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66화 (66/170)

# 66

66화 아는 형님들 (2)

“녹화 들어갈게요!!”

PD가 시작을 알리는 말에 음향 팀에서 귀에 익숙한 학교 종소리를 출력했다.

딩동댕동! 딩동댕동!

종소리를 시작으로, 교실과 매우 흡사하게 꾸며놓은 스튜디오 안에서 녹화가 시작되었다.

대본대로 오프닝 시작.

촬영준비를 마치고 앉아 있던 강화동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악기를 만지작거린다.

“니네 이거 뭔지 아니?”

70년대에 철수가 입었을 법한 교복을 입은 강화동은 애써 표준어를 구사했지만, 숨길 수 없는 경상도의 억양이 분명하다.

“멜로디언 아니야? 이거 입에다 물고 소리 내서 불어야 하는 거잖아.”

아이돌 조상님이라 그런가?

멜로디언을 알은척하며 다가오는 김휘철과 민정훈.

다 같은 교복을 입혀 놓아도 그 테가 살았다.

“올……. 휘철이 니는 아네?”

“야! 그거 모르는 게 바보지. 하긴. 너 화동이 너 어렸을 때는 이런 거 없었을 수도 있었겠다. 옛날 사람이니까.”

김휘철의 혀를 끌끌 차는 도발에 강화동이 입을 삐죽거린다.

그 모습을 본 김휘철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묻는다.

“그래서 그걸 왜 들고 왔는데? PPL이야?”

“아니!! 너희들은 이따가 전학 오는 친구가 누군지 아니?”

“누군데? 화동이 너는 알아?”

민정훈이 누군지 다 알고 있으면서…… 궁금해 하는 척 묻는다.

그러자 강화동이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 전학생은 내가 좀 아는 앤데, 피아노를 끝내주게 치는 친구야.”

“그런데 멜로디언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가지고 나왔냐고. PPL 아니냐고?”

“아니라고 했재! 확! 마!”

김철영이 묻자 강화동의 성질이 폭발한다.

엉덩이를 걷어찼나 본데, ‘퍽!’ 하는 찰진 소리가 문 뒤에까지 들려왔다.

나는 JTB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인 <아는 형님들> 녹화장에 와 있다.

하루 만에 급하게 출연 제의를 받고 촬영장에 온 것이지만, 어제 온종일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온 터라 마음이 편안했다.

반면에 옆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손가락 깍지를 끼고 있는 하상훈은 긴장이 많이 되는가 보다.

“형. 진짜 너무 떨려요. 심장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아요.”

그 옆, 주르륵 선 그룹 ‘어니스트’의 멤버들 역시 얼굴이 흙빛이다.

음악 방송 출연 경력 두 번, 음악 잡지 인터뷰 한 번,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최초라고 했던가?

아마 방송에 나와 ‘말’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 프로그램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떨리는 것이 당연한가?

나도 그랬던가?

그러고 보니 그나마 하상훈이 <슈스챌>의 밀착 카메라로 단련된 놈이라 저들 중에 제일 나아 보였다.

나는 긴장을 풀라며 나름대로 조언을 해주었다.

“상훈아, 그냥 많이 웃어. 멤버 분들도요. 하고 싶은 말은 그냥 막 다 해버려. 너 원래 머리 안 거르고 얘기하는 거 잘하잖아.”

“아, 어떻게 그래요? 방송인데…….”

“괜찮아. 이참에 너 캐릭터도 잡고 좋지 뭐.”

“돌아이라면 이미 저기……김휘철 선배님이 계시잖아요.”

하상훈의 말에 내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러게 말이다.

사실 저기 앉은 돌아이가 오늘의 제일 두려운 상대긴 했다.

저 예쁘게 생긴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나는 온몸에 오싹하게 소름이 돋는 것을 털어버리고 하상훈과 어니스트 멤버을 다시 격려했다.

“어차피 방송에 못 쓰는 건 다 편집할 거고, 웬만한 건 선배님들이 다 받아 주실 거고…… 멘트도 다 살려주실 거니까 걱정 말고 편안하게 하자. 파이팅!”

