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122화 (122/170)

# 122

122화 준비가 끝났다 (5)

같은 시각, 신계.

“옳지! 잘한다! 힘내십시오!”

천상경을 들여다보는 사자의 힘찬 응원 소리가 음악의 전당 안에 울려 퍼졌다.

선인의 몸 주위로 몰려드는 검은 연기를 보며 손가락 끝에 힘을 주는 이는 음악의 전당의 주인인 ‘아폴론’을 포함한 다른 신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새벽의 여신 ‘에오스’와 행운의 여신 ‘티케’만 표정이 평온했다.

에오스는 무덤덤한 얼굴로 천상경을 들여다보다가 그것을 지키는 사자의 고함에 흥이 깨져 버려서인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짜증이 감돌았다.

“시끄럽다! 사자, 네놈 때문에 집중이 안 되잖아!”

에오스가 그러거나 말거나…….

음악의 전당에 속한 신들 그리고 타 전당의 신들은 합세해서 천상경이 비추고 있는 선인을 향한 응원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더 커졌다.

“그렇지! 선인! 과거를 떠올려야지!”

“조금만 더 힘을 내게!”

“집중해서 깨달아야지! 그래! 기운을 모으라고!”

짜증이 밀려와 미간을 확! 찌푸린 에오스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놈들의 입을 당장 찢어…….”

그녀는 오른손을 앞으로 쭉 뻗어 손바닥을 그들에게 펼치며 소리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버려 둬. 오늘 같은 날은……정말 저들의 입을 어찌할 건 아니겠지?”

행운의 여신 티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에오스의 말을 끊은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요즘에 신계가 무척 조용하지 않았습니까? 음악의 전당도 오랜만에 북적거리니 저는 좋습니다만…….”

아폴론까지 티케를 거드니 에오스는 입을 삐죽거리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어, 어?”

“선인의 주위에 머물던 흑기(黑氣)가 거의 응집된 듯합니다.”

“드디어!!”

[우리 가족들. 나를 아껴주는 지인들. 든든한 지원자들. 그리고 맹목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들. 이들을 지킬 수 있다면…….]

천상경을 통해 선인의 영적 울림이 전달되자 지켜보던 신들의 얼굴에 환희가 떠올랐다.

“각성 단계입니다. 이제 곧 엑스트라 링이 상급 각성을 하겠군요.”

아폴론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뗐다가, 옆에 서 있는 티케의 흡족한 얼굴을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

“이게 다 티케 님께서 부탁드려, 운명의 신 모이라이 님께서 인연을 만들어주셨기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아니었다면 상급 각성을 하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아폴론이 추켜세우자 티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둬도 언젠가 상급 각성을 했겠지.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맞아. 그게 그렇게 추켜 세울만한 일은 아니지?”

에오스는 티케의 의기양양한 얼굴이 보기 싫었던지 콧방귀를 뀌며 말을 내뱉었다.

그러다가 티케가 째려보자 흠흠!! 헛기침하며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아폴론이여. 선인의 각성을 도우라며 인연의 실로 엮어 놓은 자가 왜 하필 저 여인이지? ‘자오린’이라는 인간이 선인의 반지가 각성에 드는데 무슨 도움이 되었다고?”

에오스의 물음에 아폴론은 막힘없이 대답을 시작하였다.

시간을 끌거나 뜸을 들인다거나 말을 돌리는 것은 에오스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으니…….

또한, 요즘 에오스가 부쩍 선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이 아폴론 입장에서는 반가웠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 ‘동혁’이라는 인간에게 한눈에 반해 알게 모르게 신들을 귀찮게 해왔다.

그런데 선인을 비추는 천상경을 들여다보는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얌전해졌다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 인간의 도움은 미비하였으나 앞으로 저 여인은 선인에게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울 조력자가 있다는 것은, 선인 입장에서는 아주 든든한 일이지요.”

“아, 그랬던가? 인간들은 참으로 고달프겠군. 챙길 것이 너무 많잖아? 부와 명예도 챙겨야 하지. 평화와 안녕도 신경 써야 하고, 그 와중에 빛과 어둠을 가리라니…… 선인에게 요구사항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인 성격의 에오스가 한낱 인간을 걱정하다니.

티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선인을 걱정하는 건가? 새벽의 여신이여?”

“그대! 미친 건가?”

티케는 ‘그럼 그렇지…….’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아폴론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 인간 여인은 재물의 성전의 선인이었던 ‘고스트 자오’의 후손입니다. 재물을 지키는 신이 후대를 위한 안배를 얼마나 꼼꼼하게 해놓았는지, 향후 몇백 년 동안 인간 세상에서는 저 인간보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아, 그랬나? 신이 될 만하군?”

“그렇지요. 원래도 두뇌가 명석하고 총명하기로 모략의 신 ‘카로피트’ 뺨치는 인간이었는데, ‘재물의 성전’의 선인으로 발탁되고 나서 반지를 얻은 후엔 그 명성에 날개를 단 듯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의 아비가 명맥을 잇고 있지만, 훗날 분명 저 여인은 가문을 이끌 역대 최고의 수장이 될 것입니다.”

“그런가?”

“그렇습니다. ‘고스트 자오’가 신계에 올라온 것은 대략 60년 전쯤의 일이지요. 앞으로 40년 후, 재물의 성전에서 ‘플루토스의 반지’의 주인이 될 선인을 선택해야 한다면 저 여인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어쨌든 엑스트라 링이 상급 각성에 드는 데에 저 인간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랍니다. 증조부의 반지와 선인의 반지의 연관성에 의구심을 품고 선인을 각성구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인간 자신은 스스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고 있겠지만…….”

