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65화 아는 형님들 (1)
K.net 방송국과 tvM 방송국 그리고 거기에 어깨를 견주고 있는 케이블 방송국 JTB.
예능국. 예능 3부 회의실에는 아침 댓바람부터 모인 사람들이 하나둘씩 의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PD들과 작가들이 빙 둘러앉은 회의실 테이블 한 귀퉁이.
UH 엔터테인먼트의 매니저 한 명과 앳되어 보이는 키 작은 소년 한 명이 제작진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다.
“UH 엔터에서 대체 가능한 아티스트는 그럼 없다는 말이죠?”
“죄송합니다.”
PD가 재차 묻자 보이 그룹 ‘어니스트’의 매니저가 고개를 숙여 사과한다.
물론 사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또한, 매니저의 잘못도 아니었고.
UH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최근 5인조 아이돌 그룹 하나를 결성하였다.
작년에 인기를 끌었던 <슈스챌> 시즌 4.
그곳에서 3등이라는 큰 결과를 가지고 돌아온 하상훈을 필두로.
바로 ‘어니스트’라는 보이 그룹을 결성했다.
조금 급하게 데뷔를 시킨 감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인지도가 있을 때 데뷔를 노리는 것은 어느 연예 기획사나 똑같다.
UH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데뷔 반에 있던 연습생 중 가장 뛰어난 아이들을 긁어모아 멤버들을 구성했다.
하상훈의 누나 팬들이 꽤 많았으니…… 데뷔가 무리라고 보지는 않았다.
이렇게 탄생한 신인 그룹 ‘어니스트’의 첫 예능 프로그램은 JTB 방송국의 인기 프로그램인 <아는 형님들>이었다.
사실 이 프로그램에는 인지도가 조금 있다고 해서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고정 출연자 여섯 명 모두가 내로라하는 연예인들이기 때문에 신인이 덤벼들 수 있는 프로그램도 아니었고.
그런데도 갓 데뷔한 어니스트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결정적 이유?
다름 아닌 같은 소속사의 유명한 영화배우 ‘정규호’가 출연을 결정함에 따라 동반 출연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규호 씨가 갑자기 맹장이 터진 게 매니저님 잘못은 아니죠. 문제라면 UH 엔터에서 빈자리를 메워 줬으면 좋겠는데,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신작 영화 홍보차 아는 형님들에 출연하려 했던 배우 정규호의 맹장 수술 소식.
그리고 UH 엔터에서는 아는 형님들에 출연시킬만한 마땅한 아티스트가 별로 없다는 것.
이런 현실에 제작진의 얼굴은 난색이 되었고, 매니저의 얼굴은 어두웠다.
더 죽상인 것은 ‘어니스트’의 메인 보컬인 하상훈.
그가 방금 들은 이야기 때문이다.
“배우 장재원 쪽에서 출연을 생각해 본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소속사 신인 배우 두 명을 푸시하네요?
장재원 쪽은 드라마 홍보가 출연 목적인데, 소속사 신인 배우 두 명이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다나 봐요.
이런저런 이유로 신인 게스트 밀어 넣으면 우리도 어쩔 수 없죠.
만약에 장재원 씨 회사에서 출연을 확정한다고 하면…….
UH 쪽에서는 정규호 씨가 퇴원하고 난 후에 다시 출연 스케줄 잡아서 출연하는 것으로…… 음…… 어니스트도 그때 함께 출연하는 거로 하죠.”
하상훈은 <아는 형님들>에 출연한다고 날듯이 기뻐했던 멤버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봤을 땐 출연 자체가 물거품이 되어 날아갈 것처럼 보였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애꿎은 손가락만 꾹꾹 눌러 댔다.
그런 마음은 옆에 앉은 매니저도 마찬가지.
“방법이 좀 없을까요? 우리 애들이 아는 형님들 출연한다고 그렇게 좋아하고 있는데…….”
“그러니까요, 매니저님. UH 엔터에서 정규호나 장재원급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아티스트로 맞춰 주셔야죠. 저희도 장재원 씨 사실 별로예요. 재미도 없고, 갖다 쓸 멘트도 없는데 출연료는 더럽게 비싸거든요.”
“후우…….”
회의실에 정적과 함께 한숨만 가득 떠돈다.
작가들은 섭외할 만한 연예인이 없나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고.
그때였다.
“안녕하십니까?”
한 사내가 회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국민 MC 강화동. 아는 형님들의 고정 출연자였다.
그의 등장에 모두 고개만 까닥하거나 손을 들어 인사를 했는데, 하상훈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화동 씨, 어쩐 일이에요?”
PD의 물음이 강화동이 의자를 하나 꺼내 앉으며 대답했다.
“옆에 예능 1부에 댕겨 왔거든요. <한 끼 주세요> PD 슨생님이랑 다음 주 촬영 콘셉트 회의하고 왔지요. 그런데, 여기 분위기 왜 이래요? 니는 앉아라이! 와 서 있노?”
