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163화 신화 (4)
[가수 겸 배우 주시후와 뮤지컬 분야의 황태자 고준이 주연을 맡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모든 공연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역대 최다 관객 수를 동원하며 한국 뮤지컬 공연 역사상 최고의 매출을 일으킨 「지킬 앤 하이드」의 주연배우 주시후는…….]
차분한 목소리로 기사를 읽고 있는 박정엽 연출 감독의 얼굴이 싱글벙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사에 쓰여 있는 대로 역대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두면서 총 20회의 공연 수익금 또한 역대 최고 매출을 올렸기 때문이다.
「지킬 앤 하이드」의 5차 공연까지는 900석 규모의 ‘시어터 마레나’에서 펼쳐졌고, 이번 6차 공연은 2600석 규모의 ‘마레나 센터홀’에서 막을 올렸으니 수용 관객의 수가 3배나 많아졌기에 티켓팅 시작 전 박정엽 감독과 제작진들은 사실 조금 걱정하는 눈치였다.
과연 회당 티켓을 올 매진 할 성적을 거둘 것인지에 관한 걱정이었다.
이번 공연은 900석이었지만 매 공연 티켓을 올 매진시켰다는 흥행 타이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차 공연 때 관람을 하러 왔었던 뮤지컬 평론가들이나 뮤지컬 전문기자들의 호평이 이어지며 우려와는 달리, 공연 티켓은 판매를 개시하자마자 전부 매진되었다.
외국에서도 티켓 구매 사이트를 통해 티켓을 사는 건수가 무척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티켓 품귀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암암리에 암표 시장까지 형성되자 그것이 또 문제였다.
골치 아픈 일이었지만, 기분 좋은 문제.
“그동안 고생해 준 모든 배우들과 제작진들. 수고 많았고 공연이 성황리에 끝날 수 있어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0회의 공연이 모두 끝이 나자 ‘L.아트퍼포먼스’의 대표 강수찬은 감독과 제작진들, 주연, 조연 그리고 단역 배우들까지 모두를 소환한 상태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이렇게 다시 모이게 된 것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우리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서 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두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나 역시 며칠 전 회사를 통해 이 사실을 고지받았고,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무대에 설지 말지 한참을 고민했었다.
“이번 공연을 이렇게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여기 모여 계신 모든 배우들과 제작진들의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강요는 아닙니다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함께 브로드웨이에서 다시 한번 한국 뮤지컬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다면 배우님들뿐만 아니라 제작진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커리어를 쌓기에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자. 그럼 한 분씩 의견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강수찬 대표의 말이 끝나자 무대감독을 맡고 있는 심기철이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투자사는 ‘L.아트퍼포먼스’뿐입니까? 아니면 혹시…….”
심기철 감독은 조심스럽게 ‘릿치’ 그룹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강수찬이 대표를 맡고 있는 ‘L.아트퍼포먼스’는 일본에서 운영하고 있는 ‘릿치’그룹의 계열사다.
뉴욕에서 그 많은 세트를 다시 세우고 무대를 꾸미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것이 뻔했다.
심기철 감독은 ‘L.아트퍼포먼스’의 단독 투자로는 무대 퀼리티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아! 그 말씀을 안 드렸군요. 투자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중국 PS China에서 공동 투자를 하기로 했거든요.”
“오!”
탄성과 함께 삽시간에 제작진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PS China’
이들 중 그 이름이 주는 막대한 자본과 영향력을 모르는 이는 한 명도 없었으니.
“배우분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네요. 주시후 씨, 「지킬 앤 하이드」의 뉴욕 진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계속해서 ‘지킬’ 역을 맡아주실 수 있으신지요?”
강수찬 대표의 질문이 나에게 향했다.
* * *
B&M 엔터테인먼트 사옥 10층.
제일 꼭대기 층인 이곳에는 여러 개의 룸이 있다.
김경민 대표가 쓰는 대표실, VIP 손님을 응대하는 접객실도 있고 최재우 이사의 방을 비롯한 여러 개의 이사실이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김남규 팀장은 ‘따라라라라~ 따라라라~’하는 콧노래를 부르며 나보다 한발 앞서 걸었다.
