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155화 (155/170)

# 155

155화 밤을 느끼다 (1)

“후야, 시후야?”

얼핏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주위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네?”

내가 무의식적으로 되묻자 김건무와 박윤지, 그리고 문리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어떤 곡으로 할 거냐니까 갑자기 혼잣말이야?”

“아, 아니에요. 잠시 딴생각을 했어요.”

지금도 간혹 투정을 부리듯 한마디씩 불평을 내뱉는 음악의 신들이었다.

그들이 보내는 소통의 공명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고 나는 두 손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로부터 3일 후.

“우와! 규모가 어마어마하네요?”

“으이그! 그럼 세계적인 음악 축제인데 작을 줄 알았어?”

바이로이트 도시로 들어서자 이곳저곳에서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겨 왔다.

버스, 승합차, 자가용들까지 끊임없이 줄 서서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이 마을 전체가 행사장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뒷좌석에 앉아 차창 밖으로 이를 보고 있던 문리와 박윤지는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는데, 앞쪽 좌석에 앉아 있던 김건무가 그녀들을 뒤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축제의 입장 인원은 제한돼 있어서 몇 명 못 들어가. 당장 우리 PD님만 해도 그래. 올해 축제 입장권 못 구하셨다잖아. 그래도 축제 시즌이라 이 분위기를 즐기러 온 사람들 때문에 마을 전체가 떠들썩하지? 그리고 바이로이트가 원래 평상시에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 소도시란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왠지 마을 전체가 들썩들썩하는 느낌이에요. 어? 다 왔나 봐요.”

문리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창밖으로 쏠렸는데, 과연 커다란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밤 바그너 페스티벌의 전야제 무대가 펼쳐질 바이로이트.

도시의 규모는 상당히 작은 편에 속했지만, 건축물들이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화려했으며 분위기 또한 우아했다.

향후 한 달 동안 <바이로이트 바그너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은 바그너 축제 극장.

독일의 유명 작곡가인 ‘바그너’가 독일 오페라 공연 축제를 위해 설립한 오페라 극장이다.

약 2000석의 자리밖에 없어서 많은 사람이 못 들어가는 좁은 공간 때문에 매년 입장권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축제 극장의 앞에서부터 지크프리트 바그너 거리를 따라 쭉 내려오면 확 트인 공터 하나가 나타났다.

지금은 콩나물시루를 생각나게 만들 정도로 빼곡하게 사람들의 머리통만 보였지만, 어쨌든 이곳이 일 년에 단 하루만 열릴 <바이로이트 바그너 페스티벌>의 전야제 행사장이었다.

행사장 한쪽으로는 통행, 주차증을 소지한 차량만 들어갈 수 있도록 통제하고 있었는데, 우리 팀의 차량이 이곳을 향하자 문리는 손가락으로 창밖의 현수막을 가리켰다.

[Das Gefühl der Nacht]

“오빠, 뭐라고 쓰여 있는 거예요?”

“얘라고 알겠니? 독일어 같은데?”

김건무가 고개를 저으며 나를 쳐다봤다.

문리는 당연히 알 거라고 믿어 내게 묻고, 김건무는 당연히 모를 거라며 고개를 흔드는데, 그 둘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나도 대조적이라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지자 김건무가 내 웃음을 보고 소리쳤다.

“야! 왜 웃어?”

대답은 박윤지가 대신했다.

“아니, 오빠는 아직도 시후를 그렇게 몰라요? 딱 보니까 시후는 현수막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무슨 뜻인지 아는 눈치구먼.”

“아, 그러냐? 쟤는 대체 몇 개 국어를 하는 거야? 시후! 너, 진짜로 독일어도 할 줄 아는 거야?”

나는 행사장 입구에 걸려있는 대형 현수막으로 시선을 옮겼다.

독일어로 추정되는 언어.

배워본 적 없는 언어였지만, 글자를 보는 순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영어로 바꿔보자면……. A feeling of night? 대충. 느끼는 밤? 혹은 밤을 느끼다? 정도 되겠네요.”

“우와…….”

