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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130화 (130/170)

# 130

130화 정화하는 자 (3)

“저…… 잠시만 앉아도 될까요?”

문영호 팬이라는 여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앉으세요. 편안히 얘기 나누다가 가세요.”

잠시 앉아도 되겠냐는 여성의 말에 나는 의자를 내주며 미소를 지었다.

여자는 싱긋 웃으며 얌전히 문영호 옆에 앉았고, 황민규와 문영호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르는 사람이 룸에 들어오는 건 불편하다고 했던 내가 앉으라며 오히려 의자를 권하자 둘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표정들을 지었다.

‘쟤가 저런 성격이 아닌데?’ 하는 의심 가득한 얼굴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영호 형의 팬이라고 하잖아. 앉아서 잠깐 얘기 나누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아?”

내 말에 문영호와 황민규가 히죽 웃는다.

하여간 그저 예쁜 여자라면…….

그런데 사실 문영호의 팬이라는 여자는 내가 봐도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긴 했다.

미소도 예쁘고 목소리까지 나긋나긋했는데, 행동 또한 얌전하고 기품이 흘렀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문영호와 함께 사진을 찍더니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얘기를 시작했다.

“저는 함수영이라고 해요. 나이는 26살이고요.”

“아! 저랑 동갑이시네요.”

문영호의 말에 자신을 ‘함수영’이라고 소개한 여성이 활짝 웃었다.

“알고 있어요. 명색이 제가 팬인데, 좋아한다면서 나이도 모를까 봐서요?”

그녀의 말에 문영호의 귓불이 괜히 붉게 물든다.

미모에 홀린 건지 분위기에 홀린 건지 문영호가 생글생글 웃으며 함수영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함수영은 잠시였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황민규도 문영호도 그녀의 얘기에 집중하는 것을 보니 외모뿐만 아니라 말재간도 뛰어난 여자다.

은은히 입가에 띄고 있는 미소는 청순했고, 눈웃음칠 때 반달 모양이 되는 그녀의 눈이 상당히 유혹적이다.

저런 매력을 방출하는 여인이니 연예인들이 저 여자 한번 보겠다고 이 클럽에 그렇게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룸 안에 맴돌고 함수영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도중,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함수영의 자그마한 행동에도 문영호의 시선이 따랐다.

“아…… 그래서 클럽에 오셨구나. 그런데 생일의 주인공인 성유라 씨는 언제 오는 건가요?? 꼭 만나 보고 싶었는데…….”

그녀는 아쉬워하는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가방 안에 잘 집어넣었다.

누가 봐도 짐을 챙기는 모양새다.

그녀의 행동에 문영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대답한다.

“그럼 보고 가세요!”

그러나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괜히 저를 보고 오해하실까 봐 그래요. 여자들끼리는 조금 그런 게 있거든요. 이만 일어나 봐야겠네요.”

함수영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문영호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잠시만요! 잠시만 더 있다가 가세요.”

문영호의 말을 들으며 손목을 내려다보던 함수영은 싱긋 웃었다.

그리고 문영호를 보며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저…… 그럼 둘이 밖에 나가서 차라도 한 잔 마실까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저는 너무 좋은데!”

평상시의 문영호였더라면 함께 있는 나와 황민규를 본체만체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지는 않았으리라.

저 여자에게 홀딱 빠져서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 분명하다.

문영호가 일어나자 나도 역시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함수영의 팔을 붙잡았다.

상황이 갑자기 다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해서였다.

* * *

조금 전.

천상경을 지키는 사자가 내게 울림으로 전달하기를.

운명의 신, ‘모이라이’가 내게 흑미화안(黑美花眼)의 축복을 내렸다고 했다.

그런데 ‘흑미화’가 뭘까? 어떻게 생겼는지 그것이 어떤 형태인지 본적조차도 없다.

그저 이름 그대로 검은 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

뭘 알아야 흑미화의 각인이 찍힌 신들을 잡아서 지하 세계로 이송하든, 신 모이라이를 소환하든 할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룸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던 나는 순식간에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검은 꽃에 시선을 멈추었다.

