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153화 난리가 났다 (2)
문리의 목소리가 ‘뢰머 광장’ 안에 은근하게 울려 퍼지자, 주변으로 점차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현재 빌보드차트 20위 안팎을 오르내리는 ‘MC. Kana’의 노래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멜로디였기에 더욱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으로 보였다.
비록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소리의 음악에 맞춰 선보이는 랩이었지만, 조용했던 공간에 노래가 울려 퍼지자 부르는 이도, 듣는 이도 리듬을 타며 몸을 흔드는 걸 보니 모두 신난 모양이었다.
특히 박윤지는 랩이 끝나고 나서 이어지는 파트를 본인이 꼭 부르고 싶다며 손을 번쩍 들었다.
곧이어 박윤지의 노래가 시작되고 김건무와 나는 화음을 넣었는데,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었다.
‘즐거워.’
모두의 표정이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 노래 한 곡으로 인해 모두가 자유의 즐거움을 느끼며 ‘프랑크푸르트’의 첫날 밤이 무르익었다.
그리고 다음 날.
기차를 타고 도착한 뷔르츠부르크의 숙소에서는 내일 있을 버스킹 연습 중이었다.
“팝도 좋고 K-POP도 좋은데, 그래도 독일에 왔으니 이곳 분위기에 걸맞은 노래도 한 곡 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독일 가요 중에서도 유명한 곡이 있어요?”
“「엘도라도(Eldorado)」도 있고…….”
“「엘도라도」요? 그거 K-POP 아니에요?”
박윤지의 말에 문리의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어린 동생이 귀여운 건지 박윤지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문리야. 세대 차이 나게 왜 모르는 척을 하고 그러니?”
“저, 진짜로 몰라요.”
“그래. 70년대 결성한 밴드인데 모를 수도 있지. 내 또래들은 대부분 이런 명곡은 다 알거든. 시후 너도 잘 모르지? 엘도라도는 독일의 유명 밴드인…….”
김건무는 내가 당연히 모를 거로 생각했는지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하자, 나는 김건무의 말을 자르면서 아는 척했다.
“독일 유명 밴드인 ‘Goombay Dance Band’ 노래 「엘도라도」. 디스코 레게 장르죠? 인디언 곡이라는 얘기가 있으나 작사, 작곡을 독일인이 한 것으로 인정받아 독일 곡으로 알려져 있어요. 얼마 전까지 한국의 모 야구단에서 응원 곡으로 사용했을 정도로 유명한 곡입니다.”
“흐음……. 그래.”
교과서를 읽는 듯한 내 어조에 김건무는 침음하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박윤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혹시 노래도 다 알고 있니?”
* * *
뷔르츠부르크는 독일의 ‘프라하’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숨은 보석이라는 ‘로만틱 가도’는 이곳 뷔르츠부르크에서 시작하여 오스트리아의 국경 근처까지 장장 350km나 되었는데, 곳곳의 작은 마을들의 오래된 건물들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겨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아 최대의 명소로 불리고 있다.
뷔르츠부르크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명소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Wurzburg Residence)’가 있다.
그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가 보이는 조용한 길거리 한복판.
이곳에서 우리는 잠시 후에 있을 버스킹을 위한 악기를 세팅 중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구석진 곳이라 유동 인구가 많지 않았었는데, 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무언가를 설치하기 시작하자 행인들이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행사라도 있나? 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쳐다보는 시선을 받으며 모두가 묵묵하게 악기를 점검하는 동안 문리는 자꾸 지척에 보이는 레지덴츠를 힐끗거렸다.
“문리야, 왜?”
아까부터 그런 문리가 신경 쓰였던 나는 기타를 조율하다 말고 문리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문리는 괜히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만지작대며 대답했다.
“아뇨. 그냥……. 길에서 노래하는 게 처음이라 조금 민망해서요. 너무들 쳐다보는지라…….”
그랬다.
조금 전까지는 지나가다 호기심에 돌아보는 행인들이 전부였다면, 악기 세팅이 막바지에 이르자 이제는 아예 자리를 깔고 바닥에 앉아 사진기를 들이대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시후 씨! 진짜 팬이에요!”
그리고 우리를 알아본 한국 관광객들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손을 위로 들고 흔들었다.
“아이고! 차라리 저 궁 안에 들어가서 하면 덜 창피할 것 같아요. 여긴 행인들이 너무 많아서…….”
문리의 말에 기타 사운드를 체크하던 나는 피식 웃었다.
“우리가 창피한 거야?”
“아,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문리야. ‘버스크’ 라는 게 길거리에서 공연한다는 뜻이잖아. 우리는 우리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공연하면 되는 것이고, 관객들은 보고 싶으면 보고, 듣기 싫으면 발걸음을 옮길 자유가 있는 것이고! 그냥 맘 편하게 해. 주위 시선 신경 쓰지 말고. 우리는 K-POP을 전파한다거나 노래 실력을 뽐내러 독일에 온 것이 아니잖아.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깨닫고자 온 거고 그게 프로그램의 취지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나는 무심하게 조언을 내뱉으며 기타 줄을 튕기다가 ‘얼……!!’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김건무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척 들고 있었고, 박윤지는 물개처럼 손뼉을 치고 있었다.
“쟤는 애늙은이 같아.”
김건무의 말에 박지윤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오빠는 그냥 애 같아요.”
“흠흠!! 자, 세팅 끝났으면 자유롭게 놀아 볼까?”
