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167화 (167/170)

# 167

167화 신들의 회합

신계.

“지금 말이더냐?”

태초의 성전을 관장하고 있는 물의 여신 ‘테티스(Tethys)’.

그녀의 물음에 제우스의 아들이자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Hermes)’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라고 하셨습니다.”

“흐음……. 알겠네.”

재물의 성전.

이 성전을 관장하고 있는 풍요의 신 ‘플루토스(Plutus)’ 역시 헤르메스의 정령과 맞닥뜨린 참이다.

“파이오 신전으로 말인가?”

“그렇습니다.”

헤르메스의 정령이 대답하자 플루토스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요.”

“오시면 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미의 성전.

주신 ‘아프로디테(Aphrodite)’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여덟 주신 모두를?”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헤르메스의 정령은 곧장 대답했고 아프로디테는 날숨과 함께 탄식을 내뱉었다.

“허어. 우려했던 일이 결국……!”

신계는 크게 여덟 개로 나뉜다.

커다란 이곳을 여덟 명의 신들이 나누어 관장했는데, 이들을 각 성전의 주신(主神)이라 부른다.

태초의 성전, 재물의 성전, 미의 성전을 포함한 여덟 개의 성전의 주신들은 헤르메스의 전언을 받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전언은 신계 최고 권력자인 제왕 ‘제우스(Zeus)’의 주신 회합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폴론의 ‘음악의 성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덟 성전의 주신들과 이 일에 연류되어 있는 신족도 모두 불러들이셨습니다. 에오스 님도 함께 가시지요.”

아폴론의 말에 천상경 앞에 앉아있던 새벽의 여신 ‘에오스’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저 녀석이 자꾸 눈에 밟히는군.”

“안쓰럽지만 선인이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에오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폴론은 이를 보고 뒤돌아 성전을 나섰다.

그 뒤를 따라나서던 에오스는 걸음을 옮기다가 여러 번 뒤를 돌아보았다.

에오스의 시선이 맞닿는 곳, 바로 선인을 비추고 있는 천상경이다.

‘결과가 어찌 나오든, 그 역시 녀석의 운명이겠지.’

* * *

윙윙거리는 기계음과 옆에서 나지막하게 코를 고는 소리가 뒤섞여 고막을 간질댔다.

크게 귀에 거슬리는 소리도 아니었고 이제는 이런 환경에 익숙해져서인지 별로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다.

나는 손을 뻗어, 닫아 놓았던 창문 덮개를 위로 올렸다.

눈이 부시게 강렬한 태양 때문에 잠시 질끈 눈을 감았지만, 빛이 이내 적응이 되자 천천히 눈을 떴다.

청명한 파란 하늘, 발밑에 깔려 있는 하얀 뭉게구름 외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신계도 과연 이런 풍경이려나?’

월드 콘서트를 마치고 올라탄 한국행 비행기 안.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등받이에 몸을 묻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멍하니 있다 보니 여러 가지 상념이 머릿속에 떠돈다.

‘이제 한국 콘서트를 마치고 나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동극 감독과 계약한 영화도 찍어야 할 테고.

가수로 배우로…… 지금 가지고 있는 직업에 최선을 다해야겠고.

더욱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쳐야겠고.

선인의 조건에 부합하게 계속 달려야겠지?

그러고 보니 참 어렵다.

신들이 말하는 ‘선인의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건지…….

그 뒤엔 내 운명이 어떻게 되는 건지…….

요즘 들어 어렵고, 두렵고 막막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일까?

나는 한참 동안 밖을 내다보며 한숨을 짓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조급해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 * *

신계에서 가장 높고 가장 웅장한 ‘파이오 신전’

여덟 개 성전의 주신들이 둘러앉아 있는 이곳은, 제왕 제우스(Zeus)의 신전이다.

아까부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신들.

