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108화 (108/170)

# 108

108화 정해진 만남 (2)

‘PS China’ 사옥.

건물 입구에 들어설 때만 해도 굉장히 큰 회사라고 생각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고층에 당도하자마자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아래쪽은 경비들이 입구를 지키는 여느 회사와 다를 바가 없었는데, 이곳은.

마치 마피아의 소굴에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다.

아니 중국이니까 ‘흑사회’라고 해야 하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대표실까지 걸어가는 복도.

건물 내부는 깔끔하고 밝다.

화이트 톤의 바닥, 복도의 양쪽 벽면에는 그동안 투자했던 영화와 드라마 등의 포스터가 액자에 넣어져 반듯하게 걸려있다.

반면에 복도 중간중간에 무표정으로 각을 잡고 서 있는 사내들은 이곳 분위기에 맞지 않은 이질감이 느껴진다.

영화에서만 보아 오던 검은색 양복, 깍두기 머리 스타일, 건장하다 못해 뚱뚱한 체구들.

누가 봐도 조직폭력배들이 서 있는 것 같은 분위기다.

“이쪽입니다.”

이곳에 들락날락거리는 게 한두 번은 아닌지 대표실로 안내하는 ‘왕링’의 표정은 무던했다.

뒤따라 걸어가며 기가 죽은 사람은 김남규 팀장뿐인가 보다.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따라가는 그 모양이 우스워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왜 웃어?”

“팀장님. 쫄으신 거예요?”

“쫄긴 누가? 그냥, 처음 가는 곳이니까 경계하는 것뿐이야.”

“아, 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우리는 금세 커다란 검은 문 하나와 마주했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왕링이 대표실의 문을 열자 환한 빛이 확! 하고 얼굴로 쏟아진다.

천국으로 가는 빛이 있다면 꼭 이런 종류가 아닐까 싶다.

나는 한 손으로 이마를 가리고 그림자를 만들며 문안 쪽을 엿보았다.

키는 175cm 정도 될까 하고 상당히 건장해 보이는 사내가 뒷짐을 지고 창밖을 쳐다보고 있다.

그러다가 문이 열린 것을 알아챘는지 몸을 돌려 내가 서 있는 쪽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허공에서 사내와 나의 시선이 엉키자 그제야 사내의 얼굴에 미소가 머물렀다.

“아! 이런, 손님들을 모셔놓고 이런 실례가 있나.”

대표로 짐작되는 그 사내는 방 안에 있던 누군가에게 턱짓했다.

“들어오시지요. 멀리서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창문에 달린 블라인드로 채광을 알맞게 조절하자 사내 얼굴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아마 나이는 50살 전후인 것 같다.

이 큰 회사를 경영하는데 어려서 무슨 고생을 한 건지 이마와 눈가에 주름이 깊어 보였다.

사내는 허공에 손을 가볍게 한번 휘젓는다.

그 신호에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문밖으로 나갔다.

나와 김남규 팀장, 그리고 사내만 방안에 남아 어색한 기운이 돈다.

이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시후라고 합니다. 이쪽은 한국 매니지먼트 사에서 저를 맡고 있는 김남규 팀장님입니다.”

대표에게 소개하며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보통 매니저가 담당 아티스트를 소개하지 않나?

김남규 팀장이 괜히 원망스러워졌다.

이 양반이 월급을 날로 먹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저는 ‘PS China’의 회장 ‘자오위안’입니다. 이거 실제로 보니 화면보다 실물이 더 낫네요? 네티즌들이 주시후 씨의 외모를 평할 때 카메라에 절반도 담기지 않는다고들 하던데, 정말이네요. 이렇게 직접 만나 보니 광채가 발하는 것이 신비롭기 그지없습니다.”

“과찬입니다. 저야말로 회장님을 직접 만나 뵐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자오위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가 웃자 눈가에 주름이 잔뜩 잡혔는데, 그 인상이 꽤 인자해 보였다.

“점심은 드셨습니까?”

“네?”

자오위안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점심을 함께 먹자며 식사에 초대해 놓고서는 먹었냐고 물어보니 조금 황당했다.

“아직……입니다.”

