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164화 여신의 저주
김남규 팀장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아직은 시기상조인 걸까?
나는 곧 현실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두어 시간 동안 진행할 단독 콘서트를 끌고 나가기에는 앨범의 곡 수가 적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남규 팀장의 얼굴에는 이내 감탄사가 떠올랐다.
“그러잖아도 지금 회사에서 네 단독 콘서트를 계획 중인데 어떻게 알았대? 아……. 이미 누구한테 들었구만?”
“아뇨?”
“그럼 돗자리 깔아야겠네?”
껄껄 웃는 김남규 팀장을 보며 이번에는 내 눈이 커졌다.
“저 진짜로 콘서트 해요?”
“물론 지금 당장은 어렵지. 공연기획팀에서 계획 중이지만 아무래도 ‘월드 콘서트’이다 보니 조율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개가 아니거든. 게스트들의 스케줄 문제도 있고. 아! ‘블랙 타이거’가 네 한국 콘서트에 게스트로 서겠다고 나서서 스케줄 조정하고 있나 보더라.”
시기야 어쨌든 중요한 건 내 이름을 걸고 단독 콘서트를 한다는 거다.
그것도 월드 콘서트.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미국, 유럽을 돌고 한국 주요 도시까지.
신의 반지를 가지고 처음 B&M 엔터테인먼트에서 오디션을 치를 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 정도까지 성장할 거라고 생각 못 했었는데, 몇 년 사이 내게 찾아왔던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놀라운 일들이 눈앞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뭔 생각을 그리해?”
김남규 팀장이 내 어깨를 툭 하고 치자 짙었던 상념들이 삽시간에 흩어졌다.
“아니에요. 그냥 옛날 생각이 조금 났었어요.”
“그럼, 이사님. 생각 다 하셨으면 이제 일 좀 하시죠?”
“넵! 알겠습니다. 실장님!”
김남규 팀장과 나는 서로 마주보며 한참을 웃었다.
잠시 후.
B&M 엔터테인먼트 4층에 위치한 아트개발실.
신인이었을 때 참으로 많이 들락날락했던 곳이다.
내 발길은 길게 늘어선 복도를 따라 걷다가 신나는 비트가 쿵쾅거리며 새어 나오는 한 트레이닝룸 앞에서 멈춰 섰다.
창을 통해 안을 살짝 들여다보자 여러 명의 남자 연습생들이 트레이너에게 댄스 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 동안 서서 연습생들의 수업을 지켜보았다.
음악이 꺼지는 중간중간, 물을 마시기도 하고 자리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를 법도 싶은데, 이 방의 아이들은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아 내지도 않고 저마다 몸을 굴렸다.
결국, 트레이너가 반강제로 아이들을 바닥에 주저앉혔다. 시간이 아깝다고 여기는지 끝까지 거울을 보고 팔다리를 움직이며 저마다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짜식. 죽으라고 연습하네.”
조용하게 혼잣말을 내뱉던 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돈다.
얼마나 문밖에 서 있었을까?
레슨을 끝낸 트레이너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고생하셨습니다.”
“어? 이사님. 자주 내려오시네요?”
“아우! 그렇게 안 부르시면 안 될까요? 부담된단 말이에요, 선생님.”
내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하자 정면에 선 트레이너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몇 년 전, B&M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 합격했던 내게 춤을 가르쳤던 안무 트레이너.
그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내 등을 살짝 떠밀었다.
“오늘은 애들 얼굴 좀 보고 가. 연습하는 것도 좋지만 점심도 거르고……. 저러다가 다 쓰러질까 봐 걱정된다니까?”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제가 들어가 볼게요.”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녀석들은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지 자기들끼리 거울을 보며 연습이 한창이다.
“일동 차렷!”
내 입에서 큰 소리가 나자 그제야 나를 돌아보는 아이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형!!”
제 자리에서 정말로 차렷을 하고 있는 아이들과는 달리 한 놈이 내게 쪼르르 달려오더니 품을 헤집고 들어왔다.
<나인틴(nineteen) K-POP>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B&M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은 서은준이다.
나는 녀석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다 큰 녀석이 징그럽게……. 야! 너 지금 내 옷에 땀 닦는 거 맞지? 안 떨어져?”
내 말에 서은준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말을 이었다.
“니들 밥도 안 먹고 연습한다며? 그러다가 데뷔도 하기 전에 골로 가겠다. 응?”
“데뷔가 코앞인데 아직도 미흡한 구석이 많아서요. 죄송합니다.”
