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83화 (83/170)

# 83

83화 초대 (3)

6월 첫 주부터 시작된 드라마 <왕의 신하>의 인기는 한여름의 무더위와 같이 순식간에 시청률 40%를 넘기며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그에 따라 배우들의 인기가 크게 치솟고 드라마 OST가 음원 차트에 상당히 높게 오른 것 또한 당연했다.

심지어는 배우들의 굿즈와 드라마에 사용되었던 소품들 또한 크게 인기를 얻어 절찬리에 판매중이다.

양평에 있는 이 세트장도 드라마 촬영이 끝나면 테마공원으로 관광객을 받을 것이라고 하니 드라마에 관한 모든 것은 신드롬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드라마의 제작진들과 배우들은 드라마의 인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을 못 썼다는 말이 더 옳다.

그들은 세트장에서 드라마 촬영을 하는 것으로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밖에 나가 인기를 실감할만한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시청률로 그리고 인터넷에 떠들썩한 네티즌의 반응으로 ‘인기가 아주 많다.’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시청자들의 격려와 응원 속에서 촬영에 매진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쁜 나날들 속에서도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드라마 <왕의 신하>의 마지막 촬영 날이 다가왔다.

“점심들 챙겨먹고 2시에 마지막 신 갑시다. 그리고 오늘 점심은 주 배우가 준비했다고 하니까 감사 인사 정도는 하고 먹읍시다.”

“응? 내가 준비했다고?”

전승원 PD가 휴식을 알려오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음을 재촉해 휴게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김남규 팀장이 챙겨주는 도시락을 받아들고 있는 문영호와 정해수가 눈이 들어왔다.

“도시락 맛있겠네. 주 배우, 잘 먹을게.”

“주 배우님! 잘 먹겠습니다!”

문영호와 정해수는 테이블에 앉으며 내게 장난을 걸어왔다.

“팀장님, 이게 뭐예요?”

내가 김남규 팀장을 바라보며 묻자 나를 자랑스럽게 쳐다보던 그의 입에서도 역시 장난스러운 말이 튀어나왔다.

“뭐긴? 주배우님의 팬클럽에서 보내신 거지. 아! 시후야. 도시락 좀 들고 서 있어 봐.”

김남규 팀장이 뭘 하려는지 눈치 챈 나는 문영호와 정해수 옆에 앉아 도시락을 한손에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V자를 그렸다.

찰칵!

팬 카페에 올릴 단체 인증 샷을 한 장 찍고 나자 김남규 팀장의 표정이 흡족해진다.

그때 휴게실의 문이 열리며 조연석, 한동하와 채설아 그리고 강화영까지 줄지어 들어선다.

“그쪽 세트장도 촬영 끝났어요?”

방금 들어선 배우들에게 내가 묻자 다들 한숨을 내쉬며 도시락을 챙겨 의자에 앉는다.

진이 다 빠진다는 얼굴이었는데 눈빛을 반짝거리며 웃는 것이 속 시원하다는 표정이다.

“응. 드디어 마지막 촬영이 끝났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던 그날이 왔어.”

“그런데 이거 시후 팬클럽에서 준비해 준 도시락이라며?”

“잘 먹을게. 시후야.”

다들 한마디씩 하며 도시락을 까고 있는 배우들을 바라보니 그 표정들이 매우 밝다.

강화영만 제외하고는.

나와 강화영은 아직 촬영을 끝내지 못한 마지막 한 신이 남아있었다.

엄청난 감정 소모를 해야 하는 씬이라 전승원 PD가 제일 마지막에 찍겠다고 한 것이다.

“우와! 진짜 맛있는데? 요즘엔 도시락이 진짜 잘 나온다니까?”

“마늘 떡갈비 진짜 완전 내 취향! 꿀맛이야!”

“오빠한테 뭔들 맛없겠어? 적당히 먹고 살 좀 빼라!”

문영호, 한동하, 채설아의 말이다.

한동하는 입을 오물거리며 채설아에게 눈을 흘겼다.

“내가 먹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나 살 빼! 아까 네 허리 감싸 안는 신 찍을 때 보니, 뱃살 잡히던데?”

“뭐? 내가 뱃살이 어딨다고! 그러는 오빠는? 아까 두 손으로 오빠 얼굴 감싸는데 너무 빵빵해서 농구공인 줄 알았거든?”

한동하와 채설아가 또 한판 붙었다.

한동하는 원래 성격이 저러니 그렇다 치고, 채설아는 도도한 얼음 여왕 이미지인데 한동하와 붙을 때면 항상 저렇게 유치해졌다.

그러고 보니 둘이 꽤 잘 어울린다.

유치한 구석이.

이 둘을 보다 못한 조연석은 금세 말을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다.

