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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기사왕-110화 (110/181)

110화

검은머리 기사왕 110화

다각, 다각, 다각.

습격 현장에서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우리는 그대로 길을 따라 산맥 초입에 터를 잡은 고산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마을과 점점 가까워질수록 징수관과 병사들의 실종이 결국 외부적 요인에 의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주변이 척박한 북방 산맥이다 보니 마을 보호를 위한 목책이나 자발적인 군사 활동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뒤늦게 도착한 마을은 주변을 경계하는 자경단은커녕 목책 일부와 정문이 그대로 붕괴해버린 상태였다.

당연히 그들이 자초한 것은 아닐 것이다.

표정을 굳힌 조사관은 병사들에게 무장 명령을 내린 뒤 내게 말했다.

“······습격 받은 모양입니다.”

“내가 앞장서지.”

평생을 이곳에서 나고 자란 고산 마을 주민들은 순박하고 베풀기를 좋아했다.

오죽하면 순례자들 사이에서 유일한 성역 인도자들이라고 불리겠는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무고한 이들을 습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용서할 수 없다.

검을 뽑은 나는 앞서 달려가는 병사들을 지나쳐 그대로 마을 내부로 진입했다.

다각! 다각! 다각!

“아무도 없습니다!”

“생존자를 찾아라!”

하지만 쑥대밭이 된 마을 내부는 오래된 흔적만이 보일 뿐, 그 어디에도 무장한 적이나 습격 주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지원군 파견이 너무 늦었던 것일까.

얼굴이 어두워진 조사관은 한동안 목책 부근을 수색하다 이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같은 놈입니다.”

“들이 아니라?”

“······네, 분명히 한 놈입니다. 차라리 제 눈이 틀렸으면 좋겠군요.”

마차에 남아 있던 자상과 목책에 남아 있던 자상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그대로 일치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습격자가 같은 것은 물론이고 한 개체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개체? 순간 인지부조화가 몰려온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징수관과 마을을 습격한 것이 인간이 아니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조사관님! 찾았습니다!”

그 순간 마을 내부를 열심히 수색하던 병사 하나가 다급히 조사관을 불렀다.

얼굴에 화색이 돈 우리는 그대로 기수를 돌려 수색 중인 병사에게로 향했다.

“- - - - - - -?”

급히 달려간 그곳에는 마을 회관으로 사용되는 목제 건물과 함께 수많은 모닥불과 잿더미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단순히 보온 목적으로 피워 둔 것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은 ‘무언가’가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불을 사용했다.

뾰족한 바리케이드와 부러진 무기들로 보아 이 회관이 최후의 보루인 게 분명하다.

작은 희망을 느낀 조사관은 마을 회관을 향해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누구 없습니까!”

그러자 내부에선 웅성거림과 함께 분주히 움직이는 기척들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은 잔뜩 겁에 질렸는지 섣불리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했다.

“노스플롬에서 왔소! 병사들과 함께 왔으니 안심하고 밖으로 나오시오!”

답답함을 느낀 조사관은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재차 외쳤다.

그러자 노스플롬이라는 말에 반응한 한 여성이 다급히 바리케이드를 치웠다.

“노, 노스플롬에서 오셨습니까?”

“징수관! 살아 있었구려!”

회관 밖으로 가장 먼저 나온 이는 다름이 아닌 실종된 징수관이었다.

조사관과 병사들을 발견한 그녀는 눈물과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

부상과 정신적 충격이 생각보다 심해 보인다. 더 확실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나는 가지고 온 짐을 뒤졌다.

“약 있지?”

“으응, 재상이 조금 챙겨줬어.”

“다 꺼내 봐.”

기억하는 새가 그냥 보냈을 리 없다. 나는 검은 화살이 건넨 작은 약재 가방을 챙긴 뒤 그대로 안장에서 뛰어내렸다.

탁.

휘이이이이잉 - - - -!

“음?”

하지만 그 순간 강한 형용할 수 없는 강한 바람과 함께 기류가 흔들렸다.

하늘에 낀 먹구름이 움직여 밝게 비추던 태양을 잠시 가려 버린 것이다.

