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149화 (149/170)

# 149

149화 드디어 개봉 (2)

“오셨어요?”

나는 조연석과 한동하를 번갈아 보았다.

뒤이어 줄줄이 들어오는 강화영과 채설아도 눈에 띄었다.

개인적으로 친분을 나누며 모임을 하게 된 후로부터는 항상 뭉쳐 다니는 정상급 배우들.

대기실에 있던 영화관 관계자들은 흔히 볼 수 없는 배우들의 출연에 놀란 토끼 눈이 되었지만, 김남규 팀장은 이런 광경에 익숙하기 때문일까?

그저 집에 놀러 온 동생 친구들 대하듯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니, 형! 무슨 과일 바구니야? 병문안 왔어?”

뒤늦게 대기실 안으로 들어선 정해수와 문영호.

그중 문영호는 큼지막한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나는 이를 보고 피식 웃었고, 문영호도 과일 바구니를 쳐다보며 피식! 웃고 말했다.

“그냥 주면 주는 대로 먹어. 사 와도 뭐라고 하네? 다시 가지고 갈까?”

“쳇! 딱 보니 형 좋아하는 과일만 잔뜩 사 왔네. 어차피 형이 다 먹을 거라 이거지?”

오늘 영화관에서 무대 인사 스케줄이 끝난 후, 한동하 집에서 집들이를 겸한 모임을 하기로 했다.

한동하가 채설아의 집 근처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 과일 바구니는 필시 오늘 한동하의 집에서 끝장날 것이 분명했다.

영등포에 있는 MGV 영화관.

<블랙 리앙>의 시사회 시작을 조금 앞두고 내 대기실에는 지인들의 방문이 계속되었다.

뒤이어 <슈퍼 K-POP 스타 챌린지>에서부터 인연을 쌓은 하상훈과 진국의 방문.

멤버와 친하게 지내던 진국의 등장에 대기실에 있던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진국이 왔어? 왜 이렇게 늦었어?”

조연석의 말에 진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 밖에 취재진이 장난 아니에요. 깔려 죽을 뻔했어요.”

“응, 알아. 우리도 포토존에서 손 흔들고 왔어. 아! 이쪽은 ‘어니스트’의…… 맞죠?”

정해수의 알은척에 하상훈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저는 하상훈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한국을 대표하는 톱 배우분들이 함께 계시는 것을 보니 꿈만 같아요. 앞으로 자주 뵙고 싶습니다!”

“시간 되면 모임에 한번 와요. 혹시 오늘 시간 돼요? 이 친구는 귀엽게 생겼는데 싹싹하기까지 하네. 아주 마음에 들어요.”

“그래! 막내라면 저 정도의 귀염성은 당연히 탑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 우리 막내는…… 쯧쯧쯧!!”

정해수가 나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내가 눈을 흘기며 한소리 하려고 입을 떼는데 갑자기 복도에서부터 소란이 일었다.

문을 열어 놓은 탓에 대기실 복도의 시끌벅적함이 고스란히 들려왔는데 누구의 등장인지 촉이 딱 왔다.

아이돌 그룹 중에서 최고라 일컫는 블랙 타이거.

그 4명의 멤버가 곧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시후야! 첫 영화 개봉 축하해.”

“앗! 여기 다 계시네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누나.”

“진국이 형은 언제 왔대? 아까 숍에서 메이크업하는 거 봤는데.”

“오늘 스케줄 없어? 어떻게 멤버가 다 왔어?”

“선배님! 안녕하세요!”

“아, 어니스트의 상훈이네? 반가워요!”

정신없이 서로들 인사를 나누는 것을 빤히 보던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여기가 대기실인지, 시장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시끌시끌하고 정신이 없었다.

“후유…….”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람들 외에도 대기실에 올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이러다가는 북새통이 계속 이어질 것 같았다.

“자! 이제 곧 영화 시작할걸요? 다들 인사 나누셨으면 이제 영화 보러 가시는 게 어떨까요?”

나의 축객령에 눈치 빠른 블랙 타이거의 리더 동혁이 멤버들의 등을 떠밀었다.

“아 왜, 오랜만에 시후 만나서 할 얘기가 많단 말이야.”

블랙 타이거의 막내 진우가 툴툴거리자, 리드 보컬 성운은 제 딴에는 달랜다고 말을 꺼냈다.

“가서 중간 자리 맡아야지. 영화는 자로고 로열층에서 봐야 해.”

“췟! 아까 티켓 못 보셨어요? 지정석이거든요오?”

