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114화 (114/170)

# 114

114화 블랙 리앙 (2)

최재우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PS America 담당자는 경호원들을 배치하고 맨 앞에 서서 길을 뚫었다.

‘PS America’는 한국의 ‘PS 미디어 플랫폼’이나, 중국의 ‘PS China’와는 조금 다르게 엔터테인먼트 역할도 하고 있는데 회사의 규모에 버금갈 만큼 소속 아티스트가 상당히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상황을 대처하는 업무 진행이 무지하게 신속하고 정확했다.

“시후! 손은 가끔가다가 한 번씩만 들어 올려줘. 가벼워 보이니까 흔들지는 말고.”

나를 엄호하며 앞서 걷는 최재우 이사의 잔소리는 이 와중에도 계속되었다.

이쯤 되니 차라리 김경민 대표와 함께 오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트 밖으로 무사히 나와 PS America 측에서 준비해 둔 차에 올라타자 최재우 이사는 한시름 놨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그제야 보조석에 앉아있는 ‘짐 마틴’에게 인사를 건넸다.

유창한 영어로.

“저는 한국 B&M 엔터테인먼트의 최재우입니다. 이번 미국 일정의 디렉터를 맡았고요. 마중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자마자 신세를 지게 되었네요.”

“신세라뇨! 마땅히 저희가 해야 할 일인걸요.”

짐 마틴이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얼굴에 주근깨가 있긴 했지만, 대체로 깔끔하고 하얀 피부와 갈색의 윤기가 흐르는 모발을 지녔다.

그는 이번에는 파란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웰컴! 미스터 주우! 이렇게 만나서 영광입니다. 뉴욕에서 행운이 당신과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미국은 처음이라서요.”

김남규 팀장도 인사를 마치고 난 후, 좌석에 등을 붙이고 앉아 다리를 토닥거렸다.

아마 장시간 비행에 다리가 붓고 지쳤나 보다.

“괜찮으세요?”

내가 묻자 김남규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PS에서 퍼스트 클래스 티켓을 준비해 준 덕분에 편히 왔잖아. 오늘 좀 쉬면 괜찮을걸?”

“그래. 오늘은 여독을 풀어야 하니 다들 호텔에서 푹 쉬자고.”

최재우 이사도 맞장구치는 것을 보니 오늘은 호텔에서 짐을 푸는 게 마지막 일정인가 보다.

나는 차창의 커튼을 살짝 젖히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4차 오디션이 3일 후라고 했던가?’

차는 어느덧 뉴욕 시내를 달리고 있었다.

‘왓칭’ 종합 엔터테인먼트가 1994년 뉴욕에 설립된 이래로 계속 이곳에 터전을 두고 있기에 뉴욕으로 오디션을 보러 온 것이다.

이번 오디션은 비공개로 진행된다고 알고 있다.

유명 배우들이 참가할 것으로 관계자 사이에 알려져서 공개로 오디션을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최종적으로 오디션 볼 배우들이 10명이라고 했었지, 아마.’

경쟁률은 10 : 1

이건 해볼 만한 싸움이다.

* * *

스콧 페브릭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세계 곳곳에서 보낸, 특히 아시아권의 많은 엔터테인먼트 사와 에이전시에서 보내온 배우들의 프로필.

족히 1000장이 넘어 보였다.

스콧 페브릭은 이것을 걸러내는 데 1주일이 걸렸다.

그동안 그가 마신 커피의 양은 상상 초월이다.

아마 석 달 동안 마실 카페인을 모두 섭취한 듯했다.

우선 프로필 사진만 보고 역할에 어울릴 만한 주연 배우 후보를 1차로 뽑는다는 것.

그에게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의 시선으로 본 동양인은 언뜻 얼굴만으로는 구별이 안 되었기 때문에 분별 작업이 더 더딜 수밖에 없었다.

‘왓칭 코믹스’에서 발매한 『왓칭 인물 대백과 사전』에 그려진 ‘리앙’의 캐릭터가 동양인이다 보니 지원한 대부분은 아시아 배우들이다.