“그런데 시후 팬클럽에서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나보네? 알았으면 마!늘!이 들어간 떡갈비를 보냈을 리가 없지.”

조연석이 마늘을 강조해서 말하자 문영호가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아! 그러네. 시후 너 마지막 신 찍으려면 이걸 먹으면 안 될 것 같은데에?”

“아! 아! 그 신이요? 그럼 화영이도 이 도시락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흐흐흐”

정해수가 문영호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그리고 둘은 서로 마주보며 세상에서 가장 느끼한 웃음을 지었다.

이들의 행동에 방금 막 젓가락을 든 강화영은 테이블위에 탁! 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 생각해 보니까 먹으면 안 되겠다.”

“설마, 화영이 너 시후 배려하는 거야?”

“네? 아니요? 다이어트 중이라서 그래요.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한테 인공 호흡하는 신인데 무슨 배려요? 내가 무슨 키스 신 찍는 줄 아세요?”

강화영은 조연석을 바라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조용히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어쨌든 입술을 맞대야 하는 장면인데 입에서 마늘 냄새를 폴폴 풍기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양치라도 하고 와야겠네.’

* * *

“마지막 신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최대한 소음은 자제해 주시고요, 카메라 외에는 움직이지 말아주세요.”

대전 후원 세트장.

조연출은 마지막 촬영에 앞서 촬영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의 사항을 전달했다.

이 신만 촬영하면 드라마의 모든 촬영이 끝나므로, 구경하려고 모인 사람들은 꽤나 많았다.

많은 스태프들과 주·조연 배우들이 한쪽 벽에 얌전히 서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김기만 PD와 박은숙 작가도 전승원 PD의 옆 자리에 앉아 숨죽이고 앉아 카메라 앵글을 바라보고 있다.

한성부 다모인 소화를 대신해 칼을 맞고 쓰러진 허인.

그를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소화.

그 둘이 나누는 마지막 대화.

나나 강화영이나 슬픈 감정을 최대한 폭발시켜야 했으므로 끝까지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제작진은 모여든 사람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또한 드라마에서는 한 신을 촬영하더라도 각도에 따라 여러 번 해야 했는데, 이번만큼은 카메라를 미리 설치해 놓고 한 번만 찍기로 결정했다.

그만큼 한 번에 감정을 다 쏟아 부어야 하는 힘든 장면이었다.

내 특수 분장이 끝난 것을 확인한 전승원 PD가 마지막 촬영의 시작을 알렸다.

“자! 아까 칼 맞은데 다음부터 이어서 갑시다.”

전승원 PD의 말에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감정을 지배하는 신 에로스 소환.’

“신 에로스가 소환을 허락합니다.”

이제부터 연기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허인이다!

스스로 암시를 건 후에 카메라 앵글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극중이었지만 곧 맞이할 죽음을 떠올리자 마음한쪽에서 불안과 초조함이 밀려온다.

두려움. 그것은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에로스의 따뜻한 기운으로 나를 감싸자 다행히 두려움이 점차 사라진다.

전승원 PD의 스탠바이 신호가 떨어졌다.

“레디! 고!”

허인은 소화에게 기습적으로 날아든 칼을 몸으로 받아낸다.

가슴에 치명상을 입은 것인지 허인의 몸이 세차게 출렁인다.

세 걸음이나 뒷걸음질 친 허인의 몸뚱이가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친다.

그러면서도 그는 허리춤에서 작은 비수를 꺼내어 소화를 위협하는 괴한에게 손을 썼다.

이내 소화가 허인에게 달려온다.

그녀는 허인의 상체를 일으켜 세워 무릎에 기대게 했다.

“위, 위험해. 어서 피하 거……라.”

“모두 잡았어요. 괜찮아요.”

“주상……전하께서는?”

“금군들이 몰려갔으니 괜찮으실 겁니다.”

“어서 대전으로 가 보거…… 쿨럭!”

허인이 상처를 감싸고 기침을 하자 소화는 급히 손을 들어 허인의 입을 막았다.

“말하지 말아요! 아무 말도 하지 말란 말이에요!”

허인은 힘겹게 손을 올려 입을 막고 있는 소화의 손을 잡았다.

“그래. 말은……그만해야겠구나. 자꾸 눈이…… 감겨서 말이다.”

“안 돼요! 눈 감지 말아요. 제발…….”

소화의 눈물 한 방울이 허인의 얼굴 위로 떨어진다.

“내 할 일은 다 한 듯싶다. 왕을 지킨 것도. 그분의 밀명을 지킨 것도. 너를 지킨 것도…… 쿨럭!”

“흑흑! 아! 안 돼! 제발 죽지 말아요. 아직 당신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단 말이에요. 흑흑. 주상전하께서 그러셨다며! 나를 지키라고! 왜!! 왜! 나만 두고 가려고 하는 거야!? 흑흑.”