정식으로 데뷔한 지 3개월밖에 안 되는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니.

조금 우습기도 했지만, 하상훈과 어니스트 멤버들이 너무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해서 듣기에 내 어깨가 조금 으쓱거렸다.

세트장 안에서는 멜로디언 연주가 한창이다.

일부러 저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 실력이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참 들어주기 힘들다.

귀가 테러 받는 느낌이랄까.

담당 PD도 이쯤이면 게스트가 들어가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손가락으로 사인을 준다.

교실 문밖에서 대기 중이던 나는 그 사인에 교실 문을 ‘확!’ 열어젖혔다.

쾅!

“놀고들 있네!!”

이것이 작가들이 써준 나의 입장 대사였다.

쾅 열어젖힌 문소리에 고정 출연자들이 모두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특히 눈이 동그래진 이숭근.

“아니, 너는? 달타냥?”

내 등장에 이숭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얼마 전 예능 프로그램 <섬마을 삼총사>에서 내가 달타냥으로 출연했던 것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렇다! 내가 돌아왔다!”

내가 호기롭게 애드리브로 받아치자 강화동이 혀를 끌끌 찬다.

“잘한다, 느그들 타 방송사 프로그램 홍보나 하고.”

“그래? 화동이 너는 <섬마을 삼총사>보다 <아는 형님들>이 더 중요하다는 거지?”

이숭근에 질문에 맨 뒷자리에 앉은 이성민이 혼잣말처럼 웅얼거린다.

“화동이는 <섬마을>에서 하차해도 안 굶잖아. 지금 하는 프로그램이 몇 갠데.”

“강화동, <섬마을 삼총사>에서 하차한다고 밝혀! <아는 형님들>만 집중하고 싶어…… 라고 내일 기사 내보내.”

김철영이 거들자 강화동의 눈이 동그래지고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아니다! 와 가만히 있는 나를 <섬마을>에서 하차시키노?”

“그래? 그래서 화동이 너는 <섬마을 삼총사>야? <아는 형님들>이야? 둘 중에 하나만 골라 봐.”

이숭근이 셋을 세는 동안 대답하지 못한 강화동은 인상을 확 쓰더니 한 손으로 카메라를 가리는 시늉을 하고 한 손으로는 이숭근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 마라! 하지 마라! 내 밥줄을 와 니가 끊노! 죽고 싶나?”

“아!! 아악!!”

보기만 해도 웃음을 절로 자아내는 저 개그맨들은 정말 명콤비가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강화동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이 벌써 세 번째.

김남규 팀장이 잡아 놓은 소위 잘나간다 하는 프로그램엔 어김없이 그가 MC 자리를 꿰차고 있으니 세 번이나 방송에서 만난 건 우연이 아니라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시후야. 언제까지 맞아야 해? 빨리 다음 대사 쳐. 형 죽는다. 하하하하.”

아!

넋 놓고 잠시 시청자가 되었던 나는 이숭근의 외침에 작가가 써준 다음 대사를 읊었다.

“니네 그것도 연주라고 뚱땅거린 거냐? 그거 이리 줘 봐. 내가 보여주지.”

“그래? 그럼 네가 한번 불어 봐라.”

나는 강화동이 건네준 멜로디언을 받아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악기에 연결된 호스의 끝을 입에 가져다 대려던 나는 슬그머니 다시 손을 내렸다.

“흠흠!! 나중에 보여줄게. 오늘은 안 되겠다.”

“와? 막상 연주해 볼라니까 겁나나?”

“에이…… 전학생 쫄았네.”

내 말에 고정 출연자들이 야유를 보내 왔지만 이건 불 수 없었다.

“그게 아니라…… 아우! 여기 침이…… 드러워서 못 불겠다! 다음에 보여주마!”

내가 진심 가득한 표정으로 손을 바들바들 떨자 담당 PD가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컷! 오프닝은 이 정도로 할게요.”

담당 PD의 말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하마터면 저 침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몸서리치며 작가들이 넘겨준 큐시트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녹화가 다시 시작되었다.

