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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기사왕-13화 (13/181)

13화

검은머리 기사왕 13화

‘할 수 있다.’

후웅, 후웅!

딱!

3번째 슬링으로 던진 돌이 명중한다.

덕분에 신병을 덮치려던 야만인 놈은 머리가 깨져 죽었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하지만 눈투성이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노파가 건네는 돌멩이를 다시 장전했다.

“후욱, 훅.”

손이 떨리고 숨이 거칠다.

담담한 척, 대단한 척 일행들을 이끈 눈투성이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스승이 남긴 가르침은 등불처럼 그녀를 옳은 길로 이끌고 있었다.

‘네가 두려움을 느낀다 해서 형편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실현 불가능할 정도로 이상적이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현실적이지도 않다.

스승의 가르침은 무릇 복잡한 인간 자체를 담기라도 하듯 중도적이었다.

용기를 응원한다.

두려움은 성장의 과정이다.

‘지레 겁먹지 말고 상황을 똑바로 주시해.’

눈투성이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러자 손 떨림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손아귀에는 강한 힘이 느껴진다.

눈투성이는 슬링을 허공 위로 세차게 돌린 뒤 앞을 향해 힘껏 내질렀다.

후웅, 후웅, 후웅.

퍽!

“아······!”

돌멩이는 정확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하지만 힘이 조금 덜 들어갔는지 급소가 아닌 복부에 명중하고 말았다.

이대로 두면 화가 난 야만인이 자신과 노파를 향해 뛰어올 것이다.

눈투성이는 허둥지둥 자세를 잡으며 근접전에 대비하려 했다.

“으으, 으아아아아!”

“막아아아 - -!”

하지만 야만인이 달려들기 전, 가까운 거리에서 눈투성이를 지키고 있던 신병 둘이 탁자 방패를 들고 앞을 막았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방패를 휘두르며 야만인 하나를 힘겹게 처리했다.

“허억, 헉.”

얼굴이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그 둘은 겁에 질린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눈투성이가 용기를 내 앞으로 나섰듯 그들도 호응하고 있었다.

마음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찬 눈투성이는 일행들을 향해 외쳤다.

“서둘러요! 바로 앞이에요!”

어둠과 혼란이 짙어서 그렇지, 자신들이 묵었던 건물과 회관은 그렇게 멀지 않다.

서로를 다독인 눈투성이와 일행들은 지친 발걸음을 이끌고 열심히 뛰었다.

탁, 탁, 탁, 탁!

“- - - - - - -!!”

그러자 저 멀리 횃불을 든 여러 무리가 분투를 벌이는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바로 회관을 지키고 있는 촌장과 열 명 남짓한 자경대였다.

“비켜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제, 제발 진정하세요, 촌장님! 지금 회관을 나가시면 어쩌시려고요!

촌장은 퇴역병 출신답게 육중한 양손 도끼를 든 채 자경대를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시시각각 튀어나오는 야만인이 산발적이고 저돌적이라 그나마 있는 엉성한 대형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총체적 난국이다.

장점이었던 결집력이 어둠과 혼란 탓에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굴이 어두워진 눈투성이는 목소리에 있는 힘껏 힘을 준 뒤 외쳤다.

“촌장님!”

“저, 저기! 도와! 이쪽으로 올 수 있게 도와라! 빨리!”

촌장은 갑작스러운 등장에 깜짝 놀란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활을 든 자경대를 재촉해 합류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었다.

마을 중앙인 회관에 도착하자, 더욱 복잡해 보이는 난전 상황.

촌장은 무사히 합류한 일행들을 향해 다가와 다급히 물었다.

“사람을 먼저 보냈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하네. 다들 괜찮은가?”

“후우······. 다, 다들 무사해요.”

“그분은 어디 가셨나! 아직 거기 계신가?”

촌장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마을의 중요한 손님을 위기에 빠트린 것도 모자라, 동맹을 체결하게 도와준 당사자가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눈투성이는 촌장이 흥분하기 전 양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외쳤다.

“저희보다 먼저 나가셨어요! 곧 합류하신다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스승님을 걱정하다니 어불성설이다.

아마 지금쯤 마을 어디선가 야만인 놈들을 죽이며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실 것이다.

“음.”

하지만 아직 부러진 검의 정체를 모르는 촌장은 걱정스러운 침묵으로 대신했다.

지금 하나하나 따지기에는 상황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런 젠장, 또 온다!”

