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134화 (134/170)

# 134

134화 히어로를 만나다 (1)

갈리오가 바라보는 한 여자.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게 모인 듯해 보여서 참으로 귀엽게 생긴 동양인이다.

그녀는 갈리오와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건배를 청하듯 손에 든 잔을 조금 높이 들어 올렸다.

‘뭐야? 이런 남자였어?’

히죽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이는 갈리오를 보니 수줍었는지 두 뺨이 금세 상기되었다.

갈리오의 주변에 항상 여자가 바글바글 하다고 했던 것치고는 이 남자, 생각보다 숫기가 없다.

동양인 여자의 건배에 화답하듯 갈리오도 테이블 앞에 놓인 그의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이를 본 배우들은 갈리오를 놀리느라 입이 바빠졌다.

“저 눈 좀 봐. 하트 모양이잖아?”

“또 사랑에 빠졌군!”

“저분과도 결혼하겠다고 하는 거 아냐?”

“그럼 와이프가 5명인데? 하하하!”

갈리오는 웃으며 손을 들어 모두의 입을 막은 후 예쁘게 생긴 동양인에게 맥주잔을 들고 다가갔다.

누가 봐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졌다고 생각할 만큼 매력이 있는 여성이기는 했다.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그 여인이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렇게 쳐다봐? 하는 표정이다.

아, 내가 너무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구나.

무례했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그녀에게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생긋 웃었는데,

그런데 그 순간.

손에 끼고 있던 엑스트라 링에서 묘하게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어?’

차갑다고 느꼈던 기운의 출처는 반지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이었다.

스멀거리며 느리게 뿜어져 나오던 검은 기운은 순식간에 내 몸 주위를 감싸며 곁에 머물렀다.

반지가 또 왜 이러나 싶어서 나는 얼른 실내를 둘러보았다.

펍에는 우리 팀 배우들과 저쪽 구석에 다른 한 팀, 그리고…….

한곳에 시선을 고정한 나는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갈리오의 옆에 앉아 인사를 나누고 있는 동양 여인.

그녀의 이마에 흑미화가 탐스럽게 피어 있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저 여자가, 아니 악질로 분류된 저 신이, 기운을 펼치자 흑미화가 드러난 것으로 보였다.

정작 저 신은 본인의 정체가 탄로 났는지도 모르는 채 생글생글 웃으며 갈리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잠자코 기다리다가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어디서 잡신 따위가 인간에게!!’

나도 모르게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화는 주체할 수 없이 점점 커지더니, 에오스가 그랬던 것처럼 저 여인의 모가지를 움켜잡고 뒤흔들고 싶다는 충동까지 생겨났다.

“선인이여! 주의해야 합니다. 저자는 ‘권력의 성전’에서 쫓겨난 여신입니다.”

그때 귓가에 천상경을 지키는 사자의 울림이 공명되어 들려왔다.

그제야 나는 잠시 폭력적으로 끓어오르던 마음을 억누를 수 있었다.

천상경의 사자의 울림을 듣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확실하게 느껴졌다.

흑미화 낙인이 이마에 박힌 저 신의 요기가 어떤 종류인지.

논란을 부추겨 분쟁을 일으키고 폭력을 만들어 내는 것을 즐기는 ‘투신’이 분명하다.

흑미화에서 비롯된 여인의 기운이 몽글몽글 퍼지며 실내를 잠식하자 사람들의 성향이 거칠게 변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갈리오! 너무 붙어 앉은 거 아냐? 그러다가 입술이 닿겠는데?”

“입을 맞추든 말든 알 게 뭐야? 여자한테 저러는 거 한, 두 번 봐?”

어느 배우들의 대화 소리가 귀에 거슬렸는지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갈리오가 갑자기 불같이 화냈다.

“네가 봤어? 내가 딴 여자랑 붙어있는 거, 네가 봤냐고?!”

“아니? 왜 성질이지? 그리고 그걸 꼭 봐야 알아? 입만 열면 여자 이야기인데 척하면 척이지!”

“뭐라고?!”

펍 내의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이쯤 되니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다.