하지만 가끔가다가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 서양 배우들의 프로필도 눈에 띄었다.

그때마다 스콧 페브릭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까만 눈과 흑발을 가진 ‘리앙’을 원했다.

그가 볼 때 새까만 눈동자는 신비로우면서도 권위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해서 10여 일 동안 어렵게 총 30여 명으로 후보들을 압축해 놓으니 대부분 동양인이다.

국적도 다양했다.

중국, 홍콩, 일본, 대한민국, 타이완, 싱가포르, 태국 등.

아! 그중엔 미국인도 여럿 포함되어 있다.

1차 프로필 심사에 통과한 몇 명의 미국 배우들은 대부분 혼혈이었다.

어쨌든 심혈을 기울여 스콧 페브릭은 1차 심사를 끝내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곧 2차 심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소개 영상.

이건 1차 심사 때보다 조금 나았다.

지원자들의 표정을 살펴보고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콧 페브릭은 2차 소개 영상 심사에서 또다시 20명의 지원자를 탈락시켰다.

영어로 말할 때 어색함이 보인다거나 목소리가 튀는 배우들을 걸러내다 보니 지원자는 딱 20명이 남았다.

3차 심사는 배우들이 보낸 필모그래피 중 몇 개의 작품을 소개, 편집한 영상이었다.

스콧 페브릭에게는 이때가 가장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또한, 이 심사 방법이야말로, ‘블랙 리앙’의 주연배우 후보자를 뽑는데 가장 적합한 오디션이라고 생각했다.

지원한 배우들의 연기를 엿볼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총 10명의 배우들을 최종적으로 선발했다.

개별적으로 배우들의 에이전시에 연락을 보내고 난 후, 스콧 페브릭은 심사를 하며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배우들 프로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3명이었다.

그가 ‘리앙’ 역을 맡겨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배우는…….

그리고 마침내 그 배우들이 스콧 페브릭의 눈앞에 차례로 나타났다.

이미 미국에서 여러 작품에 참여해 할리우드 진출에 성공한 중국의 ‘황서우촨’.

오늘 오디션을 볼 지원자들 중 스콧 페브릭이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배우다.

그가 출연했던 몇 작품의 주요 장면을 보니 기본적으로 액션을 잘 소화하는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요즘 미국 영화 시장에서는 중국의 투자 자금을 많이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런데 ‘황서우촨’을 주연 배우로 확정 지으면 투자를 하겠다는 중국의 투자사가 있었다.

그 투자금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영화 제작에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다다익선이라며 ‘왓칭 엔터테인먼트’에서 ‘황서우촨’의 이름을 거론한 적이 있다.

비공개 오디션.

스콧 페브릭은 ‘황서우촨’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했다.

검을 다뤄야 하는 캐릭터였으므로 기본적으로 무술을 할 수 있는지 물었고, 보여 달라고 청했다.

이 배우가 출연했던 영화에서 보여준 액션에 비해 조금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스콧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은 카메라도 연기한다고 말할 정도로 워낙 액션을 예쁘게 잘 잡아 내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의 표정 연기를 봤을 때 스콧 페브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운 웃음도 함께였다.

그다음으로 눈여겨보았던 일본 배우 ‘타케우치 케이’.

「사무라이 타카」라는 영화에서 검객으로 활약하며 일본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다.

이 배우를 직접 본 스콧 페브릭은 그가 아기자기한 이목구비와 까맣고 날렵한 턱선 때문에 단단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평상시에는 부드럽지만, 순간적으로 강인한 인상을 주어야 할 때는 매서운 ‘리앙’ 역에 잘 어울리는 얼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타케우치 케이’는 빠르고 날카로운 검술을 선보였는데 이것 또한 마음에 쏙 들었다.

중국의 ‘황서우촨’과는 전혀 반대되는 외모와 검술.

스콧 페브릭은 두 배우 사이에서 고민에 빠져들었다.