진우가 입을 삐죽거리자 이번에는 래퍼 태곤이 진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조용히 가자, 응?”

블랙타이거에 이어 한 명씩 줄을 지어 대기실을 빠져나간 후, 대기실 밖 복도에서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누가 또 대기실로 들어오다가 지금 나가는 이들과 마주쳐서 인사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김남규 팀장을 째려보았다.

“대체 영화 티켓을 몇 장이나 돌린 거예요?”

“어? 오늘은 100장쯤?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야. 영화감독님들, 드라마 감독님들, 동료 배우, 가수들, 가족분들, 회사 식구들까지. 그리고 팬클럽 얘들은 모레 인천에서 무대 인사 행사 날짜에 맞춰 티켓 나눠 줬어.”

“그럼, 제 지인들만 100명이 오는 거예요?”

“오늘 무대 인사할 상영관이 제일 크고 좌석도 400석이라 많은 수는 아니라니까? 워낙 왓칭 히어로 시리즈는 인기가 좋잖냐. 그리고 관람하러 많이 와 주면 좋지. 그게 다 너 축하하고 기 세워 주러 참석하는 건데, 뭐.”

듣고 보니 김남규 팀장의 말 중에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하고 있는데, 밖으로 나가는 지인들과 인사를 끝마친 건지 황민규와 성유라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시후야! 개봉 축하한다! 형이 너 주려고 꽃다발을…….”

황민규는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며, 손에 든 꽃다발을 성유라에게 건넸다.

성유라가 황민규 눈앞에서 이리 내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황민규에게서 꽃다발을 빼앗듯 받아 들고는 내게 내밀었다.

“첫 영화 개봉 축하해, 시후 오빠!”

그런데.

환하게 웃는 성유라를 보더니 황민규가 눈을 흘겼다.

“너, 왜 그렇게 활짝 웃어?”

“어? 내가 언제?”

“방금 시후 보고 꽃처럼 예쁘게 웃었잖아! 설마 너 아직도 시후 좋아하는 거야?”

“아니, 이 남자가 사람 잡네? 말조심해! 누가 들으면 진짠 줄 알겠네? 그리고 예쁘게 안 웃었거든? 대충 웃었거든?”

“언제냐고? 너 드라마 찍을 때 시후 좋아했잖아. 그래서 지금 여신처럼 웃었잖아!”

“에이……. 아니지! 내가 드라마 찍을 때 배역에 과하게 몰입하는 거 잊었어? 그리고 시후 오빠는 내가 피아노를 다시 치게끔 멘토링 해준 음악 선생님이자 우상 같은 존재지! 나는 오빠밖에 없…….”

‘아주, 놀고 있네.’

황민규의 말을 듣고 있자니 온몸에 닭살이 차오르고 성유라의 말을 듣고 있자니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나는 성유라가 황민규에게 하는 말을 뚝! 끊었다.

“둘 다 그만하고 가라, 응?”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두 사람은 종종걸음으로 대기실 밖으로 나갔는데, 대기실 복도에서 또 누굴 만난 건지 인사를 건네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또 누구냐?

* * *

“뮤지커얼?”

“네. 뮤지컬이요.”

B&M 엔터테인먼트 최재우 이사의 방.

최재우 이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빤히 보며 되물었고, 반면에 김남규 팀장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에 고개만 끄덕였다.

왓칭 엔터테인먼트의 히어로 시리즈 영화 <블랙 리앙>의 흥행 질주가 계속되고 눈 깜작할 사이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날로부터 며칠 뒤의 일이었다.

“지난번에 얘기했을 때는 안 하겠다고 했잖아?”

미국에서 영화 촬영이 한창이었던 무렵 최재우 이사가 제안을 했던 적이 있긴 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예정인 뮤지컬의 남자 주인공 역에 캐스팅 제안이 들어왔다고.

그때 내 의중을 물었을 때는 시큰둥하게 대답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기간에 걸친 해외 현지 촬영에 심신이 지쳐가고 있었고, 뮤지컬이라는 분야에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던 때라 그랬다.

그런데 영화 촬영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집에서 무심코 TV를 켰던 어느 날.

나는 TV에서 홍보 중인 뮤지컬의 예고편을 보았다.

함께 TV를 보고 있던 정해수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어휴……. 또 못 보네. 티켓 풀린 날에 예매해 보려고 했더니 죄다 매진이더라고요.”

“그래? 나는 두 장, 구했는데 누구랑 갈까 고민이다.”