햇빛이 사라진 산맥은 원래 어둡다.

마치 갓 해가 진 저녁처럼 마을 근방은 어둡고 침침하게 변해 버렸다.

“아아아아······!!”

다만 변화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앞에서 들려오는 공포 어린 발작에 깜짝 놀란 나는 검집 위로 손을 올렸다.

다각다각!

푸르륵!

조사관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던 징수관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동시에 이상한 기류를 눈치챈 사슴들 또한 앞발을 구르며 날뛰기 시작한다.

불길한 바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폐허뿐이었던 회관 주변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맹렬한 돌풍이 감돌고 있었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무언가가 산맥과 고산을 주변을 미친 듯이 맴돌고 있었다.

나와 검은 화살이 이것이 징수관과 마을을 습격한 존재임을 직감했다.

“빨리! 빨리 이쪽으로 오시오!”

아니나 다를까 일찍이 이 현상을 맞닥뜨렸었던 고산 마을 주민들은 다급히 밖으로 나와 일행들을 재촉했다.

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횃불과 기름을 주고받으며 회관 주변에 즐비한 모닥불과 바리케이드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다, 다들 회관으로 모여!”

불길한 기류가 절정으로 치닫는다.

재빨리 정신을 차린 조사관은 당황하는 병사들과 함께 회관 앞 공터로 모였다.

푸르륵! 푸륵!

그러자 사슴들은 더욱더 미쳐 날뛰며 앞으로 다가올 위협을 경고한다.

병사들은 목구멍을 넘어가는 마른 침과 함께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사사사사사사삭.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어둠 속에 이질감이 깃든 것을 확인하는 나는 재빨리 검을 겨누었고 검은 화살 또한 언제든지 반응할 수 있도록 활을 쥐었다.

어떤 짐승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많은 주민과 병사를 위기로 몰고 간 놈이다.

여기서 완전히 끝을 보겠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는 가느다란 기척을 낚아챘다.

‘여기다.’

놈이 어느새 바로 앞까지 접근했다.

그것은 놓치지 않은 검은 화살이 재빨리 시위를 당겨 화살을 발사했다.

푸슝!

오러가 실린 정확한 화살이다.

급소가 아니더라도 명중한 대상은 어디 하나가 찢어지거나 부러질 것이다.

그 화살이 명중할 것이라 확신한 나는 순식간에 앞으로 뛰쳐나가 검을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모든 상식과 법칙을 뒤집는 광경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졌다.

스스스스스스 - - - !!

바스락!

오러가 실린 화살은 검은 형체를 그대로 관통했다. 아니, 오러 화살이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으니 ‘통과’했다는 표현이 맞았다.

후웅!

당연히 현실적인 경로를 예상했던 내 공격은 허공밖에 가를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내 앞을 스쳐 지나간 검은 형체는 그대로 병사와 주민들을 향해 달려갔다.

“발사!”

깜짝 놀란 조사관은 미리 시위를 걸어 둔 병사들에게 사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놈에게 화살을 쏘았다.

퓨웅! 퓽!

파스스스스스스 - - -!!

“이, 이게 무슨!”

하지만 일제 사격이 무색하게 병사들이 발사한 화살은 허무하게 통과해 버렸다

오러 실린 화살이 통하지 않았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던 거다.

공포, 두려움, 절망, 어둠, 칙칙함,

그렇게 모든 공격을 무효화해 버린 놈은 드디어 그 본모습을 드러냈다.

끼기기기긱!

푸욱!

“컥, 커억!”

“끄아아아아악!”

귀를 어지럽히는 기괴한 비명과 함께 사방으로 검은색 나뭇가지들이 뻗어나갔다.

그러자 무방비하게 놓인 병사들은 그대로 몸이 꿰뚫려 죽거나 비명을 질렀다.

“비켜라!”

상식과 현실이 규정할 수 없는 적이다.

심각성을 느낀 나는 놈에게 달려들어 뻗어오는 가시를 미친 듯이 칼로 쳐냈다.

채앵, 챙!

후웅!

쳐내고 또 쳐낸다. 공격은 변칙적이고 위협적이었으며 제대로 인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를 당황케 한 것은 바로 기괴하게 생긴 몸체였다.

