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94화 (94/170)

# 94

94화 한 끼만 줍쇼! (2)

“누구요? 누구라고요?”

“성유라 씨요. 지금 오실 수 있어요?”

“성유라 씨는 출연 고사하지 않았었나요?”

“꼭 출연하고 싶다고 하는데, 일단 오셔서 작가님이 물어보세요. 어찌된 일인지.”

“알겠어요. 지금 가죠. 30분 후면 도착해요.”

청룡 스튜디오.

전승원 PD는 박은숙 작가의 통화를 마치고 난후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5년 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지붕 뚫고 시리즈.

그 시트콤에서 발랄한 연기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성유라는 올해 23살의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톱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발랄하게 통통 튀는 이미지를 가진데다가 피아노를 잘 친다고 하여, 이번 드라마에서 여배우로 적임자라고 생각했는데, 박은숙 작가의 드라마를 함께하자는 데도 출연을 고사했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 정찬웅 감독의 영화에 출연스케줄과 겹친다는 이유에서였다.

해서 전승원 PD와 박은숙 작가는 최종적으로 여배우 조희경을 캐스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조희경측과 미팅이 잡혀 있는 것이 바로 오늘 저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성유라 측에서 만나자고 제의해 온 것이다.

“에휴…… 성유라가 한다고 해도 걱정이고 안한다고 해도 걱정이니 원. 와 보면 결정 나겠지.”

전승원 PD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1시간 후.

청룡 스튜디오 회의실에 여배우 성유라와 박은숙 작가, 그리고 전승원 PD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았다.

“작가님, 이거 한번 봐 주시면 좋겠어요.”

성유라가 내민 USB.

전승원 PD는 이것을 노트북으로 재생시켰다.

엄청나게 수준급의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온다.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를 치고 있는 그녀는 피아노가 아주 익숙한 듯했다.

이를 본 전승원 PD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성유라가 예술 고등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캐스팅해 보려고 한 것이었지만 이 정도의 수준인지는 몰랐던 것이다.

“성유라 씨가 피아노를 전공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실력인지는 몰랐어요.”

“후훗! 다들 그렇게 생각하세요. 피아노 전공하다가 시트콤 찍으면서 연극영화과로 전과해서 그래요. 하지만 예술 고등학교 피아노과에 입학하려면 1, 2년 배운 솜씨로는 어림도 없는걸요? 피아노는 5살 때부터 배웠어요.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우지 않은 친구들은 피아노과에 입학하는 꿈도 못 꾸죠. 피아노 안 배워본 사람 찾기가 더 힘들걸요?”

“그야 그렇죠. 제 딸도 어렸을 때 한두 달 시켜본 적 있거든요.”

성유라라면 인지도도 높고 연기실력은 이미 검증이 된 터라 여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었다.

때문에 전승원 PD는 성유라가 출연을 고사했을 때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그런데 이렇게 제 발로 다시 찾아와서 드라마를 꼭 하고 싶다고 하니,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들어온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전승원 PD는 조심스레 박은숙 작가의 표정을 살폈다.

주연배우 캐스팅은 본인만 좋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박은숙 작가의 작품을 이미 한 번 고사한 배우가 아니던가?

자존심 세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박은숙 작가가 싫다고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박은숙 작가는 말없이 동영상 파일을 몇 번이나 재생해서 보고 또 보고 있다.

피아노를 치면서 즐거워하는 표정들이 여실히 드러난다.

악보 보기에 급급한 표정이 아니다.

동영상 속의 성유라는 피아노 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말이 없던 노트북을 한참 들여다보던 박은숙 작가가 드디어 성유라에게 질문을 던졌다.

“성유라씨는 이 드라마가 왜 하고 싶죠? 영화에 출연한다고 고사했었잖아요.”

성유라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시놉시스를 처음 읽었을 때는 그동안 해왔던 역할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제가 시트콤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얻어서 그것이 감사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 이미지가 아직까지도 너무 강하기 때문에 들어오는 배역이 매번 비슷하거든요. 발랄하고 순진하고 톡톡 튀는 역할들이죠. 그래서 연기 변신을 한번 해보려고 해도 어렵더라고요.”

“그런데요?”

박은숙 작가가 성유라를 빤히 본다.

성유라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당차던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얼마 전 TV에 한 가수 분이 출연해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TV채널을 무작정 돌리다가 보게 된 건데, 저는 그분의 피아노 연주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동안 리모컨을 손에 들고 멍하니 있었죠.”

