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158화 좋은 일 한번 한다치고 (2)
무대 위 소년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모습이 뻣뻣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것이 상당히 긴장한 모양이었다.
오디션 무대를 마치고 나서 가지고 있던 자신감이 심사 위원들의 잇따른 혹평 때문에 사라진 모습이었다.
그 탓에 축 늘어진 어깨를 보니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잘했어요, 인성 군.”
박인성이라는 이름의 소년은 갑작스러운 내 칭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많은 사람과 카메라 앞에서도 떨지 않고 무대를 잘 마쳤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예요. 저도 학창 시절부터 가수의 꿈을 키웠었는데, 오디션을 볼 용기는 나지 않더라고요.”
이 말은 사실이었다.
노래 실력이 별로네, 춤 실력이 엉망이네, 이런 말을 들을까 봐 지레 겁먹었다.
그로 인해 그 당시 딱 하나였던 꿈을 버리게 될까 봐 두려웠다.
함께 학창 시절을 보냈던 친한 친구들과의 유대감이 없어질까 봐, 모두 음악을 하겠다는 꿈을 좇고 있는 가운데 혼자 동떨어질까 봐 무서웠다.
“이번 오디션을 통해서 그동안 몰랐던 무대 위에서의 단점을 똑바로 직시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갈 발판으로 삼으면 되는 거예요. 심사 위원님들이 말씀하신 인성 군의 단점은 고치면 그만입니다. 그것을 고쳐 주고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저희가 이 프로그램에서 맡은 임무고요. 그러니 지금은 너무 기죽지 않아도 돼요. 아직 제대로 배워 본 적도 없잖아요?”
내 말에 소년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대답했다.
소년이 무대 밑으로 내려가고 난 뒤 심사 위원들, 특히 내 옆에 앉은 윤종실이 팔꿈치로 나를 툭툭 치며 장난스런 표정으로 눈총을 쏘았다.
“야, 너만 착한 척하기 있냐?”
“선배님, 착한 척이 아니라 저 원래 착합니다.”
“으이그! 건무 형이랑 어울리더니 좋은 거 배웠다?”
그 사이에 또 다음 참가자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쟤 봐라? 잘생겼네?”
“그러게요. 카메라도 기가 막히게 잘 받네요?”
심사 위원 박지영과 하선동의 말에 나와 윤종실은 방금 무대 위로 올라선 소년에게 시선을 옮겼다.
“서은준. 고1? 열일곱 살이라…….”
참가자 프로필을 힐끔 쳐다보고 나서 다시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180cm가 훌쩍 넘는 큰 키, 운동한 듯 딱 벌어진 어깨, 잡티 하나 없이 말끔한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확실히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고등학생이었다.
그런데.
“아니, 쟤는 왜 저렇게 바닥만 보는 거야?”
서은준이라는 소년은 음색도 특이하고 노래 실력은 정말 괜찮은데 오디션을 보는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시선이 무대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서은준이 무대에서 물러나고 몇 명의 참가자가 오디션을 더 본 후.
“아우!! 드디어 끝났네! 지겹다, 지겨워.”
윤종실은 심사 위원 자리에서 일어나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러게? 오빠, 나는 엉덩이에 땀띠 난 것 같아.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골반이 아프다니까?”
박지영의 말에 심사 위원들은 모두 피식 웃었지만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어제 아침부터 시작한 오디션은 오늘까지 이틀에 걸쳐 매일 15시간 정도 진행되었는데, 예선에서 올라온 참가자가 160명이었으니 시간이 오래 걸릴 법도 했다.
한바탕 몸풀기가 끝나자 지원서를 들춰보던 하선동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40명만 본선에 올려요? 탈락자가 너무 많은데요?”
“심사 위원 한 명당 열 명을 맡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지.”
“자, 그럼 한번 뽑아 볼까요?”
잠시 후.
“얘들은 어쩌지?”
어느 정도 탈락자와 본선 진출자를 나누고, 애매한 참가자 몇 명의 네임 카드가 테이블 위에 남았다.