‘아…… 저게 흑미화구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헉! 저게 뭐야?’

순간적으로 머리털이 쭈뼛하고 하늘로 일어서는 느낌에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릴 뻔했다.

인간의 운명을 뒤바꾸는 악질 신에게 ‘생사의 성전’에서 부여한 낙인이라던 흑미화.

그것이 아주 멋들어지게 피어 있었다.

문영호 팬이라는 저 여자의 이마 가운데에.

처음 룸에 인사하러 들어왔을 때는 해도 보이지 않았는데…….

흑미화안의 축복을 받고 나서 보니 선명하게 보이는 검은 불꽃 모양의 낙인.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하고 나자 이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축복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네.’

그렇다면 저 여자가 인간이 아니라는 건데?

그렇다면 여기에는 왜 나타난 걸까? 심심해서 클럽에 다니는 것은 아닐 테고.

문영호의 인생을 망쳐보려고?

대체 인간의 운명을 어찌 바꾼다는 말이야? 저렇게 청순하고 나긋나긋한데?

룸에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잠깐 보아온 모습으로 판단하자면 그녀의 행동거지는 얌전하고 우아했다.

흑미화를 이마가 새겨진 것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잠시 앉아도 되겠냐는 그녀의 말에 나는 의자를 청했다.

“네. 앉으세요. 편안히 얘기 나누다가 가세요.”

일단 한번 두고 보자. 어떤 의도로 접근한 건지.

해를 끼칠 것 같은 행동을 하면 그때 처리해도 늦지 않을 테니.

‘함수영’이라는 이름을 쓰는 신을 계속해서 주시하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악질 신이 아니라 여신일 줄 알겠는데?

그런데 그때였다.

“저…… 그럼 둘이 밖에 나가서 차라도 한잔 마실까요?”

드디어 여자가 본색을 드러냈다.

눈웃음을 살살치며 문영호에게 말을 뱉어내는 붉은 기운이 참으로 사악했다.

‘요신(妖神)이구나.’

요사스러운 기운을 방출해 인간의 마음을 미혹시키는 흑미화의 요기(妖氣)가 대단하긴 참으로 대단했다.

문영호를 앞뒤 분간 못하는 얼간이로 만들어버린 것을 보면,

내가 함수영의 팔을 붙잡자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얼굴에 물음표를 그리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황민규도 문영호도 의아한 표정을 나를 쳐다보았다.

“차는…… 저랑 마실까요?”

내 말에 세 명은 똑같은 반응을 내비쳤다.

“네?”

“뭐?”

“야! 너 왜 그래?”

나는 아직 함수영의 손목을 잡은 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졸지에 그녀의 몸이 내 품에 안기는 형국이 되자 문영호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무례하게 왜 이래? 당장 놔드려!”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품 안의 함수영과 눈을 마주쳤다.

“저랑 가시죠? 한 살이라도 어린 내가 더 낫지 않아요? 인기가 내가 더 많아서, 성취감이 높으실 텐데요?”

내 말에 함수영은 깜짝 놀랐는지 눈이 커지더니 이내 본래의 여유 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그녀의 이마에 각인된 흑미화가 잠시 새까만 빛을 뿜어냈던 것을 놓치지 않았다.

역시 그랬다.

문영호에게 접근해서 그의 운명을 어찌 흔들지 궁금했었는데 성취감이라는 말에 반응하는 것을 보니, 스캔들이라도 만들어 인생을 망쳐보려는 생각이었나 보다.

“주시후 씨? 여자한테 관심이 있으신 줄은 몰랐네요?”

함수영의 말에 문영호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가 내게 호기심을 내비치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곧 유라가 도착할 텐데.’

빨리 이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나는 신계 품계 6품의 ‘아카샤’를 소환했다.