때문에 ‘파이오 신전’에는 빛이 가득하고 온갖 꽃들이 만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하 세계의 극한(極寒)의 땅과 비슷한 분위기다.

한참 동안의 정적이 숨이 막혔던지 ‘태초의 성전’의 물의여신 ‘테티스’는 결국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너무 안일했구려.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제우스 님께서 직접 관여하실 줄이야…….”

테티스의 한숨에 풍요의 신 ‘플루토스’가 고개를 저었다.

“저희 모두의 잘못이지요. 선인의 운명에 조금이라도 관여했던 신들이라면 책임이 없다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선인이 인간들 사이에서 떨친 유명세가 하늘을 찌르니 선인의 조건에 이미 부합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이것은 비록 신의 반지인 엑스트라 링의 힘을 빌렸다고는 하나, 이처럼 단기간에 이름을 날린 인간은 없었기에 대단한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요.”

“맞습니다. 또한, 선인이 그동안 인간 세상에서 정화한 요신 수만 해도 족히 일백이 넘습니다. 이만하면 선인으로 충분히 인정받을만한 공을 세웠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과거 선인의 정해져 있었던 운명이야 어쨌건 간에, 지금은 신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큰 무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때 모두의 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고함이 신전을 가득 메웠다.

“그것이! 오늘 회합이 소집된 이유입니다!”

인간을 사랑하고 어여삐 여기는 신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분노에 찬 목소리였다.

“정해 놓은 인간의 운명을 그리 뒤바꿔 놓으시다니요! 신의 장난으로 인해 두 인간의 운명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선인이 되어야 할 운명을 가진 자는 그저 인간으로 늙을 것이며, 평범한 운명은 가졌던 인간은 선인이 되어 신계에 입성할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겁니까?”

프로메테우스의 질책에 여덟 신들과 신족들은 꾹 입을 다물었다.

다만 물의 여신 ‘테티스’의 나지막한 목소리만이 프로메테우스에게 향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염려하는 그대가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알고는 있네만! 선인이 정해진 운명을 다 채우지 못한 채 요절을 한 것도 아니고, 본디 선인으로 추대되었던 인간은 사후에 신계에 올리면 그만인 것을! 왜 이리 야단인 겐가? 그 일로 여덟 주신에게 질책할 요량이라면 그만두어라!”

테티스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미간엔 주름이 가득 잡혀 있었다.

그녀는 위아래 없이 따지고 드는 프로메테우스가 못마땅했지만 단 한 번의 심호흡으로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인간사에 관련된 일이라면 워낙에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그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짊어지지 않아도 될 험한 운명을 가지게 된 선인이 안쓰럽고, 화가 나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네. 다행히 젊은 선인은 짧은 시간 동안 명분에 부합하는 능력과 명성을 가지게 되었고, 정신력이 워낙 강해 애꿎은 운명을 잘 이겨내는 중이지. 또한, 그가 선인으로 신계에 올라오는 것은 여기 모여 있는 신족들과 여덟 주신들이 모두 허락하고 협조한 일이라네.”

“제 손을 떠난 일이로군요. 그렇다면 이제는…….”

테티스의 말을 들은 프로메테우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는 선인의 선택만 남았네. 천계를 택할지 지하 세계를 택할지는 그의 의지에 달려 있지. 이미 하데스가 여러 번 손을 뻗을 것으로 알고 있네만…….”

프로메테우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가여운 인간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기량이 개탄스러워서였다.

* * *

“어? 어? 왜 이러지?”

김남규 팀장은 코를 골며 잠에 빠져 있다가 몸이 크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는지 두 눈을 번쩍 떴다.

“금방 괜찮아지겠죠. 비행 중에 이런 게 뭐, 한두 번인가요?”

나는 무심하게 대답하며 계속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다른 때에 비해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기는 했다.

조금 전에 받아놓은 물 한잔이 갑자기 옆으로 쏟아지려는 것을 간신히 낚아챘으니까.