끼이이이이이익 - - - - - !!!!!

마치 살아있는 뿌리처럼 온갖 줄기와 나뭇잎이 엉켜있는 검은색 형체다.

그 속에는 귀를 따갑게 하는 비명과 온갖 칠흑색 감정들이 잔뜩 얽혀 있었다.

후웅, 걱! 후웅!

아무리 검을 휘둘러 보아도 베이지 않는다.

물로 물을 베듯, 그저 공간이 공간 속을 지나가고 날이 끝없이 빗겨나갈 뿐이다.

놈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

전설로만 전해져오던 끔찍한 괴물을 상대하게 된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화르륵!

“경! 불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타오르는 불길과 함께 놈이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용기를 낸 다가온 주민들이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불길을 더욱 키운 것이다.

기름이 묻은 횃불 하나를 내게 던져준 조사관, 나는 그것을 재빨리 낚아챈 뒤 표적을 바꾸려는 놈에게 휘둘렀다.

후웅!

끼기기기기기긱!

뜨거운 기름과 불이 닿자 비명이 더욱 커진다. 화살도, 검도 통하지 않는 놈은 유일하게 불만큼은 막지 못하는 것이다.

치지지직! 화르륵!

“- - - - - - -!!”

생각하기 전 몸이 움직인다.

두 눈을 번뜩인 나는 그대로 뚝뚝 떨어지는 기름과 화염을 검날로 옮겼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화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놈에게 달려가 감히 정의할 수 없는 놈의 형체를 가로로 베어 버렸다.

끼아아아아아아악!!

더러운 무언가가 떨어져 나온다.

동시에 불길하던 기류를 요동치기 시작했고 놈은 순식간에 도망치고 말았다.

인간이 쫓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검을 다시 휘둘러 불을 끈 나는 놈이 도망친 어둠을 조용히 노려보았다.

북방 성지이자 선왕의 묘가 있는 고산이 무언가로 인해 위협받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여정에 간섭하려 하는가, 그것은 미지이며 알 수 없는 안개였다.

* * *

주범인 놈을 확인한 이상 고산행과 귀환은 꿈도 못 꿀 일이 돼버렸다.

우리는 일단 부상병을 치료하기 위해 급한 대로 마을과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듣자 하니 놈이 인근 고산에서 출몰한 지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고 한다.

이러니 징수관은 노스플롬으로 돌아오기는커녕 연락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싸울 수도,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는 고립 상황에서 긴 시간을 버텨 온 주민들.

당장 먹고 마실 것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은 절망스러움과 고통 그 자체였다.

하지만 주민들에게는 다행히도 예부터 믿고 따르던 현명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백색 묘지기’ 고산 마을과 성역 입구를 관리하는 늙은 촌장이었다.

“이 노구가 죽기 직전 다시 볼 수 있게 되다니. 참으로 고맙구먼, 검성.”

“······너무 늦었군요. 면목이 없습니다.”

나만큼이나 선왕을 존경했던 백색 묘지기는 평생 마을 주민들과 순례자들을 도우며 성역 입구를 지켜오고 있었다.

하지만 산자와 망자 사이에서 평생을 살 것 같던 촌장조차 불현듯 나타난 놈으로 인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말았다.

지금은 그저 재상이 챙겨준 약이 도움이 되기를 빌어야 한다. 나는 힘겹게 약을 받아 마시는 촌장을 향해 물었다.

“놈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듣자 하니 놈이 불을 극도로 꺼린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이 촌장이라고 한다.

나는 조금이라도 실마리를 얻고자 긴 세월을 이어온 지혜를 얻고자 했다.

“······일평생 살면서 처음 보는 놈이네. 고산에 나타날 존재가 아니야. 어머니 북방이 다스리는 성역이 이 무슨!”

콜록콜록!

따로 기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산 촌장이 아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단 하나, 마치 숲의 망령처럼 나타난 놈에게는 목적이 있었다.

촌장은 내게 경고했다.

“망령이 묘를 찾고 있어.”

“······그 무슨.”

“놈이 선왕의 묘를 노리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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