“어? 서은준? 얘가 아까 걔지? 땅 쳐다보던 고등학생, 걔.”
“저랑은 좀 안 맞는 것 같아서 패스할게요. 저는 소심한 성격 가진 얘들은 답답해서 싫더라고요.”
박지영은 서은준의 네임 카드를 하선동의 앞으로 밀며 말했다.
“춤 엄청나게 잘 추던데 키워 볼 생각 있어?”
“글쎄요.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선동은 잠시 고민하는듯하더니 이내 윤종실에게 물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나는 궁금증이 일었다.
본인 마음에 차지 않으면 안 뽑으면 그뿐인데 자꾸 서로에게 미루는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뽑으면 안 되는 건가요?”
“으응? 시후 네가 데려가려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외모까지 끝내주는데 안 데려가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에요?”
내 말에 세 명의 심사 위원들은 대답을 망설였다.
먼저 입을 연 건 윤종실이었다.
“춤 실력은 괜찮지. 외모도 준수하고. 그런데 자신감이 너무 모자란 상태인 것 같더라. 그리고 음색도 좋지만, 창법에 특이한 버릇이 있어. 그런 건 쉽게 고칠 수 없거든.”
“맞아.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땅바닥에 그렇게 시선 고정하면 보고 듣는 사람은 몰입이 하나도 안 되지. 스스로 자신감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은 행동인데 누가 그 무대를 좋게 보겠어? 같이 조마조마하겠지.”
박지영이 자기 생각을 덧붙이자 하선동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춤도 그렇겠지만 특히 노래를 가르칠 때는 말이야, 자기 고집이 있는 애들은 어떻게 가르쳐도 잘 받아들이지를 못하더라고. 오히려 텅텅 비어서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애들이 훨씬 나아. 그래서, 노래를 배우려면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는 거야. 나쁜 버릇이 하나도 없으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더욱이나 방송을 생각하면 못하는 애들 데려다가 가르치는 게 나은 것 같아.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 위원을 몇 번 해보니 알겠더라고. 시청자들은 참가자들이 눈에 훤히 보이게 변화하는, 극적인 것을 더 좋아하거든. 일종의 대리만족이랄까?”
나는 윤종실과 박지영의 말을 들으며 어느 정도 수긍을 하였다.
나 역시 예전에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실력 있는 참가자보다는 점점 성장해가는 참가자를 보며 응원했던 기억이 있었다.
하선동이 입을 열었다.
“물론 실력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러니 서로 미루시는 거겠죠? 하지만 당장 눈에 띄게 변화시킬 자신은 없고…….”
하선동의 말에 나는 서은준의 네임 카드를 집어 들었다.
“그럼 제가 한번 맡아볼게요.”
“어! 우! 패기 좋다!”
윤종실의 말에 피식 웃으며, 이미 내가 뽑은 참가자 9명의 네임 카드 옆에 서은준의 네임 카드를 나란히 내려놓았다.
나는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소년을 B&M 엔터테인먼트의 트레이닝 막차에 태워 주었다.
* * *
“흐아! 은준아아아아!! 땅 좀 고만 봐라, 응?”
“네? 아……. 죄송해요.”
“목에 깁스라도 채워놔야 머리를 안 숙일까? 어? 좋은 생각인데? 너, 일로 와, 인마. 확 모가지를!”
“앗! 선생님! 살려주세요! 악! 하하하하!”
내가 한쪽 팔을 서은준의 목에 두르고 헤드락(headlock)을 걸자 서은준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현재 B&M 엔터테인먼트에서 레슨받는 열 명의 아이 중 내가 가장 많이 신경을 쓰고 있는 서은준이었다.
“진짜 그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적응이 안 되네. 프로그램 규칙 때문에 참고는 있는데, 나중에 너 잘돼서 가수가 되면 그때는 무조건 형이라 불러라. 알았지?”
“넵!”
“대답 씩씩해서 좋고! 자 그럼 다시 해보자.”
며칠째 서은준의 레슨해 본 결과, 보컬도 댄스도 나이에 비해 수준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문제는 단 한 가지였다.