“막아! 방패 들어!”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촌장이 잠시 등을 돌린 사이 놈들이 또 몰려왔다.

마치 지휘를 받기라도 하듯 촌장과 자경대를 회관 앞에 묶어두는 것이다.

“젠장!”

촌장은 다시 한번 도끼를 들었다.

그리고 마치 현역 전사처럼 날을 휘두르며 마을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다.

허공을 향해 쏟아지는 비명.

바닥에 쌓여가는 시체.

서로를 죽여야 사는 두 집단은 눈과 어둠뿐인 새벽을 피로 물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비극 앞에서도,

눈투성이의 발걸음은 여전히 다람쥐처럼 재빠르고 곰처럼 과감했다.

쾅, 끼익!

눈투성이는 주춤거리는 일행들을 이끌고 마을 회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여겨 놓았던 방을 뒤져 자신들이 맡겨 놓았던 무기를 되찾아 무장했다.

철컥.

자신의 검, 스승의 검.

눈투성이는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붉은 강철이 만들어 준 검을 허리에 찼다.

그러자 얼떨결에 단창과 방패를 챙긴 신병 중 하나가 다시 밖으로 나가려는 눈투성이를 향해 물었다.

“이제 어떡해야······.”

“한 번만 더 도와주세요.”

“네?”

“저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해요.”

모두가 모여야 할 회관 앞에는 촌장과 자경대 열댓 명이 고립되어 있다.

그보다 수배는 많은 자경대와 주민이 마을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데도, 옴짝달싹 못 한 채 이곳에 묶인 것이다.

그나마 전력이라 할 수 있는 회관 앞이 이 지경인데, 다른 곳은 오죽할까.

분명 지금 이 순간에도 몰려드는 야만인 앞에 각개격파 당하고 있을 게 뻔했다.

하지만 눈투성이에게 있어 그보다 마음 아픈 것은 이들을 규합하고자 했던 스승님의 대의가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인간을 위한 대의.

얼마나 가슴 떨리는 말인가.

항상 굴복하고 엎드려야만 했던 우리가 하나로 뭉쳐 싸운다는 건 평생을 갈망하며 살아왔던 아이에게는 빛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눈투성이는 분수를 알고 작은 몸의 한계를 알면서도 움직이려 했다.

섣부를지라도, 이후 책을 당할지라도.

눈투성이는 이 불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선 스승님의 조언을 실행할 필요를 느꼈다.

그리고 그 말을 전해 들은 신병들은 알겠노라 대답하며 방패를 굳게 쥐었다.

쾅!

눈투성이와 일행들은 문을 박찼다.

그리고 그 어떤 불보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횃불만을 주워 주민들이 도망치고 있는 앞을 향해 서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 어?”

“어, 어디 가십니까! 돌아오십시오!”

자경대는 당연히 당황했다.

얌전히 있을 줄 알았던 눈투성이 일행이 대열에서 벗어나는 돌발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걸어 나간 그들을 막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지 오래였다.

“Krrrrr······.”

자연스럽게 몰리는 시선.

한참 둔기를 휘두르던 야만인들은 좋은 먹잇감인 눈투성이를 발견했다.

어리고 작은 것이 얼마나 야들야들할까.

피가 덕지덕지 묻은 둔기와 이빨은 눈투성이의 무방비한 목으로 향했다.

“Uaaaaa!!”

“히익!”

자경대 중 가장 어린 신입이 달려드는 야만인들을 보며 눈을 질끈 감는다.

가장 선두에 선 눈투성이가 끔찍하게 죽는 몰골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들 기준에선 믿을 수 없는 기적이 눈앞에 펼쳐졌다.

철컹-!

엄지가 검의 가드를 들어 올린다.

그러자 감춰져 있던 날카로운 칼날이 존재감과 함께 고개를 내민다.

타오르는 눈동자, 검을 뽑는 움직임.

으뜸은 아니더라도, 부단함이 느껴지는 그 동작은 검술이라는 날개를 펼치는 새의 첫 번째 비행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바닥을 기어 사는 야만인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높은 태(太)산이었다.

“흐랴아아압 - - - -!!”

눈투성이가 찢어지는 고함을 내지른다.

그와 동시에 작은 검은 큰 파동을 일으키며 불길한 검은색 허공을 갈랐다.

그것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속에만 품어야 했던 피비린내 나는 설움이었다.

서걱!