* * *

“안녕? 나는 잘생기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못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高)에서 전학 온 주시후라고 해.”

“얘들아 안녕? 나는……”

나를 필두로 한 <아는 형님들> 학교의 전학생들이 인사를 이어나갔다.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가 학교였기 때문에 모두 친구처럼 반말을 사용했는데, 갓 스무 살이 된 방송 초짜의 하상훈은 이점을 무척이나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강화동, 이숭근, 김휘철, 민정훈, 김철영, 서장운, 이성민.

고정 출연자 일곱 명은 아는 형님들 학교의 재학생들이었고, 게스트인 우리들은 전학생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오프닝 후 본인 소개를 마쳤다.

본격적인 녹화가 진행되자 김철영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런데, 시후는 화동이가 하는 프로그램에만 벌써 세 번째 출연하는 거 아니야? 오늘 촬영 제의도 어제 받았다며? 화동이가 나오라고 협박한 거야? 아니면 화동이를 좋아하는 거야?”

강화동은 몇 번 봤다고 내가 게스트로 온 것이 마음이 편했는지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나는 시후랑 엄청나게 친해. 시후 첫 예능 프로그램 데뷔도 나랑 했거든? 맞재? 시후야?”

강화동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스타 만드는 프로그램이 내 첫 예능 데뷔였어. 그때 화동이가 많이 챙겨줬지.”

“그래! 그렇다니까. 시후야. 야들한테 얘기 좀 해 줘 봐라. 내가 니를 얼마나 띄워줬는지.”

내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아련한 눈빛으로 과거를 회상하듯.

입가에 미소도 살며시 달았다.

그리고 강화동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랬지. 화동아, 그거 기억나? 네가 내 옆에 와서 옆구리에 주먹을 쑤셔 박으며 웃으라고 협박했잖아. 덕분에 내 리액션이 많이 늘었어. 정말 고마워.”

“아니, 아니! 내가 언제? 야! 그렇게 말을 하면 내가 뭐가 되니? 다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세트장에 웃음이 번지며 난리가 났다.

그럴 줄 알았네. 그러면 그렇지. 후배 사랑 각별하네.

다들 이렇게 강화동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낸다.

거기에 내가 한마디 더 보탰다.

“아직도 비만 오면 옆구리가 쑤셔, 화동아.”

“미안하다이! 첫 예능이라고 너무 얼어 있길래 내가 알려준 건데. 많이 아팠나?”

강화동의 변명에 나는 활짝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아니야. 나는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덕분에 요즘에도 한 번씩 욱신거려서 병원에 가는데, 누워서 물리치료 받을 때 마다 침대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고.”

“야야! 내가 또 언제 그렇게까지 때렸다고.”

내 말을 듣자 강화동이 멋쩍게 웃으며 손사래를 치고 김휘철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너스레를 떨었다.

“시청하고 계시는 주시후 씨의 팬클럽, ‘주슈’ 여러분. 강화동 씨는 주시후 씨가 안락허게 휴식하도록 침상에 눕혀 버린 아주 고마운 선배입니다. 오해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방송 시청이 끝나고 시청자 게시판에 칭찬 좀 달아주세요.”

강화동의 입이 ‘딱!’ 하고 벌어졌다.

“야! 클 난다이! 내 밖에 몬 돌아 댕긴다! 흐하하하.”

나는 흡족한 장면 연출에 얼굴이 환해졌는데, 옆에 있는 어니스트의 멤버들의 표정은 초조하기 짝이 없다.

특히 날 쳐다보고 있는 하상훈은 ‘그렇게 까불어도 되요?’라고 표정으로 묻고 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까불어도 괜찮아.

아까 촬영 전에 대기실에서 만난 강화동이 그러라고 했거든.

내가 앞서 분량을 뽑자 이번에 포커스는 그룹 ‘어니스트’에게 돌아갔다.

그래도 방송 경력이 제일 많다고 하상훈이 주로 대답을 하는 편이었는데, 특유의 귀여움과 애교로 고정 출연자들의 호감을 얻었다.

