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80화 반역의 수괴를 찾아라 (3)
“어? 다들 여기서 뭐 하세요?”
“시후야! 어디 갔다 왔어? 벌써 시작했는데, 빨리 이리 와서 앉아. TV 가리지 말고.”
‘아트 액션 스쿨’의 사무실.
내가 들어서자 문영호가 옆에 빈 의자를 탁탁 치며 앉으라고 재촉을 한다.
TV좀 가린 것이 대수냐고 핀잔을 주려다가 류담식의 시선 또한 내게 집중되는 것을 보고는 슬그머니 의자에 앉았다.
문영호와 류담식, 그리고 나는 오늘 드라마 <왕의 신하>의 오전 촬영을 끝내 놓고 액션 스쿨에 모였다.
내일 찍을 액션 씬을 연습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연습은 언제 하려는지 오자마자 점심을 먹고 수다 삼매경이더니 잠깐 액션을 연습하다말고 이번엔 사무실에 모여 앉아 있다.
“우와! 중앙에 쏴 버렸네? 딱 한 방에?”
류담식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는 손에 활을 들고 있는 것마냥 활시위를 당기는 모션을 취하며 말했다.
“파앗! 저렇게 쏘는 게 가능해? 너 혹시 활쏘기도 배운 거야?”
“아뇨. 얻어걸린 거예요.”
내가 시간이 어디 있다고.
뭐만 있으면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요즘에 너무 많다.
그냥 ‘운빨’이라고 해 두자.
실제로 그렇게 설명하니 사람들이 빠르게 납득했다.
그런데 내 말투가 심드렁하다고 느꼈는지 문영호가 살짝 눈을 흘긴다.
“너는 촬영하고 와서 이제 관심 없다 이거야? 출연 못 한 사람들은 서러워서 살겠나? 궁금한데 물어보지도 못하고…….”
살짝 뜨끔해진다.
문영호도 같이 출연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도 그런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문영호 본인은 얼마나 서운할까?
나는 금세 활짝 웃으며 문영호의 팔을 툭 쳤다.
“에이! 형은 무슨 말을 또 그렇게까지 해? 그래. 뭐가 궁금해? 다 말해 줄게.”
그제야 문영호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그때 옆에서 류담식의 격양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야! 저거 봐라. 설마 저기서 뛰나?”
류담식이 문영호를 보고 묻자 문영호가 나를 쳐다본다.
궁금한 게 이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혼자?”
내가 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류담식이 혀를 내둘렀다.
“미쳤구나?”
“높아 보여도, 실제로 그렇게 무섭지는 않아요.”
“저거 찍으려고 코치님들이 <달리는 사람들> 촬영 날 한 분도 안 계셨구나.”
“그랬어요?”
“그랬다니까! 그날 나랑 영호랑 둘이 여기서 놀다 갔어.”
류담식의 말을 들으며 TV를 바라보던 나는 잠시 후에 “허!” 하고 짧은 숨을 내뱉었다.
“헐!”
“헉! 대박!”
류담식과 문영호도 마찬가지였고.
철제 탑에서 떨어지며 몸을 틀어 단번에 풍선을 몽땅 터트려 버린 장면은 내가 봐도 신기했다.
보는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리는 것이 이해 가는 장면이다.
<달리는 사람들>의 PD도 그렇게 느꼈으니 리플레이로 편집했겠지.
“하아. 말이 되냐? 네가 무술인이야? 가수가 저런 액션을 남발해도 되는 거야? 이래서 먹고 살겠어?”
언제 왔는지 정두훈 무술 감독의 목소리가 뒤통수에서 들려온다.
“감독님 언제 오셨어요?”
“지금! <달리는 사람들> 보고 있는 거지?”
“네.”
류담식과 문영호, 그리고 내가 동시에 대답하자 정두훈 감독이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나도 그날 촬영장에 가볼 걸 그랬네. 좋은 구경 놓친 것 같아서 아쉽네.”
“지금부터라도 보시면 되죠.”
정두훈 감독을 의자에 앉혀 놓고 우리의 TV 시청은 계속되었다.
중간중간 궁금한 것이 많은지 질문이 쏟아진다.
“이름표 떼기는 안 해?”
“이제 곧 해요.”
나는 류담식의 물음에 대답하고 나서 TV에 계속 집중했다.
그런데 카메라에 잡힌 상대 팀의 힌트 종이가 참…….
그것을 본 내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임금은 옥새를 호위 무사에게 맡기었다.]
그냥 주시후라고 적지 그랬나 싶을 정도로 아주 노골적이다.
저러니 나한테 직진해서 그렇게 달려들었지.
어느덧 이름표 떼기에 들어간 양 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아이고! 이름표 다 뜯겼네. 너만 살았어, 시후야.”
“네. 어느 순간 보니까 한 명도 없더라고요.”
대답하고 나서 촬영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우리 팀은 상대 팀에 의해 이름표가 다 떼이고 레이스에서 제외되었다.