* * *

오디션장에서 한 명의 동양 배우가 문을 열고 나왔다.

‘일본인 같은데?’

방금 비공개 오디션을 보고 나오는 배우인 건가?

뉴욕에 있는 ‘왓칭’ 엔터테인먼트 본사.

여러 개의 테이블이 놓여있는 공간.

이 공간은 간이 파티션으로 가려져 있어서 오디션을 보러온 배우들의 대기 장소로 쓰고 있다.

가장 안쪽 방의 문 앞에는 ‘Audition Room’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방금 이 문을 열고 나온 배우는 얼굴에 완연한 웃음을 지으며 내가 대기하고 있는 테이블 옆을 지나갔다.

까맣고 뾰족한 얼굴형이 인상적인 배우.

잘생겼는데?

오늘 오디션을 보러 온 배우들은 총 10명.

그중에 일본에서 온 배우는 ‘타케우치 케이’가 유일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남자가 봐도 매력 있는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허공에서 그와 나의 시선이 엉키자 일순간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타케우치 케이’는 그대로 내 옆을 지나갔는데 그의 입 모양을 보고는 내 머리털이 쭈뼛하고 섰다.

‘君がぼくのライバルだね.(네가 내 라이벌이구나?)’

내가 뭐라고 제스처를 취하기도 전에 ‘타케우치 케이’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옆에 있던 최재우 이사가 내게 물었다.

“왜? 컨디션이 안 좋아?”

내 표정이 굳었던가?

최재우 이사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다.

“아뇨. 좋아요. 이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앞으로 30분이나 더 기다려야 하는데, 뭐 필요한건 없어? 목마르지는 않고?”

“괜찮아요. 좀 앉아 계세요.”

이곳에 도착한 지 벌써 1시간이 넘었는데, 그동안 최재우 이사는 한 번도 의자에 앉은 적이 없다.

내 옆에 앉아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김남규 팀장과는 참 딴판이다.

하긴.

김남규 팀장은 이미 나와 여러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간이 커지긴 했다.

최재우 이사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피식하고 나왔다.

처음 내가 <슈스챌>에 참가했던 날, 김남규 팀장이 안절부절못하며 청심환을 찾던 그 모습이 최재우 이사의 얼굴에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은 약속 시간을 칼 같이 지키는 경향이 있어서 이럴 때 좀 불편하네? 한국 같았으면 빨리빨리 오디션을 끝냈을 텐데 말이야.”

“그만큼 심사숙고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어요? 이사님 좀 앉아 계세요. 어째 오디션 볼 시후는 멀쩡한데, 이사님이 떨고 계신 것 같네요? 청심환 드려요?”

“청심환이 있긴 해?”

두 사람의 대화에 계속해서 웃음이 난다.

사실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조금 긴장을 하는 상태였는데, 덕분에 긴장감이 말끔히 해소되는 느낌이다.

띠리링!

자리에 서서 오디션 룸의 문을 쳐다보고 있던 최재우 이사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메시지가 온 모양이었는데, 잠시 화면을 쳐다보던 그의 얼굴빛이 좋지 않다.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김남규 팀장의 말에 최재우 이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전에 오디션을 보고 간 중국 배우가 한 명 있어. 황서우촨? 뭐, 그런 이름이라네? 그 배우의 소속사가 중국에서 파워가 좀 센가 봐. PS China의 정보에 따르면 ‘황서우촨’을 캐스팅할 경우 중국 기업 ‘T.U.I’에서 투자를 하겠다고 했나 봐.”

그런 일은 한국에서도 비일비재하니, 최재우 이사의 말이 놀랍지도 않다.

“우리도 PS China가 있잖아요. 우리도 살짝 정보를 흘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에이, 팀장님. ‘왓칭’에서 돈 없어서 영화 못 찍는 것도 아니고, 설마 돈으로 배우 뽑겠어요? 저는 실력으로 따낼게요.”

“그치? 내가 잠시 너를 못 믿고 헛소리를 했네.”

김남규 팀장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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