흑미화를 본 순간 그럴 생각도 없었고.

“휘이익!”

내 휘파람 소리가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권력의 성전’에서 쫓겨났다는…… ‘생사의 성전’에서 악질로 분류해 낙인을 부여한 투신의 시선도 나를 향했다.

나는 생긋 웃으며 여인이 잘 볼 수 있도록 왼손에 낀 반지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반지를 보고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진 여자는 내 전신에서 퍼져 나오는 검은 기운에 인상을 구겼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들고 온 가방을 움켜쥐었는데 그 행동이 얼마나 급했는지,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꽈당! 하고 쓰러졌다.

아랑곳하지 않고 펍의 문을 열어젖히며 밖으로 뛰쳐나가는 여자를 보고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그래도 저 투신은 보는 눈이 있나 보다. 엑스트라 링을 알아본 것을 보면…….

그나저나 저걸 어째?

투신을 잡아다가 정화해야 마땅하지만, 배우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인 듯했다.

흑미화의 투신이 뛰쳐나간 뒤 배우 한 명과 갈리오가 으르렁거리며 눈을 부라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만들 하세요.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 하나 때문에 싸우지들 마시고요. 그 여자분, 참 매너 없네요. 말도 없이 나가버리는 것을 보면…….”

중재하며 나는 인간의 감정을 지배하는 신 ‘에로스’를 능력을 펼쳤다.

내 몸에서 뻗어 나가는 온순하고 평온한 기운이 실내의 감싸자 안에 있는 배우들의 미간에 선명했던 주름이 점점 펴졌다.

“그러게. 말을 하다가 갑자기 가버리는 게 어디 있어? 경우에 어긋나는 행동이지.”

“맞아, 갈리오. 저딴 버릇 없는 여자는 잊어 버리라고.”

“이리 와서 한잔해! 내가 좋은 여자 한 명 소개해 줄 테니까.”

위로의 말을 건네는 배우들을 힐끗 보던 갈리오는 술잔을 들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그래! 좋아! 오늘은 신나게 마셔야겠어. 그런데 여자 소개해 준다는 말 사실이야?”

그러자 다른 배우 한 명이 갈리오의 어깨를 툭! 하고 쳤다.

“그걸 믿어? 좋은 여자가 있으면 저 친구가 먼저 낚아챘겠지. 그랬다면 지금까지 솔로일 리가 없잖아?”

“하하! 그러네?”

배우들 간의 분위기가 이전처럼 화기애애해지는 것을 보고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에오스 님. 보셨죠? 흑미화 각인을 가진 투신이 나타났는데요?’

분명 천상경을 내려다보고 있을 새벽의 여신 ‘에오스’에게 소통을 보내자 곧 답신이 들려왔다.

“아, 놔! 이 귀찮은 인간 자식 같으니라고!”

* * *

다시 촬영이 재개된 영화 ‘블랙 리앙’의 촬영 현장.

“ready, action!”

스콧 페브릭 감독의 사인을 받은 일본 배우 타케우치 케이는 엄숙한 표정으로 눈앞의 사내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까지 발각되지도 않고 잘도 왔군? 그래, 날 보자고 한 이유가 무엇이지?”

“타리수별의 수문장인 그대가 길을 터주었는데 누가 앞길을 막겠는가?”

‘우르타’ 역을 맡은 ‘빌 포트만’이다.

그는 20대 초반에 할리우드에서 데뷔해 오랜 시간 단역과 조연을 맡아왔던 무명 배우였다.

20년 만에 왓칭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히어로 시리즈에서 그 존재가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터다.

“그대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대가 ‘테라포트’ 별에서 일삼은 악행 또한 잘 알고 있지. 이곳에 날 부른 이유를 물었을 텐데?”

‘타케우치 케이’가 연기하는 ‘춘’은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명백히 ‘우르타’를 깔보는 듯한 행동이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타케우치 케이’의 연기를 지켜보는 ‘스콧 페브릭’ 감독의 표정은 상당히 밝았다.