내 말에 김건무는 혀를 내둘렀다.

그것도 잠시 그는 참으로 딱하다는 표정을 나를 보았다.

“네 인생도 참……. 팍팍했구나. 쯧쯧. 공부만 했니?”

“서, 설마요?”

사담을 나누는 사이, 어느새 우리를 태운 차량은 주최 측에서 만들어 놓은 임시 주차장에 도착했다.

“진짜 장난 아닌데? 얘들아! 무대 한번 봐.”

김건무의 말에 모두는 전야제 행사가 한창인 특설 무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차장에 들어서면서도 얼핏 보기는 했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그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했다.

인도 몇 곳을 틀어막고 도로 한복판에 설치된 무대 위에는 진즉부터 어느 가수의 노래가 한창이었다.

“우리가 땜질해야 하는 시간대에 원래 예정되었던 가수는 무슨 록 가수라고 하지 않았나? 저 가수는 샹송(Chanson) 가수인 것 같은데?”

엄청난 규모의 무대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화려한 유럽풍의 건물들도 시선을 끌기에 압도적이었지만, 샹송을 뒤이은 포크송(Folk song), 블루스(Blues), 재즈(Jazz), 등 장르 불문하고 여러 종류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K-POP에만 길들어져 있던 내 귀가 즐거워졌다.

이는 나뿐만이 아니라 전야제 행사를 즐기고 있는 모든 사람도 똑같이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의 표정에 행복함이 서려 있는 것이…….

공연장에 입성한 뒤로 오후 5시쯤이 되자 공연 관계자들이 우리를 찾아와 차례가 다가옴을 알렸다.

“자! 손 모아봐. 파이팅! 한 번 외치게.”

김건무의 주도 아래 4명의 가수는 잘해 보자며 서로를 다독이고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올라선 무대.

두리번거리며 둘러보아도 눈에 띄는 동양인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국의 가수들이라고 소개를 하니 관객들이 어리둥절하며 무대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던 도중 어디에선가 시작된 소곤거림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며, 작게 웅성거리던 그 소리가 곧 엄청난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이것에 든 시간은 단 3초였다.

“야, 저 사람들이 너 알아봤나 보다.”

김건무가 무대 위에서 자리를 잡으며 내 옆구리를 콕! 찔렀다.

말을 걸어오는 것을 보니 그의 얼굴에서 긴장감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곧 노래를 시작한 한국의 가수들, 특히 김건무와 박윤지는 무대의 베테랑들이라서 그런지 전혀 떠는 기색이 없었다.

문리조차도 얼굴에 양쪽 보조개가 깊게 팬 것이 어느샌가 이 축제를 즐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성공적인 한 곡이 끝나고 김건무와 박윤지, 그리고 문리는 먼저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수많은 관객이 의아한 눈빛들을 보내왔다.

왜 혼자 무대에 남아있냐는 것이겠지?

‘뭔가 더 하려고 하나?’라는 궁금한 눈빛들을 고스란히 받아 내며 나는 무대 한쪽에 있던 피아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진행자가 나를 소개했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퍼져나가자 무대 앞쪽의 관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조금 전까지 아주 멀리서 음악만 즐기고 있던 관객들이 일제히 무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왓칭 엔터테인먼트의 히어로 시리즈 중 하나인 영화 <블랙 리앙>.

그 주연배우가 클래식 피아노를 연주한다는데 호기심을 갖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는 무대가 널찍해서인지 꽤 시간이 소요된 느낌이 들었다.

멀다기보다는 가수 동료들이 내려가고 나서 혼자 남은 무대가 텅 빈 것처럼 느껴져서 커 보인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혼자 무대에 서는 것이 부담되거나, 떨린다거나, 외롭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까부터 줄곧 음악의 신들과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내가 소환해놓은 많은 신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소통 중이었다.

[“이봐, 선인 청년. 아니, 선인 양반.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신계에도 음악의 신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신계에 오르지도 못한 인간의 곡이라니…….”]

