠른 물길을 타야 한다. 나는 곧바로 노를 저어 하류를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애매했던 속도는 탄력을 받아 나아갔고 뗏목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기만 하면 된다. 목적지 어디가 되었든 성지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 나는 비틀거리는 일행들을 꾹 붙잡은 채 물살을 타고 내려갔다.

쿠르르르르르릉!!

하지만 그 순간 우리가 빠져나왔던 세계수 성지에서 거대한 파동이 일어났다. 무너지는 정문,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해골 무리, 성지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온다.’

콰아아아아아앙 - - - - - -!!!!!!!

응축되어있던 오염 기운이 폭발했다. 나는 곧바로 등을 돌려 검은 화살과 두비를 온몸으로 감싸 안았다. 심장 속 세계수 파편이 상극을 만나 미친 듯이 요동쳤다.

치지지지직, 치직!

쿨럭!

엄청난 농도와 밀도다. 만약 감싸 안는 것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일행들은 그대로 즉사했을 것이다. 검은색 피를 토한 나는 몰려오는 침식을 빠르게 떨쳐내었다.

스으으으으.

폭발이 만들어 낸 파동이 잔잔해진다. 하늘은 어두웠고 먼지 같은 재가 비처럼 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는가. 나는 고개를 들어 ‘존재’와 마주했다.

촤르르륵!

해골 무리가 강물을 따라 흐른다. 그리고 위대한 자를 영접하듯 뼈로 이루어진 길을 만들었다. 모든 언데드를 숨죽이게 한 존재는 다름 아닌 타락한 엘프 여왕이었다.

[- - - - - - - -.]

얼과 몸이 반쯤 썩어 뼈가 드러나 있다. 표정이 없는 엘프 여왕은 삶을 빼앗기는 것도 모자라 죽음마저 빼앗겼다. 그리고 불사왕 권능 아래 끔찍한 ‘리치’가 되었다.

꺄아아아아아악- - -!!

리치 여왕이 우리를 지목하며 기괴한 비명을 지른다. 그러자 성지에서 쏟아져 나온 언데드 해골과 비행체 언데드가 호수를 지나 강물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미 자아를 잃은 여왕이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사라질 때까지 우리를 쫓고 또 쫓아올 것이다. 거대한 악을 마주한 나는 경각으로 달한 상황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검성!”

검은 화살이 다급히 나를 부른다. 급히 뒤를 돌아보자 오염 침식으로 정신을 잃은 두비가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반병 남은 오염 억제제를 꺼냈다.

꼴깍.

입을 강제로 벌려 오염 억제제를 투여했다. 그러자 두비는 언제 발작을 일으켰냐는 듯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검은 화살을 향해 말했다.

“두비랑 맨드레이크를 지켜.”

“뭐? 너 지금······!”

놈들이 뗏목 속도를 따라잡고 있다. 넋 놓고 있다가는 저 해골 무리와 리치 여왕 아래 압사당하고 말 것이다. 내 뜻을 이해한 검은 화살이 다급히 손을 뻗으려 했다.

탁!

하지만 그 손은 허공을 짚었다. 나는 이미 뗏목을 뛰쳐나와 따라오는 리치 여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몸이 가볍다. 나는 떠내려오는 부유물을 밟고 강을 역류했다.

탁, 탁, 탁!

두 번은 없다. 기회는 오직 한 번뿐이다. 손끝과 발아래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한 발, 한 발 신중히 처리한다. 나는 환경이 수시로 변하는 강물 위 오롯이 섰다.

촤르르륵, 챙!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검은색으로 일렁이는 불길한 검격이 이쪽으로 날아왔다. 내 전진을 도발로 받아들인 리치 여왕이 해골 무리를 밟고 내게 날아온 것이다.

“- - - - - - - - -.”

심연과도 같은 눈동자가 나를 주시한다. 마치 죽음을 눈앞에 마주한 듯하다. 하지만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면 물들수록 세계수 파편은 그 빛을 환하게 내뿜고 있었다.

끼아아아아아 - - - -!!

챙! 채챙! 챙

서걱, 콰앙!

찰나의 순간 수십 차례 검격이 날아왔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속도에 나는 오직 직감과 경험으로만 공격을 막아 내야 했다.

살아생전 높은 경지를 가지고 있었던 엘프 여왕은 타락과 증오를 통해 필멸자를 아득하게 뛰어넘는 넘는 경지를 지니게 되었다.

쾅!

서로가 상극인 기운이 충돌한다. 공격을 막은 나는 뒤로 크게 밀려났고 리치 여왕 또한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떨었다.

[검, 검······. 성···?]