‘자신감이 없네.’
평상시에도 서은준은 또래 아이들과 비교하면 항상 얼굴에 그림자가 가득했는데, 저 어린 나이에 무슨 수심이 저렇게 깊나? 싶을 정도로 과묵하고 어두웠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나와 함께하는 레슨 시간에는 잘 웃기도 하고 말수도 늘었다.
3시간에 걸친 개인 레슨 중, 무심코 시계를 들여다보던 나는 거울을 보며 춤 연습 중인 서은준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곧 나연이 올 시간이네.”
아이들의 역량과 수준이 모두 달랐기 때문에 나는 시간이 빠듯함에도 불구하고 한 명씩 개인 레슨하기로 결정했고, 이제 곧 레슨 받을 다른 아이가 올 시간이라 연습을 끝내기로 한 것이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며 고개를 숙이는 서은준에게 수건을 건넸다.
“그래. 너도 고생했어. 오늘 가르쳐준 안무는 모레까지 꼭 숙지해야 해. 알았지? 그래야 다음 진도 나가지. 참! 집으로 가니?”
“네? 아니요. 저는…….”
그때 연습실의 문이 열리며 한 소녀가 씩씩하게 걸어 들어와 서은준의 말허리를 잘랐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 은준이 오빠, 하이! 하이!”
“어, 안녕?”
내 물음에 쭈뼛거리던 서은준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은준이는 대체 왜 저렇게 내성적인 걸까?
그 궁금증이 풀린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여기예요?”
입구 분위기부터 묵직한 공기가 도는 탓에 나는 나지막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김남규 팀장에게 물었다.
서울 왕십리에 있는 한 대학병원.
그중에서도 소아 병동에 들어서자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응, 803호실이라고 했어.”
“그런데 팀장님. 우리 이렇게 빈손으로 가도 되는 거예요? 명색이 병문안인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도착해서야 아무것도 사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김남규 팀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뭐라도 사 올 테니까 여기 있어. 금방 다녀올게.”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내렸고, 김남규 팀장은 다시 내려갔다.
‘803호실이라고 했었던가?’
멀뚱멀뚱하게 서 있으면 뭐하나 싶어 나는 병실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이 무거운 것인지, 마음이 무거운 것인지 모르겠다.
806호, 805호, 804호실 앞까지 지나쳤는데, 803호실이 가까워지자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를 보면 놀라려나? 아니면 싫어할 수도…….’
원래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그렇다.
어두운 면모나 콤플렉스가 드러나면 싫어할 수도, 반발할 수도 있는 사춘기, 서은준의 나이가 딱 그래서 걱정이 되었다.
본인이 스스로 밝혔다면 모를까. 내가 괜한 오지랖을 떠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김남규 팀장은 서은준이 방과 후에 아르바이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왔고, 고작 고등학교 1학년이 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다가 서은준에게 아픈 동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재작년에 돌아가셨다고 했고, 아버지는 시내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님이라고 했다.
그리고 올해 8살이 된 남동생은……. 소아 심장병이라고 들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병원비를 내는 것도 버거운 살림이라 아버지는 새벽에 대리운전 일까지 하고 있고, 서은준 또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었다.
형편이 그랬으니 당연히 그의 아버지는 ‘무슨 음악이며, 무슨 오디션이냐? 그 시간에 알바 하나를 더 하는 것이 낫다.’라며 반대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서은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은준이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혹시라도 내가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자신감을 돋워 주고 바닥을 내려다보는 습관을 고쳐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일단 서은준의 동생이 입원한 병원에 와 보게 된 것이었다.
‘왔으니 가보자.’
마음을 다잡고 발을 떼려던 나는 복도 끝, 창문가에 앉아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하고는 하려던 행동을 멈췄다.
생각에 잠겨 있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여성도 내 인기척에 얼굴을 들었다.
그러자 그녀와 내 시선이 허공에서 한 차례 엉켰다.
여자가 말했다.
“누구세요?”
나를 쳐다보고 있는 여자의 미간에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문양이 각인되어 있었다.
흑미화의 각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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