중국어로 대사할 때보다 지금처럼 영어를 구사하는 ‘타케우치 케이’가 훨씬 자연스럽고 세련되어 보였기에 만족스럽다는 표정이다.

곧 ‘춘’의 대사가 끝나자 ‘우르타’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테라포트’를 멸망으로 이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니 말이 쉽겠군. 나는 타리수 별의 협조를 원한다.”

“협조? 흥! 무엇을? 내가 왜 해야 하지?”

춘의 콧방귀에 우르타는 부드럽고 인자하게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답했다.

“나는 워리어스 워(warrior’s war)를 원한다. 그것을 내게 가져다준다면…… 네게 타리수별을 주겠다고 약속하지. 어차피 너는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절한다면 이곳은 ‘테라포트’ 별의 뒤를 잇는 전멸의 별이 될 것이니.”

“하하하하하!”

‘타케우치 케이’가 허공을 쳐다보며 한참을 웃는다.

그리고 그가 웃음을 멈췄을 때 그의 눈빛은 싸늘하게 변해 있었다.

“웃기는 소리 그만하지? 거절이다!”

“왜지?”

“먼저 나는 제수왕의 아우이자 타리수 별의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이다! ‘워리어스 워’는 타리스별의 성물인 스톤인데, 내가 그것을 그대에게 넘겨주는 불충을 저지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두 번째, 타리수별은 전 세계 모두가 가장 신성시하는 전사의 별이다. ‘잠자는 빙하의 섬’에서 태어난 너 따위가 감히 넘볼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워리어스 워’는 사라진 지 3000년이 넘었거든?”

춘이 팔짱을 끼고 비웃음을 짓자 ‘우르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손바닥을 펼쳐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어어?! 그게 왜 네놈 손에?!”

춘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그렇게 한참 그런 상태로 굳어져 있다가 갑작스레 표정이 돌변한 그는, 미간을 찡그리고 눈에서 독기를 쏟아내며 격양된 목소리로 허공에 소리쳤다.

“네놈이!! 어떻게 네놈이 ‘카오스 스톤’을 세 개나 가지고 있는 것이지?! 그래서 앞으로 어쩔 셈이지?”

카오스 스톤.

태초에 혼돈에서 생겨났다는 ‘카오스 스톤’은 우주의 곳곳에 여러 개의 이름으로 흩어져 있었는데, 총 다섯 개의 스톤 중 세 개가 ‘타로스’의 손바닥위에 놓여 있다.

“어떻게? 보다는 그래서?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지.”

우르타는 말을 마치며 손바닥 위에 놓은 스톤 중 파란색 스톤을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히포나의 기억’.

영적으로 초월하는 존재들을 부릴 수 있는 성물이다.

“어?? 묘 황후?”

우르타가 ‘히포나의 기억’으로 불러낸 것은 ‘춘’의 형수이자 타리수 별의 황제인 ‘제수왕’의 부인, 리앙의 모후였다.

우르타는 묘 황후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꽈악! 움켜쥐었다.

“이대로 영원히 소멸시켜버릴까? 아니면 내 고향별의 빙하 밑에 묻어둘까? 흐음…… 스켈레톤으로 만들어 영원히 살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무료하면 뼈를 하나씩 뽑아버렸다가 다시 맞추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네, 네놈이!! 감히!!”

춘은 눈시울이 붉어져 눈물이 뚝뚝 흐르는 것도 모르는 채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이제 알겠나? 네가 ‘워리어스 워’를 내게 가져올 수밖에 없는 이유.”

그랬다.

춘은 형수인 묘 황후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

그 마음을 간직해 온 것이 벌써 500년째다.

묘 황후가 죽기 전에 춘을 불러 제수왕을 잘 보좌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면, 리앙을 지켜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면, 왕좌로 남편과 아들을 위협하지 말고 타리수 별의 문지기로 살아가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면…….

춘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만큼 묘 황후는 춘에게 있어서 사랑이었고 전부였다.

“네놈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 그럼…….”

우르타는 손바닥 위에 놓여있는 것 중에 이번에는 빨간색 스톤을 집어 들었다.

“아, 안 돼!!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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