아폴론의 대답에 에오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에오스는 천상경에 막 집중하려고 하는 아폴론에게 다시 물었다.

“‘고스트 자오’라면 재물의 성전에 소속된 신이라고 알고 있는데, 왜 음악의 성전에서 나서지 않고?”

질문에 아폴론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많은 것이 포괄되어 있었다.

인간을 향한 연민, 애처로움, 어여삐 여기는 마음.

아폴론은 잘 알고 있었다.

재물을 지키는 신 ‘고스트 자오’가 어찌 신계에 올랐는지를.

“역대 선인들 가운데 상급 각성의 시련을 가장 힘들게 깨치고 나온 선인이었습니다. 저자가 품고 있는 흑기는 아직도 신계 6품, 천운자 중 가장 강하지요.”

“그대는 몰랐나? 원래 ‘재물의 성전’의 신들이 그래. 이기적으로 한 가지에 집착하거든. 그것이 재물이어서 문제지만.”

“그렇죠. 하나, 재물에 선악은 없지요.”

티케가 말을 보태자 에오스는 알아듣겠다는 얼굴이다.

“하긴…… ‘재물의 성전’의 주신인 풍요의 신 ‘플루토스’(Plutus)가 그러할 진데, 그 밑의 신들이야 뭐.”

에오스가 말을 마치자 음악의 성전이 아까보다 더 시끌벅적해졌다.

천상경을 뚫고 들어갈세라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있는 신들의 목소리에 에오스는 고개를 돌렸다.

“각성에 들었습니다!”

“선인의 반지가 각성 중입니다!”

그들의 말에 천상경을 쳐다보는 에오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선인이 서 있는 각성 구 안의 변화였다.

선인의 주위에 다닥다닥 붙어 응집되어있던 검은 기운이 갑자기 파도치듯 넘실거렸다.

꾸물거리던 기운이 다시 연기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것들은 서서히 선인의 왼쪽 손가락에 끼고 있던 엑스트라 링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이 되자 쑤욱! 하고 여태까지와는 다른 빠른 속도로 선인의 손가락으로 향했다.

[기쁨과 희망, 용기와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그 어떤 것이 나를 옭아매더라도, 내 몸이 부서지더라도…… 나는 어둠의 그림자를 물리치고 이들을 빛으로 인도할 거야!]

영적 울림이 천상경을 통해 음악의 전당 안에 울려 퍼진다.

선인은 몹시 괴로워했다.

그것을 지켜보는 신들의 얼굴에도 덩달아 고통스러움이 묻어났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선인을 지켜보고 있는 신들의 대부분은 그 고통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표정들이었다.

신족 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간계에서 선인으로 발탁되어 신계에 오른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에오스는 선인이 괴로워하는 이유가 신체적인 고통 때문인 건지 정신적으로 괴로운 것인지, 겪어보지 않은 고통의 종류라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두 눈을 뜨고 보기에 지켜보기에는 선인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기에, 운명이 가혹하다고 생각하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저런……무식한 방법을 꼭 써야 하는가?”

“하데스 님과 여덟 성전 주신들과의 계약 때문입니다. 신이 모자라기로는 지하 세계도 마찬가지이니까요. 상급 각성 중 어둠이 깃들어 하데스 님의 부름을 받아 내려간 선인들도 몇 명 됩니다. 대부분 ‘재물의 성전’이나 ‘권력의 성전’의 선인들이었지만 말입니다.”

[설령 나를 지옥 불구덩이에 던져 놓는다고 해도…….]

선인의 영적 울림을 들으며 아폴론은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고집이 센 선인이군요. 다행입니다. 하데스 님에게 뺏기지 않아도 되어서 말입니다.”

[나는 빛이다!!]

천상경이 선인의 절규와 함께 울림이 되어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선인의 온몸에서 파앗! 하고 눈부신 새하얀 빛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이 빛은 천상경을 뚫고 나와 음악의 전당까지 그 영향을 끼쳤는데, 거울을 보고 있던 모든 신들이 빛줄기에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빛이 점점 사그라지자 신들은 천상경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선인이 왼쪽 손가락에 낀 반지의 보석 색깔이 흑색으로 변해있는 것을…….

* * *

나는 살며시 감았던 눈을 떴다.

내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맴돌았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으나, 긴 고통의 시간이 끝나자 반지가 상급 각성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저절로 지어진 미소였다.

“축하하네. 드디어 자네의 반지가 상급 각성에 들었구만. 고생했네.”

“감사합니다. 각성 중에 정신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워 하마터면 하데스님과 영혼의 계약을 맺을 뻔했습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랬다.

의식이 한 점의 빛을 따라가는 길은 험난했다.

무섭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는데 그때 죽음을 관장하는 신 ‘하데스’의 사자가 제안했다.

모든 것을 놓으면 편해질 거라고…….

그때마다 ‘고스트 자오’는 어김없이 나타나서 빛으로 인도해 주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지하 세계의 선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스트 자오’는 내 감사에 그저 허허! 웃었다.

“각성 구의 결계가 곧 깨지겠군. 시간이 얼마 없네만 이 얘기는 꼭 해야겠네. 이제부터 자네가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에 놀라지 말게나. 그 또한 선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니 말이야. 자! 이제 돌아가게!”

‘고스트 자오’의 말뜻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곧 알게 되리라.

하긴 물어볼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고스트 자오가 말을 마치자마자 허공에 휘이! 하고 팔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또 뵙겠습니다.”

나는 내 몸이 점점 투명해지는 것을 내려다보며 재물을 지키는 신인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 눈 앞을 가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귓가에 메아리치듯 그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자손들을……. 내 증손녀를 잘 부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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