그리고 발걸음이 멈춘 곳.
그가 문고리를 잡고 힘을 주자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우와! 죽이지? 시후야, 어때? 와…… 전망 봐라. 끝내주네!”
김남규 팀장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여기에 전망이 어디 있어요? 그냥 빌딩 숲이구만.”
강남구 청담동 한복판에 세워진 빌딩의 10층이라고 해 봤자 주위 건물에 비해 높은 편도 아니었고 번잡한 도로와 어마어마한 유동 인구밖에 보이질 않는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내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 아침 정식으로 B&M 엔터테인먼트의 이사 직함을 받으며 더불어 내 앞으로 주식 배당까지 마친 참이다.
나는 내 이름 석 자가 표시된 명패를 만지작거렸다.
“좋지? 내 기분이 이렇게 좋은데 너는 어떻겠니?”
이를 본 김남규 팀장이 내게 다가와 어깨를 툭툭 쳤다.
‘고생 많았다’는 제스처와 함께 ‘그동안 별일을 다 겪었었지.’하는 아련한 눈빛을 담아서.
나는 그런 김남규 팀장에게 활짝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이사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직급도 더 높은데?”
그러자 김남규 팀장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뒤통수 맞았다는 표정이다.
“와……. 그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이사님! 오늘부터 다른 매니저 붙여 드릴게요. 제가 감당하기에 너무 대단한 분이시라 너무 부담되네요? 그럼 안녕히…….”
“아뇨! 장난 그만할게요. 에이…… 제가 팀장님 없이 어떻게 이 험한 연예계에서 버티겠어요? 곧 뉴욕도 가야 하는데…….”
나는 급하게 뒤돌아서는 김남규 팀장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그는 히죽 웃으며 못 이긴 척 입을 열었다.
“실. 장. 님.”
“아! 네, 네! 김남규 실장님!”
실장으로 승진한 김남규 팀장은 실장님 소리를 듣고 나서야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래 봤자 내게는 영원한 김남규 팀장님이겠지만.
“아, 참. 뉴욕 뮤지컬 건 때문에 미리 알려줄 게 있는데…….”
“휴우…….”
김남규 팀장이 소파에 걸터앉으며 말을 꺼냈는데 뉴욕이라는 말에 내 입에선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다고는 했는데, 뮤지컬의 본고장이라는 브로드웨이에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웬 한숨이야? 그러게 왜 한다고 했어?”
“그럼 어떻게 안 한다고 해요? 배우들도 제작진도 다들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데…….”
“하긴 그러고 보면 ‘L.아트퍼포먼스’ 강수찬 대표도 참 고단수야? 소속사 통해서 일정 조율하면 될 걸, 전부 다 소환하는 거 보면. 그래도 그쪽 입장도 조금 생각해줘. PS China에서 괜히 투자한다고 했겠니? 네가 무대에 선다는 조건에서였겠지. 만일 네가 안 한다고 했으면 배우들의 브로드웨이 진출도 함께 날아갔겠지. 그 원망을 다 어찌 받으려고 그래? 그리고 네게도 정말 좋은 기회잖아. 주연배우로서 네 부담감도, 해외 활동이 힘든 것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지만 한 번 더 힘내 보자.”
솔직하게 현실을 직시시켜주면서도 위안이 되는 말.
이래서 내가 이 사내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김남규 팀장의 말을 듣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시려고 했던 말, 계속해 주세요.”
“응. 뮤지컬 공연차 뉴욕에 가게 되면…….”
* * *
4개월 후.
B&M 엔터테인먼트의 7층에 위치한 회의실.
가수 매니지먼트 총괄실장 임준석과 언론 홍보팀의 강은정 팀장을 비롯한 여러 명의 사람들이 원탁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앉아 있다.
다소 여유 있어 보이는 임준석 실장이나 강은정 팀장, 음반사업부 디지털마케팅팀의 김수연 실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오늘 생방송……. 잘되겠죠?”
홍보 전략팀 장성일 팀장이 허공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야 이를 말인가? 신곡 발표한 지 열흘도 되지 않아 빌보드 차트 석권! 아마 보름 안에 1위로 올라갈걸?”