남은 것은 나 하나.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었다.
지켜야 할 사람이 없으니 혼자 빨빨거리고 돌아다니기에 더 편할 거라고.
“너 혼자 남으니까 다 대전으로 몰려간다. 이렇게 보니까 알겠네. 수괴는 하동원이구나?”
문영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동원을 둘러싸고 조심스레 대전으로 향하는 반역자 팀.
이렇게 보니 누구라도 금방 알아챌 정도로 편집되어 있다.
그리고 다음 장면.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는 모습이다.
“야야! 뭐 하냐? 설마 지붕 타는 건 아니지?”
류담식의 말처럼 TV 속의 나는 고민을 하다가, 대전 담벼락을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담당 VJ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카메라를 달라고 요청한다.
손에 작은 카메라 한 대를 들고 대전 지붕 위에 서 있는 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무릎을 꿇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미쳤네. 미쳤어. 다치면 어쩌려고?”
TV에 집중하던 문영호가 호들갑을 떨며 내 팔을 잡고 흔든다.
“안 다쳤잖아. 그리고 형도 알잖아. 저기 생각보다 안 높아.”
직접 올라가서 본 지붕은…….
진짜 궁궐 대전 지붕이었다면 기왓장으로 빼곡히 덮여 있었겠지만, 세트장이었기 때문에 뼈대를 제외하고는 뻥 뚫려 있었다.
거기서 밑을 내려다보자 아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내 손에 든 카메라의 시점.
숨죽이며 밑의 상황을 찍고 있다.
반역자 팀의 모든 인원은 좀 떨어진 대전 문 앞에 서서 내가 오는지 염탐하고 있고, 하동원은 벌써 왕이라도 된 듯 보좌 앞에 서서 ‘여봐라!’를 외치고 놀고 있다.
나는 살금살금 하동원의 머리 위쪽으로 움직였다.
“시후야. 저기서 뛸 거야?”
문영호가 TV에 정신이 팔려서 쳐다보지도 않고 묻는다.
나는 ‘이미 뛰었어.’ 하고 대답해 주려다가 그저 피식 웃었다.
보면 곧 알게 될 텐데 뭐.
“뛰었다!”
문영호와 류담식이 동시에 외쳤다.
그리고 좋아한다.
손뼉까지 치며 웃는 것이 아주 신난 모양이다.
그들의 말처럼 나는 밑으로 뛰어내렸다.
하동원을 잡고 있던 카메라는 허공에서 떨어지는 나를 놓치지 않고 앵글에 담았다.
내 발이 바닥에 닿자 하동원의 놀라는 표정까지.
나는 씨익 웃어 주고는 하동원의 등 뒤로 돌아가 이름표를 잡았다.
방송이 끝난 직후, 정두훈 감독은 의자에서 일어서며 내게 말했다.
“저게 예능이냐? 완전 영화를 찍고 왔네.”
“그러게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쓸데없이 너무 고 퀄리티 인데요?”
“인터넷에 또 시후 얘기로 한바탕 난리 나겠네.”
문영호의 말처럼 다음날 내 이름이 적힌 기사 제목이 인터넷을 도배했다.
그뿐만 아니라 실시간 검색어 1위에 한참 동안 머물러 있기도 했다.
만 하루 정도 인터넷에 <달리는 사람들>의 기사가 가득했다.
다음 날부터는 <왕의 신하> 드라마에 관한 기사가 주를 이뤘다.
ABS 방송국의 새로운 수목 드라마 <왕의 신하>.
이틀 후로 다가온 첫 방송을 기대하는 대중의 관심은 쉽게 식지 않고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 * *
B&M 엔터테인먼트 7층 회의실.
밤 10시가 가까워진 꽤 늦은 시간.
그런데도 꽤 많은 사람이 회의실에 둘러앉아 있다.
가수 매니지먼트 총괄실장 임준석과 연기자 매니지먼트 총괄실장 배우성.
B&M 엔터테인먼트의 양대 산맥인 이 두 명의 치프 매니저 외에도 각 중요부서의 팀장, 실장들이 진을 친 상태다.
이들의 시선은 모두 한쪽 벽에 걸려있는 스크린을 향하고 있다.
이 광경은 드라마 제작사인 ‘청룡 스튜디오’도 마찬가지다.
청룡 대표인 한만기와 드라마 <왕의 신하> 공동 연출을 맡은 전승원 PD는 아까부터 회의실에 둘러앉아 스튜디오의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아직 그 열기가 식지 않은 <왕의 신하>.
드라마가 시작도 전에 이미 대중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어서 다들 신나 있다.
“관심을 확! 끌고 시작하니 좋긴 하지만, 걱정도 좀 되긴 하네요.”
“걱정할 게 뭐가 있어? 시청률 높게 가지고 시작하면 그야말로 좋은 일이 어디 있다고?”
“그러니까 그게 걱정된다고요. 회차가 진행될수록 떨어질까 봐요.”
