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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135화 (135/170)

# 135

135화 히어로를 만나다 (2)

타케우치 케이가 소리쳤다.

그의 얼굴에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우르타’ 그가 누구인가?

본래 그의 본체는 ‘잠자는 빙하의 섬’의 한 얼음덩어리에서 태어난 얼음 조각이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싶다는 집념의 에테르가 한곳에 응집되자 그는 괴물이 되었다.

그러자 지금의 몸을 지닌 채 세상을 멸망으로 이끄는 악의 근원이 되었다.

분명 마음만 먹으면 악행 따위는 거리낌 없이 저지를 괴물이었다.

‘춘’ 역을 맡은 타케우치 케이.

그가 머뭇거리자 우르타는 춘에게 회유와 협박을 함께 시작했다.

“나머지 두 개의 스톤도 내 손아귀에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 나는 너에게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이 별의 모두가 혼돈 속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것을 택할 것인지, 모두를 살리는 길을 택할 것인지…… 더불어 너의 묘 황후의 안위도…….”

“선대의 말씀으로는 3000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다. 스톤의 행방은 나도 모른다.”

“알고 있다면…… 넘겨줄 것인가?”

“타리수별의 안녕과 묘 황후의…… 안식을 보장해 준다면, 생각해 볼 수도!”

타케우치 케이의 앙다문 입술과 찡그린 눈썹.

전쟁 없는 평화를 지속할 수 있다면, 피를 흘리지 않고 지금처럼 태평할 수 있다면.

그리고 아직 사랑해 마지않는 묘 황후를 위해서라면, 그깟 성물은 넘겨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네 번째 ‘카오스 스톤’인 ‘워리어스 워’는 이곳 타리수별에 있다. 200년 전부터 그 기운이 희미하게 느껴지고 있거든. 그것은 아마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을 것이다.”

* * *

리앙이 200세가 되던 해.

제수왕의 동생이자 타리수별의 수문장인 ‘춘’은 카오스 스톤을 이용해 세계를 손에 넣으려는 ‘우르타’와 손을 잡고 그에게 ‘워리어스 워’를 넘기려고 마음먹었다.

타리수별의 그 어떤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평온한 날들을 보내는 가운데.

“리앙! 또 수련을 게을리하는 것이냐? 어찌 그리 싸돌아다니기만 하는 게야?”

내 앞에는 제수왕 역을 맡은 ‘갈리오’가 엄숙하고 진지하고 근엄한 표정을 나를 꾸짖고 있다.

‘이야…… 배역이 찰떡이네.’

항상 그의 얼굴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짙은 눈썹과 턱에 긴 수염을 붙이는 분장을 해 놓으니 제법 나이가 들어 보였다.

서른다섯 남짓한 나이에 미혼인 갈리오였지만, 엄한 아버지 역할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대사가 끝나고 이번엔 내 차례였다.

“부황. 소자 아직 이팔청춘입니다. 폭넓은 대인 관계를 형성하고 친구들을 사귀며,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히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말씀입니다.”

“네 나이 올해 200살이니라. 그것이 어린 나이더냐? 어찌 그리 철이 안 들어?”

갈리오가 혀를 끌끌 차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눈을 흘겼다.

그 표정이 참으로 리얼했는데 정말 내가 질책을 받는 것만 같아 괜히 억울해 졌다.

해서 나는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갈리오를 쳐다보며 답했다.

“그래도 매일 주어진 검술 연습 시간은 모두 채우고 있습니다. 시간 낭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하지만 부황의 명이니 어쩌겠습니까? 사실 요즘 소자는 무(武)보다 문(文)에 흥미가 더 생깁니다.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으니 어찌 재미가 없겠습니까?”

내 말대답에 갈리오는 인상을 확! 썼지만 짐짓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학문을 소홀히 하고 검만 잡으라는 말이 아니다. 네가 누구더냐? 네 몸에 ‘전쟁의 신’을 봉인하고 타리수 별 최고의 전사인 내 피를 이어받아 태어난 태자가 아니더냐? 기본적으로 검을 잡는 것을 싫어해서는 아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갈리오의 말에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으며 반박했다.

누가 봐도 사춘기 소년의 반항적인 모습이다.