우리의 첫 버스킹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50여 명에 달하는 제작진들은 각자의 포지션에서 대기하고 있고, ABS 방송국의 로고가 박힌 몇 대의 카메라에 집중적으로 우리 쪽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거리에 설치된 앰프를 통해서 우리가 대화하는 소리가 퍼져 나가자는 소리는 행인들의 이목을 끌 만했다.
그 덕분인지 버스킹 무대 앞으로 모여드는 인파는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늘어났다.
“The weather is good for listening to music. Hello! We are singer from Korea.”
박윤지는 유년 시절을 미국에서 보내서인지 편안하게 유창한 영어를 구사해 관중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첫 번째로 그녀의 잔잔한 팝 한 곡을 노래했는데, 그녀 특유의 힘 있는 성량 때문이었을까?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힘에 청중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두 번째 주자는 김건무였다.
그는 워낙에 공연 경험이 많아서, 익살스럽게 버스킹 분위기를 이끌었다.
옆에 앉아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문리조차도 공연을 즐기고 있었으니 역시 국민가수라 칭송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얼굴로 노래와 랩을 마친 문리의 순서 다음에, 이번엔 내 차례가 돌아왔다.
“한차례 바람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남겨진 것은 당신과 나뿐이었죠. 그리고 우리의 약속.”
편안한 마음으로 내가 부르고 있는 노래는 「Always」.
이번에 출시된 두 번째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이다.
감미로운 팝 발라드곡이어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 부르던 나는 후렴 부분에 들어서서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엄청난 고음을 내야 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숨을 들이쉬던 나는 숨을 내뱉으며 고음을 내었다.
“Always! Always! 항상 그 자리에!”
“Always! Always! 당신의 그늘로!”
그런데, 관객들이 입을 모아 후렴 부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을 보고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한국 관광객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저 외국인들은 대체 이 노래를 어떻게 아는 걸까?
그 답이 어쨌든 간에 관객들의 호응이 최고치에 다다른 지금은 그저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곡은 독일을 겨냥해 야심차게 준비한 Goombay Dance Band의 「엘도라도」였다.
“They came fivehundred years ago they stole the gold of Mexico.”
“Killed the people one by one Only talking with their guns.”
나는 아주 낮은 톤으로 조용하게 가사를 읊듯이 노래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을 시작으로 김건무의 피아노 반주가 시작하자 관객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엘도라도」는 원래 디스코 레게 장르였는데, 지금 우리가 버스킹을 위해 리메이크한 「엘도라도」는 그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노래여서 시작 부분만 듣고서는 「엘도라도」인 걸 알아듣지 못했는데.
잠자코 있던 관객들이 피아노 멜로디를 듣고서야 우리가 부르는 곡이 「엘도라도」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사실 노래 가사는 대항해시대에 스페인 정복자들이 황금으로 도배된 거대한 도시 엘도라도를 찾는 것을 시작으로 정복자들의 권력과 힘을 꼬집는 내용이었는데, 이것을 나지막하게 부르고 있자니 가사가 상당히 의미 있게 다가왔다.
듣고 있던 관객들도 간혹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이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 같아 보였다.
즐거워지자고 시작한 노래가 이런 반응일 줄은 몰랐는데…….
노래가 끝난 후 관객의 박수 소리 또한 상당히 달랐지만 어쨌든 노래는 성공적으로 마친 듯 보였다.
앙코르 요청까지 받아 40분 정도의 시간을 관객들과 함께 보내고 난 뒤.
“다들 수고했어. 우리 오늘 너무 잘한 것 같아.”
성공적인 첫 버스킹을 끝내고 제작진과 함께 장비 철수를 시작하려는데, 박윤지가 문리와 내 손을 꼭 잡고 환하게 웃었다.
“나는 공연장이 아니라 집회에 나와 앉아있는 줄 알았다니까? 시후 노래할 때 반응 봤지? 다들 어쩜 표정들이 그래? 교주의 말을 경청하는 신도들 같았어.”
“그 노래 콘셉트를 그렇게 잡자고 하는 건 형이었거든요?”
나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김건무를 째려보았는데, 김건무의 뒤로 낯선 사내들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처음엔 이 두 명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그들이 걸어오는 방향이 나를 포함한 4명의 가수 쪽인 것이 확실하자 담당 PD와 김남규 팀장은 이를 발견하고는 부리나케 뛰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지척에서 제지당하자 두 사내는 황급히 재킷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저는 올해 바그너 페스티벌의 전야제를 담당하고 있는 ‘루이스 클립’이라고 합니다.”
“저는 바그너 페스티벌에서 음향 총감독을 맡은 ‘틸 루카스’라고 합니다.”
“아, 네……. 그런데 무슨 일로?”
“네? 바그너요? 지금 바그너라고 하셨나요?”사내들이 건넨 명함을 받아든 담당 PD는 그것을 살펴보다가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뜨며 목소리를 높이며 다시 물었다.
독일의 유명한 음악 축제인 ‘바이로이트 바그너 음악축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유럽의 가장 큰 페스티벌이다.
1876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7월 25일부터 8월 28일. 한 달 동안 ‘바이로이트’ 지역의 ‘그뤼넨 휘겔’ 에서 열리며 축제의 입장권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원성도 있을 만큼 인기 있는 축제였다.
“네, 맞습니다. 저희는 ‘바이로이트 바그너 음악 페스티벌’의 파트 담당자들이죠. 그런데 혹시 한국 분들입니까? 제가 제대로 봤다면 이분이 가수 겸 영화배우인 주시후 씨인 것 같은데 맞나요?”
의 담당 PD는 내 이름이 언급되자 또 한 번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독일의 가장 유명한 음악축제의 담당자들이 나를 알은척하며 다가온 이유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