직원들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에 한만기 대표가 팔짱을 끼며 전승원 PD를 힐끗거렸다.
“전 감독. 그렇게 생각해?”
질문을 받은 전승원 PD가 코웃음을 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렇지?”
“당연하죠. 작가가 누군데요? 주연배우들은 또 누구고요? 그뿐인 줄 아세요? 조연 배우들 연기가 뒤로 갈수록 포텐 터져서 주연배우들이 까딱하면 묻힐 지경이라고요.”
“아 그래?”
전승원 PD는 한만기 대표와 대화 중에 자연스레 주시후를 떠올렸다.
깊은 산중에서 발견한 산삼을 보고 너무 좋아서 소리도 못 지르는 심마니의 심정으로 전승원 PD는 조심스럽게 웃었다.
‘우리한테는 보배가 있거든요.’
“아, 참! 중국에서 벌써 드라마 판권에 관심을 보인다면서요?”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전승원 PD는 한만기 대표에게 물었다.
“그러게. 첫 방도 안 나갔는데 좀 빠르게 움직이더라고. 제일 먼저 얘기를 꺼낸 건 중국 투자사인 ‘PS 미디어 플랫폼’이야. 거기야 뭐. 우리 투자사니까 드라마에 대해 제일 잘 알겠지. 그래서 이해가 가는데…….”
한만기 대표가 말하다 말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런데요?”
말이 끊겨 답답한 마음이 들었는지 전승원 PD가 재촉한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PS' 말고도 중국의 다른 플랫폼 두 곳에서 자꾸 찔러보네?”
“그래요? 다른 플랫폼이 제시한 금액은요?”
“회당 2억 5천!”
전승원 PD는 꽤 높은 금액을 듣고도 고개만 끄덕거렸다.
역대 한국 드라마 시장을 봤을 때 회당 2억 5천만 원 정도의 금액이라면 적은 금액은 아니다.
또한, 그동안 중국에 판권을 팔았던 모든 드라마가 최종회까지 한국에서 방영되고 그 인기를 절감하고 나서야 중국에서 손을 뻗었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아직 방영도 시작하지 않은 드라마의 금액치고는 결코 낮은 금액은 아니다.
그런데도 전승원 PD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을 뿐이다.
“안 놀라나?”
“뭘 그런 걸 가지고 놀랍니까? 타 플랫폼에서 그래 봤자 자본금으로는 ‘PS China’를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 결국 포기할 것이고, ‘PS China’ 측에서는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할 테니 최종 금액 듣고 놀랄렵니다. 두고 보세요. ‘PS China’에서는 유례없는 최고가를 제시할 테니.”
전승원 PD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고 한만기 대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해?”
질문을 받은 전승원 PD는 한만기 대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표정이 점점 구겨진다.
그 표정에는 무시가 담겨 있다.
‘남들 다 아는 걸 왜 너만 몰라?’ 하는 표정이다.
“대표님은 지금 중국에서 주시후의 인기가 얼마나 높은지 모르시나 보네요? 하늘을 찌르고 있다고요!”
“그건 알지. 문여부 부장 딸을 구한 일로 영웅 취급 받는다고 하더라고.”
“영웅 취급이요? 주시후는 중화권에서 하늘이에요. 괜히 ‘갓시후’라는 말이 나온 줄 아세요?”
“그 정도인가?”
“테러 사건이 있기 전에도 ‘PS China’에서는 진작 시후 씨를 탐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그가 중국의 하늘이 되어 버린 이 상황에 판권이 얼마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무조건 사가야지.”
한만기 대표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해가 간다는 얼굴이다.
그런 그를 보며 전승원 PD가 말을 이었다.
“대표님. 정말 저한테 감사하셔야 해요. 제가 B&M 엔터테인먼트 대표님이랑 자리 좀 만드시라고 닦달했던 것 말이에요. 아마 이후로는 한국에서 시후 씨 얼굴을 보기 힘들어 질지도 몰라요.”
전승원 PD의 말을 듣고 한만기 대표는 표정이 환해졌다.
주시후가 중국에서 테러 사건을 당한 날, 그는 B&M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와 저녁 식사 자리를 만들었었고, 구두계약이었지만 다음 차기작 드라마는 청룡 스튜디오와 함께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리고 테러 사건 발생 후 B&M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와 함께 중국으로 날아가 주시후를 데리고 돌아왔다.
이것이 후에 얼마나 큰 복으로 작용할지 대충 짐작이 가는 한만기 대표는 입꼬리를 실룩였다.
“그래. 자네 덕분에 우리 청룡 스튜디오의 위상이 높아지겠구먼.”
한만기 대표와 전승원 PD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시후 씨가 오케이를 해야 할 텐데. 본인이 싫다면 구두계약 따위가 무슨 소용이야.’
‘드라마 계약을 본인이 하는 거지, 대표가 하는 건가? 무조건 주시후를 꼬셔야 해. 박 작가한테 빨리 시놉시스라도 쓰라고 닦달해야겠네.’
둘 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