강화동이 아직 서 있는 하상훈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보내고 좌우를 훑어 회의실의 분위기를 살폈다.
초상집이 따로 없는 분위기이다.
모두 한숨만 푹 내쉬고 대답을 하지 않자, 작가 한 명이 강화동에게 대표로 답하였다.
“오빠, 내일 촬영 날이잖아요. 근데 게스트 빵꾸 났어요.”
“그래? 원래 누가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정규호 씨요.”
“아이고, 다행이다이!”
“네?”
강화동의 말에 PD들과 작가들은 물론이고 하상훈과 덩달아 매니저까지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메인 게스트 자리에 구멍이 나서 녹화를 하네, 마네 하게 생겼는데, 다행이라고?
다들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 강화동을 쳐다보는 눈빛이 비슷비슷하다.
순식간에 쏟아지는 시선에 강화동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말을 꺼냈다.
“와? 와 그리 쳐다보는데? 정규호가 못 나오면 대타 쓰면 될 거 아이가? 그리고 내 말은 규호가 싫다는 게 아니고, 예전에 내 프로그램에 몇 번 출연해서 같이 촬영해 본 적이 있는데, 진짜로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진짜 드럽게 재미 없다이! 개인기도 없고, 리액션도 없고, 애드리브도 못 받아치고……. 아니 PD 님 왜 한숨을 그렇게 쉬어요? 대타도 없습니까?”
강화동이 묻는 말에 PD 한 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대타는 있어요. 장재원 씨.”
“아이고! 방금 말 취소다! 정규호가 낫다.”
“그렇죠. 그리고 장재원 씨가 출연할 경우 문제가 있어요.”
PD가 하상훈을 한번 힐끗 보더니 다시 강화동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친구. 그룹 ‘어니스트’가 정규호 씨랑 동반 출연하게 되어있었는데, 장재원 씨가 출연하게 되면 어니스트가 출연 못 해요. 장재원 씨 소속사에서도 동반 출연을 원해서.”
“아…….그러면 단독 게스트를 데리고 와야 되겠네예?”
“오빠가 한 명 추천 좀 해 줘 봐요.”
담당 작가의 말에 강화동이 한쪽 손으로 턱을 바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녹화가 내일이재?”
“네.”
심각하게 고민하는 강화동의 입에서 여러 연예인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홍원이는 홍콩에 촬영 갔고, 웅진이는 내일 그 시간에 라디오 생방이 있고, 치오는 뭐하나? 석재는 전화 돌려 봤나? 나영이는 어떻나? 별로였나? 많이 나온 아들은 식상하재?”
PD들과 작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을 본 강화동의 시선이 허공을 향하며 눈빛이 아련해진다.
“시후. 그래 주시후! 시후 어떻노? <스타 메이킹>도 그렇고. 아직 방송 안 탔지만 섬마을 삼총사도 아마 시청률 빵빵 터질 낀데. 거기다가 싹싹하지, 노래 춤 다 되지. 잘생겼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아이가. 거기다가 갸가 가끔 빙구짓을 해서 웃기기도 하고.”
“아까 B&M 엔터에는 진작 전화 넣었는데, 대체 가능한 아티스트도 없고 주시후 씨도 액션 스쿨에서 연습 중이라 스케줄 못 뺀대요. 곧 드라마 촬영 들어간다고요.”
담당 작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한다.
“맞나? 그러면 시후 전화번호 알아내 볼래? 내가 직접 해 보게. 그래도 방송을 두 번이나 같이 했는데 혹시 또 모르지? 액션 스쿨은 시간 날 때 가서 연습하는 거지, 만날 붙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매니저가 두 명이나 붙어 있는 연예인인데, B&M에서 개인 전화번호를 알려줄 리가 있나요?”
“아, 이거 참!! 아쉽네.”
그런데 그때, 조용히 구석에 앉아 있던 하상훈이 휴대폰을 손에 들고 강화동에게 말을 걸어왔다.
“선배님, 제가 시후 형 전화번호 알고 있어요. 한번 해 볼까요?”
강화동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그리고 하상훈을 향해 물었다.
“니는 이름이 뭔데? 시후랑 친하나?”
* * *
아침부터 액션 스쿨에 출근 도장을 찍은 나는 방금 기초 체력 단련을 마치고 개인 연습에 들어갔다.
오늘이 이틀째라고 벌써 이 분위기에 적응이 된 듯, 이곳저곳 누비며 운동하는 것이 내 집처럼 편안해졌다.
나는 문영호의 액션 연기를 잠시 봐준 뒤, 거울 앞에 섰다.
양팔을 휘휘 저으며 몸을 풀고 있는데, 거울을 통해서 김남규 팀장이 뛰어오는 것이 보인다.
사무실 안에서 커피 한 잔 마시겠다고 들어간 사람이 왜 저렇게 뛰어와?
내가 ‘홱!’ 하고 뒤돌자 어느새 도착한 김남규 팀장이 내 휴대폰을 건넨다.