다른 승객들도 걱정이 되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좌우를 둘러 본다.

나는 ‘뭔 일이야 있겠냐?’ 싶었지만 행여나 하는 마음에 풀어 두었던 안전벨트를 채웠다.

“시후야! 빨리 벨트……. 아! 이미 맸네? 혼자 살아보겠다 그거냐?”

김남규 팀장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터졌다.

“혼자 살기는요. 어차피 추락하면 다 죽어요.”

“무슨 그런 소리를 해? 으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게.”

신계의 선인인 내가 탄 비행기가 추락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신들은 나를 반드시 신계에 들여야 하는 이유가 있었고, 아직 나는 그 과정 중에 있으니까.

그때, 띵! 띵! 하는 소리가 기내에 울려 퍼지며 안전벨트 등이 깜박거렸다.

곧이어 기내방송이 이어졌는데, 몇 마디 듣기도 전에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잠이 쏟아졌다.

이런 난항 중에 말이다.

* * *

“…… 그리하여 하데스님은 선인에게 ‘정화하는 자’의 호칭을 약속하며 지하세계로 올 것을 제안했습니다. 고리타분한 신계에 얽매여있지 않고 인간계를 마음껏 누비며 요신을 정화하라는 뜻도 전했지요.”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가 직접 전하는 소식에 티케는 분노 어린 표정으로 박차고 일어났다.

“하데스가 직접 나섰단 말인가? 흥! 그 정도의 조건을 가지고 선인을 가로채려 해? 호칭은 우리도 얼마든지 내릴 수 있네!”

그 모습을 보고 ‘헤르메스’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선인은 하데스 님과의 계약에 절대 응하지 않았습니다. 타고난 본성이 아주 선한가 봅니다.”

제왕 제우스의 ‘파이오 신전’

이곳에 모여 앉아있는 신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선인의 본선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상급 각성한 엑스트라 링의 흑기운으로 요신을 정화하다면 성품이 모질어지게 변하기 마련이지. 반지의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흑기(黑氣)를 다뤄야 하는데 오죽하겠나?”

혼돈을 의미하는 검은색.

상급 각성한 신의 반지의 보석 색은 검은색이다.

흑과 백, 옳고 그름, 선과 악이 모호한 혼돈 속에서 선인을 시험하려 만든 각성의 최종단계이기도 하다.

혼돈의 벽을 깨고 선을 행할 선인들은 천계에 안착하게 되고, 더러는 지하세계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 또한 신이 머무는 곳이었으니.

하지만 혼돈의 벽을 깨지 못하고 갇혀버린 선인은…….

“그렇습니다. 악에 물들고, 그름에 빠진 이들도 종종 있었지요. 손바닥 뒤집듯 인간의 목숨을 쉽게 생각하고, 신의 반지로 신계의 질서를 어지럽힌!”

원래 신이라는 것이 초인적, 초월적 존재인데 오랫동안 선인으로 있다 보면, 자신이 인간인지 신인지 애매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곧 신계에 입성할 거라는 사실, 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다는 것, 인간보다 위에 위치한다는 우월감까지 느껴 버린다.

그래서 선인으로 지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선과 악을 모호하게 행하게 되며,

“그렇기 때문에 선인들을 십 년 이내에 신계로 입성시키는 것이 아닙니까. 오랫동안 흑기를 다루게 되면 버텨낼 인간들이 별로 없을 테니까요.”

신계의 신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파이오 신전’에서 회합 중인 신들은 다시 한번 고민에 빠졌다.

“선인의 본성이 선하고 의지가 곧아 지금은 잘 견뎌내고 있네만, 인간계에서 남은 세월을 지내는 동안 계속해서 흑기를 다루게 된다면 어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선인에게 얼마나 남아있는가? 인간계에서의 시간은…….”

물의 여신 ‘테티스’의 물음에 아폴론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백지상태입니다.”

- 16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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