“인마. 나한테 죄송할 게 아니라 멤버들한테 미안해해야지. 막내가 연습 욕심 때문에 형들 밥까지 굶기면 쓰냐? 그리고 우형이 너!”
“네?”
서은준을 포함해 6인조 보이 그룹으로 곧 데뷔할 녀석들.
나는 그중에 리더를 맡고 있는 송우형을 지목했다.
팀 내의 인지도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인 서은준이 가장 높았지만, 멤버들을 잘 챙기고 온화한 성격을 가진 스물네 살 송우형이 리더로는 적격이라 맡기게 된 것이다.
이름이 불린 송우형은 죄지은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리며 나를 바라보고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맏형이라는 녀석이 동생들 밥을 굶겨? 한창 클 나이에는 잘 먹어야 한다는 거 몰라? 너는 다 컸다 이거야?”
“죄송……합니다.”
나는 머쓱한지 고개를 떨어뜨리는 송우형에게 다가가서 팔을 끌었다.
“자! 그럼 나랑 같이 구내식당으로 이동한다! 실시!”
“실시!”
* * *
B&M 엔터테인먼트의 이사직을 맡고 나서부터 내게는 새로운 일과가 추가되었다.
바로, 데뷔할 가수, 연기자들이나 소속사의 연습생들을 두루 살피는 일이다.
정식으로 보컬이나 댄스 트레이너, 연기 레슨을 맡은 것은 아니었지만 종종 아이들을 지도하기도 했으며, 기약이 없어 지치는 연습생 생활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일도 내 것이다.
그 누구의 지도보다도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선배’의 충언이 제일 와 닿을 거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오늘도 나는 한 무리의 연습생들을 데리고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곧 데뷔할 녀석들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 또 이 가요계다.
데뷔 전 그룹 해체.
스타팅 멤버에서 누락.
데뷔 자체의 무산.
이런 것들은 이 계통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다.
또한 데뷔 무대에서 실수라도 하면, 그날이 곧 마지막 무대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므로 내 뒤를 졸졸 따르는 녀석들의 발걸음이 무거운 것도 이해가 간다.
“어째 밥 먹으러 가는 녀석들 표정이 꼭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 같다? 먹을 땐 확실히 먹어야지, 녀석들아.”
내 말에도 아이들의 표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한마디 보태었다.
“맛있게 먹으면 내가 연습하는 거 봐 줄게.”
그제야 얼굴에 화색이 도는 녀석들.
대표로 서은준이 격양된 목소리로 묻는다.
“정말요, 형? 진짜예요?”
“인터뷰 스케줄 가기 전에 두어 시간 정도? 왜? 싫어?”
“아뇨!”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아이들을 끌고 사옥 2층에 있는 구내식당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안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야! 네가 갖다 먹으라고! 자꾸 내 거 뺏어 먹지 말고!”
“아, 같은 멤버끼리 진짜 야박하네. 동생이 먹는 게 그렇게 아까워?”
“아까운 게 아니라 네가 내 반찬을 다 먹어버리니까 또 가지러 가야 하잖아!”
“귀찮단 말야.”
“야! 이씨! 그럼 나는 안 귀찮고?”
“둘 다 그만 좀 해라. 먹는 거로 유치하게 진짜.”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으며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아직도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이 그룹 ‘블랙 타이거’다.
벌써 몇 년째 보아오고 있지만 참으로 한결같은 멤버들이다.
저쪽은 저쪽 대로 시끄러웠고, 이쪽은 또 이쪽 대로 소란스럽다.
“블랙 타이거 선배님들이다!”
“와……. 이렇게 가까이에서 실물영접 할 줄이야.”
“동혁 선배님 진짜 잘생기셨다. 그치 않냐?”
“선배님 등 뒤에 후광 봐. 역시 연예인은 다르다니까?”
“흠흠!!”
나는 큰 소리로 헛기침했다.
‘나도 명색이 내로라하는 연예인인데 이것들이!’하는 의미의 기침이었다.
아이들은 곧 입을 꾹 닫았고 나는 ‘블랙 타이거’의 멤버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또 구내식당이에요?”
시간이 나면 꼭 회사에 들어와서 식사를 해결하는 블랙 타이거의 구내식당 사랑은 B&M 엔터테인먼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음식은 건강하게 잘 먹이자’라는 김경민 대표의 이념에 따라 밖에서 사 먹는 그 어떤 음식보다도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구내식당.
블랙 타이거 멤버들 중에서도 리더 동혁이 가장 좋아했기 때문에 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겠지만 막상 또 와서 먹으면 다들 집밥 먹는 느낌이라며 맛있게들 먹었다.