“소자가 검이 싫다고 했습니까? 아니, 검술이라는 게 적수와 대련하고 검에 관해 논하는 맛이라도 있어야 재미가 생기는 것이지, 생각해 보십시오. 만날 허수아비와 씨름하는 수련 시간이 재미있겠습니까?”

내가 ‘이놈 저놈과 다 겨뤄 본 결과 타리수별 안에는 적수가 없다’는 말을 돌려서 하자 갈리오의 턱수염이 바르르 떨렸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있는 것이리라.

“태자의 기고만장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소자의 말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타리수별 안에 제 상대가 있습니까? 아! 부황과는 겨뤄 보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 소자에게 시간을 내어 주신다면 가르침을 제대로 한번 받아 보지요. 그리고 부황께서는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자꾸 다그치시면, 저 엇나갑니다.”

“뭐! 뭐라?! 네, 네놈이! 리앙! 이 녀석!!”

갈리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한 손으로는 내 얼굴에 삿대질하고, 나머지 한 손은 주먹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이 잘하면 한 대 칠 기세다.

“오케이! 수고하셨어요!”

다행히 ‘스콧 페브릭’ 감독이 컷 사인을 주어서 망정이지 한 대 맞을 뻔했네.

그런데 촬영을 접자마자 갈리오가 내 등짝에 스매싱을 날렸다.

“으아!! 아파요! 왜 때려요?”

“등짝으로 끝난 걸 다행으로 알아. 진짜 내 아들이었다면 뒤통수를 후려갈겼을 거야!”

“아…… 고마워요.”

나는 손이 잘 닿지 않는 등짝을 어루만지며 감사를 보냈다.

그러자 갈리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고마워?”

“연기 잘한다는 칭찬이잖아요. 그거.”

“와…… 너 원래 그런 애였구나? 뺀질거리는 게 아주…… 예술인데?”

나는 씩! 웃으며 갈리오의 어깨를 툭 하고 쳤다.

그러자 갈리오가 내 목에 팔을 두르고 목을 졸랐다.

“아아! 쏘리! 안 까불게요! 하하하!”

촬영장은 항상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분위기 메이커를 자청하는 몇몇 배우들 덕분에 더욱 그랬다.

배우들이 대체로 중국계였지만, 미국이 국적이거나 미국에 사는 배우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4개월간 중국 윈난성에서의 촬영이 계속되었고 그들의 미국식 농담과 잦은 스킨십에 적응이 되어갈 때쯤 우리는 영화 <블랙 리앙>의 절반 가까운 분량을 촬영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진행이었다.

“내일 가는 건가?”

“그렇죠?”

오늘 할당한 촬영 분량을 모두 소화하였고, 호텔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갈리오가 물었다.

그는 내 뒷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내 대답을 듣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보내기 아쉬워요?”

“그야…… 너 없으면 심심해서 그런다! 왜!”

‘아리’ 역을 맡은 홍콩 배우 그레이스 류와 나는 미국에서 촬영해야 하는 분량이 조금 있었다. 그래서 LA 촬영장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그날이 바로 내일이다.

중국에 해외로케를 온 다른 배우들 또한 모두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기는 했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보자고! 촬영 잘하고 있는지 내가 가 볼 거야.”

갈리오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봤자 2, 3개월 정도. 잠깐 이별이지만 그래도 헤어지기 아쉬운가 보다.

다음 날.

나는 <블랙 리앙>에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의 배웅을 받으며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스콧 페브릭’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그레이스 류’ 그리고 최재우 이사와 함께였다.

* * *

“시후야.”

LA 공항에 도착하자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

“팀장님!!”

미국의 왓칭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새로운 히어로물인 <블랙 리앙>.

이를 주목하는 미국 언론사들은 <블랙 리앙> 제작팀이 중국 해외로케 1차 촬영을 마치고 미국에 들어올 것이라는 소식을 여러 차례 보도한 바 있었다. 공항에는 취재진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물론 나를 반기는 팬들의 수도 꽤 많았는데, 이를 제치고 김남규 팀장이 내게로 다가왔다.

“야아, 다이어트 했냐? 가뜩이나 없는 살이 왜 이렇게 빠졌어?”

나는 아무 말 없이 눈을 옆으로 흘겼다.

김남규 팀장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풀만 먹이셨나 보네? 자! 가자, 시후야. 내가 저녁에 너 먹이려고 맛집에 예약해 뒀잖아.”

“뭐 파는 곳인데요?”

“당연히 고기 아니겠냐?”