여왕은 타락으로 인해 자아를 잃었다. 하지만 방금 충돌한 세계수 기운이 기억을 떠올리게 했는지 썩어들어간 입으로 이름을 불렀다. 피를 토해낸 나는 다급히 외쳤다.

“여왕! 정신 차려라!”

엘프 여왕을 구원한 의무는 내게 없다. 하지만 종말을 앞당기는 오염과 타락을 사멸하게만 할 수 있다면 나는 그동안 이를 갈았던 원한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었다.

“네 동족을 위해 싸운 게 아니었나!”

종족은 생존 혹은 번영을 위해 싸웠다. 겨우 죽음을 먹는 자 따위에게 이 대륙을 넘길 수는 없었다. 나는 거듭된 설득과 함께 영면을 위한 검을 마지막으로 내질렀다.

치지지직, 치직!

챙!

[아, 아아아아아악 - - -!!!!]

하지만 그 순간 영혼을 속박한 권능이 발작을 시작했다. 여왕은 고통을 울부짖으며 온몸을 꺾었고 해골 무리는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지반이······. 지반이 무너져 내린다.

쾅!

콰르르르르릉 - - - -!!!

세상이 흔들린다. 가뜩이나 빠르게 흐르던 급류는 조류처럼 회오리쳤다. 재빨리 고개를 돌린 나는 하류로 흘러가던 뗏목이 폭포 낭떠러지로 향하는 것을 발견했다.

두비는 정신을 잃었다. 검은 화살은 언데드를 막기 위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있다. 저대로 두면 일행은 끝이 보이지 않는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탁!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로지 살려야 한다는 본능이 온몸을 잠식한다. 나는 몸을 보호하라 외치는 본능을 무시한 뒤 곧바로 시선을 돌려 낭떠러지로 몸을 날렸다.

‘한 번만 도와다오’

탁!

떠다니는 부유물을 밟고 또 밟는다. 내가 마주한 모든 장면이 갈기갈기 찢겨 느리게 흐를 때쯤 시야는 어느새 거친 급류에 빠져 아래로 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첨벙!

뗏목이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함께 아래로 떨어진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허공에는 정신을 잃은 두비와 검은 화살이 저 깊은 곳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검성!”

낙하하는 와중에 검은 화살이 자세를 돌린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화살을 시위에 건 다음 내게 쏘았다. 공격이 아니다. 화살 끝에는 밧줄이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피잉!

잡아야 한다. 무조건 잡아야 한다. 떨어지는 속도와 날아가는 속도, 눈에 보이지 않는 화살이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간다.

탁!

몸을 한 바퀴 돌린 나는 뒤에 달린 밧줄을 그대로 낚아챘다. 그러자 검은 화살이 두비를 붙잡는다. 마찬가지로 밧줄을 붙잡은 나는 검을 낭떠러지 벽면에 꽂아 넣었다.

푹! 끼기기기기긱!

“끄아아아아아 - - - -!!!!”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무게와 속도를 이기지 못한 뼈가 금이 간다. 하지만 나는 버티고 또 버텨 기어코 떨어지는 속도를 줄였다. 깡! 역할을 다한 검이 부러진다.

후웅!

풍덩!

뗏목과 일행이 폭포 아래 떨어졌다. 나는 곧바로 자세를 바꿔 빠른 속도로 밧줄을 당겼다. 풍덩! 아래로 떨어지자마자 검은색 급류가 모든 것을 쓸려나가게 했다.

꾸욱!

밧줄을 힘껏 당겼다. 그러자 밧줄과 이어진 무게감과 함께 가라앉고 있는 검은 화살과 도비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곧바로 밧줄을 당겨 일행들 곁으로 헤엄쳐 갔다.

젠장, 숨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곧바로 커다란 바위를 붙잡았다. 그리고 더 이상 쓸려 가지 않도록 두비와 검은 화살을 뭍으로 끌어올렸다.

“검은 화살! 두비!”

오염된 물속에 너무나 오래 있었다. 이미 오염이 침식된 검은 화살과 두비는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물을 빠져나온 나는 비틀비틀 걸어가 일행들을 붙잡았다.

후욱, 훅.

숨을 되돌려 오염된 물을 뱉게 해야만 한다. 나는 가슴 위를 압박하고 숨을 불어넣으며 필사적으로 인공호흡을 했다. 그러자 양쪽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쿨럭쿨럭!

둘 다 호흡이 돌아왔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목 안으로 들어간 오염 물질을 전부 뱉게 했다. 하지만 상태가 나빠진 그 둘은 의식을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쿠르르릉 - - -!!!

아직 놈들의 추격이 끝나지 않았다.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정신을 잃은 검은 화살과 두비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우거진 숲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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