경악했던 사람들은 이내 전율했다.

영혼을 떨리게 만드는 고함과 함께 야만인의 목이 잘렸기 때문이다.

저런 조그마한 몸을 가진 아이도 앞으로 나서는데 자신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건가.

도리어 눈투성이가 가진 힘 있는 미숙함은 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 그래 우리도 나가야 한다!”

촌장은 피가 끓었다.

그리고 동시에 눈투성이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눈치챘는지 앞으로 나서기를 망설이는 자경대들의 어깨를 옆으로 치웠다.

“따라와라! 주민들을 구하러 간다!”

“촌, 촌장님?”

세월이 지나 나이를 먹었다.

남은 시간이 아까워 현실을 외면하고 두려움을 피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자신이 한심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도끼는 녹슬어도 도끼다.

촌장은 병사였던 시절 수없이 질렀던 워크라이를 내뱉으며 앞을 향해 달려갔다.

“젠장, 쫓아가!”

“으, 으아아아아 이게 뭐야!”

당황할 틈조차 없다.

깜짝 놀란 자경대는 허둥지둥거리다 이내 본능적으로 촌장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하나의 공처럼 뭉쳐 스스로 만들어낸 고립을 풀어내는 그들.

도리어 깜짝 놀란 것은 야만인들이었다.

“Hah?!”

이빨로 천천히 물어 죽일 예정이었던 바보 같은 소들이 그 커다란 덩치를 앞세워 자신들을 향해 뛰어왔다.

그 기세가 사뭇 매서워 산발적으로 뛰어오던 놈들도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죽여버려!”

“방패를 내리지 마라!”

콰직! 쾅!

서걱!

베고, 찌르고, 밀고, 쳐낸다.

두려움을 피해 한껏 짓눌렸던 만큼 전의라는 반발력은 굉장히 강했다.

물론 그 선두에는 노년을 잃고 미쳐 날뛰는 촌장과 눈투성이 일행들이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오!”

“살, 살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촌장님!”

몰려온 야만인을 일정 수준 죽이자 흐릿하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진격하는 과정에서 2~3명씩 뭉쳐 싸우던 자경대와 주민들이 하나둘 합류해 세를 키워갔다.

“아이들을 뒤로 보내!”

“다치지 않은 자는 무기를 들어라!”

가족이 가족을 돕고,

이웃이 이웃을 도우며,

우리라는 울타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처음 엉성하던 방진은 이제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 성책으로 진화해갔다.

하지만 정작 그 시발점을 터트린 눈투성이는 잔뜩 지친 얼굴로 물러나 있었다.

무리한 전투로 모든 체력이 소진된 것이다.

양손에 흥건한 피, 이미 속에 있는 것을 모두 내뱉었는지 창백한 얼굴.

방패를 들고 주변을 지키던 신병은 다급히 다가와 피를 닦아주었다.

“피, 피가! 괜찮으세요?!”

“후, 후우······. 제 피 아니에요.”

아무리 뛰어난 재능으로 검을 배웠다 한들 수련생은 아직 수련생이다.

체력과 완력이 따라와 주지 않을뿐더러, 첫 살인에 대한 거부감은 이미 눈투성이를 잠식한 지 오래였다.

“흐으·········.”

손이 덜덜 떨린다.

놈들에게 당한 상처가 쓰라리다.

하지만 눈투성이는 다부진 얼굴로 눈물을 닦으며 양 볼을 강하게 내려친다.

짝!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적어도 스승을 떳떳하게 만나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싸우고 있어야 했다.

눈투성이는 검을 다시 쥐고 비명을 지르는 허리와 다리를 펴려고 했다.

“끄아아아아악 - - -!!”

쿵! 콰앙 - -!

하지만 그 순간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방진을 향해 무언가가 날아왔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한 자경대의 시체였으며 이미 팔과 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고통스럽게 절명한 상태였다.

도대체 무엇에게 당했길래 저리된 것일까.

순간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었고 사람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꿀꺽.

야만인들이 천천히 물러난다.

그리고 그 뒤 어둠 너머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형체가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체구가 얼마나 큰지, 앞으로 발을 디딜 때마다 쿵 쿵 울리는 바닥.

들고 있는 묵직한 둔기에는 마치 쇳물 같은 오러가 뚝 뚝 흘러내린다.

오러를 다루는 야만인 전사.

여태 겪어 본 적 없는 최악의 적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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