“아! 이런 제가 점심 식사에 초대해 놓고 무슨 말을! 혹시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자오위안의 질문에 김남규 팀장이 나를 빤히 본다.

중간중간 자오위안과 하는 말을 김남규 팀장에게 통역해 주었는데, 이번엔 무슨 말이 오갔는지 궁금한가 보다.

“어떤 음식 좋아하시냐고요.”

내 말에 김남규 팀장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나는 향신료 안 들어간 음식은 다 좋아. 고기 먹자고 해, 고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오위안에게 전했다.

“저희는 뭐든 다 잘 먹습니다.”

“그럼 오늘은 사적인 자리이니, 제가 평소 자주 가는 곳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죠.”

내 대답에 자오위안이 소파에서 일어섰다.

“자! 가시죠. 밖에 차를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자주 가는 식당이라며 데리고 온 이곳은 훠궈 전문점이다.

큰 회사 회장이라고 해서 고급 식당에 데리고 갈 줄 알았더니 오히려 평범하기보다는 오래되고 낡은 음식점이다.

한국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런 상황을 종종 본 적 있다.

재벌들이 진짜 즐겨가는 식당은 후미진 골목에 있는 설렁탕 집이라는 설정.

평상시에 훠궈 노래를 부르던 김남규 팀장은 꽤 만족스러워 하는 표정이다.

이런 곳일수록 숨은 맛집일 가능성이 크다나?

영화에서 본 것과 비슷한 연출은 또 한 가지 있었다.

문 앞에 지키고 서 있는 덩치 큰 경호원들.

아까 대표실로 가는 복도에서 봤던 그 사람들이다.

그리고 밖에 경호원을 잔뜩 세워 놓은 식당 안에는 우리 셋밖에 없었다.

“저는 사실 회사에 잘 나가지 않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주시후 씨를 처음 만나는 자리라 나선 것이지, 미디어 플랫폼에 관련한 일은 우리 이사가 다 알아서 합니다. 저는 문화 쪽 일은 아는 것이 별로 없어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자오위안이 하는 말이다.

“그러시군요. 그런 부하 직원이 있어 든든하시겠어요.”

“그럼요! 일은 또 얼마나 깔끔하게 잘하는지…… 아! 오전 중에 처리할 일이 있어서 조금 늦는다고 했으니 금방 올 겁니다. 향후 주시후 씨의 중국 일정 또한 도맡아 처리할 사람이니 오늘 얼굴을 익혀 놓는 것이 좋겠죠. 마침, 저기 오네요.”

자오위안이 이야기를 하다말고 식당 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 * *

“어??”

짙은 쌍꺼풀이 진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우리를 발견한 여인.

동글동글한 하얀 피부를 지닌 그 여인이 얼굴색과 대비되는 까만 긴 생머리를 흩날리며 우리가 앉은 테이블 쪽으로 걸어왔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내 눈이 점점 커졌다.

분명 전에 본 적이 있는 여인이다.

“안녕하세요? 주시후 씨?”

“여긴 어떻게?”

그녀가 내민 손을 잡고 얼떨결에 악수하자 김남규 팀장이 조용히 물었다.

“왜 그래?”

“만난 적이 있어요.”

그녀는 나와 맞잡은 손을 살짝 빼더니 활짝 웃는다.

“설마 오늘도 팬이라서 오신 건 아니겠죠? 자오린?”

“와! 이름을 기억하고 계실 줄은 몰랐는데요?”

자오린은 비어 있는 자오위안의 옆자리에 앉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디서 만났는데?”

“한국에서 팬 미팅 할 때 왔었어요. 그때 무대 위에 올라와서 내가 책 선물을 했었는데 기억 안 나세요?”

“아!! 그 경호원 잔뜩 데리고 왔던 그 중국 여자?”

“네, 맞아요.”

김남규 팀장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기다렸다는 듯이 자오린이 입을 열었다.

“정식으로 소개하죠. 저는 ‘PS China’의 이사직을 맡은 ‘자오린’이에요.”

“반갑습니다. 주시후입니다.”

“물론 알고 있죠. 팬이라니까요?”