“시후야, 너 전화. 상훈이.”
“네?”
“받아봐. <슈스챌> 하상훈 있잖아. 너랑 친하게 지내던.”
휴대폰을 손에 쥔 내가 “여보세요?”라고 운을 뗐을 때였다.
“여…….”
“형!!”
“어! 상훈아! 오래간만이야. 잘 지내지? 너 데뷔하고 나서 방송은 좀 하냐?”
“혀엉…….”
“왜 그래, 인마? 무슨 일 있어? 어떤 쉐끼가 상훈이를 울려?”
“혀엉…… 이거 스피커 폰이에요.”
“크흠! 흠!! 그래. 상훈아. 무슨 일이야? 말해 봐.”
“저, 사실 내일 <아는 형님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는데요. 그런데 못할지도 몰라요. 배우 정규호 선배님이랑 동반 출연인데, 선배님이 급성 맹장 수술하는 바람에 게스트 자리가 비어서요.
하상훈의 설명을 더 듣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메인 게스트가 빠지게 되면 동반 출연자들도 함께 빠지게 되는 것이 이 바닥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으니.
“상훈아,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옆에 서 있는 김남규 팀장을 바라보았다.
통화가 끝나면 휴대폰을 가지고 가려고 기다리는 김남규 팀장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왜?” 하고 묻는다.
“팀장님, 저 내일 스케줄 있어요? 없는 거로 아는데.”
“응. 당분간은 액션 스쿨에서 연습하고 편하게 연기 수업 받으라고 스케줄 다 빼놓은 상태지. 아까도 JTB에서 출연 제의 왔었는데 거절했어. 내가 너 편하게 드라마에 매진하라고 너를 그 정도를 아끼고 생각하고…….”
“저 그거 하면 안 돼요?”
“어?”
“<아는 형님들> 나가고 싶어요.”
“갑자기 왜? 이미 한번 고사했는데. 촬영도 당장 내일이고.”
“오랜만에 상훈이랑 뭉치고 싶기도 하고 또 촬영가면 강화동 선배님이랑 이숭근 선배님 계시잖아요. 두 분 다 너무 편하게 해주셔서 괜찮아요. 해도 돼요?”
“음…… 그래. 네 뜻이 정 그러면 내가 제작진이랑 따로 통화할게.”
이 말을 끝으로 김남규 팀장은 자신의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들고는 사무실로 발걸음을 돌린다.
아마 본연의 일을 하게 되어 신났을 것이다.
걸어가는 김남규 팀장의 어깨가 으쓱으쓱하는 걸 보니.
나는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고 하상훈을 불렀다.
“내가 나가면 되는 거지?”
“형! 나올 수 있어요? 정말요? 형이 올 거예요?”
“네 첫 예능인데 방송국까지 갔으면 뭐라도 찍어야지, 그냥 후퇴할 수는 없잖아. 그리고 나라도 괜찮을까? 하고 걱정했는데, 마침 제작진에서 우리 팀장님한테 출연 제의 때문에 전화하셨다고 해서…… 나라도 괜찮나 봐. 아하하하.”
“시후야! 니 증말로 내일 올 수 있나?”
수화기 너머로 하상훈이 아닌 다른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강화동이었다.
“에잉? 선배님도 같이 계셨어요?”
“그래! 인마! 내다! 니 내일 진짜로 올 끼제?”
강화동이 묻는 목소리와 함께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함께 들려온다.
아. 스피커폰이랬지.
제작진도 함께 있는 듯했다.
‘주시후 씨 매니저 분한테 지금 전화 들어와요.’라는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네, 선배님. 내일 제가 갑니다!”
“시후 의리 대단하네? 하상훈이랑 친하나?”
“그럼요! 아주 친하고 제가 진짜 좋아하는 동생이죠.”
“우와……의리에 쌀고! 의리에 쭉는! 의리맨! 주씨후! 의리매앤!”
갑작스러운 강화동의 랩에 피식 웃음이 터졌지만, 뭐 원래 저런 콘셉트니까.
“선배님.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상훈아, 떨지 말고 마음 편하게 와. 잠 푹 자고…… 알았지?”
“그래, 시후야. 내일 보자이! 니는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온나.”
“형……혀엉……. 징짜 고마워요옹. 싸랑해용!!”
“알았어. 애교 떨지 마, 인마! 끊어!”
나는 귀찮다는 어투로 대응했지만, 자꾸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랜만에 보는 하상훈의 애교 섞인 목소리를 들으니 절로 삼촌 미소를 짓게 된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생길까?
나는 기대를 잔뜩 하며 한쪽 구석 소파에 가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아는 형님들에서 요즘 밀고 있는 애드리브가 있나?
요즘 자주 하는 게임이나 개인기 같은 것도 미리 준비해가는 것이 좋겠지.
인터넷에 접속해서 최근에 방영한 <아는 형님들> 몇 회를 다시 보기 하다가 이내 꺼버린 나.
이번에는 다른 것을 검색하느라 손가락이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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