임준석 실장이 느긋하게 팔짱을 끼며 대답했고 이어 김수연 실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국내에서도 음원 발표한날 1시간 만에 음원 차트 1위 탈환했죠? 방송에서 정식 신곡 발표 무대는 갖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자네들은 아직도 시후를 그렇게 모르나? 그 녀석은 한국 연예계에 있어서 독보적인 신화야. 괴물이라고. 그러니 마음들 푹 놓고 있어.”
임준석 실장의 말을 듣고 잔뜩 긴장하던 몇 명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러고 보니 연예기획사에서 일하는 동안, 아니 그동안 보아온 수많은 연예인들 중 주시후처럼 끝없이 승승장구하는 연예인은 보아온 적이 없다.
앞으로도 있을까 싶다.
“이쯤 되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네요.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는…….”
같은 시각.
OBC 방송국 공개홀.
“이번 주 1위 곡은…….”
MC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 서 있던 많은 가수 동료들이 내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응?”
“선배님, 1위 축하드려요!”
동료 후배들이 내민 꽃을 무심결에 받아들기는 했지만, 시기상조가 아닌가 싶어 괜히 주위 눈치를 보게 된다.
혹시라도 내가 1위를 하지 않게 된다면 얼마나 민망한 상황이 발생할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동료들은 끊임없이 축하를 건네 왔다.
“아, 선배님 너무해요. 왜 저희랑 같은 시기에 활동하시는 거예요.”
“에이! 긴장감이 하나도 없네. 어차피 1위는 주시후 아냐?”
선배 아이돌 가수의 투덜거림도 있었지만 모두 웃는 얼굴로 축하를 건넸다.
“1위 곡은 주시후의 「deadly love」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무대 바닥에서 폭죽이 솟아오르며 천장에서 오색의 색종이들이 펄럭펄럭하며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이미 꽃다발도 받았고, 동료들의 축하도 미리 다 받은 나는 어깨를 털어내며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이어진 감사의 인사.
“제가 1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낌없이 성원을 보내주시고 변함없이 사랑해주시는 팬 여러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항상 여러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고, 팬클럽 ‘주슈’의 친구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 * *
며칠 뒤.
임준석 실장이 장담했던 것과 같이 내 신곡 「deadly love」는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방송 매체들의 인터뷰 쇄도는 당연했으며 인터넷 뉴스나 잡지기사에도 내 이름이 끊임없이 회자하며 대한민국의 연예계를 달궜다.
그것은 7월 여름의 날씨만큼이나 뜨거웠으며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드라마 최고 시청률 달성. 영화도 천만 관객. 뮤지컬도 공연 티켓 올 매진에 ‘마레나 센터홀’에서 처음으로 뮤지컬 공연을 했다는 신화 창조. 거기다가 빌보드 차트 1위. 방송에서 신곡발표 무대를 갖자마자 1위. 대단하다, 대단해.”
김남규 팀장이 짝짝! 손뼉 치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 내게 눈을 흘기는 그의 얼굴에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표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1등 하면 좋죠, 뭐.”
대수롭지 않은 듯 내뱉은 내 말에 김남규 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 1등 했으니 이제 뭐 할래?”
“네?”
“이제는 뭘 해도 본전인 거야. 잘해서 계속 1등을 유지하게 되면 다행인 거고, 떨어지게 되면 본전도 못 하는 거고.”
“아……. 그러네요.”
생각해 보니 그랬다.
지금까지 도전했던 분야에서는 더는 올라갈 곳이 없으니 맨 꼭대기에 머무른다면 다행이고, 떨어진다면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에 손해만 될 것이었다.
그렇다면…….
“저는 단독 콘서트를 해 보고 싶어요. 아직 무리일까요?”
같은 소속사 아이돌 그룹인 <블랙 타이거>의 콘서트 무대에 게스트로 서 본 경험은 있지만, 아직 한 번도 내 이름을 걸고 콘서트를 해 본 적은 없다.
단독으로 콘서트를 진행하기에는 출시한 앨범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질문을 던지고 나서 나는 김남규 팀장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김남규 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되물었다.
“우아!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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