성유라는 아련한 눈빛을 발산하며 말을 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갑자기 제 심장이 쿵쾅거리는 거예요. 가슴 한구석에 묻어두었던 잊고 있었던 무언가에 불을 지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요. 그것이 피아노였나 봐요. 피아노에서 손 뗀지 오래되었는데 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그리고 며칠 동안 집에 틀어박혀서 피아노만 쳤어요. 그런데 불현 듯 작가님의 드라마가 생각나더라고요. 저는 그 시놉시스를 다시 꺼내 읽었어요. 일주일 동안요.”

일주일 동안 시놉시스를 읽었다는 말에 박은숙 작가의 표정에 호기심이 깃든다.

그녀는 입가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성유라에게 물었다.

“다시 읽으니 달라진 것이 있었나요?”

“네. 수십 번을 읽은 시놉시스에서 그동안 제가 연기해 본 적 없는 캐릭터를 발견하게 됐어요. 그것은 비밀을 간직한 그것이 비밀인지도 몰랐던 소녀였어요.”

박은숙 작가의 눈빛이 순간 예리하게 빛난다.

그녀의 입가에 머물던 작은 미소가 크게 피어올랐다.

“끝까지 제대로 읽었네요? 좋아요!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치고! 그럼 영화는 어떻게 할 거죠? 영화촬영이 무산되기라고 했나요? 아니면 두 개 촬영을 한꺼번에 할 건가요?”

“드라마에 출연만 시켜주신다면 정찬웅 감독님의 영화는 출연하지 않을 거예요. 아직 계약을 한 것이 아니어서요. 정찬웅 감독님께 신뢰를 잃겠지만 지금은 꼭 이 드라마가 하고 싶어요.”

박은숙 작가가 전승원 PD를 쳐다본다.

전승원 PD는 성유라를 이리저리 뜯어보고 있다.

어느 각도로 카메라 앵글을 가지고 가야 예쁘게 찍힐지 이리저리 각도를 재는, 직업병이 도진 것이다.

하는 행동을 보니 이미 성유라에게 홀딱 넘어갔다.

박은숙 작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같이해 봅시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작가님! 열심히 할게요, 감독님!”

박은숙 작가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뭔가가 생각난 듯 아! 하고 성유라에게 물었다.

“남자주인공은 누가 맡았는지 알고 있죠?”

“네! 주시후 씨요. 사실 얼마 전 TV에 나와서 피아노 연주를 연주하셨던 그 가수 분이 주시후 씨예요. 제가 이 드라마를 하고 싶은 두 번째 이유는 그분 때문이죠.”

* * *

<한 끼만 줍쇼!> 촬영을 하고 있는 나와 이경균.

싱어송라이터가 꿈이라는 한 사내의 집에 들어와 저녁거리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이다.

냉장고 문을 연 집주인 사내의 어깨너머로 냉장고를 들여다본 이경균의 표정이 영 좋지 않다.

먹을 게 없다!

까딱하면 라면 두 개 끓여서 밥 말아 먹게 생겼네.

하긴.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집에 들여보내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니까.

“혹시…… 쌀은 있죠?”

“네. 시골에서 보내주셔서 쌀은 있어요. 그런데 마땅한 반찬거리가 없어서요. 제가 요리를 잘 못하거든요. 반찬은 주로 사다 먹고, 요즘엔 거의 라면을 먹는 편이라 서요.”

쌀만 있으면 됐지 뭐.

냉장고를 다시 한번 뒤져 볼까?

있는 재료로 뭐라도 만들어주고 싶었다.

집에 들여보내 준 은혜를 갚고 싶기도 했고, 라면도 상관없다고 말은 했지만.

촬영 스케줄이 빡빡할 때 인스턴트 음식은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에 가급적으로 입에 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요리를 잘했던가?

생각해 보니 요리라고 할 만한 것을 만들어 본적이 없다.

에이. 어떻게든 되겠지.

반지의 능력도 있고.

요리의 신이라…….

있다! 신들의 음식을 관장하는 운백 ‘세이론’

신계 품계, 4품으로 태어날 때부터 신이었던 그녀는 신계에서 신들이 먹는 음식, 과일 그리고 술을 관리하는 신이다.

‘음식을 관장하는 신 세이론을 소환하고 싶습니다.’

천상경에 의지를 전달하자, 곧 울림이 공명되어 들려온다.

“세이론이 소환을 허락합니다.”