그리고 향락과 욕망의 신의 기운을 눈빛과 목소리에 담아 함수영에게 고스란히 방출시켰다.

“형은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저라면 좀 다를 것 같은데…… 그대가 깜짝 놀랄만한 이벤트도 이미 생각해 뒀거든요.”

아카샤의 기운에 노출된 함수영은 두 뺨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품에 아직 안긴 그녀의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이 느껴졌다.

눈빛 또한 몽롱한 것이 아카샤의 기운에 현혹이 된 것이 분명하다.

품계가 삭제된 요신은 잡신이라던데, 이런 저급한 신이 감히 인간 운명을 바꾸려 했다는 사실에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 갈까요?”

눈이 벌게진 함수영은 더 견디기가 어려웠는지 힘겹게 입술을 떼어내 말을 꺼냈다.

나는 함수영의 허리에 내 팔을 두르고 룸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가기 직전 아무 말도 못 하고 입만 벙긋거리는 문영호와 황민규가 마음에 걸렸지만, 요신이 사라지고 나면 수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모르는 체하였다.

룸 밖에는 우리 방을 담당하는 MD가 서 있었는데, 나는 그에게 조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뒤로 나가는 문이 따로 있죠?”

친구 놈들과 클럽에 몇 번 들락거리며 어느 클럽이나 VIP들이 따로 드나드는 후문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터다.

MD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앞장서서 걸었다.

후문에는 다행히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어디로 가나요?”

MD를 돌려보내고 통로를 빠져나가는 도중 함수영이 나와 눈을 마주치며 배시시 웃는다.

“어디에 가고 싶은데요?”

“호텔로 가요…….”

함수영의 말에 나는 어이없었다.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죽고……싶나 봐?”

“네? 지, 지금 무슨?”

내 말이 황당했는지 그녀는 급기야 말을 더듬었다.

“내가 누군지 몰라?”

“아, 알죠. 가수 주시후…….”

함수영은 말을 채 잇지 못했다.

내가 왼손을 들어 그녀의 눈앞에 손가락을 펼쳐 보였기 때문이다.

신의 반지를 들여다본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확! 잡혔다.

“품계가 삭제된 잡신이라 엑스트라 링의 기운을 못 느꼈나 보네. 어때? 눈앞에서 보니까 이제 느껴져?”

함수영은 그녀의 팔을 붙잡고 있던 내 손을 크게 뿌리쳤다.

“뭐야! 너! 신계의 선인이었던 거야? 이런 씨이!”

본색을 드러내자 그렇게 아름답게만 보였던 그녀의 얼굴이 점점 추악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요신은 나를 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조금 논거 가지고 왜 이래?”

“너는 조금 놀았겠지만, 인간들은 너로 인해 삶이 망가지고 운명이 뒤틀려 버린다는 걸 몰라? 운명의 신 모이라이 님이 단단히 벼르고 있던데?”

“흥! 모이라이는 지금 이 자리에 없고, 그래서 넌 뭘 할 수 있는데?”

요신은 코웃음을 치며 혼자 팔짱을 꼈다.

‘너 따위가?’ 하는 비웃음이 섞여 있는 웃음이었는데, 팔짱까지 끼고 나를 응시하는 것을 보니 도망가려면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녀의 행동에 이번에는 내가 코웃음을 쳤다.

“저급 신이라도 명색이 신인데, 다 같은 신이 아닌가 봐? 이렇게 멍청해서야…… 그동안 어떻게 잡히지 않고 인간계에 숨어들어 있었던 거지? 하긴. 선인의 반지를 언제 본 적이 있었겠어? 봤다면 지금쯤 지하 세계에 갇혀 벌을 받는 신세겠지? 반성의 기미가 없으니 가만두어서는 앞으로 골칫거리만 늘어나겠군. 화근은 빨리 없애버리는 것이 옳잖아?”

말을 마친 나는 엑스트라 링에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신계에서 천상경을 내려다보고 있을 새벽의 여신에게 소통을 청했다.

‘에오스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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