나의 슈스챌에서 지냈던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도 신이나 보였는데, 그보다 더 신이 났던 것은 ‘어니스트’에게 타이틀곡을 홍보할 시간을 주었을 때였다.

안 시켰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다섯 명 모두 이날을 위해 칼을 간 것처럼 칼 군무를 보여주었는데 센터에 서 있는 하상훈은 그동안 내가 보았던 모습 중 가장 열정적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코너는 ‘나를 맞춰 봐’였는데, 내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김휘철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여러모로 황당함에 진땀을 빼고 있다.

“내가 데뷔하고 나서 스케줄 때문에 바빠지니까, 속 시원하게 못 하는 행동이 생겼어. 이게 뭘까?”

이것은 방금 내가 낸 문제였다.

그런데 TV로만 보던 김휘철의 아무 말 대잔치가 시작되었다.

“휘철! 여자를 못 만나!”

“땡! 그런데 아주 조금 비슷해.”

“휘철! 그럼 클럽에 가서 여자를 못 만나!”

“땡! 뭘 못하는 게 비슷한 거야. 여자는 아니야.”

계속해서 이어지는 클럽 이야기, 오답 퍼레이드에 나는 약간의 힌트를 제공하기로 마음먹었다.

“힌트를 주자면 스케줄 있을 때, 차로 이동할 때.”

“아! 휘철! 차로 이동하면 불편해!”

“땡!”

“휘철! 맘대로 담배를 못 피워. 30분에 한 대 정도는 꼬슬려 줘야 하는데 강제 금연해야 해!”

“하아! 땡! 담배는 원래 안 피워.”

김휘철의 오답에 헛웃음이 나왔다.

어제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 보았던 담배 드립이 이거였구나.

이러니 여자 출연자들이 당황스러워하지.

이런 생각을 할 무렵 오답들은 점점 정답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장운! 방귀를 참아야 해?”

“아……아! 거의 다 왔는데.”

“정답! 성민! 성민! 변비에 걸려서 화장실을 못 가!”

“딩동댕! 성민이 정답.”

이어서 나의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차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먹은 게 소화도 안 되고, 인스턴트를 많이 섭취하니 변비가 생겼다는…….

이것은 스케줄이 꽤 바쁜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증상이었으니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했는데, 김철영 옆에 앉아 있던 하상훈이 손을 번쩍 들고는 발언권을 얻었다.

“형, 아니 시후야. 너 원래 그전에도 변비있었잖아.”

“내가 언제?”

내가 눈이 동그래져서 하상훈에게 묻자 그는 피식 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저 놈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슈스챌 때 나랑 숙소에서 한 방 썼잖아. 그런데 꼭 네가 화장실에 다녀오면 변기가 막혀 있더라고.”

허억!! 내가 언제? 저게 내 뒤통수를 치네?

내가 입을 ‘떡!’ 벌리자, 몇 명의 눈빛이 먹잇감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반짝거렸다.

“맞나? 시후가 싸면 막히나? 아이고! 냄새는 우얄낀데?”

한 손으로 코를 막고 한 손으로 허공을 휘휘 젓는 강화동을 보니 누가 보면 정말 어디선가 불결한 냄새가 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그럼 누가 뚫어? 다음 사람이 뚫어? 막힌 채로 그대로 둘 수는 없잖아. 근데 막힌 거 어떻게 뚫지?”

“진짜 꽉 막힌 거는 어쩔 수 없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빈 페트병으로 막힌 거 뚫을 수 있지.”

결벽증이 있는 서장운의 질문에 살림 9단 주부 뺨치는 이성민의 변기 뚫기 강좌가 이어졌고.

한쪽에선 김철영이 뒤에 앉은 강화동에게 자신도 변기를 막아본 적이 있다며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있고…….

‘김휘철과 민정훈은 내 변은 황금색이네, 흑갈색이네.’라며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를 하고 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푹 숙였다.

계속 이어지는 더러운 얘기.

이거 방송에 나가면 내 이미지도 똥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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