자오린이 큰 눈을 껌벅이며 능청스러운 표정을 말하자 피식 웃음이 났다.

자오위안 회장 대신, 이사가 와서 사인했다더니 아마도 자오린이었나 보다.

어쩐지 그냥 팬 같지가 않더라니, 아마도 B&M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 때문에 한국에 온 김에 팬 미팅 현장을 방문한 것이겠지.

그러다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자오위안 회장과 자오린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자오’라는 성은 한국에서 ‘조’ 씨다.

둘 다 성이 같으니…….

“두 분이 참 닮으셨네요.”

“맞아요. 제가 아빠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자오린은 딱 보기에 스물넷, 스물다섯 살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혹시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아버지 후광으로 회사에 들어간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니죠? 제가 아빠 딸이라고 해서 회사에서 중책을 맡는 건 아니에요. 저, 일 엄청나게 잘해요.”

“‘PS China’ 같은 큰 회사에서 딸이라고 회사를 맡기지는 않으셨겠죠. 일은 잘하신다고 회장님께 들었습니다. 으음?”

둘만의 대화가 너무 길었는지 김남규 팀장이 내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아, 팀장님. 두 분이 부녀 사이래요.”

“그래? 어쩐지 닮았더라. 그건 그렇고 일단 식사 먼저 하자. 먹고 나서 향후 일정 의논해야지.”

김남규 팀장은 보글보글 끓고 있는 마라탕과 백탕에서 채소를 건져 내 그릇에 덜어 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좀 물어봐 줄래? 몇 살인지?”

“하하하하!”

김남규 팀장이 곁눈질로 내 눈치를 보는 모양이 자오린에게 관심이 없으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마음에 든다 한들 언어의 장벽을 어찌 뛰어넘으려고 저러시나?

이런 생각이 들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무슨 재미난 얘기를 한 모양이네요?”

자오린이 묻자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김남규 팀장이 빨리 물어보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요. 별 얘기 아니에요. 참! 실례가 안 된다면 나이를 물어도 괜찮을까요?”

“올해 서른 살이에요.”

이번엔 내 눈이 동그래졌다.

서른 살이라고 해서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동안이었다.

그녀가 손가락 세 개를 펴면서 말을 하자 김남규 팀장이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살 차이면 딱 좋지.”

올해 서른둘이 된 김남규 팀장의 말이었다.

* * *

한적한 카페.

나는 자오린과 마주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조금 전 점심 식사 마친 자오위안은 개인적인 스케줄이 있다며 자리를 떠났고, 김남규 팀장은 같은 카페의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다.

자오린이 둘이 할 얘기가 있다며 양해를 구한 이유에서다.

“아시다시피 저희 ‘PS China’는 세계적으로 많은 지사를 두고 있어요. 저는 ‘PS China’ 외에도 수많은 지사들을 다 관리하고 있고요. 사실 저의 아버지는 문화 사업에는 관심이 없어요. 이건 제가 좋아서 하고 있는 제 사업이죠.”

자오린의 말에 나는 속으로 조금 놀랐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이 큰 회사를 다 관리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아버지는 다른 쪽으로 더 뛰어나시거든요.”

“다른 쪽이라면?”

“저희는 문화 사업 말고 다른 분야에도 깊게 관련되어 있죠. 예를 들자면 해외에서 유명한 브랜드인 ‘디포츠’도 저희 집안에서 이끄는 사업이에요.”

“자동차요?”

“네. 그건 빙산의 일각이에요. 자동차뿐만 아니라 전자, 가구, 은행.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아요. 그중 저의 아버지가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은 어두운 곳이죠.”

나는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왜 내게 고해성사 같은 이런 말들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내뱉은 말들은 하나같이 놀랄 일들이었다.

대서특필될 만한.

그녀는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투자회사인 ‘PS China’가 ‘자오’ 가문에서는 그저 사막의 모래알 같은 작은 일일 뿐이라고 얘기하는 중이다.

“이제 말씀해 보세요. 저랑 둘이 할 얘기란 것이 뭔가요?”

그녀가 말을 끊고 한참 커피잔만 만지작거리기에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당신의 손가락에 끼고 있는 그 반지에 관해서 물어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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