표가 두 장이라는 말에 정해수의 표정이 싹 변했다.

코밑에 염소수염만 안 달았지, 간신이 따로 없었다.

“어떻게요? 어떻게 그 어려운 걸 성공하신 겁니까?”

“그러게 평상시에 인맥 관리를 잘했어야지. 쯧쯧.”

“형님! 저를 데리고 가 주신다면, 형님께 제 영혼이라도 팔겠습니다!”

“네 영혼 같은 거 필요 없다만?”

“아, 진짜! 저랑 가요, 네? 저 4차 공연까지 매번 허탕 쳤단 말이에요!”

정해수가 조연석에게 사정하는 그 표정이 참으로 간절해 보였다.

그러다 보니 장난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던 조연석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제야 정해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뭔데 그래요? 그렇게 재미있는 거예요? 그럼 나도 같이 봐요.”

“두 장밖에 없어서 너는 탈락이야. 안타깝지만 다음 기회에!”

정해수는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대기실에 가서 선배님한테 인사라도 드려야 할까요?”

“그래. 공연 끝나면 꽃다발이라도 들고 가자.”

“아, 진짜 대박! 내가 이걸 보게 될 줄이야!”

“나도 한국에서는 처음이야. 브로드웨이보다 한국에서 티켓 구하기가 더 힘든 뮤지컬은 아마 이게 처음일 거다.”

“아니…… 형들. <정지킬> 이 뭔지 얘기는 해 주셔야…….”

둘의 얘기를 듣다가 나는 조심스럽게 얘기에 끼어들었는데, 오히려 핀잔만 돌아왔다.

“헉! 너 이거 몰라? 어쩐지… 표가 두 장밖에 없다는 데도 가만히 있더라니…….”

조연석과 정해수는 대화에 나를 끼워주지도 않으며 이 뮤지컬에 대한 내 궁금증을 유발했다.

얼마 후 나는 이것을 직접 보게 되며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연기가 어땠고, 노래가 어땠는지는 사실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 장면에 내가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밖에는.

“시후야.”

최재우 이사의 부름에 잠시 팔뚝에 솟았던 소름이 다시 가라앉는다.

“며칠 전에 꼭 봐야 하는 뮤지컬이 있다며 표 구해달라고 하더니, 혹시 그 뮤지컬이 하고 싶은 거야?”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꼭 해보고 싶어요. 제가 직접 보고 나니 확신이 생겼어요.”

내 마음과는 달리 최재우 이사는 고개를 저었다.

“뮤지컬의 본고장에서 캐스팅 제의 왔을 때는 싫다더니 왜 한국에서 하겠다는 거야? 한국은 뮤지컬 시장이 작아서 잘해야 본전이야.”

“하지만 한국 뮤지컬 중에서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던 작품들이 몇 개 있잖아요.”

“그거야 한국에서 원작이 나왔을 때 얘기지. <지킬 앤 하이드>는 텍사스를 거쳐 브로드웨이에서 오랫동안 공연한 미국 작품이란 말이야.”

“그래도 저는 꼭 한국에서 시작하고 싶어요. 잘해서 브로드웨이 가면 되죠. 자신 있어요!”

“그래. 한국에서 뮤지컬을 한다고 쳐. 물론 너는 잘하겠지? 그런데 지금 흥행하고 있는 뮤지컬에 갑자기 끼어들어서 주연 자리 내놓으라고 할 거야? 그럴 순 없잖아.”

나와 최재우 이사가 옥신각신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김남규 팀장이 이윽고 입을 뗐다.

“시후랑 뮤지컬 공연이 끝나고 대기실에 방문했었는데요. 정재운 배우가 그러더라고요. ‘마지막 공연 날 시후 씨가 와 주셔서 얼마나 긴장하며 노래했는지 모른다.’고요. 그러므로 6차 공연의 주연 자리는 양보 받은거죠.”

“그래? 아무리 그래도…….”

최재우 이사는 말을 하다가 내 얼굴을 힐끗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꼭 다른 배우 자리에 들어가서 연기해야겠니?”

“진짜 그 역을 꼭 해보고 싶어서 그래요. 선과 악을 한꺼번에 연기할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 있는 캐릭터예요! 더불어 무대에서 노래와 연기를 병행하며 관객과 호흡을 나눌 수 있다니……. 오디션을 봐서라도 꼭 하고 싶어요.”

“일단 알겠어. 내가 한번 알아볼게.”

최재우 이사는 졌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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