나는 신을 소환하고 나서 냉장고 안의 재료 탐색을 시작했다.

시어빠진 신 김치가 반 포기 있고, 썰어 놓은 양파가 눈에 들어왔다.

“이 양파는 뭐예요?”

“아! 며칠 전에 중국집에서 짜장면 시켜 먹을 때 단무지랑 온 거예요.”

음…… 일단 양파는 있고.

그리고 식자재라고 부르기에 마땅한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냉장고 문을 닫고 선반으로 향했다.

통조림 햄이 한 통 진열돼 있었다.

“또 다른 재료는 없나요?”

“재료라고 하긴 뭐한데…… 시골에서 보내 주신 고구마 한 박스가 있어요.”

집주인에 가리킨 박스 안을 들여다보니 큼지막한 고구마가 수북하다.

이걸로 뭘 만들 수가 있나?

내가 의구심을 갖자 함께 재료를 둘러본, 신 세이론이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걱정하지 말라며…….

머릿속에 봐 두었던 재료들의 황금 비율이 떠오른다.

고추장 2스푼, 된장 스푼, 간장 1.5스푼, 고구마 3개…….

이것들을 조합하면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연상까지 된다.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아주 맛있는 음식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밥만 좀 해 주시겠어요? 한 끼 반찬거리 정도는 제가 만들어 볼게요.”

나는 몸을 바삐 움직였다.

양념장을 먼저 만들어야겠지?

된장, 고추장, 간장과 설탕을 그릇에 담아 휘휘 저어 맛을 보았다.

물론 신의 음식을 관장하는 세이론의 머릿속에서 나온 정확한 비율이니 먹어 보지 않아도 맛있겠지만, 카메라를 의식해서 한 행동이었다.

“혹시 고춧가루도 있나요? 다진 마늘도 있으면 좋겠는데.”

집주인이 냉동실에서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꺼내 준다.

다진 마늘 한 숟가락 반. 고춧가루 두 숟가락.

찍어 먹어보지 않아도 무조건 맛있을 것이다.

이번엔 냄비에 껍질을 벗긴 고구마와 먹다 남았다는 양파 조각과 통조림 햄 한 통을 으깨서 넣었다.

자박하게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그 위에 양념장을 풀어 놓았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다 시어 빠진 김치통을 끄집어 냈다.

한 국자 정도 국물만 푹 떠서 냄비에 뿌려 주고는 냄비 뚜껑을 닫았다.

“고구마만 다 익으면 먹을 수 있어요.”

잠시 후 집안에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얼큰하고 달달한 냄새.

이것을 맡은 이경균이 냄비뚜껑을 열어보더니 코를 가져다 댄다.

“음……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이거 이름이 뭐야?”

“글쎄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넣은 거라. 잘 모르겠어요.”

내 말을 듣고 이경균이 맛을 보겠다며 한 숟가락 떠서 입으로 가지고 간다.

그런데 표정이 오묘하다.

이경균은 집주인 사내를 불러 그의 입에 숟가락을 가지고 갔다.

나는 쩝쩝 거리며 맛을 본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 궁금증이 일었다.

“어때요?”

이경균과 집주인 사내가 서로 마주보더니 씩 웃는다.

그러더니 엄지손가락을 척! 하고 들어올렸다.

“최고다! 최고!”

“이런 음식은 처음 봐요. 우리 집에 있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요.”

두 사람의 극찬에 나도 이름 모를 찌개를 한 숟가락 떠서 맛보았다.

예전에 집에서 엄마가 해주었던 ‘짜글이’와 비슷한 맛이긴 하지만 조금 달랐다.

맵지도 짜지도 않고, 달지도 싱겁지도 않았다.

뭐하나 빠지거나 모자란 양념이 없는 것이 모든 것이 딱! 적당했다.

일단 한번 맛보면 다 먹을 때까지 계속해서 먹고 싶은 맛.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다.

이경균과 집주인 사내는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숟가락으로 밑바닥이 보일 때까지 다 퍼먹을 기세다.

“다 된 것 같으니 앉아서 드시죠.”

냄비를 들어 상으로 옮기자 두 사내가 숟가락을 들고 뒤를 졸졸졸 따라온다.

나는 밥통을 열어 밥을 푸다가 불현 듯 난 생각에 제작진에게 물었다.

“저쪽 팀은 지금 뭐하고 있어요?”

“아직 들어오라는 집이 없어서 굶고 있어요.”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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