“어? 시후 왔어?”
“밥 먹게? 이리 와서 앉아.”
“아! 잠깐만! 시후야, 앉기 전에 나 불고기 조금만 더 퍼다 주라.”
막내 진우의 말에 래퍼 태곤이 천천히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적당히 해라, 응? 혼나기 전에.”
“괜찮아요. 갖다 드릴게요. 그전에……. 이 녀석들이 너무 인사드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데리고 왔어요.”
식당 입구에서는 잘만 떠들던 놈들이 막상 멍석을 깔아주니 부끄러운지 블랙 타이거 멤버들과 눈도 못 마주쳤다.
꾸벅 인사를 하고 간신히 자기소개만 하고 나서는 멀뚱거리며 서 있는 녀석들에게 다행히도 블랙 타이거 멤버들은 따뜻한 격려를 보내 주었다.
한차례 인사가 끝나자 나는 아이들을 보낸 후, 블랙 타이거 멤버들과 나란히 앉았다.
“형들……. 진짜 고마워요.”
“응? 뭐가?”
동혁이 밥을 한술 뜨다가 내 말에 숟가락을 내려놓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콘서트요. 선뜻 게스트로 나와 주신다고 얘기 들었거든요.”
“아, 그거?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동안 네가 우리 무대에 서준 것이 몇 번인데, 우리도 그 정도는 해야지. 명색이 첫 콘서트인데.”
“그러고 보니 우리 시후 많이 성장했네. 진짜 대견하고 장하다, 장해!”
진우는 내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어 놓으며 활짝 웃었다.
“이게 다 형들 덕분이에요. 제가 데뷔도 하기 전부터 참 많이 챙겨주셨죠. 항상 감사드리고 있어요.”
“야! 착한 얼굴 집어치워라, 응?”
“하던 대로 하자. 갑자기 웬 닭살 멘트야?”
“시후야. 걍 가서 밥 먹어.”
블랙 타이거 멤버들은 내 말에 훠이! 훠이! 하며 저리 가라고 손짓을 해댔지만 장난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내 진심이 그들의 마음에 제대로 닿았구나.
쑥스럽고 어색해서 저러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 식사 맛있게들 하세요.”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서은준과 아이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후야, 너도 많이 먹어!”
걸어가는 뒤통수에 동혁의 외침이 와 닿는다.
홱! 하고 뒤돌아보자 동혁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 모습에 나도 활짝 웃어 보이고는 다시 뒤돌아선 그때.
“흐뭇하구나.”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공명되어 들려왔다.
그것은 천상경을 통한 울림이었다.
‘네?’
“동혁과 네가 함께 있는 그림 말이다. 참으로 보기가 좋구나.”
오늘따라 내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에 정이 넘쳐흘렀다.
아마도 사랑해 마지않는 동혁 때문이리라.
목소리의 주인은 새벽의 여신 ‘에오스’.
인간 동혁을 곁에 두고자 신의 반지를 인간계에 던져버린 꼴통…….
“뭣이? 꼴통? 네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내 기어이 네놈을…….”
생각만 한다는 것이 천상경에 공명시켜버린 나는 깜짝 놀라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제게는 항상 바늘보다도 따끔한 말투이시면서 동혁이 형에게는 정이 넘치십니다. 부러워서 그렇습니다.’
“부럽다고? 호호호호! 네가 지금 질투를 하는 것이냐? 그래서 심통이 난 게로구나.”
딱히 질투는 아니지만 나만 보면 짜증을 내는,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에오스가 동혁을 언급할 때는 늘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는 것이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네놈은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닌데?”
하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언제 나를 사랑해 달라고 했나? 툭하면 죽인다고 으름장 놓는 협박이나 그만해 줬으면…….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에오스라면…….
젊은 인간을. 그것도 곧 죽을 운명의 인간을 사랑하는 운명을 가진.
“그렇다. 그것이 여신 ‘아프로디테’가 내게 건 저주지.”
나는 확! 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새벽이 여신이 지금 사랑하고 있는 인간은 다름 아닌 동혁이었기에.
‘그럼 설마 동혁도 곧 죽는 겁니까?’
“후훗! 글쎄? 내가 받은 저주가 곧 죽을 운명의 남자를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곧 죽을 운명의 저주를 받게 되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구나.”
에오스의 말을 들은 나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괜히 동혁의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훗날 알게 되었다.
어쨌든 동혁은 아직 살아 있고, 신의 저주는 절대 가볍지 않은 엄중한 것이라는 것을 이때 깨달았더라면 그처럼 한 생명을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구르지는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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