[“그러게 말입니다. 정통 클래식을 연주할 기회가 선인에게 흔히 있는 기회도 아니고요. 우리 피아노의 신들은 손가락이 근질거려 죽을 지경입니다.”]

[“이미 죽은 놈들이 죽을 지경이라니? 말이 많구나! 다들 자신이 작곡한 곡을 뽐내지 못해 안달이 난 게지? 입 다물고 그저 선인이 시키는 대로 하여라. 네놈들이 아니어도 대체할 피아노의 신은 널리고 널렸으니!”]

‘아, 마지막까지 진짜! 정신 사납단 말이에요.’

[“끙…….”]

[“알겠습니다. 뜻대로 하시지요.”]

신들이 마지막까지 내게 조르는 이유는 한 가지다.

이번 전야제 행사에서 연주할 곡으로 내가 고른 곡이 바로 바그너의 「피아노 소나타」였는데 다른 곡으로 교체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들이었다.

오페라의 작곡가로 더 유명했던 바그너는 대표적인 피아노 연주곡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많지 않았다.

그 또한 유명하거나 대중적이지 않았으니 한사코 반대하는 신들의 심정도 이해는 갔지만…….

그러나 내가 바그너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곡으로 정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이로이트 바그너 페스티벌>에 참여했으니 바그너 팬들에게 그의 곡을 들려주고 싶기도 했고, 때마침 이번 <바이로이트 바그너 페스티벌>에 피아노 소나타는 선보이지 않을 예정이라고 했으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진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바그너가 신계의 음악의 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작곡했던 ‘「피아노 소나타」 원곡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곡을 이곳에서 들려주게 된다면 듣는 이들에게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 전야제 행사가 만일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에서 하는 정식 공연이었다면 바그너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비난,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전야제 행사는 비교적 가볍게 즐기자는 분위기라 청중들이 너그럽게 이해할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피아노 의자에 앉으며 관객들을 힐끗 보니.

‘배우가 클래식 피아노를? 그것도 바그너의 홈그라운드인 바이로이트에서?’

라는 듯한 시선들도 섞여 있었지만, 관객들 대부분은 진심으로 응원을 하는 듯 보였고 내가 피아노 의자에 걸터앉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걱정은 없었다. 그저 그것은 무대에서 시작 전에 습관처럼 하는 행동일 뿐.

숙소에 있는 피아노로 신들과 두어 번 연습해본 것이 다였지만, 곧 스피커를 통해 가장 완벽하고 감동적인 피아노의 선율이 인간의 감정을 지배하는 신 ‘에로스’의 기운과 함께 관객들에게 전파될 것이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소환한 신들에게 울림의 소통을 보내자 음악의 신들은 ‘준비는 아까 끝났다.’라며 오히려 나를 재촉했다

헤바 빌츠, 힙 센트, 이자벨 카셀 등 피아노와 관련된 다섯 신.

그들의 상충하는 연주를 완벽하게 하나로 모아줄 편곡의 신 ‘체르니’를 비롯하여 ‘에로스’까지.

든든한 신들과 나는 모든 준비가 끝나자 비로소 피아노 건반 위에 양손을 올렸다.

* * *

“오빠. 진짜 너무 멋졌어요. 우리가 일행이라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러운 거 있죠? 저기 보세요. 사람들이 우리 쪽만 쳐다봐요.”

“저 감동한 표정들 좀 봐라. 내가 원래 클래식 들으면 자는 놈인데, 이번처럼 클래식이 짧게 느껴진 건 또 처음이네.”

공연이 끝난 직후, 무대 밑으로 내려온 내게 동료 가수들이 하는 말이었다.

“듣기 좋았다니 다행이네요.”

‘좋아야지! 그럼!’

음악의 신을 몇이나 소환했는데……. 거기에 에로스까지.

소환했던 신들을 돌려보내고 난 후에도 청중들의 환호와 열기가 식지 않고 있는 가운데, 우리 일행은 촬영 중이었던 음악 예능프로그램 의 제작진들이 장비를 철수하는 것을 돕고 있었다.

다들 행동에 거침이 없는 것이 숙제를 마친 듯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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