“미안하다, 소화. 이제 숨쉬기가 힘들어지는구나.”

허인이 가쁜 숨을 몰아쉰다.

그를 본 소화는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들어댔다.

“안 돼! 안 돼! 내가 숨을 불어넣어 줄게요. 곧 괜찮아질 거야.”

소화의 작은 입술이 허인을 얼굴을 덮었다.

둘의 입술이 마주치자 소화는 눈을 꼭 감았다.

그녀의 눈썹 끝에 매달려있던 눈물방울이 세차게 아래로 떨어진다.

이것은 두 사람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애절하고 가슴 아린 입맞춤이었다.

잠시 후, 소화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허인은 그녀의 입술을 떼어 내었다.

“보드라웠다고 기억할 것이다. 네 얼굴도, 네 입술도…….”

허인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화의 얼굴을 감싸던 그의 손이 땅에 힘없이 떨어졌고, 그는 두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렀다.

허인의 마지막 미소에 눈물에 소화는 정신이 반쯤 나간사람처럼 울부짖었다.

“안 돼! 일어나요! 제발……제발, 눈을 떠. 죽지마! 싫어! 제발! 제발. 눈뜨라고!”

* * *

“컷! 오케이!”

전승원 PD의 오케이 사인을 듣고 나는 재빨리 눈을 떴다.

강화영의 오열이 그치지 않고 진행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말없이 그녀를 꽉 안아 주었다.

강화영의 등을 토닥이는 내 눈에서도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발…… 제발.”

아마, 아직도 극중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는지 나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그녀 때문인 것 같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한참 그녀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거렸다.

드라마 마지막 촬영 끝나면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가 날 것 같았던 내 생각과는 달리 촬영장의 분위기는 아직도 엄숙하고 진지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조용한 목소리로 조연출이 나지막하게 외쳤다.

“이것으로 <왕의 신하> 모든 촬영이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촬영장의 모두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공동 연출을 맡은 두 명의 감독과 박은숙 작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한쪽 벽에 서서 마지막 촬영을 지켜보던 배우들.

감성이 예민한 배우들답게 전부 눈물을 훔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난감한 기색을 내비쳤다.

품에 안긴 강화영 때문에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으니.

이를 눈치 챈 조연석과 한동하, 채설아를 비롯한 배우들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모두 강화영과 나를 부둥켜안았다.

“수고했어.”

“그래. 그동안 수고했다.”

“수고하셨어요, 형.”

배우들 간에 서로 인사가 오간다.

서로간의 고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오가는 말에 많은 진심이 느껴진다.

“그만 울어! 이! 바보야!”

강화영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은 한동하만 제외하고.

어쩌면 이것은 한동하가 진심을 표현 하는 그만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하긴. 그래야 한동하답지.

머리를 쥐어 박힌 덕분인지 아니면 신나게 울만큼 울어서인지, 강화영이 그제야 퉁퉁 부은 눈을 비비적거리며 헤벌쭉 웃는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했어, 시후야.”

강화영이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서 손을 뻗어 그녀의 볼에 가지고 가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 나도 아직 허인 캐릭터에서 못 벗어난 건가?

허공에 잠시 헤메던 내 손은 강화영의 머리위에 안착했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도 그녀만큼 환하게 웃었다.

“수고했어. 화영아.”

“응!”

앵두 같은 입술을 달싹이며 대답하는 강화영을 보고서 나는 손에서 땀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촬영 중이었지만 조금 전 그녀와의 입맞춤은 내 생애 첫 키스였다.

* * *

<왕의 신하> 드라마의 촬영이 모두 끝나고 난 뒤, 나는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중국 문화여유부 부장 ‘공치오쭝’의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치오쭝’의 초대가 여러 번 있었지만 드라마 촬영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드라마는 이제 16회 방송을 끝냈는데. 20회까지 방송이 끝나고 나면 보나마나 스케줄을 뺄 수 없을 정도로 바쁠 것이 뻔하다.

곧 새 음반까지 준비해야 했으니 드라마 촬영이 막 끝난 지금이 중국에 가기에 적합한 시기이기는 했다.

이번 여정에는 B&M 엔터테인먼트의 김남규 팀장과 최재우 이사가 함께하기로 했다.

내가 중국에 가는 김에 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기왕 베이징에 가는 김에 관광도 하고 와야지. 만리장성도 한번 보고 싶네.’

기대와 설렘을 안고 비행기에 올라타던 나는 눈앞의 광경에 숨을 들이쉰 채 헉! 소리를 냈다.

그리고 앞서 걷는 김남규 팀장의 팔을 붙잡았다.

“퍼스트 클래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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