“역시……!!”

나는 엄지를 척! 하고 세웠다.

사실 체력 보충은 김남규 팀장에게 더욱 절실히 필요해 보였다.

그동안 미국에서 뭘 한 건지, 못 본 사이에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일단 우리는 <블랙 리앙> 스태프 그리고 ‘스콧 페브릭’ 감독에게 곧 있을 촬영 날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러고는 그들의 품을 떠났다.

PS China에서 마련해 준 거처로 돌아가 짐을 풀고 나서야 김남규 팀장이 예약해 두었다는 레스토랑에 갈 수 있었다. 김남규 팀장은 직접 찾아낸 스테이크 맛집이라며 자부심을 부렸던 곳이다. 막상 먹어 보니 그럴 만하다고 여길 만큼 훌륭한 식당임은 확실했다.

어쩌면 긴 시간 함께했던 김남규 팀장과 오랜만에 한 식사라 더욱 맛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배를 툭툭 치며 의자에 널브러져 있는 나와 김남규 팀장을 보더니 최재우 이사는 흐읍! 하고 헛웃음을 쳤다.

“좋냐? 배 터지게 먹으니까.”

“그럼요. 당연하죠.”

“그래. 오늘까지는 실컷 먹고 내일부터 열심히 운동하면 되지 뭐.”

중국 위난성에서 촬영할 때도 근 3개월 동안 최재우 이사는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끌고 헬스장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철저한 자기 관리만이 톱스타로 롱런하는 비결이라며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했다.

“이사님. 글쎄 저는 그렇게까지 안 해도 살 안 찐다니까요. 아후! 하루라도 제 복근이 숨은 거 보셨어요?”

“그거야, 매일 운동하니까 근육이 빵빵한 것 아니겠니?”

말해 무엇하리? 원래 성격이 저렇게 철두철미하고 냉철하며 칼 같은 분인데…….

한숨을 푹 내쉬는 나를 두고 안됐던 모양인지, 아니면 같이 신나게 먹어 놓고 나만 운동해야 하는 상황이 불쌍했던지 김남규 팀장은 내 등을 톡톡 치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기왕에 밖에 나왔는데 바다라도 보러 갈래? 좋은 데 알아 놨는데.”

“아니, 팀장님은 대체 미국에 무슨 일을 하러 오신 거예요? 관광 가이드 자격증 따러 오신 건 아닐 테고?”

“가기 싫은가 보네?”

“아닙니다! 꼭 가고 싶습니다!”

김남규 팀장이 운전하는 차. 참으로 오랜만에 타 본다.

로드 매니저인 김훈도 운전을 잘하는 편이지만, 부드러우면서도 신속 정확한 드라이빙은 김남규 팀장을 따라올 수가 없다.

운전은 경력도 중요하지만 센스니까!

매끄럽게 움직이는 차가 편안했던지 최재우 이사는 뒷좌석에 앉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반면, 보조석에 앉은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편안하게 창밖 풍경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한국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프리웨이를 타고 달리는데 꼭 우리나라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느낌이다.

LA에서 1시간 남짓 달렸을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밖으로 발을 디디면서 보니 온통 바다다.

이내 김남규 팀장이 우리를 이끌고 도착한 곳은 맨해튼 비치 피어(Manhattan Beach pier).

눈앞으로 탁 트인 밤바다 밤공기가 참으로 상쾌하다.

보통은 비치에서 바다를 바라보는데, 피어에 올라오니 비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뒤로 보이는 수많은 집들. 그 집마다 켜져 있는 불로 인해 엄청난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김남규 팀장이 좋은 데 알아 놨다고 하더니, 분위기가 좋기는 정말 좋았다.

피어에 드문드문 놓인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은 내 옆으로 김남규 팀장과 최재우 이사가 따라서 앉았다. 정면으로 보이는 모든 것에…… 푹 빠져버린 듯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달과 별이 반짝거리며 바다 위에서 춤추고.

가끔 들리는 파도의 철썩거림이 모두를 침묵하게 할 만큼 아름다웠고, 피어는 조용하고 고요했다.

“고요하게 찾아왔던 너. 하지만 난 너만 보면 휩쓸려 버려. 파도가 치듯 설레는 마음은 배가되어 너의 바다를 나서네…….”

내 흥얼거림에 김남규 팀장과 최재우 이사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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